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능력으로 일어서리 (창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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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능력으로 일어서리 (창세기 1장 1절)
9월 암송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지난 암송 구절들이 너무 길어서, 짧고, 부담 없는 말씀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구절이니 편하게 암송 하시되, 믿음, 구원, 사랑, 소망, 영생, 기독교의 진리적인 가치들을 생각하시면서, 창조의 처음 시간처럼, 내 인생의 시간에서, 믿음을 점검하고 새롭게 다시 출발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잘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믿음의 대상은 당연히 예수님이시죠. 히브리서에서도 예수님을 “믿음의 주(주인)요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분명히 말씀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기독교인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예수 믿고 구원 받았습니까?, 진짜 예수님 만났습니까? 지금 죽어도 예수님처럼 부활 할 것을 확신합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입으로는 “아멘”이라고 잘 대답하는데,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음속으로는 의심의 덩어리들이 가시지 않습니다.
“나는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일까?”, “나는 진짜 예수님을 만나본적은 있나? 내 안에 정말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시나? 내가 이 정도로 맹맹하게 신앙생활 해서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신다면 나는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으로 그 무서운 죽음과 사망의 심판을 무사히 통과 할 수 있을까?.....생각할 때마다 의심 또 의심의 마음이 생겨서 영 개운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그런 의심의 마음들이 사탄이 넘어트리는 흉계라고 선포 하시며 담대하게 물리치라고 하시는데,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마음들이 사탄이 공격하는 의심의 마음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진짜로 세워지지 않은, 실제 상황 일 수도 있습니다. 의심은 당연히 물리치고 버려야 하겠지만, 믿음의 뿌리 자체가 없음에 대해서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 하시지 마시고, 지금 부터라도 간단한 것부터, 지금 당당 해야 하는 것부터 차분하게 시작 하시면 됩니다. “타고난 천재가 한 걸음 앞서갈 뿐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미련한 둔재는 반드시 결승점에 도달하는 법”입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설 때까지,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줌의 의심을 모조리 제거하고, 연약한 내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과 믿음이 연약한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지금 비록 연약하고 매일 같이 넘어지는 연약한 믿음 일지라도, 믿음의 주인인신 예수님을 바라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하는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00의 모든 성도가 9월 한 달 동안, 믿음이 뿌리내리고, 오직 우리의 구원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해야 할 것을 묵묵히 해 나가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속히 끊어내고, 듣기만하여 믿음의 주인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듣고 행하는 자가 되셔서,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당당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격적으로 창세기 1장 1절을 알아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우주만물이 만들어진 순간을 단 한 구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이 문장이 완전한 수라고 일컬어지는 7단어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핫솨마임 베에트 하아레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우 간결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엄청납니다.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 목적, 과정 등은 일체 설명이 생략되어 있고, 그저 장엄한 선포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전격적이고, 순간적으로 온 우주 만물을 전능의 능력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한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히, 엘로힘)”이시고, 동사는 “창조(히, 바라)하셨다”입니다. 사실 목적어인 ‘천지(원어로는, 하늘들을 그리고 그 땅들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만드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창조의 주체이신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만이 창조를 이루 실 수 있다는, 주어와 동사는 일체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창조주가 되시고,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이야기 할 때, 예수님만이 오직 그리스도(구원자)가 되시고,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또한 성령님만이 오직 우리의 보혜사(헬, 파라클레토스, 위로, 변호, 중재, 대언, 조력자..)가 되시고, 보혜사는 오직 영으로 임하시는 성령님 한 분 뿐입니다. 1장 1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창세기 1장 1절을 읽으실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4지선다형으로 골라보세요.
① 너무 장대(장엄)해서 현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② 너무 많이 읽어서 아무 느낌도 없다.
③ 너무 황당하다. 온 우주가 이 한 구절로 만들어졌다고 믿어야 한다니, 내 머리로는 받아들지 못하겠다.
④ 그냥 아무 생각 안 든다.
어떻습니까? 아마도 우리 모두는 이 네 가지 경우가 조금씩은 다 섞여있는 감정이실 겁니다. 솔직한 표현으로는, 창세기 1장 1절은 성경의 가장 첫 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며, 무수하게 반복하여 읽고, 들어도 봤지만, 특별한 감정이나,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속한 은하의 길이가 빛의 속도로 10만년 거리이고, 폭은 3만년 거리의 크기입니다.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를 가려면 빛으로 250만년 가야 합니다. 우주의 크기는....” 이렇게 우주의 크기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전혀 공감능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 드렸는데, “믿음 이라는 것은, 신약 성경의 많은 기적들과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기 전에, 반드시 넘어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극것이 바로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이 창세기 1장 1절을 먼저 넘어 설 수 만 있다면 사실 그 다음은 믿음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1장 1절을 넘지 못하면, 성경의 그 어떤 이야기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왜 그렀죠? 만약에 창세기 1장 1절을 그냥 넘어가면 능히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심판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경의 주인공으로 역사하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여전히 성경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그 성경의 주인공인 창조주 하나님을 그림자 취급하면서,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분으로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창세기 1장 1절에서부터 시작됨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창세기 1장 1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너무 깔끔하다, 이보다 더 이상 좋은 표현은 없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그냥 묵직하게 선포하는 것이 진짜 하나님다움의 멋지신 모습이다” 대충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냥 단순하게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데,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신데, 그러면 그런 거지, 하시면 하신 거겠지” 이렇게 쉽게 생각합니다. 가볍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그 어떤 반론, 이의, 의문, 의심을 일체 하지 않겠다는 제 나름대로의 믿음 표현 방식입니다.
