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신 성령 (창1:1-5)
본문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는 기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영이 곧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령은 천지가 창조될 때부터 계시고 일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령강림절에 비로소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구약의 첫 번째 성경, 첫 번째 장에서부터 계시며 일하셨습니다. 성령강림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을 운동경기에 비유해보면 그 때 주전투수로 등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태초에"란 말은 번역하기가 참 힘이 드는 말입니다. 1977년에 「공동번역」성경이 나왔는데 창세기 1장 1절을 "한 처음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라고 번역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도 주고 놀라움도 주고 거부감도 주었습니다. 저는 "태초에" 이 말을 "모든 것의 시작에" 이렇게 풀고 싶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수면에 운행하셨다", 이 말은 성령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셨습니다. 시작이요 끝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야말로 알파가 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호흡에 비교합니다. 성령 또한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에서 "하나님의 영"은 "루아흐 엘로힘"인데 "루아흐"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 혼 영, 얼, 호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어떤 성경은 이것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펜위크(M.C. Fenwick: 한국 이름 片爲益)라는 선교사가 와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국을 매우 사랑해서 한국 옷을 입고 초가집에서 살며 한국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일치가 되려면 외국인들이 많이 와 있는 서울보다는 지방이 좋다고 해서 서울에 있지를 않았습니다. 이 분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번역했습니다. 원산에서 번역했기 때문에 「원산 역」이라고 하는데 한국적인 번역을 많이 시도했습니다. 이 분은 자기가 번역한 성경에서 성령을 아예 "숨"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성령은 호흡과 같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성령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그저 숨을 쉬고 삽니다. 필요하면 심호흡을 합니다. 성령강림절은 성령의 심호흡을 하는 날입니다.
성령이 시작이라는 것은 성령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중요한 일을 찾아보면 그 일이 시작될 때 모두 성령이 함께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가"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삼위일체의 근거가 되는 성경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은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사람을 만들 때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의논하셨다는 해석이 가장 보편적인 것입니다. 천지창조가 다 중요하지만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들 때 성령과 의논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이 예언활동을 할 때도 성령의 강림으로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사61:1a)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성령강림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마3:16).
교회도 성령강림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다가 이천 년 전 바로 오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나가 전도하기 시작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행2:1~4).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큰일.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도록 기도하셔야 됩니다. 성령이 시작이 되어야합니다.
젊은이들, 사회생활을 새로 시작할 때 성령께서 동행하도록 기도하셔야합니다. 험한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직장생활 하는 분들,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새로운 부서로 전출이 되었을 때, 상사가 새로 왔을 때 성령이 함께 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을 하는 분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성령이 함께 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 결혼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 성령이 함께 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도 함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목양교회가 이제 새 성전에서 예배드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성령이 크고 강하게 임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내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분단 55년만에 처음 있는 새로운 일입니다. 회담 장소에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김정일의 입에서 "돌아보니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왔습니다."하는 말이 나오게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남북정상회담은 분단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출발의 크고도 진정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만 성령이 함께 할 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늘 하던 일을 반복할 때도 성령이 함께 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하루 성령이 함께 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와 같이 기도하고 시작한 하루와 그렇게 기도하지 않고 시작한 하루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확실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사람이 도를 깨닫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산밑에 있는 어느 농부의 집에 부탁해서 식사를 날라다 먹으면서 그야말로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여러 날을 기도하는 데도 깨달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덕이 높은 수도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깨닫겠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수도사는 그대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는 농부가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인데 산밑에 있는 농부의 집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농부가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농부의 집에 가서 농부가 하는 것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농부에게 어떤 비범한 면이 있기에 수도사는 이 농부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했을까?' 생각하면서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 농부가 성실하고 경건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생활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주여!"한 마디 외치고는 밭에 나가 일합니다. 저녁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는 또 "주여!" 한 마디 외치고는 누워 곤하게 잡니다.
이 사람은 수도사를 찾아가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깨달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그러느냐고 하면서 기름병을 하나 내 주었습니다. 이 기름병을 들고 다시 농부의 집에 다녀오는데 기름이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수도사가 묻습니다.
"그대는 이 기름병을 가지고 농부의 집에 다녀오는 동안 주님을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까?"
이 사람은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한 번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보시오. 당신은 그 간단한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농부는 그렇게 피곤한 삶 가운데서도 하루에 두 번이나 주님을 찾지 않소? 그대는 그저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 하나만 걱정했지만 농부는 걱정할 일이 얼마나 많소? 날씨 걱정, 씨 뿌린 것이 제대로 자랄까 하는 걱정, 새들이 와서 쪼아먹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 그렇게 걱정할 일이 많은 가운데서도 주님을 두 번이나 찾지 않소?"
이 사람은 크게 깨닫고 산에서 내려 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톨스토이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깨달았겠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벽에 일어나서 "주여!" 외치고 하루를 시작하면 성령이 동행하고 이와 같이 성령과 동행하는 사이에 경건하고 성실하고 소망에 가득 찬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경비원에게 전도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 경비원은 일은 빈틈없이 하는데 웃는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전하니까 이 경비원이 강하게 거부합니다. "아주머니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나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는 더욱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사유가 있는 것 같아서 알아보니까 이 분이 풍파를 많이 겪은 분입니다. 군에서 장교로 전역한 뒤 사회에 정착하는데 실패했고 그런 사이에 가정이 깨지고 아는 사람들로부터는 배신과 버림을 당했습니다. 혼자가 되어 아파트 경비원 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하는 말씀이 "나는 한(恨) 덩어리입니다. 세상에 나만큼 이 세상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한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아파트 주민들 가운데 아주머니가 제일 친절하고 나를 인격적으로 대접해주는 것이 고마워서 제가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만,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합니까?" 전도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이 성도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내 말을 들어주고 싶다니, 그렇다면 한 가지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주여!' 한 마디만 하세요. 그 뜻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한 마디 하고서 세수하시고 식사하시고 일을 시작하세요."
