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사이입니까? (히11:7)

본문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사이입니까? (히브리서 11:7)





우리 주변에 행복한 부부일수록 아주 친밀한 관계로 살아갑니다. 누가 보더라도 절친입니다.


부부생활 행복의 척도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Intimacy, 친밀함입니다. 부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부부행복의 기초로 친밀감(Intimacy)을 강조합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고, 배우자와 합치는 것입니다. leaving & cleaving, 떠남과 합함입니다. 친밀하게 찰떡궁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남자의 80% 이상이 배우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친밀하게 지내는 기술이 부족한 탓입니다. 부모님들로부터 친하게 지내는 원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 사이도 친밀함이 행복의 기초입니다. 유교의 삼강오륜 덕목에서도 「부자유친」(父子有親)을 강조합니다.


어떻습니까?


부모님 여러분, 특히 아버지들이여, 자녀들과 얼마나 친밀한 사이입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로서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사이입니까?


요즘 우리가 다시 정리하고 있는 신앙생활 Reset에서 구약시대 믿음의 표상인 노아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였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By faith, Noah became intimate with God.)



노아의 훌륭한 신앙을 소개하는 창세기 6장 8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달랐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쏙 들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친구 사이의 높고 맑은 사귐을 이르는 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높고 맑은 친밀한 사귐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과 절친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관계입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 같나요?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근본을 Reset해보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를 구축해가자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어느 정도 절친인 것 같습니까?


과연 노아가 어떤 신앙으로 살았기에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였을까요? 성경은 노아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표본을 제시해줍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Reset합시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1장 7절에서 노아의 믿음을 아주 훌륭하게 평가해줍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알 듯이 노아가 살던 시대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통제 불능상태여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심각한 불경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뜬금없이 하나님께서 산 위에다 방주라는 큰 배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지구상에는 아직까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산 위에 방주를 제작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이성적으로 충분히 이해해야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 알지 못하고 납득이 안가더라도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경외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믿음이 필요합니다.


노아는 온 세상이 그처럼 죄악이 만연하고, 부패한 풍토 속에서도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노아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Alexander Maclaren은 노아를 「고독한 성자」(Solitary Saint)라고 말합니다.


그는 가시밭의 아름다운 장미처럼, 사막에 고고하게 우뚝 선 한 그루의 상록수처럼 믿음 없는 시대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Reset하며 살았던, 고독한 성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독한 성자」(Solitary Saint)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성자가 될 수 있는 자리는 자기 시대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SNS라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악플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해 악의적인 댓글을 무차별로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너무나 불경한 악플이 떡을 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을 향해서도 이런 신성모독을 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Reset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나는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며 살고 있는가? 스스로 잘 점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소용돌이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면 놀라운 축복이 주어집니다.


제가 성경을 찾아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많은 축복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도와주십니다. 생활의 복을 주십니다. 기업을 축복하십니다.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형통케 하십니다. 기도응답을 잘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만큼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자녀들을 복되게 하십니다. 실력 있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어 축복하십니다. 병도 치유해주십니다.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큰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회복해야합니다. 세상이 겁도 없이 불경죄를 만행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존엄하심에 두려움을 가지고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아야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았던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By faith, Noah became intimate with God.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계속 Reset해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Reset합시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노아는 그야말로 고독한 성자요, 꿋꿋한 사명자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실 그는 나이 480세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600세가 되던 해까지 120년 동안을 사명감으로 일하며 살았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알려지고 밝혀진 학자들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방주의 크기는 대단합니다.


길이가 135m, 넓이가 22.5m, 그리고 높이가 13.5m 이며, 용량은 약 4,300톤이어서 양을 125,000마리나 선적할 수 있는 큰 선박이라고 합니다. 타이타닉 호와 비슷한 큰 배입니다.


그리고 방주의 제작 기간은 약 70년 정도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노아는 묵묵히 사명을 다해나갔습니다. 그는 아침이 되면 연장세트를 들고 아라랏 산으로 출근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벼라 별 소리를 다 지껄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아는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노아는 홍수 심판이 있기까지 120년 동안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사실 그는 120년 동안 열심히 전도했는데도, 자기 가족 일곱 식구 밖에 결신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지쳤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무반응에 의욕과 기운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사명을 다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을 보면 노아를 『의로운 전도자』라고 소개합니다.


노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자기 식구들만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받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방주에 들어간 후에도 결코 자기 손으로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방주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끝까지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실 때까지 그는 사명을 다했습니다.(창세기 7:16)


오늘 우리도 자시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표현해봅니다. 『노아는 수명과 사명을 병행하며 산 자다.』


저도 인생의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신자가 필요합니다.


부모로서의 사명감, 직장인으로서의 사명감, 크리스천 사업가로서의 사명감, 교회에서도 직분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내 인생에 주어진 모든 역할과 일들을 하나님이 부여하시고 위임하신 사명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사명감으로 수행해야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어거스틴 다음으로 훌륭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St. Anselmus는 인간의 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소위 Commission & Omission입니다.


Commission이란 하지 말라는 것을 저지르는 범죄요, Omission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태만죄입니다. 나태죄입니다.


특히 우리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지 않은 것만 자랑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임을 인지해야합니다.


저는 이것을 No miss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명감이 없는 죄, 즉 사명을 다하지 않고 사는 죄입니다. 인생을 방임하는 죄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방치하는 죄입니다.


영화 빠삐용에서 깨우쳐주듯이 인생을 낭비하는 죄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명감 없이 살아가는 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월급만 받으려고 하고, 축복만 누리려고 하는 무가치한 인생을 사는 자가 많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으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은 사명인생을 살라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영역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사업가로서, 여러 분야의 전문인으로서,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천부적인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여성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불행하게 태어난 최악의 운명을 딛고 일어나, 최선의 열매를 맺은 인물입니다. 그녀가 살아온 일생은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최악의 삶에서 최선의 삶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요?


오프라는 자서전인 <이것이 사명이다>는 책에서 자신의 인생철학을 4가지로 쓰고 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다.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다.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짐이 아니다. 사명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노아처럼 일평생을 사명감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일꾼의 자격표준 급수


가장 불행한 사람


일할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불평불만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람


가장 불쌍한 사람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하는 사람


위험한 자


누가 뭐라 하든 자기 고집, 제 멋대로 하는 사람


쓸모없는 자


두세 번 책망 받고서야, 겨우 움직이는 사람


4급


재차 지시를 받고서야 일하는 사람


3급


주어진 범위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


2급


남이 이야기해주니까, 아차하고 즉시 일하는 사람


1급


눈치가 보이면 곧 알아차리고, 즉시 일하는 사람


특급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일하는 사람



저는 우리나라 소방대원 중 어느 한 분이 천명한 자신의 사명철학에 머리 숙여 공감합니다.


『남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일은 모두 성직이라고 생각한다. 곧 나의 일도 성직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성직자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만인제사장 신학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 부모라는 성직자, 크리스천 직장인, 크리스천 사업가, 크리스천 전문인, 크리스천 시민이라는 성직자입니다. 성경에 말하듯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은 성직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 사명을 다할 때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과 절친으로 살아갑시다!!!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