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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힘 (행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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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힘 (행12:1-25)

(행12:1-25)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1.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들이 십자가에 죽이라고 로마 당국자에게 내어줘 십자가에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말씀하신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도다.’며 담대히 증거한 것입니다.

(행2:22-24)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러한 베드로의 증언을 듣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행2:38-41)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렇게 날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더해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여 그들을 심문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성경적이고 체험적으로 증거하자 더 이상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행4:12-14)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결국 베드로와 요한을 풀어주며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합니다.

(행4:17-19)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행4:19-20)...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며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증거합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거는 초대교회 사도들만이 아니라 스데반 집사를 통해 더욱 확장되어 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대 종교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거짓 증인들을 세워 스데반이 율법을 범했다며 그를 돌로 쳐 죽이도록 합니다.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최초로 순교당한 것입니다. 이 일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자 사도들 외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등 외지로 모두 흩어져 갔습니다.

(행7:59-8:1)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교회에 대한 박해와 핍박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 그리고 그 범위가 멀리 이방 지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베니게와 구브로 안디옥까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렇게 교회에 대한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흩어지게 되었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흩어져 숨어 지낸 것이 아니라, 각각 흩어진 그곳에서 그곳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중 일부는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박해를 피해 구브로와 구레네에 갔던 유대인 성도들 몇몇이 안디옥에 가서 그곳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2. 이렇게 교회에 대한 박해와 핍박이 예루살렘 안팎으로 되는 가운데 복음 전도는 전혀 위축되지 아니하고 날로 예루살렘 밖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때에 유대 지역을 통치하던 헤롯 왕이 초대 교회 사도들 몇몇을 죽이려고 작정합니다. 이때 순교당한 사도가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세 명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롯 왕은 당시 친유대교적인 정책을 펴면서 유대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을 탄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를 죽이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매우 흡족한 반응을 보이자, 헤롯 왕은 더욱 더 그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수제자인 베드로도 체포하여 처형하고자 합니다. 베드로가 제자들 중 우두머리 역할을 했으므로 헤롯은 그를 잡게 되면 유대 지도자들이 자기를 더욱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 왕은 베드로를 체포하여 철통같이 경비합니다. 베드로는 이번 체포로 세 번째로 투옥되는 셈입니다.

(행4:3)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행5:18)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베드로 한 사람을 경비하기 위해 편성된 군인이 한 조에 네 명씩으로 구성되어 모두 네 개의 조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이는 한 조가 6시간씩 낮과 밤을 경비하게 한 것입니다. 이는 얼마 전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천사에 의해 풀려난 사건이 밤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병력을 증원하여 베드로를 두 쇠사슬로 묶어 철통같이 경비하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행5:19)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베드로는 두 쇠사슬, 즉 쇠사슬을 두 겹으로 결박되어 두 군사들이 지키는 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너무나 편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이면 야고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 베드로였지만 공포에 떨기는커녕 전혀 불안해하지도 않으면서 금새 잠이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투옥되자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기도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쉬지않고 기도했습니다. 그야말로 교회가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습니다. 그 밤에 베드로가 갇힌 감옥에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고 감방 안이 환해졌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며 ‘어서 일어나라.’하고 말하자 쇠사슬이 그의 손목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천사가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오라.’ 하고 말하자 베드로는 그대로 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 나오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 줄 모르고 환상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첫째와 둘째 초소를 지나 시가지로 통하는 철문에 이르자 그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들이 그 문을 나와 한 거리를 걸어갈 때 갑자기 천사가 베드로를 떠났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제정신이 들어,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 자기를 헤롯의 손에서 구출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내 베드로는 성도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어린 여종이 나왔습니다. 그녀는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듣고 너무 기뻐서 미처 문도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와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로데를 보고 ‘네가 미쳤구나!’ 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그녀가 사실이라고 우겨대자 그들은 ‘그의 천사겠지’ 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 보니 정말 베드로 사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베드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감옥에서 이끌어내셨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날이 밝자 베드로가 없어진 일로 군인들 사이에 큰 소동이 벌어졌고, 헤롯은 베드로를 찾지 못하자 경비병들을 직접 심문하고서 그들을 처형해버립니다.