수 없이 읽어 왔던 창세기 1장 1절을 다시 읽고 묵상 하는 가운데 저는 이런 생각이 감동 되었습니다. “저 한 구절 속에 ‘김00’라는 나의 존재도 정밀하게 계획되어 있었을 텐데, 나는 과연 50이 넘게 어떤 존재로 살아 왔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 안의 창조 역사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 나는 정말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이끌어 가심을 제대로 믿고 있는가? 나는 내 존재를 있게 하신 그 분께 진정으로 내 존재의 모든 삶을 맡기고, 내 존재의 마지막을 맡기고, 그 분께만 판단 받을 준비 잘 하고 있는가?....” 이런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내적인 질문들이 제 자신을 괴롭게 합니다.
왜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씀 드렸나하면, 비단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창세기 1장 1절이 항상 믿음의 출발점이자, 믿음의 고민 점이자, 그리고 믿음의 회복 지점이 되어야 함을, 여러분 모두도 깨닫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을 한 번 자세히 들여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개인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 신앙생활 등등 지금 현재의 삶이 어떠하십니까? “살림살이 점 나아지셨나요? / 많이 퍽퍽 하신가요? / 아무 낙이 없이 그냥 저냥 이신가요? / 의지도, 의욕도 없이 세상만사가 다 귀찮으신가요? /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미움과 분노만 가득 한가요? / 무사하기만 하면 이쯤이면 됐다고 낙천적으로 생각하시나요?”
인생살이는 각자의 삶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변화시켜 갑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것저것 다 포기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고 자랑하고 자만하게 만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눈에 뛰게 교만하게 하여서 정말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통된 점이 있다면, 우리들은 점점 인생의 나이와 경험이 쌓여 가면서 하나님이 처음 계획하셨던 창조의 모습에서 많이 이탈해 나간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감각이 둔해져서 우리 자신이 얼마만큼 유리방황하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가고,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흐르는 것 같고, 인생의 끝이 분명히 올 것인데 하나님 앞에 설 준비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초조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웬일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빛이 살아나고, 기운도 넘치고, 늘 행복해 보이고,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자신감 넘쳐 삽니다. 똑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러한 큰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믿음의 출발점이자, 회복 지점인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 똑바로 다시 서느냐, 서지 못하느냐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갈리게 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힘들고, 지치고, 낙망 되었을 때 창세기 1장 1절 앞에 섭니다. 단 한구절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온 우주 만물을 능히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시고 광대한 능력을 나에게 다시 쏟아 부으셔서, 무너진 내 삶, 내 인생, 내 나이의 무력감을, 완전하게 새로 만들어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심을 믿는 사람이 바로 창세기 1장 1절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무지하고 미련한 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이 믿음의 출발점이자, 인생의 회복 지점임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는 자들이 곧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 1절을 너무나 광대한 이야기, 너무 현실감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우주 이야기, 지구 이야기,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름 아니라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그러나 아주 간결하게 써 놓으신 것입니다. 나를 만드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고, 나를 새롭게 세워주시고, 나를 온전하게 채워 가시는, 온통 나에 대한 관심을 쏟아 부으신 구절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인생을 언제든지 온전하게 리셋 시켜 주는 구절이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선하신 능력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구절이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이러한 시각과 감각으로 날마다 이 말씀 앞에 서서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기록하신 말씀이 창세기 1장 1절인 것입니다.
이달의 암송 구절과 함께, 이 달의 찬양으로 “선하신 능력으로(마커스 찬양)”를 정했습니다. 이 찬양은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옥중에서 자신의 약혼녀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 찬양 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어 찬양의 제목은 “Von guten Mächten wunderbar geborgen(폰 구텐 메히텐 분더바르 게보르겐)”으로, 번역하면 “주 선하신 권능에 둘러 쌓여” 라는 뜻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그렇게 절절하게 지키고 싶어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주님의 선하신 능력이 죽음까지도 새롭게 하신다는 굳센 믿음이었습니다. 그 담대함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바로 창세기 1장 1절, 모든 것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능력이 자신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알고, 굳게 믿으셨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예수님이나 본회퍼 목사님과 같이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믿음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선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다시 설 때,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믿음과 용기를 상상하지 못하도록 강하고 담대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주님의 권능 아래 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창세기 1장 1절 앞에 서는 자들은, 당면한 우리의 삶의 문제, 건강 문제, 진로의 문제, 많은 고난의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만이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9월 한 달 동안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 내 입에서, 마음에서 완전히 녹아나도록, 잠에서 깰 때나 잠에 들 때에도, 길에서나,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시시때때로 많이 암송 하십시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에 찬양을 들으시면서, 소리 내어 부르시면서, 나를 만드시고, 새롭게 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큰 권능을 의지 하십시오. 권능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바라고 구하십시오.
구하고 찾는 자들에게는, 다시 서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들에게는, 창세기 1장 1절 창조의 주어와 동사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만나 주시고, 내 믿음을 굳세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00의 모든 성도들에게 9월 한 달 동안, 선하신 우리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능력이 힘 있게 역사하심으로, 모든 의심은 사라지고, 내면과 외면에서 오직 믿음으로 새롭게 되는 새 창조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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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정작 내 자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선한 능력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내 능력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선한능력을 베푸시고 믿음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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