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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신앙에 성숙을 이루어갑시다. (약1: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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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신앙에 성숙을 이루어갑시다. (야고보서 1:19~27)




0세기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국의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지금 인도의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간디는 역사에 남는 답을 해주었습니다.


『인도의 시급한 과제는 경제 건설이나 사회복지 건설이 아니라, 인격 건설입니다.』



성경의 큰 핵심이 바로 인격 건설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인격의 변화와 성숙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 받는 것이요, 예수님을 닮아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아주 단순명료합니다. Godliness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의 본질입니다. 최근에는 영성형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의 영성가인 Richard J. Foster는 그의 책 <영적 성장을 위한 제자훈련>에서 성숙한 경건생활 지침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해줍니다.


『내적 훈련, 외적 훈련, 공동체 훈련』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경건생활의 성숙에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적이고, 둘째는 관계적이고, 셋째는 공동체적입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후반부 말씀을 잘 관찰해보면 우리의 인격 건설 내용을 세 가지 structure로 전개해나갑니다. 자신의 내면관리, 다른 사람과의 관계유지,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펴주는 실천적 경건생활입니다. 이처럼 성경적 성숙은 개인적이고,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1장 후반부 내용은 사실 야고보서 5장 전체에서 가장 산만하고 복잡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분석하며 관찰해보면 의외로 단순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경건생활에 진정한 성숙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지 실제적인 지침을 줍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실천편입니다. 야고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그대로 사시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적 신앙생활의 단계를 뛰어넘어 생활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적 배경으로 그는 『경건』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이 단어를 종교라고도 번역하는데, 생활예배를 뜻합니다. 즉 진정한 예배는 삶으로 계속 이어져야 함을 피력합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신행일치를 강조합니다. 믿음과 행동, 신앙과 실천은 하나입니다. 야고보서의 메시지는 생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경건생활의 실천 지침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생활신앙에 성숙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1. 말씀을 낮은 자세로 들으며 성숙해갑시다.



우리가 실천이 따르는 생활신앙에 성숙을 이루어가려면 맨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낮은 자세로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본문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고, 가슴에 새겨 놓으라고 합니다.


(humbly accept & plant in your heart the word God)


야고보는 우리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첫째, 잘 듣는 자가 되라. 둘째, 말을 아끼는 자가 되라. 셋째,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라.


본문 19절 말씀은 매우 명쾌합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들을 줄 아는 자가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잘 말하기 전에,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과거 현인들의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모두가 큰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굴이나 체구의 크기에 비해 귀가 굉장히 큽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그만큼 경청에 익숙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성자(聖者)라는 한자의 聖을 분석해보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을 세 배로 한다는 뜻입니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움직인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경청 리더십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리더십의 교과서인 <성공하는 사람들이 7가지 습관>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피력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경청의 원리 중 마지막 결론은 공감적 경청의 태도입니다.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낮은 자세로 들어야 공감하며 경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성으로 듣지 말고, 정성으로 들어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낮은 자세로 경청하면 화를 쉽게 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자세로 들으니까 화부터 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주장이 강한 자입니다. 둘째, 상처가 많은 자입니다. 셋째,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작은 그릇이 빨리 끓는다는 속담처럼 옹졸한 사람일수록 화를 잘 냅니다.


당신을 화나게 한 사람에게 화를 내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이미 정복당한 것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즉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께 정당화될 수 없음을 주지시켜줍니다. 자신이 성을 낸 것에 대하여 변명하지 말라는 일침입니다. 독수리는 까마귀와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관리에 성공해야 성숙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21절 말씀 그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낮은 자세로 겸손히 듣고, 마음에 새기고 살면, 아름다운 변화와 성숙을 이루어 갑니다. 생활신앙의 성화를 이루어갑니다.




2. 말씀을 낮은 자세로 실천하며 성숙해갑시다.



우리가 야고보서를 계속 살펴보듯이 신앙의 진정한 성숙은 실천하는 만큼 이루어집니다. 실천이 없는 신앙은 허구이고, 허상입니다. 실천이 없는 종교가 곧 샤머니즘입니다.


요즘 우리는 일주일 사이에 수많은 설교를 듣습니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설교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천이 없는 설교감상주의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설교를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만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설교를 너무 많이 듣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문 22절~24절 말씀이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규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본 다음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낮은 자세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의 결론인 26~27절을 보면, 기독교가 강조하는 경건의 본질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경건은 말로 한몫 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의 어떤 신분이나 외형이 아닙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경건의 본질은 낮은 자세로 섬김을 실천하는 생활신앙입니다. 우리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낮은 자세로 섬기고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섬김입니다. 세상의 공식은 정복과 성공입니다.