3.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투옥되자 교회는 간절히 밤을 세워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 베드로가 갇혀 있는 옥문이 저절로 열리도록했습니다.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깊은 감옥에 경비병들을 교대로 세워 철통같이 경비했지만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백성들은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며 모세에게 따지며 죽일 듯이 대들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서로 힘과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지도자 모세에게 전가시키고 다투고 돌을 던져 죽일 기세였습니다. 모세는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도가 없어서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출17:4)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백성들 앞으로 가거라. 네가 갈 때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내가 시내 산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겠다. 너는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 그러면 바위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행하였더니 반석에서 물이 터져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모세는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 며 하나님을 시험하고 따지고 대들었던 뼈아픈 사건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그의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원망 불평하고 대들었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공격해온 것이었습니다. 아말렉은 영적으로 마귀를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원망불평하며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는 등 신앙적으로 가장 취약해져 있을 때 공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신명기 25:17-18에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희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적어도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말렉이 “피곤함을 타서” 습격해 왔다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일에 너무 피곤하게 되면 종종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고 그 틈을 이용해 마귀는 공격하게 됩니다. 세상일에 너무 피곤하여 기도하는 손이 내려가면 그 틈에 마귀는 공격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때 합심하여 기도하지 아니하고 원망 불평할 때, 마귀는 교회와 성도들 가정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풀지 못한 원통함이 있습니까?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 앞에 나가 손을 들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40:27-31을 보겠습니다.

