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짐의 은혜를 따라서 살아가요 (창36:1-8)
본문
나누어짐의 은혜를 따라서 살아가요 /창세기36;1-8
PW : 믿음 BIW : 나누어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로 좋은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촉매로서 사는 삶
한 어르신이 숨을 거두면서 세 아들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내 재산은 오로지 소 17마리뿐이다.
큰아들은 반을, 둘째 아들은 3분의1을, 막내아들은 9분의 1을 갖도록 해라.”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은 17마리 소를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산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큰아들 몫인 절반은 17×1/2=8.5로 8마리 반이니 살아 있는 소를 반으로 잘라야 했고, 둘째 아들은 17×1/3를 계산하니 5.666가 되었고, 셋째 아들은 17×1/9를 계산하니 1.888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계산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세 아들은 마을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어르신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어르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자신의 소 한 마리를 더 가져와 계산을 했습니다.
“자. 이제부터 자네들 아버지의 유언을 집행하겠네.
큰 아들 몫은 절반이라고 했으니 여기 18마리 중 9마리를 갖게.
둘째 아들은 3분의1인 6마리를 갖고,
막내아들은 9분의 1인 2마리를 갖도록 하게.
그러면 이제 17마리가 되어 한 마리가 남으니, 그것은 원래 주인인 내가 도로 가져가겠네.”
어르신이 제시한 해결책에 세 아들이 무릎을 쳤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었고, 또 원래의 자기 몫보다 더 많은 분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 한 마리 소를 더 가져와서 세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다시 한 마리를 가져간 이 해결 방법은 참으로 특이한 방법이었습니다.
어르신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서, 세 아들의 고민을 풀어준 획기적인 방법이 되었습니다.
어르신이 가져온 소 한 마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촉매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의 반응을 촉진시켜 주거나 지연시키게 해주는 것이 촉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디를 가든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촉매자로 사는 신앙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문제해결을 위한 촉매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와 가정과 생업터전과 나라와 한민족에 걸려있는 잡다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창세기 36장은 이삭의 장자 에서의 가계도를 함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에서의 가계도에 대한 기록은 모세가 BC1440년경 모압 평지에서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하던 중에 창세기를 기록할 그 당시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광야 생활하던 시기에 에서의 후예들, 에돔 족속은 크게 번창할 때이다.
하나님의 구원 세계는 이삭의 장자인 에서의 가계도를 통해서 진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차자인 야곱의 가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세계를 펼쳐나가시기 때문에 성경은 에돔 족속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기록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경에 에서의 후예들에 대하여 기록하도록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면 에돔 족속은 어떻게 형성해 나갔을까?
① 3여인을 붙여주시는 하나님.
에서는 야곱에 비하여 많은 부분에서 뛰어나고 유능하고 사나이 중에 사나이다운 사람이다.
고고고고대 사회에는 사나이라면 당연히 사냥을 잘하여 가족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에서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다.
에서는 들 사람이 되어서 사냥을 아주 잘하는 사람으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에서는 듬직한 남자이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내요 잘 나가는 사람이다.
아마도 에서는 사회성이 좋아서 친구들, 동료들도 많았을 것이다.
에서는 40살에 가나안 헷 족속의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
한꺼번에 가나안의 두 여인이 에서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에서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면서 인기가 많았던 사람이었다는 반증이다.
창세기 26:34에 보면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26장에서의 기록과 36장에서의 기록에 보면 아내들의 이름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에서는 가나안의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런데 에서는 두 여인이 어머니 리브가와의 사이에 고부 관계가 원활하지 않아서 늘 어머니 리브가와 두 아내 사이에 갈등하는 모습을 본다.
그런가 하면 에서는 부모님께서 동생 야곱에게는 가나안의 여인들에게서 아내를 얻지 말고 외삼촌 댁으로 가서 외삼촌의 딸들 중에서 혼인하라고 하면서 밧단아람으로 보내는 모습을 본다.
이에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인 마할랏을 세 번째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창세기28;9절에 기록하고 있다.
오늘 본문 3절에서는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에 가장 이상적인 결혼관계는 4촌지간이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형제지간이고, 에서와 이스마엘의 딸은 4촌지간이 된다.
에서는 가나안 헷 족속 여인들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늘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4촌지간인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는 아다와 오홀리바마와 바스맛, 이렇게 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에서가 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허락하셔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으시면 세 여인뿐만 아니라 한 여인도 아내로 맞이할 수 없다.
에서가 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동안, 야곱은 한 여인도 아내로 맞이하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나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야곱은 4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13남매를 낳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전에는 야곱이 나이가 70이 훨씬 넘었어도 한 여인도 아내로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불신앙인들의 삶에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해 주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바람도, 비도, 이슬도, 구름도, 낮과 밤도 발생하지 않는다.
올 2020년에는 예전에 없던 코로나바이러스와 긴 장마와 연이어 찾아오는 태풍 때문에 온 나라와 국민들과 교회들과 생업 터전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런 자연계의 움직임도 하늘 아버지께서 역사하셔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자연의 생태계가 제대로 운영되면서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으려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시고 통치하시고 인도해 주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불신자들은 이런 것들은 자연현상이니까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현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하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인간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하늘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면서 정하신 길을 가시는 분이다.
② 많은 자식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3여인을 통해서 많은 자녀를 낳게 된다.
아다 여인을 통해서 엘리바스를 낳게 되고, 오홀리바마를 통해서 여우스와 알람과 고라를 낳았고, 바스맛을 통해서 르우엘을 낳게 된다.
에서는 3 여인을 통해서 아들만 다섯을 낳는다.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딸들도 많이 낳았을 것이다.
