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창조: 첫째 날 (창1:1-5)
본문
오늘부터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를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천지 창조의 첫째 날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사역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가 담고 있는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도 역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경의 모든 기자들에게 역사적으로 참된 것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역사적인 사실만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 창조의 기사를 하나의 신화나 전설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창1:27을 인용하심)
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창2:24을 인용하심)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천지 창조에 관한 모든 내용들을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천지 창조의 기사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로, 또한 역사적 사실로 분명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창조의 시작입니다(1절). 둘째, 창조된 땅의 원초적 상태입니다(2절). 셋째, 빛의 창조입니다(3-5절).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진리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창조의 시작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주 간단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 마디의 말씀이 우주의 기원을 그릇되게 주장하고 있는 모든 거짓된 사상들을 철저하게 배격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거짓된 사상들의 예를 들어봅니다.
첫째, 무신론입니다(atheism).
무신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태초에 천지가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무신론을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10: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와 같이 성경은 무신론자를 악하고, 교만하며, 어리석은 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둘째, 다신론(polytheism) 및 범신론(pantheism)입니다.
다신론은 여러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범신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만유의 일체가 신이라고 보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유일하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함으로서, 다신론도 범신론도 일체 불허하고 있습니다.
셋째, 유물론입니다(materialism).
이는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물질로 보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물질이 궁극적 실재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물질도 태초에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창1:1의 말씀은 유물론에도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넷째, 진화론입니다(evolutionism).
이는 우주 만물이 스스로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서서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천지 만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더 나은 쪽으로 향상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시부터 그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불가지론입니다(agnosticism).
이는 우주의 기원이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문제이기에, 인간은 여기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보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창1:1의 분명하고도 장엄한 선언 앞에서 무신론도, 다신론과 범신론도, 유물론도, 진화론도, 불가지론도 다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거짓된 사상들도 창1:1 앞에서는 그 설자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제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태초에”입니다. 이는 시간의 출발점입니다. 그 이전은 영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천지 가운데 천(天), 곧 하늘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공간을 창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천지 가운데 지(地), 곧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기본이 되는 세 요소, 곧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세 요소를 만드시기 위해서 오랜 기간을 소요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들을 일순간에 순간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셨을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에 따라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필요한 포도주를 순간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으로 이들 세 요소를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존재한 것들을 이용해서 이들 세 요소를 만드신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들 세 가지 요소를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예컨대 본래는 빛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시면서, 빛을 있는 것 같이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빛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creatio ex nihilo). 그래서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우리가 사용한다고 해서 이들이 우리의 소유는 아닙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이들을 빌려서 쓰고 있을 뿐입니다.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이 고백한 것처럼, 때가 되면 우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에게 되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선한 청지기의 심정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창조된 땅의 원초적 상태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1:2 1)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2)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3)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창1:1에서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들 세 가지는 천지 창조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료에 불과했습니다.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이와 같이 성경은 종종 창조주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이 빚으신 토기에 비유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토기장이의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토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먼저 토기장이는 진흙 더미 한 덩어리를 선반에 올려놓습니다. 이 진흙 덩어리를 재료로 해서,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식의 토기를 아름답게 빚어나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2절은 이 지구가 아름답게 만들어지기 이전이었던 재료의 상태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3절 이하에서 드디어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토기를 아름답게 빚어나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은 1절에 나오는 세 가지 요소들 가운데서, 특별히 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새 창조,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까지 바로 이 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펼쳐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창조된 땅의 원초적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오늘 본문은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둘째,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이들 세 가지 상태를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첫째,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혼돈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시 상태의 땅이 혼돈했던 이유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이 아직은 그곳에 닿지를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째, 둘째, 셋째 날의 창조 사역을 통해서 혼돈 상태의 땅을 정돈된 상태의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아울러 땅은 공허했습니다. 텅 비어있었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이 그곳을 채우시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날의 창조 사역을 통해서 공허한 땅을 채우셨습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첫째 날 넷째 날
빛과 어두움을 나누심 낮과 밤을 주관할 광명을 창조하심
둘째 날 다섯째 날
궁창 아래의 물과 하늘을 채울 새와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심 바다를 채울 물고기를 창조하심
셋째 날 여섯째 날
바다와 육지를 나누심 육지를 채우고 식물을 먹을
식물을 창조하심 짐승과 인간을 창조하심
둘째,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이었습니다. 따라서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을 뿐만 아니라, 흑암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조된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흑암이 땅 위에 있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창조된 땅의 원초적인 상태가 깊은 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104:5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시104:6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벧후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본시 땅은 깊은 물로 덮여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2절 마지막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신은 어디에 운행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은 땅이 아니라,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라서, 우리가 창조된 땅의 원초적 상태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그 위를 깊은 물이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가 흑암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성삼위 하나님의 삼위이신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시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창조의 사역을 통해 지면을 새롭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성령님이 수면에 운행하신 것은 창조된 원초적 땅의 상태를 새롭고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신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기에 “너풀거리다”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오늘 본문 2절에서 “운행하다”로 번역된 단어와 똑같습니다. 독수리의 어린 새끼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미 독수리는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립니다.
