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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재창조 (창1:1-8)

본문

여러분은 언제 과거의 사색에 잠깁니까?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인생을 뒤돌아 볼 때가 언제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가 성공하여 바쁠 때는 과거를 별로 성찰하지 않다가 어렵고 힘들 때 주로 과거를 회상합니다. 사람들은 많이 힘들수록 더 먼 과거를 회상하며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장 깊은 고통의 때에 자신들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더 나가서 온 우주 만물의 시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의 시작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은 내용적으로도 모든 만물의 처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포로기의 상황 (삶의 자리, Sitz im Leben)


오늘 구약 본문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시대에 유대의 제사장 그룹에 의해서 발생되었다가 포로 후기에 고향에 돌아와서 쓰여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잘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포로 생활을 상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은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가 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제 이주에 의해서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제사를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망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포로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들의 주변에는 모두 바벨론의 건축물 등 화려하고 웅장한 바벨론의 문화에 온통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온 세상을 호령하는 바벨론의 정치가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라한 메뚜기나 지렁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살아갑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서 바벨론 사람들에게 패배했다는 것은 바벨론 신이 이스라엘 신보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신들의 힘은 눈으로 증명이 됩니다. 바벨론 성전인 만신전(Pantheon)은 승리의 상징처럼 웅장하게 우뚝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성전은 전쟁 중에 약탈을 당했고, 바벨론의 웅장한 성전에 비하면 예루살렘 성전은 화장실처럼 보일 정도로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하나님을 부끄러워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국 땅에서 추방의 위협 앞에 있었읍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포로생활은 말 그대로 종살이고 괴로운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의심과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삶의 자리” (Sitz im Leben)였습니다. 바로 이 삶의 자리에서 오늘 본문인 제사장 문서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이 시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은 정반대의 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문은 창조주이신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찬란하고 웅장한 바벨론 종교와 의식에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은 그것에 위축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한 놀라운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첫 문장을 이런 위대한 신앙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천지창조에 대한 선언문입니다. 이 선언문에는 네 가지 중요한 낱말이 있습니다.


     1. ‘태초’


먼저 “태초”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태초라는 말은 창조의 시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영원으로부터 시간이 시작되는 첫 출발점을 말합니다. 하늘과 땅은 영원전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것들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2. ‘하나님’


둘째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은 바벨론 사람들이 믿었던 바벨론 창조설화 (Enuma  Elish)와 아주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바벨론 신화에는 신이 여럿이 있어서 각각 다른 힘과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유일한 한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만성전(Pantheon)이 필요가 없고, 바벨론의 그 많은 신 보다도 하나님 한 분의 능력은 더 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를 설계 하고 지은 분은 세상의 여러 신들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출3:14), 전능하시고(창18:14), 거룩하시고(레11:44), 전지하시며(시19:1), 의로우시고(사45:21), 사랑이시며(요3:16), 불변하시고(히13:8), 진실(신32:4)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만이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천지)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3. ‘천지’


세번째 중요한 단어는 “천지”라는 단어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별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별들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해와 달과 별은 신이 아니고 피조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을  위해 피조된 빛을 내는 물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을 합니다. 여기서 천지란 온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의미합니다.


    4. ‘창조’


네번째로 중요한 단어는 “창조”라는 말입니다.


바벨론설화(Enuma Elish)에 의하면  모든 것의 출현은 가장 높은  신인 “마르둑”(Marduk)과 “혼돈의 신”(Tiamat)과의 처절한 싸움의 결과입니다. “혼돈의 신”의 시체조각으로 “마르둑”이 우주를 만든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별로 힘들지 않게 세상을 창조하신 것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어떠하게 “되어라”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라고 하였고, 하나님께서 혼자서 만족스럽게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창조는 ‘처음으로 지었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조하다’로 번역한 히브리 낱말은 이미 있는 것으로부터 다른 것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주권자답게 ‘무에서 유로’ 불러낸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라는 말 속에는 창조자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과, 창조는 창조자가 자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서 창조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바벨론 창조 설화에는 신의 시체 조각이 우주가 되는 등 우주 만물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그 결과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기록한 것처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잘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로기의 반성


여러분, 창조에 대한 신앙고백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닙니다. 이 신앙고백은 성령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셔서 극심한 역사적 고통의 상황을 이기도록 하시는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이토록 위대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저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분명히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고난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삶을 반성할 수 있고 역사를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내적인 재창조가 포로기에 일어났습니다. 고난 속에서 타락하여 벌 받은 백성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극심한 고난이 이들의 신앙을 정화했습니다.


유대교의 랍비로서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 센터의 상담가로 재직했던 크라우스가  쓴 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두 나무꾼이 뿌리를 내린 지 백년이 넘은 나무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자르자 나이테가 보였습니다. 젊은 나무꾼은 다섯 개의 나이테가 거의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5년 동안 가뭄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라고 쉽게 결론을 내렸다. 나이테가 붙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자라기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이 많은 현명한 나무꾼은 젊은 나무꾼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관점 하나를 말했습니다.


“가물었던 해는 실제로 그 나무의 생명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네. 가뭄 때문에 그 나무는 땅 속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려야만 했겠네. 그래야 필요한 수분과 영양소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뭄이 사라지자, 나무는 튼튼해진 뿌리 덕분에 더 크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 신앙의 힘으로 바벨론 포로기의 고통을 이겨내고, 그들의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출애굽의 기적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이집트의 포로기와 똑 같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해방 기적을 사모하게 되고, 결국 역사적으로 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앙을 새롭게 창조했습니다. 새로운 창조 신앙의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폐적이고, 독선적인 신앙이 새로워 질 수 있었습니다. 성전과 절기의 생생한 의미를 상실하고 성전이라는 장소에 집착하고, 절기라는 시간에 얽매이고, 제사라는 의례 행위에 고정된 신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기를 잃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혼합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시기에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본질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이들은 장소에서 자유롭고 절기에서 자유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본질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만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서도 어디서든지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으로 고백을 합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창조를 발견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발견한 신앙은 현실의 역사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신앙으로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잠자던 용기와 지혜를 깨운다. 사실, 고난은 우리에게 없었던 용기와 지혜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우리는 오직 고난을 통해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스콧 펙, M. Scott Peck).


신앙은 현실을 이기는 힘입니다. 신앙 고백은 현실을 이기는 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하면 모든 피조물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창조하십니다. 여러분이 이 신앙 고백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능력이 여러분의 삶에서 약동하게 하십시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가장 큰 걱정을 목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놓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시련의 때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네 단어를 잊으시면 안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 문장을 잊지 마십시오. 현실을 뚫고 나가는 힘이 이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창조신앙으로 이 세대의 불신앙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창조신앙으로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는 위대한 능력을 얻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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