경비원은 성도의 친절에 보답하는 뜻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 많은 분들이 이파트에 살고 있는데 성도는 무엇보다도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인정받아야합니다. 아파트 경비원들, 주민들 집의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떻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숟가락 숫자까지 잘 알고 있지요.
이 성도는 경비원을 더욱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아저씨, 오늘도 '주여!' 하셨지요?"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이 경비원은 하루에 한 번만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주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도를 만날 때마다 손을 들고 "주여!"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가출했던 자녀들이 돌아왔고 부인도 돌아왔습니다.
이 분이 하는 말이 처음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주여!" 했다고 합니다. 때때로 빼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여!"하고 나니까 마음이 웬 일인지 편안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차차 변화되는 것을 자기도 느끼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빼 먹지 않게 되었고 하루에 "주여!" 소리를 여러 번하게 되었고 자기가 "주여!" 부르는 그 주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발걸음이 저절로 교회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주여!" 부르는 순간에 성령께서 이 사람의 마음에 임재하셔서 이 사람의 한을 조금씩 녹여 주었고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분노를 조금씩 몰아내고 평화의 영역이 넓어지게 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주를 찾을 때 성령이 역사하는데 믿는 저희가 주님을 찾을 때 성령께서는 더욱 강하게 임재하시고 크게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권태가 생깁니다. 권태가 고이면 피곤이 됩니다. 피곤이 쌓이면 질병이 됩니다.
매일, 매번 성령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십시오. 매일 매일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신선한 의욕을 갖게 됩니다.
어떤 분이 집에서 직장까지 30년을 같은 길을 출퇴근을 했습니다. 기도하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 "하나님. 오늘도 직장을 잘 섬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퇴근하니까 출퇴근 길이 매일 새롭게 느껴지고 정년 퇴근할 때까지 매일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면 같은 길을 걸어도 늘 새롭게 느껴집니다.
교회학교 교사들, 교회학교, 참 중요한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가르치지 말고 가르치기 시작할 때마다 성령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여러 반에서 똑같은 내용을 가르칩니다. 편한 부분도 있지만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기술자를 기능공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때때로 기능공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성령님, 이 수업시간에 함께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선생님은 싱싱한 의욕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그 교실은 늘푸른 교실이 됩니다.
직업 가운데 짜증이 나기 쉬운 직업이 의사 선생님입니다. 쉴 사이 없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 비슷한 호소를 들어야합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들 가운데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다고 하지요.
예수를 잘 믿는 의사 선생님 한 분은 진찰을 마친 환자가 나가고 새 환자가 들어오는 사이에 잠깐씩 기도한다고 합니다. "주님, 지금 나간 환자, 제가 최선을 다했지만 주님께서 함께 치료해 주시고 이제 새로 들어오는 환자를 습관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진찰하게 하소서. 이 환자의 육신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살피게 하여 주옵소서", 그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그 진찰실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다른 것이 느껴지고, 의사 선생님에게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령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나와 함께 합니다.
우리가 구함으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기도함으로, 회개함으로 성령이 임하기를 구할 때 성령은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이 하시는 일이 여러 군데에 나옵니다. 성경의 순서대로 말씀을 드립니다.
성령과 함께 시작하시므로 이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환상을 보게 합니다. 에스겔은 주의 영이 인도로 마른 뼈 골짜기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겔37:1)
에스겔은 주의 영이 그 뼈들 사이에 있어서 그 뼈들이 살아나서 일어나 큰 군대를 이루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는 마른 뼈 골짜기 같은 북한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그들이 일어나 살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꿈과 이상을 갖게 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성령은 거듭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일꾼을 불러 세웁니다. 안디옥 교회에 좋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13:2)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십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해 줍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
성령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성령은 성도 안에 거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성도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고전12:13)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게 합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8)
성령은 자유를 주십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엡3:17)
성령은 기쁨을 줍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1:6)
성령이 참으로 많은 일을 하지요?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다 성령, 나쁜 일을 하는 것은 다 악령을 보면 됩니다.
성령과 함께 시작하면 이 모든 좋은 일이 함께 합니다.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땅이 처음에는 혼돈했습니다. 공허했습니다. 흑암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카오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혼란한 가운데 있습니까? 허전합니까?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 위에 운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운행한다"는 것은 새가 새끼를 돌보기 위해 날아다니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사야 31장 5절에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새가 날개 친다"는 것과 운행한다는 말이 히브리 원어로는 같습니다.
내가 비록 혼돈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서 나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창세기 1장2절과 같은 상태라도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운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영이 나에게 들어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구함으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기도함으로, 회개함으로 성령이 임하기를 구할 때 성령은 내게 들어오셔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성령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성령과 함께 한 주일을 시작하고 성령과 함께 새 일을 시작하고 성령과 함께 늘 하던 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환상을 보는 축복, 꿈과 이상을 보는 축복, 거듭나는 축복,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 받는 축복, 주의 일꾼이 되는 축복, 사랑을 받는 축복, 각종 유익의 축복,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 거하는 축복, 하나되는 축복, 자유를 누리는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오늘 강하게 임재하셔서 교회가 시작되게 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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