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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만날 준비하라 (암4:6-13)

본문

네 하나님 만날 준비하라 (아모스 4장 6-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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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성경 일독 참여 하고 계신 분들은 이사야를 읽고 계실 텐데, 이사야부터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까지를 ‘예언서’ 혹은 ‘선지서’라고 하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예언자)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들 이라는 뜻입니다. 예언서는 ‘대 예언서’, ‘소 예언서’ 두 개의 묶음으로 나누는데, 대 예언서는 이사야부터 다니엘 까지 다섯 권(사, 렘, 애, 겔, 단), 소 예언서는 호세아부터 말라기 까지 12권(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을 말합니다.


 


대(大), 소(小)를 나눈 기준은 무엇일까요?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 보세요. 1.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인물의 중요성 때문이다. 2. 성경책의 분량이 많고 적음의 차이이다. 3. 활동한 시대적 순서로 배열한 것이다. 정답은, 2번, 성경책의 분량에 따라 나눈 것입니다.


 


이사야 66장, 예레미야 52장, 에스겔 48장, 이렇게 분량이 많아서 ‘대(대)’ 예언서라고 불린 다는 것, 상식적으로 알아 두세요. 성경 일독 계속 해 나가시는 분들 다시 한 번 응원합니다. 예언서는 분량도 많고 읽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정독해서 읽다 보시면, 익숙한 구절과 은혜 되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읽는 가운데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소 예언서 12권 중에 속하는 ‘아모스’입니다. 아모스는 사람 이름이고, 아모스 선지자는 남과 북 이스라엘이 둘로 나눠졌던 시기에, 북 이스라엘의 13번 째 왕인 여로보암 2세(B.C 793-753, 41년 재위) 때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의 영토를 지닌 부강함, 최고의 경제적 번영을 누린 최고의 전성기 였습니다.


 


나라가 잘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경제가 잘 되고,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자,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 이후에 불과 30년 동안에 6명의 왕이 더 있었지만, 결국 북 이스라엘은 강대국인 앗수르(앗시리아)제국에 의해 멸망(B.C 722) 하게 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두고 활동을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장 1절에서 보면, 아모스는 ‘드고아’라는 지역에서 양치는 목자 였습니다. 또한 아모스 7장 14절에서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다” 라고 했습니다. 뽕나무는 잘못된 번역이고, 원문의 단어는 돌 무화과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아모스는 가축을 키우고, 식물을 재배하는 평범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아모스를 특별히 부르셔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하는 도중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 가를 기다리기보다, 하나님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에 큰 지진을 내리시기로 준비 하시고, 큰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미리 경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모스 하면 대표적인 구절이 5장 2절 말씀이죠.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멘.


 


정의와 공의가 사라진 시대, 하나님의 법과 말씀이 사라진 시대, 하나님의 이상과 기적이 사라진 시대가 아모스 시대 였습니다. 돈이, 음란이,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정의가 사라지고 공의가 사라졌다고 하나님이 최종 결정하신다면, 개인이든, 국가든, 그 무엇이든 간에, 그 결말은 망하는 겁니다. 북 이스라엘은 점점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아모스가 무엇을 중점으로 선포했을지 집작이 됩니다. 바로 “회개 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경고의 선포였습니다.


 


결과는 어떠했겠습니까? 그 결과의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 위에는 굵은 글씨로 제목처럼 달려 주요 내용이 적혀 있는데, 제 성경책에는 “돌아오지 아니하는 백성 이스라엘”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6절 후반부분에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라고 되어 있고, 이 말씀이, 8절, 9절, 10절, 11절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끝 부분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마치 도장을 꾸~욱 눌러 찍어 놓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돌아오라고 말씀 하셨고, 큰 지진을 통해 경고를 하셨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정의와 공의 회복하도록 말씀을 선포 하셨지만,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할 것 다했다. 너희 들이 폭삭 망해도 나는 모른다. 다시는 너희를 찾지 않을 것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라는 단호함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 잘못된 행동을 빨리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반드시 여러 가지 경고를 주십니다. 빨리 알아차리도록 점점 경고의 강도를 더 세게 합니다. 사람도 보내서 말하게 하시고, 예기치 못한 이런저런 사고를 통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을 통해서, 계속해서 싸인을 보내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완악한지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 먹을거리가 바닥나서 치아(이빨)만 보일 정도로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셨는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6절).


2. 가뭄이 들어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해 몸이 비틀거릴 지경인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7,8절)


3. 해충과 재앙으로 인해 농작물들이 많은 피해를 입게 하였는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9절)


4. 전염병이 돌아 청년들과 말들이 죽어나가서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10절)


5. 불에 타서 멸망했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많은 성읍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불에 타 죽어 나가는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1절)


 


어쩌면 이렇게 말을 안 들을 수가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수많은 경고를 하는데도 무감각 할까? 남 이야기 보듯 하면 안 됩니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이, 곧 대한민국의 모습이고, 한국 교회의 모습이고, 우리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산과 강이 불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엄청난 재앙이 실제 내리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살인, 복술, 음행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계 9:21), 오히려 이 재앙들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악독한 존재입니다. 하나님도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아멘.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설교제목이 보이시죠.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 기쁨의 말씀이 되어야 하는데, 이 말씀은 정말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심판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경고 하셨던 확실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변명도 안통하고, 더 이상 기회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는 것은 흉악한 죄를 지은 범죄자가 마지막 선고 공판을 앞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 상태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즉시 불 못, 영원한 형벌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즉시 심판 하시지 않고, 징계를 내리셔서 나라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라는 말씀은, 마지막 경고이자 동시에 마지막 기회를 주시려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진짜로 만남을 준비하려면,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불타고 멸망당한 것처럼,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 철저하게 파괴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8장에서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시고 이렇게 대답 하셨습니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마(18: 8,9)


