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이 시작된답니다 (창42:1-17)
본문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이 시작된답니다/창세기42;1-17(201018)
한 꼬마의 일기
어린 한 꼬마의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엄마는 나를 이뻐해 줘서 고맙다.
냉장고는 먹을 것을 줘서 고맙다.
강아지는 놀아줘서 고맙다.
그런데.......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현대사회는 아버지 부재, 아빠 부재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엄마와 강아지와 냉장고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아빠는 아버지는 왜 있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조차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빠와 엄마도, 자녀들도 다 회복되어지는 축복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가족들의 자기 자리를, 자기 위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제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 자기가 제대로 있음으로 조화(화모니)를 이루어질 때 행복한 것입니다.
P4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호사다마라는 말은 ‘좋은 일에는 흔히 시샘하는 듯이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따른다.’라는 뜻이다.
분명히 7년 대 풍년이라는 엄청난 좋은 일이 있었는데, 그 풍년을 시기하여 7년 대 흉년이 다가옴으로 인해서 언제 풍년이 들었던 때가 있었던가? 하면서 7년에 걸쳐서 주어졌던 풍년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사에는 호사다마와 같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좋은 일이 있어서 너무너무 좋고 행복한데, 어디에선가 좋지 않은 일들이, 불행한 일들이 연거푸 발생하는 것이다.
애굽을 중심으로 다른 중동지역은 어땠을까?
1990년 중반에 북한에 불어닥친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서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애굽을 비롯한 중동지역에도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7년이라는 대흉년이라는 것은 너무나 끔찍해서 다시 꺼내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이다.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였다고 기록하는 것을 보면, 그 당시 7년 대 흉년은 어땠을까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런 일들을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재현된다면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 자녀들, 우리 이웃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들 자신과 자녀들과 이웃들도 굶어 죽는 무리들 속에 포함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우리 자녀들이, 우리 이웃들이 길거리에 쓰러져서 죽은 시체들 속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D4.
① 재앙이 구원의 시작점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
중동지역에 불어닥친 7년 대 흉년은 분명히 커다란 대재앙일 수밖에 없다.
기근과 흉년이 1년짜리였어도 백성들이 견디지 못해서 아사당하기 일쑤인데,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장장 7년이라는 거대한 흉년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끔찍해서 다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엄청난 재앙이다.
애굽이라는 나라에는 미리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을 주었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줌으로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7년 동안 대풍년을 잘 관리하여 다가올 7년의 대흉년을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애굽이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애굽 제국의 모든 백성들도 집안에 있는 모든 재물들을 곡식을 구하기 위하여 왕궁에 가져다 바쳐야만 하는 실정이다.
제사장들의 재물 외에 모든 백성들이 가진 모든 은전과 가축과 밭을 곡식을 구입하기 위하여 왕궁에 가져다 바쳐야만 하는 현실이 끔찍하기 짝이 없다.
애굽제국은 앞으로 7년 대 재앙이 다가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애굽제국이 아닌 다른 중동지역민족들은 어떠했겠는가?
다른 중동지역 민족들은 다가올 대재앙에 대하여 전혀 알지도 못하였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잘 알고 있었는데도 7년 대 흉년이라는 대재앙 앞에서 주저앉았는데, 전혀 알지 못하던 중동지역 민족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애굽 제국의 왕궁에 가면 곡식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전 중동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들에게 소문으로 들려오게 된다.
그래서 애굽제국은 전 중동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애굽제국은 대흉년 이전에도 중동지역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제국이었지만, 7년대흉년 기간에는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닌 대애굽제국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중동지역에 불어닥친 대재앙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야곱의 일행들에게도 예외되지 않는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가나안 백성들은 애굽으로, 애굽으로 서둘러서 곡식을 구매하러 떠난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야곱도 아들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 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면서 애굽으로 건너가서 곡식을 사 오라고 독촉한다.
야곱은 베냐민을 빼고 10명의 아들들에게 곡식을 구매할 수 있는 은전을 준비해서 애굽으로 곡식을 구매하러 떠나보낸다.