(사40:27-31)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앙망하는 신앙생활로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가며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아말렉이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귀는 비겁하게도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친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앙적으로 뒤쳐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신앙생활이 지혜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피곤할 때 공격합니다. 몸이 병들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영적으로 침체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합니다. 우리 좋은대로 그냥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여호와의 승리’, 곧 ‘여호와 닛시’를 외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욱 더 교회를 가까이 하는 생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아말렉이 공격해왔을 때 모세는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겠노라.”며 여호수아에게 병력을 동원하여 나가 아말렉과 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과연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해가 질 때까지 그들이 양쪽에 서서 하나는 이 팔을, 하나는 저 팔을 붙들어 그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수아는 아말렉군을 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모세의 기도하는 손에 달려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기도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었습니다.” 손을 올린 것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고, 손을 내렸다는 것은 기도하기를 쉬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말렉, 곧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는 전적으로 모세의 기도하는 손에 달렸습니다. 모세가 두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아론과 훌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들이 모세의 기도하는 손이 피곤하여 내려갔을 때 모세를 대신하여 자신들의 손을 들어 기도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모세의 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진 모세의 손을 붙잡아 올려 세웠습니다. 합심 협력하여 피곤하고 지쳐 내려진 모세의 손을 다시 치켜들어 올렸던 것입니다. 손을 드는 기도는 합심 합력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결사각오로 손을 들고 기도했지만, 모세도 인간인지라 점점 무거워지는 손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혼자서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왔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에게 패하자, 그 옆에 있던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지쳐 내려온 모세의 손을 받쳐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내려온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바로 합심 협력하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영적 지도자인 목사도 사람인데 어찌 지치고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위해 든 기도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든 손이 지쳐서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복음 전도를 위한 기도의 손이 피곤해서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교회 성도 여러분이 가만히 보고만 있다면, 교회도 성도들도 다 영적인 전쟁에서 지고 마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양옆에 아론과 훌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든 손이 피곤하고 지쳐서 내려오지 않도록 양쪽에서 꼭 붙잡고 받쳐 주는 아론과 훌과 같은 성도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여러 곳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5절에서 그는,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3절에서도 그는,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며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론과 훌이 모세의 지치고 피곤한 팔을 받쳐서 합력하여 기도했을 때,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였다”(12)고 한 점입니다. 합심 합력하여 같이 손을 들고 하는 기도는 혼자서 손들고 하는 기도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손이 오래 들려지면 들려질수록 더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의 종과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합력하여 기도할 때, 기도의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강림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성령의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오늘날 복음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삼겹줄은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씀처럼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삼겹줄이 되어 기도하는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합심 협력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남편이 있다면, 일하는 남편의 손을 기도로 붙잡아 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 가정은 승리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손, 일하는 손, 함께 잡아 주는 손, 그 손들에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들려질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가정은 승리할 것입니다. 기도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고 합심하지 아니하는 기도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승리하는 믿음이 되기 위해 서로를 위해 합심 협력하는 기도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왜 모세처럼 손을 들고 부르짖으라고 합니까? 손을 들고 부르짖는 것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믿음의 표시인 것입니다. 다윗은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특히 환난 때에는 밤새도록 그 손을 내리지 않았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시28:2)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77:2)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마음으로 손을 들고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셔서 다윗처럼 승승장구 신앙생활에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기도하는 손이 들려졌을 때,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을 크게 파하여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곳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곧 ‘여호와는 승리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손이 들어 올려져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설명드리면 쉽게 머리 속에 그려지는 <기도하는 손>이야기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화가를 찾아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스승 밑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던 자기 또래의 젊은이를 만나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그림 공부와 생활을 겸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뒤러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우리 둘이 돈을 벌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솔직히 너무 어렵지 않나. 그러니 우리 둘 중 하나가 돈을 벌고 나머지 한 명이 그림을 공부하도록 하세. 그리고 나중에 돈을 벌면 그림 공부를 또 할 수 있지 않겠나. 자네가 나보다 실력이 나으니 자네가 먼저 그림을 공부하게. 난 그 동안 일을 해서 돈을 벌도록 하겠네.” 친구의 말을 들은 뒤러는 그럴 수 없노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진심으로 애원하는 친구의 청을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뒤러는 친구가 벌어준 돈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작품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처음 팔리던 날, 뒤러는 고마운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그간의 힘든 노동으로 말미암아 손가락이 휘고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뒤러는 커다란 슬픔에 빠졌습니다. 친구의 희생으로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 냈지만 친구는 자신 때문에 그의 일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날 친구의 집에 예고 없이 방문한 뒤러는 친구가 그 마디진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친구는 뒤러가 그림으로 성공한 것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뒤러는 자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친구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친구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아, 저 손...., 나를 있게끔 해준 저 손을 그리자. 그래서 온 세상에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 주자” 그리하여 이 ‘기도하는 손’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인의 가슴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는 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17:16). 아말렉과의 전쟁은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싸웠지만 실상 하나님이 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기도하는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영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 피비린내 나는 살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 황제 헨리 8세가 황후 케더린과 이혼을 해야 하는데 로마 카톨릭의 교황이 허락해야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절대로 나누지 못한다.”고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헨리 8세가 일어나서 종교개혁을 하고 성공회라고 하였고 국교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카톨릭과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로 하여금 이혼을 선언하라고 합니다. 대주교가 이혼을 선언하자 캐더린 왕후가 쫓겨나서 얼마나 비참하게 세월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 왕후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딸 메리는 어머니의 치욕과 불행을 보고는 한이 맺혔습니다. 헨리 8세가 죽고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6년 만에 죽었고 폐위된 캐더린의 딸 메리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쯤 되고 보니 종교개혁자는 잡히는 대로 잡아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메리 여왕은 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메리 여왕이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고 잡히는대로 잡아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북부지역에 있는 스콧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하는 존 낙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종교개혁이 성공할까 해서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에 두려워했습니다. 기도하는 존 낙스 한 사람이 정예화된 일개 사단 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중요하고 귀중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엘리사 한 사람 때문에 나라 민족이 평화를 지킬 수 있었으며, 전쟁의 참상을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열려 있는 신앙생활로 가정의 평안을 지키고 환난을 예방하며 가정의 문제까지도 능히 해결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열린 성도 여러분의 신앙생활로, 사탄의 세력을 정복하여 지역 사회를 구원하는 우리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블레셋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사무엘의 쉬지 아니하는 기도를 통해서였습니다.(삼상12:23) 기도생활을 통해 하늘 문이 열리고 눈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므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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