에서가 3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허락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많은 아들들과 딸들을 낳게 되는 것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요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상급이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127:3-5에서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128:3-4에서는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올리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의 자식이 되었든, 불신자의 자식이 되었든, 그 자식들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귀한 상급이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가장 귀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자식이 없는 가정은 미래가 없는 가정이다.
자식으로 인하여 늘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긴장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그 자식들로 인하여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대답한다.
자식들이 있기에 그 자식들을 위하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솟구쳐 오른다고 대답한다.
자식들로 인하여 주어지는 은혜와 축복이 너무너무 크고 놀랍기 때문에 그 자식들로 인하여 살 소망과 희망과 미래가 살아나는 것이다.
③ 나누어지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6-8절에서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에서는 자기 가족들과 식솔들을 이끌고 세일 산으로 이주하여 터전을 세우게 된다.
세일산이 에돔족의 근거지가 된다.
아마도 에서는 늘 세일 산으로 가서 사냥도 하고, 놀기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나중에 이 세일 산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형제가 서로 나누어져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에서는 미련없이 자기 가족들과 식솔들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것이다.
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동생 야곱에게 주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셨던 하늘 아버지가 예비해 놓으신 하늘나라의 신령한 유산이 바로 장자인 자기가 아니라 동생인 야곱을 통해서 성취될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에게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넘겨주고, 자기 가족들과 식솔들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야곱과 에서는 나누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누어지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다.
에서와 야곱이 서로 나누어지는 것은 서로가 투쟁하고 분쟁하여 서로 많은 것, 좋은 것들을 차지하기 위하여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얍복강 나루턱에서 화해하기 전까지는 서로 투재앟고 분쟁하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화해하여 형제간의 깊은 우애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투쟁하고 분쟁하면서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앙숙처럼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재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름다운 헤어짐이요 행복한 이별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헤어짐이요 이별이다.
자식들이 자신의 가정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분가하는 것처럼 나누어지는 것이다.
형제들이 서로 다른 가정을 세우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상처가 있는 헤어짐이나 이별이 아니라, 서로서로 번창해 나가면서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의 가정에도 이처럼 번창하고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가를 이루면서 나누어지기를 원하신다.
하늘 아버지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3남매들도 하루빨리 제 짝을 찾아서 분가하면서 나누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일가를 이루면서 분가해 나가는 것은 아름다운 이별이요 헤어짐이요 부흥이요 성장이요 축복이다.
④ 족장으로 세워주시는 하나님.
야곱의 후손들로 형성된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는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도 약 400년여 년이 흐른 뒤에 비로소 사울 왕을 세움으로서 왕이 통치하는 왕정국가가 된다.
그러나 에서의 가계도에는 이미 여러 왕들이 통치하는 왕정국가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에서의 가계도를 기록할 그 당시에 에서의 후손들은 딤나족장을 비롯하여 11족장으로 성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11족장만 있었던 것들이 아니라 더 많은 크고 작은 족장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하늘 아버지께서 에서의 가계도에 축복해 주셨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돔족은 형제라고 하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권면해 주신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살던 야곱의 후손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40년의 광야생활하면서 에돔족의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서 사신을 보내서 협조를 구하게 된다.
에돔 경내를 통과하게 되면 그만큼 빠르고 쉽게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에돔 경내를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사신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에돔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경내를 통과하려던 계획을 허락해 주지 않고 거절한다.
심지어는 군사들을 대동하고 찾아와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경내로 통과하려는 것을 막아버린다.
이런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힘들게 광야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든지 에돔족을 미워하면서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 23:7의 말씀에서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라고 말씀하면서 에돔족을 미워하지도 말고 공격하지도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에돔족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처지이다.
그러니 야속해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들로 세워진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주 소중하게 여겨주셨지만, 에서의 후손들로 세워진 에돔족들도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닌 에돔 족속들까지도 인도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그러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은 예레미야서29;11-13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유대민족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던 중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유대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유대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유대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극악한 포로생활을 해야 하는 현실은 마치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처럼 보이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동서남북이 꽉꽉 막혀서 미래를 생각해볼 여력조차 없는 처참한 생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생활이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지금 유대민족들은 이게 무슨 평안이냐 재앙이지.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재앙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반드시 평안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가 하면 희망찬 미래를 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히브리원문성경에는 “너희에게 희망찬 미래를 주려는 평화의 생각이지 재앙이 아니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지금은 핍박과 고난과 역경과 시련의 최고조로 마치 재앙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희망찬 미래요 평화, 평안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겠노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이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하나님께서 주실 평안과 희망찬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에서의 후손들에게도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셨는데,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우리 신앙인들에게 나몰라라 하면서 뒤돌아서서 가시겠는가.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을 바라보면서 절대로 나몰라라 하면서 뒤돌아서서 가버리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눈동자처럼 우리들을 굽어 살펴보시면서 우리들을 끝까지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로, 희망의 나라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 보혈만을 믿는 믿음으로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면서 지켜주시는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의 하나님이 아니라 +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멋지게 역전을 시켜 주시면서 기뻐하시는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눈동자처럼 우리 신앙인들을 지켜주시면서 전화위복시켜 나가시는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을 예비해 주시는 이레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치료하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라파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평강과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샬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이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워할 때 어김없이 찾아오셔서 따뜻하게 우리들의 두 손을 꼭 잡고 위로하시며 격려해 주시며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오직 우리 하나님만을 향한 신앙으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언제나 임마누엘로 동행하시며 감동과 감화를 일으켜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면서 이젠 조금씩이라도 나누어주고 나뉘어지면서 폭넓게, 좀 더 깊게, 더 높이 날아가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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