야곱의 일행들은 중동지역에 벌어진 7년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구태여 곡식을 구매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흉년이 벌어졌는데, 그대로 앉아서 모든 가족들이 굶어 죽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무언가라고 해야 먹고 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도 지금은 너무 먹을 것이 많아서 버리는 음식들이 많지만, 멀지 않은 옛날, 과거에는 하루 한 끼 먹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를 우리들은 보릿고개라고 부른다.
중동지역에 불어닥친 흉년은 보릿고개라고도 부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때이다.
중동지역에 불어닥친 흉년은 북한에서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알려진 1995년에서 1999년까지 북한에 불어닥친 고난의 행군보다도 더 끔찍한 재앙이다.
돈은 있으되 곡식을 구할 수가 없다.
돈은 있지만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구할 길이 없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곡식을 구매하러 보내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곡식을 구매하러 떠나는 길이 구원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곡식을 사 와야만 흉년에서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곡식을 사 오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서 온 가족들이 굶어 죽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아들들이 곡식을 구매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가는 길목이 구원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결국 7년 대 흉년이라는 대재앙이 구원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애굽으로 곡식을 구매하기 위하여 떠나는 발걸음이 결국은 야곱의 온 가족들이 애굽으로 집단이주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흉년으로 인해서 애굽에 곡식을 구매하기 위하여 떠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집단이주시키기 위하여 애굽을 비롯하여 온 중동지역에 7년이라는 대 흉년이라는 대재앙을 내리시는 것이다.
대재앙이 구원의 길을 열어가는 시작점이 된다.
② 시험하게 하시는 하나님.
요셉의 형님들은 곡식을 구매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건너오게 된다.
요셉은 곡식을 구매하러 온 여러 무리들 중에 형님들이 끼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요셉은 형님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이 다루어나간다.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형님들에게 “애굽의 정황을 정탐하러 온 정탐꾼”으로 몰아세운다.
정탐꾼으로 몰린 형님들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정탐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요셉은 형님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우면서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 것과 친동생 베냐민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요셉은 형님들이 과거에 자신을 미워하고 종으로 팔아넘길 때와 20년이 지난 지금 형님들의 상태를 파악하려고 형님들을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할 때는 왜 시험하는지, 시험해서 무엇을 확인하고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목적이 따로 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학교에서 성적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등수를 매기고 합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test라는 영어단어를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함정을 파놓고 그 함정에 몰아놓고 걸려 넘어지게 함으로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시험이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유혹한다. 미혹한다 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tempter라는 영어단어를 사용한다.
사단이 하와에게 찾아와서 시험하는 것, 사단이 금식하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세 번씩이나 시험하는 것은 tempter에 해당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가서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리라고 시험하는 것은 test에 해당한다.
야보고서 1:12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라는 말씀에서 시험은 test이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에서 말씀하는 시험은 tempte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곡식을 구매하러 온 형님들의 현 상황이 어떤지를 시험하게 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님들을 구렁텅이 빠뜨리기 위해서 시험, tempter 하는 것이 아니라 형님들의 수준과 형님들의 마음 상태를 test하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다.
temptation 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temptation 하지 않으시고, test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넘어지고 쓰러지도록 유혹하기 위해서 시험, temptation하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 어떤 시험, test를 하실까?
올 2020년은 코로나 19바이러스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정말 신앙으로 사는지, 정말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지, 아니면 세상의 원리에 따라서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려고 하는지를 시험하시는 해이다.
세상과 타협하면 세상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와 동성애법과 이슬람법을 통해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살려고 하는 지를 시험하시는 해이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려는 test를 잘 견디어내면 우리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한 신앙인으로 인정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험하는 것은 우리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채워주시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출제해 주신 시험문제를 잘 숙지하고 이해하고 믿음으로 영접하여 잘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③ 되돌려주시는 하나님.
요셉은 시므온 형님을 인질로 붙잡고는 다른 형님들에게 곡식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곡식을 구매하러 올 때는 반드시 막내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만 된다는 선결 조건을 내세운다.
요셉은 청지기에게 곡식 자루에 가득가득 채우고 곡식 대금도 그대로 자루에 담아주라고 한다.
요셉은 곡식과 곡식 대금을 자루에 담아서 되돌려준다.
형님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었다가 곡식과 함께 곡식 대금도 함께 자루에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워한다.
