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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창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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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은급 주일을 맞이하여 저희 가정을 복음화 시킨 믿음의 조상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저의 고향은 경북 영주인데 아버지가 안동으로 '유학' 가서 기독교 학교에 다녀 예수를 믿게되었습니다만 본격적인 복음화는 할아버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학과 전통 유학에 젖은 분인데 '돌아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집안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금강산 표훈사 부근의 큰 바위 밑과 소백산에 들어가서 기도 생활을 하는 가운데 계시를 받은 일도 있습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저의 부모를 불러 "우리 집안이 예수 믿고 새 집안이 되었는데 감사한 뜻으로 찬국이를 목사 시키자"고 하시고 온 일가에게 "정오 사일렌이 불면 어느 곳에 있든지 찬국이 목사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해방 뒤 연세대 신과에 들어 갔는데 처음 50명이었던 학생들이 대부분 다른 과로 가고 3명 이 남아 추가 모집을 해서 12명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7명이 끝까지 공부했습니다.

 

1950년에 1회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혼자 입학했는데 625가 터졌습니다. 미쳐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 숨어 지나다가 위험한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서울이 수복된 다음에 징집 영장을 받아 입대, 군복무를 마치고 부산에 가서 피난 배재학교에서 영어, 독어, 성경을 가르치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피난 연세대 신과 대학장의 강청으로 연세대에서 구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로는 아주 힘들었던 미국 유학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시고 공부하게 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제가 3공화국 시절, 3선 개헌 반대로 감옥 생활을 하고 해직되어 학교에 나가지 못할 때 목양 교회(당시 노량진 교회)에서 '땜통 목회'를 할 수 있었고 지금 원로 목사가 되어 있는 것을 감사 드립니다.

 

저희 집안의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 때문에 저희 집안에서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호가 중봉(重峰)인데 "중봉 유훈 4"라 하여 "생명도, 육신도, 자녀도 내 것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자"라고 써서 벽에 걸고 온 가족이 복창하게 했습니다.

 

어느 집안, 또는 교회에 이런 믿음이 조상들이 꼭 있습니다. 그 분들을 생각하고 고마움을 나타내는 은급 주일을 지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또한 성도 여러분도 그런 믿음의 조상이 되어 자녀들을 위한 결단이 있기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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