 


문자대로만 이해한다면 살벌할 정도의 말씀입니다. 비유적으로 하신 이 말씀은 우리 몸과 마음에서 죄의 흔적이 단 하나라도 묻어 있다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른 법(죄와 사망의 법)이 마음의 벽(생명의 성령의 법)과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악을 행하고 있다고 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한탄의 고백을 합니다.(롬 7:18-24) 히브리서 말씀처럼, 우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며 죽기까지 싸우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 12:4) 이것이 우리의 현 상황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회개”가 무슨 뜻인지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구약 성경에서 회개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뉘우치다, 한탄하다, 슬퍼하다”라는 뜻을 가진 “나함”이라는 단어가 있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다, 돌이키다”라는 뜻의 “슈브”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의 뜻이 뉘우칠 회(悔)와 고칠 개(改), 회개라는 한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회’는 죄를 인정하는 것이고, ‘개’는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뜻은 알겠는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이 내릴 때 바로는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노라”(출9:27)라고 고백했고, 사울왕도 사무엘에게 책망을 받고,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라며 자기 죄를 시인했습니다(삼상15:24). 심지어 가룟 유다 역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27:4) 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사람들이 진정으로 회개를 했나요? 아닙니다. 자신의 위기를 잠깐 모면하기 위해서 한 급조된 언행입니다. 한숨 푸~욱 쉬면서, “그래,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라고 말한다고 해서 회개가 아닙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얄팍한 언행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거짓 회개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돌이키지 않는 나쁜 회개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행하는 죄의 고백을 들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일부러 속아 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적당히 회개하는 척만 해도 그냥 넘어가 주시는 겁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도 않으시고, 기만당하지도 않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 고백을 들으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이유는, 우리가 몇 마디 자복하고 고백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다시 죄를 범하실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긍휼하심과 사랑하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해 고백한 어떤 말 때문에 속히 다 후련하다, 눈물 다 쏟았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용서함 받았다, 이런 앞선 생각들 접어 두십시오. 내가 해서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이 용서 하시려는 마음으로 우리를 상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다윗과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부하를 거짓 유인하여 살해하고, 아내까지 강제로 취했습니다. 용서 받지 못할 극악한 죄악을 범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의 범죄를 알고 책망하자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앞서, 바로, 사울, 유다와 다른 점은, 다윗은 자신의 범죄가 사람에게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범죄라고 한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 죄가,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무서워하시는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시는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심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다윗은 비록 엄청난 범죄자였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했습니다. 이 모습이 회개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백한 대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돌이키는 삶으로 나아가야 회개가 완성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이스라엘이 망하게 될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네 하나님 만날 준비 하라”는 은혜의 말씀을 과감하게 전했습니다. 경고의 말씀도 과감하게 전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돌아오려는 단 한사람만 있다면, 하나님은 여전히 회개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회개하려는 자들을 기다리실 것입니다.


 


저는 아모스 9장을 정독하며 읽으면서, 한 개인인도 마찬 가지이고, 더군다나 한 국가가 회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여러분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가장 먼저 제 자신이 진짜 회개하지 못하는, 말만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돌이키지 않는 완악하고, 목이 곧고, 돌같이 딱딱한 사람, 딱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서(선지서)의 책들은, 전부가 돌이키라는 경고와, 경고를 듣지 않은 망한 나라,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입니다. 이렇게 많은 기록들이 있는데도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사람들은 꿈쩍도 안합니다. 하나님도, 심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 6:4-6) 신약의 이 무서운 말씀도 그냥 흘러 보내고 무시해 버립니다.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지금 당장 하나님이 오실까 심히 두렵습니다.


 


세상은 온통 당장 눈앞에 보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 까지 한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유혹 당하고, 점점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서 갑니다. 하지 말아야지 ‘회’, 한숨 쉬면서 후회와 한탄은 하면서도. ‘개’, 돌이키고 끊어내지는 못합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손에 쥔 아주 조그만 재물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을 얻은 것처럼, 비교하고 자랑하면서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 합니다.


 


이러다 보면 우리의 끝은 너무 쉽게 예상이 됩니다. 그렇게 끝까지 안 듣고 버티다가 이스라엘처럼 폭삭 망하고, 가진 것 다 빼앗기고, 몸까지 병들어 건강도 잃어버리고, 심지어 쓸쓸하게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 오늘 설교의 말씀이 아모스 시대의 백성들과 같이 극악의 불순종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에게 은혜의 말씀으로, 경고의 말씀으로, 기회의 말씀으로 들려지시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멸망해 가는 그 포악한 시대에도 공의와 정의를 외친 아모스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모스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 이 말씀을 가장 먼저 내 가슴에 새기시고, 가족과 이웃에게 전해주셔서, 모두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열어드리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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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매일 같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를 고백하고, 다시는 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를 이끄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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