형님들은 가나안 땅,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각각 자신의 곡식 자루를 풀었는데, 곡식 대금이 그대로 들어 있음을 보고 두려움에 벌벌 떤다.
하나님은 되돌려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덤으로 갚아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형님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없이 자루 가득히 곡식과 함께 곡식대금을 되돌려주도록 감동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덤으로 베풀어주시는 분이다.
지금 우리들의 살아가는 삶이 마치 부정적이고 –의 삶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긍극적으로는 긍정적인 역사를 이루어가시고, +가 되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정에 불어닥친 흉년이 도리어 복이 되게 하시고, 은혜가 되게 하시고, 축복이 되게 하시는 분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렇게 해 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L4 & B4.
하나님께서 중동지역에 발생한 7년 대 흉년이라는 대재앙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삼으셨다면 우리들에게는 어떤 것으로 구원을 시작해 나가실까?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게 된 동기가 사람들마다 제각각 다르다.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와 동기가 각각 다르고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신앙인들 중에는 극심한 재난을 당하고 그 재난 때문에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어떤 이는 질병으로, 어떤 이들은 사업실패로, 어떤 이들은 가정 문제로, 어떤 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은 믿음의 식구들이 너무 많다.
어떤 이들은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 생활하면서 예수님을 믿어서 신앙인으로 변화받은 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라고 물으면 한결같이 예수님을 믿어서 믿음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좋고 만족한다. 절대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고백한다.
이들에게는 역경이, 시련이, 고난이, 어쩌면 재앙이 도리어 복이 되는 것이다.
전화위복이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올해 2020년에는 기나긴 코로나 바이러스와 장마철 홍수와 연거푸 찾아온 태풍으로 인해서 엄청난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것들은 분명히 시련이요 고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누군가는 이 고난을 통해서 아주 약간이라도 가지고 있던 믿음마저 잃어버린 이들이 많을 것이다.
틀림없이 올해가 지나고 내년이 되면 교회들도, 신앙인들에게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많은 교회당들이 부동산 매몰로 나온다든지, 교회가 통폐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교회과 성도들의 삶이 어느 때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누군가에는 이런 고난과 역경과 시련의 시간이 오히려 감사와 은혜와 축복의 시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
누군가에는 없던 믿음도 생겨나고 약했던 믿음도 더욱더 견고해지고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로 거듭날 수도 있다.
전혀 믿음이 없었던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감동과 은혜와 믿음을 주셔서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고난이 오히려 구원이요 축복이요 은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길은 사람들마다 각각 다르고 다양한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방법이 맞고 틀리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신앙인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신앙인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을 잘 믿는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보면 종종 독실한 신앙인의 가정에서 불신자 자녀들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가정들이 꽤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불신자의 가정,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 않은 완고한 가정에서 독실한 신앙인이 나오고, 목회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저 자신도 불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대학 1학년 시절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목회자가 된 케이스이다.
어떤 이들은 갑자기 생긴 질병으로 인해서 그 질병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서 신앙인이 된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이는 잘 나가던 사업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부도나고, 교도소 가면서 예수님믈 만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멀쩡했던 눈이 갑자기 실명이 되면서 죽으려고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가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은 이들도 많다.
북한 김씨3부자의 통제 속에 살다가 탈북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사명자가 되고, 목회자가 된 신앙인들이 많다.
평탄하게 예수님을 믿은 이들도 많지만, 본인들에게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실패와 좌절 속에서,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이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생생한 체험을 가진 이들이다.
신앙인들마다 자기만이 가진 스토리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이 가진 스토리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이 가진 인생 스토리가 있고, 신앙의 스토리가 있다. 자기만이 가진 간증이 있다.
자신만이 가진 스토리는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좌절과 실패와 질병과 낙담 속에서 굳건하게 살아난 스토리들이 많다.
혹시 지금 우리들이 당하는 재앙이 있는가?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과 시련과 역경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새로운 구원을 열어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점에 홀로 외롭게 서 있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끝까지 붙잡고 계심을 믿음으로 확신해야 한다.
지금은 실패자가 된 것 같고, 낙오자가 된 것 같고, 외톨이가 된 것 같고, 왕따 당하는 것같아 보여도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역전의 명수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역전시켜주시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세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처럼 우리 신앙인들을 지켜주시고 막아주시고 건져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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