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6:25-34)
본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장 25~34절)
매 달 셋째 주에 이어지는 주기도문 설교를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주기도문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8월 달력에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주기도문 내용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오늘 본문 32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의식주 문제에 매인 종인가? 그것은 고아의 삶이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살라. 자유를 누리며 모든 것을 더하시는 사랑을 받으리라」 라는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인은 밥으로 통하는 민족인 것 같습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이 고유명사 같은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밥으로 다 통하는 한국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얼마나 밥하고 친하게 지내는지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진지는 드셨는지요?, 너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야~ 진짜 고맙다 나중에 밥 한 끼 사줄게, 밥은 먹고 지내냐?, 밥은 꼭 챙겨 먹어~, 재 진짜 밥 맛 없지 않냐?, 저래서 밥은 벌어먹겠냐?, 밥값은 해야지~, 그 사람하곤 같이 밥도 먹기 싫어, 너 그러다가 콩밥 먹는다~, 어우!! 이 밥팅아!, 넌 목구멍에 밥이 넘어 가냐?, 그게 밥 먹여 주냐?, 진짜 밥맛 떨어지네, 밥만 잘 먹더라, 다 된 밥에 재 뿌리냐?, 밥상에 숟가락만 얻을 라고 하네, 집에서 밥은 차려 주냐?, 밥 잘 챙겨 먹어 밥 심(힘)이 최고여!”
진짜 밥으로 다 통하는 한국 사람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직장이나, 이웃에서도 밥 잘 사주는 사람을 최고로 여기고, 밥 잘 자주는 사람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이 모입니다. “식욕이상으로 진실한 집념은 없다”라는 (John cisna)라는 속담처럼, 먹는 즐거움, 이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인 듯합니다.
신학교 때 목회학 교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앞으로 여러분이 담임목사가 되어 당회 하실 때,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밥 먹고 회의 하는 겁니다. 절대로 밥 먹기 전에 회의 하지 마세요. 안 먹고 회의 하면 배고파서 머리 쓰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짜증내고, 회의가 어그러집니다. 꼭 밥 먹고 당회 하세요. 술술 잘 풀릴 겁니다.” 밥 먹고 대화하면 자리가 평안해 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밥은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라, 교제와, 교감과의 매개체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밥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 합니다. 그냥 저냥 먹고 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좀 더 맛있고, 특색 있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고, 또 먹기를 추구하는 것이 어찌 보면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는 것이 먹는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최소한 집은 한 채 있어야, 자녀 교육비 정도는 여유가 있어야, 자녀 시집 장가보내고 노후 까지는 대비해놔야....끝이 없습니다. 결국 염려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결할 수 없는 유혹과 시험으로 우리 믿음을 약화 시킵니다.
예수님도 오늘 본문에서 먹는 문제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다. 25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라고 하셨고, 31절에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거듭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 즉 기초적인 의식주의 문제를 가지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실상은 우리 삶에서 겪게 되는 모든 “염려”에 대해서 이제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31절에, “이는(염려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라고 하셨는데,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럼 불신자였다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신분이 바뀐다고 해서 염려가 눈 녹듯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일평생 염려가 더 이상 생기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믿음이 있으시니 염려가 하나도 없으신가요? 믿음 후에 염려가 더 많아 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염려는 우리가 육체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은, 이방인들은(불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은) 먹는 문제가 최고 관심사고, 먹을거리가 곧 자랑거리이고, 먹을 것을 많이 확보 하는 것(재력, 돈)이 곧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믿는 자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뭔가 달라야 한다는 뜻이고, 신앙적으로 말하자면, “믿음의 성도라면, 크리스천이라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믿기 전이나, 후나, 온통 먹는 것에, 돈에, 성공과 출세에, 자랑에, 허영과 사치에, 음란과 유흥에...빠져서 믿기 이전 보다 갈수록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도대체 이게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느냐? 너희들이 진짜 이방인들과 구별된 믿는 자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이제는 믿는 자답게,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다시 결정해라, 제대로 믿어라, 똑바로 살아가라고 권면을 하신 것입니다.