어미 독수리가 너풀거리며 그 새끼 위에 운행하듯이, 하나님의 신도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게 될 장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수면에 운행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 이 시간 우리 가운데는 자신의 삶이 혼돈하고 공허한 것처럼 느껴지는 분은 없습니까? 마치 자신의 삶이 흑암에 싸여있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게 여겨지는 분은 없습니까?
그럴수록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삶에 운행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뒤죽박죽이었던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정돈해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공허한 삶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케 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어두웠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우리의 보혜사이시기에,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능력 있는 삶, 승리로운 삶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창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빛의 창조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1:3 1) 하나님이 가라사대 2) 빛이 있으라 하시매 3) 빛이 있었고
창1:4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5)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1:5 6)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7)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제 드디어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자신이 뜻하시는 대로 토기를 빚어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토기장이가 자신의 작업장을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 먼저 작업장의 전기 스위치를 올려 불을 밝힌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첫째 날, 이미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은 이들 세 가지의 기본적인 요소들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으로서는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창조에 관한 말씀을 일곱 요소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가라사대”입니다. 이는 창조의 방법입니다.
둘째, “빛이 있으라 하시매”입니다. 이는 창조의 명령입니다.
셋째, “빛이 있었고”입니다. 이는 창조의 성취입니다.
넷째,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이는 창조의 평가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입니다. 이는 창조의 실행입니다.
여섯째,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입니다. 이는 창조의 등기입니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주권과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는 창조의 내력입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은 같은 유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순서나 내용상에 그저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들 일곱 가지 요소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창조의 방법입니다(method of creation).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 표현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 가운데서 모두 10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빛을 비롯한 모든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33: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둘째, 창조의 명령입니다(order of creation).
“빛이 있으라.”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입을 열어 창조의 명령을 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시부터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도 말씀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이와 같이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갑니다. 아울러 말씀은 인류 최후의 날에 우리를 심판하는 주관자로 활동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첫 날부터 세상의 끝 날까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셋째, 창조의 성취입니다(fulfillment of creation).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2절에서 살펴본 대로, 지금까지는 혼돈하고 공허한 땅을 깊은 물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를 흑암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흑암을 밝히는 빛이 창조되었습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사라지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응하여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우리를 뒤덮고 있는 모든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환하게 비치게 될 것입니다.
넷째, 창조의 평가입니다(evaluation of creation).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에는 이와 같은 표현이 모두 일곱 번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을 모두 마치신 후에, 그 최종적인 평가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창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딤전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창조의 실행입니다(execution of creation).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이전에 있었던 흑암, 곧 어두움을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어두움을 멸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은 창조된 빛과 기존의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분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나누는 일도 역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실행하시기 위해서, 빛과 어두움을 분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어두움은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빛뿐만 아니라 어두움도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빛과 어두움을 분리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는 모두 세 번에 걸친 분리 사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날,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속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이전에 있었던 흑암, 곧 어두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빛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전에 행하던 모든 어두움의 일들을 온전히 벗어버립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빛의 자녀들답게 언제나 빛 가운데서 행합시다. 그리함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시고 평가하실 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창조의 등기입니다(registration of creation).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신 후에 어두움을 멸하시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첫째 날부터 낮과 밤이 교대로 계속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은 주야를 하루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에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빛에는 낮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어두움에는 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신 최초의 경우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그 존재에 대한 주권과 소유권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는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이방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왕하24: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단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이름을 부여받은 자는 종이 되어 이름을 수여한 주인에게 복종이 요구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에 이름을 부여하신 것을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낮과 밤을 자신의 소유로 등기하신 것입니다.
시74:16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낮과 밤을 비롯한 모든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우리는 언제라도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남김없이 그대로 반납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선한 청지기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을 아끼십시다. 낮에는 낮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일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가 밤에는 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안에서 편히 단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일곱째, 창조의 내력입니다(history of creation).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우리가 개인의 이력서나 일반 역사를 기록할 때, 우리는 날짜별로 또는 연대별로 순서에 따라서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엿새 동안에 창조된 것들이 날짜별로 차례차례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엿새 동안에 걸쳐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나님은 여섯 시간, 아니 단 6초 동안에라도 얼마든지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20: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들에게 삶의 양식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양식은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칠일은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평소 엿새 동안에 하던 일은 쉬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일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43:20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힘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 된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제칠일은 안식일로 거룩히 지키십시다. 이 날은 하나님이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주의 날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에게 큰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패턴에 따라서, 또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에 따라서, 우리의 삶과 예배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에게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의 복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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