그래서 27절 결론에서 우리에게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세상의 기준은 섬김이 아닌 지배와 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성숙은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의 결론 말씀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순수한 경건이다.』



제가 최근에 책을 통해 아주 감동적인 두 개의 글을 읽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대학은 미국 최고의 음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무엇보다도 그 대학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은 장애인에게 천국 같습니다.


학교 시설의 모든 시스템이 장애인에게 편리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강의실로 이동하는 길, 화장실 가는 길, 공용도서관에 가는 길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대학교가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장애인 편의시설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일화가 감동적입니다.


예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한 학생이 이 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그 학생은 불편한 시설로 인하여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학교를 상대로 고소를 했습니다.


재판결과가 참 의미있고 요즘 말로 사이다였습니다.


‘학교총장이 한 달 동안 휠체어를 타고 생활을 하면서, 그 학생이 겪었던 고충을 공감해보라.’


그 얼마나 통쾌한 재판인가요?


그 법관의 판결에 따라 신시내티대학교 총장은 장애인의 불편과 고충을 충분히 경험하게 되어 학교를 새롭게 변화시켰다는 감동 스토리입니다. 이것이 생활신앙의 본질입니다.



최근 박영규 교수님이 저술한 <세종의 원칙>이라는 책을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종대왕은 낮은 자세로 섬기는 리더십의 표상을 보여줍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1422년에 사회적 약자를 섬세하게 배려해주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노비에게도 출산휴가를 주는 획기적인 제도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산후조리 휴가가 7일이었던 것을 100일로 연장했습니다.


그리고 산전휴가 제도를 추가로 도입했는데, 임신한 노비의 경우 출산 1개월 전부터 모든 의무를 면제하도록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출산여성 노비의 남편이 군복무 중이면 30일 간의 휴가를 주도록 조치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옛날 왕조 시대에도 이런 파격적인 사회복지제도를 실현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세종은 얼마나 약자보호에 세심한지 의녀제도를 도입해서 남자 의사들에게 진찰을 꺼리는 여성을 각별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해야 사회풍속이 바로 선다며 90세 이상이 된 천인에게는 남녀 불문하고 무조건 쌀 두 석을 하사했습니다. 그리고 100세를 넘기면 모두 천인 신분을 면하도록 했습니다. 태어날 때는 천인으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양인의 신분으로 죽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해서는 해마다 양로연을 베풀어 위로해드렸습니다. 임금이 직접 베푼 양로잔치에는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노인들이 참석하여 즐겁게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지도자인 세종은 노비나 여성, 죄수,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하늘이 골고루 비를 내리듯이 임금도 모든 백성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 세종의 원칙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 우선입니다. 성경을 관찰해볼수록 하나님은 약한 자, 없는 자, 아픈 자, 낮은 자를 특별하게 보살펴주십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불가피한 하나님의 편애라고 말합니다.


여하튼 하나님 나라의 기본은 낮은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고아, 가난한 자, 힘없는 자, 혼자된 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 병든 자, 아픈 자, 장애를 가진 분들을 잘 보살피고 섬기며 살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 지구촌교회는 하사랑공동체를 만들어 발달장애인들을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지구촌교회 교우들 중에 아주 순발력 있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며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 내에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은밀하게 돌보아드리고, 자녀들의 학비조달, 선교사님들의 여러 가지 후원요청에 즉시, 즉각 큰돈을 쾌척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에 미얀마 선교지 차량구입 헌금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셨습니다. 훌륭한 생활신앙 선교입니다.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 중에 제3세계에서 온 근로자들을 후하게 대우해주고, 사랑으로 보듬어줍니다. 명실공히 비즈니스 선교입니다. 생활신앙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크게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25절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지구촌교회 교우들 934명이 세계적인 구호기관 컴패션의 아이들 813명에게 4억7천4백만 원 이상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생활신앙 선교입니다.



내 지갑이나 통장에서 얼마의 돈을 이웃구제나 선교비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 모두 생활신앙으로 성숙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크게 축복하십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의 결론은 생활신앙의 성화를 아름답게 칭찬하고 축복합니다.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순수한 경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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