30절 하반절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2절 중반부부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머리속에서 염려의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첫째는, 믿음이 부족해서 이고, 둘째는,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염려를 해소 하는 방법도 다 나온 것입니다. 우리 마음, 머리, 입에서 염려가 쏟아져 나온다면, 가장 먼저 나의 믿음 없음을 한탄하고 믿음을 강하고 굳게 세우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염려 문제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나도 숨김없이 다 하나님께 아뢰고, 모든 염려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해답을 들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염려를 해소한다고 하면서 또 다른 염려를 쌓아가는 어리석은 자들 이지만, 믿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자신의 믿음 없음을 염려 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음을 염려해야 모든 염려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초보적이고 당연한 이 신앙의 원리를 예수님이 직접 말씀 하셔서 성경 가록으로 남겨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신앙의 기초적인 기도, 성령,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믿음이 작은 자들과 똑 같이,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늘 아버지를 찾는 일에 무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이 아니면서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리고 있는 평안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않나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가정의 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 수건을 개어 장에 넣고 있다가 갑자기 친정 엄마가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답니다. 이유인즉, 처녀 일 때는, 서랍장만 열면 차곡차곡 잘 개어있는 수건이 얼마만큼의 수고와 정성으로 채워져 있었는 줄 미처 몰랐는데, 막상 자신이 시집와서 수건 하나 챙겨 놓는 것도 힘이 들더랍니다. 남편은 자기의 수고도 모르고 물만 한 번 닿으면 수건을 빨래 통에 획 던져 놓고 새것을 계속 꺼내 쓰면서,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개어서 넣어놓은 수고는 생각지도 않고 너무 당연히 쓰는 것이 괘씸했다고 합니다. 문득 수건을 장에 넣은 순간, 자신이 과거 30년 넘게 엄마에게 그렇게 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도 똑 같이 수고를 했는데, 자기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한 번도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여자분들, 특히 20대 젊은 여성분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시더라구요. 저희 교회 건물 옆도 지정 흡연 장소처럼 많이들 오십니다. 저희 집 바로 앞에 건물 주차장이 있는데, 거기도 거의 지정 흡연 장소입니다. 약간 후미진 곳이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종일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웁니다. 하루만 지나도 담배꽁초가 수북 하게 쌓입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누군지 모르는 중년의 어느 여자 분이 홀로 빗자루로 주차장 하고, 그 옆 도로 주변 까지 쓰레기들을 청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의 수고 때문에, 그 곳이 매일 같이 깨끗해져 있음을 거기 담배 피러 오시는 분들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모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주 시원하게 튕겨서 버리시더라구요.
가정이든 사회든,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스치며 지나가면서 너무 쉽게 사용하는 장소, 물건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누군가의 수고가 있기 때문에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던 “6411 버스”를 아실 겁니다. 건물 청소 노동자들이 새벽 같이 이 버스를 타고 강남에 도착하여, 회사원들이 근무 시작하기 전에 건물 청소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노동자들의 이른 아침부터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그 건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청결한 환경에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그만큼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데, 누군가는 해야 하고, 당연한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요? 라고 반문 하실 수 있습니다.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는, 믿는 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닌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일입니다.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십자가의 고귀한 희생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믿음이 바닥났음을 염려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전능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얕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부자가 아무리 많이 재산을 많이 모아 곡식 쌓을 창고를 새로 만든다고 해도 오늘 밤에 그 부자의 생명을 거두어 가면 아무 것도 쓸모없습니다. 우리 나름 대로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고 자랑해봐야,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나눠 주지 않고,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천국을 사모하지 않으면 천국에서는 내가 한 일들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여! 주여!”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해도,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모른 다고 부인하시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구원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때문에 내 자신이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해여 영생에 대하여 산 자라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여전히 내일 일을 염려 하며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인생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염려 대신에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도 알려 주셨습니다. 유명한 구절이죠.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하나님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거창한 것 아닙니다. 단순합니다. 하나님(예수님, 성령님)과 화목의 관계를 늘 유지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찾아가고, 언제든지 대화 하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관계가 화목의 관계입니다. 화목을 이루시면, 때 마다 말씀 하실 것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자녀의 본분입니다. 주님과 멀어지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가는 큰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이미 충분히 주었다, 염려 없는 진실 된 감사만이 너희가 할 일이다”라는 뜻을 담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문을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 주신 것, 우리가 가진 것, 건강하게 먹고 마시는 것, 예배자로 불러 주신 것, 하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에 그저 감사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습관처럼 당연해 지면 다시 하찮은 염려거리들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 주기도문을 올려 드릴 때마다, 우리에게 육신의 양식 뿐 만 아니라 영생의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문제는 염려하지 않게 하시되, 믿음 없는 것은 늘 염려 하게 하시고, 하나님 찾지 않는 것도 염려하며 살아가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문을 드릴 때마다, 세상 염려는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올려 드림으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 동사 하며 영생복락을 누리는 천국 길로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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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드릴 때마다, 우리 마음의 모든 염려를 거두어 주시고, 그 빈자리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모든 염려는 다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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