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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구원의 일꾼으로 세우신다 (창41: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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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구원의 일꾼으로 세우신다/창세기41;37-57(201011)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 충직한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이다.


 


 


무서운 마누라


 


어느 날 밤길을 가던 한 중년 남자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난 강도다. 돈 내놔!”


남자는 무서웠지만 강도에게 말했습니다.


“뭐? 돈? 않돼.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집 근처에서 강도에게 돈 뺏겼다고 하면 마누라가 믿을 것 같아?”


“그래...그래서 못 준다 이거지?”


중년 남자의 대답에 어이없어하던 강도는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한마디 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그럼 내가 오늘 한 건도 못했다고 하면 우리 마누라가 믿을 것 같아?”


걷는 마누라 위에 뛰는 마누라, 뛰는 마누라 위에 나는 마누라입니다.


요즘은 마누라가 더 무서운 세상입니다.


우리들은 걷는 신앙인 위에 뛰는 신앙인, 뛰는 신앙인 위에 나는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P4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계획하셨기 때문에 형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애굽의 실세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감옥살이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날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술 맡은 관원의 마음까지도 역사하셔서 요셉의 부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도록 역사하신다.


 


성경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하늘 아버지의 계획과 주권과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따라서 진행되어져 가는 일들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참으로 기가 막힌 우연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가지신 뜻을 실현해 나가시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창세기 4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가실까?


하나님께서 본래 가진 뜻을 실현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일을 만들어가고 계실까?


 


D4.


 


① 정하신 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요셉은 어떻게 감옥살이하고 있었을까?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은 요철 모양으로 지하에 凹모양으로 만들어진 감옥이다.


그러니 보디발의 집에 있는 지하에 파놓은 감옥이라는 것이다.


햇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지하 감옥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삶, 매일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살아야 하는 감옥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하는 것은 과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요셉은 감옥에서 나갈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영영히 감옥살이하다가 일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젠 보디발 주인님의 마음이 풀려서 감옥살이에서 풀어주시지는 않을까? 이젠 보디발 주인님께 나 자신의 결백을 탄원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요셉으로 하여금 답답한 감옥살이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든다.


1절에서 ”만 이 년 후에“라는 시간을 말씀하고 있다.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에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과 빵을 비롯여 왕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관원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꿈을 꾸게 되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주고, 요셉이 해석해 준 그대로 술 맡은 관원은 복직되고, 빵 굽는 관원은 처형당하는 일이 있은 지 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렸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 2년 동안 요셉은 감옥에서 여전히 다른 죄수들에게 수종 들면서 감옥살이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이다.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도 무척이나 오래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금방금방 무언가를 해냈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이 될 때까지 묵묵히 참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요셉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똑같은 감옥살이를 1년 내내, 아니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앞길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내다볼 수 없는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떨까?


정말 지겹고 답답하고 미쳐버릴 것 같지 않은가?


요셉이 갇혔던 감옥에 햇빛 하나 안 들어오고 꽉꽉 막힌 지하 감옥이었던 것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감옥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지, 마치 꼭 감옥과 같은 곳에 갇혀서 사는 것처럼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뭔가 하나라도 보이면 그 보이는 것을 붙잡고 살면 되겠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전에 안기부의 남산 지하실이 지독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도 않고, 감동도 없고,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묵묵히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


여기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서 찾으시는 성령의 열매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오래 참음이라는 열매이다.


오래 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오직 한결같이 주님만을 믿는 믿음의 뿌리가 견고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견고한 믿음의 뿌리가 없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우울증, 홧병, 정신병, 치매에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믿음의 뿌리가 튼튼하고 견고하여 오래 참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어떤 시련과 고난과 외로움과 고독과의 싸움에서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거나 없으면 오래 참음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저는 올해 여러 꽃나무들을 삽목해 보았지만, 성공한 것이 별로 없다.


삽목하는 기술이 없어서 성공한 식물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몇몇 나무들은 삽목에 성공하여 주변에 계시는 목사님들에게 나눠드리곤 하였다.


여러 식물을 삽목해 보면서 삽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뿌리를 내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나무를 삽목했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삽목했을 때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삽목해서 뿌리만 제대로 내리면 100%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려면 믿음의 뿌리를 잘 내려야 하고, 믿음의 뿌리만 잘 내리면 100% 오래 참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시간까지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어낼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일꾼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면서 오래 참음의 열매로 참고 견디고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② 꿈을 주시고 뜻을 해석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과 의지를 실현해 나가시기 위하여 대애굽제국의 가장 파워넘치는 중심축으로 다가가신다.


애굽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친위대장도 아니고, 대제사장도 아니고, 점성술사도 아니고, 현인들도 아니다.


애굽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바로왕, 애굽의 실제적인 주인인 바로왕을 움직이는 것이다.


바로왕을 움직이면 애굽을 움직일 수 있고, 애굽을 움직이면 중동지역을 움직일 수 있고, 중동을 움직이면 가나안 땅도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애굽제국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바로왕에게 직접 찾아가서 꿈을 두 번씩이나 연거푸 주신다.


바로왕이 꾼 꿈은 바로왕이 나일강변에서 산책하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뒤따라와서는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집어 삼켜버리는 것이다.


또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좀 있다가 동쪽 사막지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바짝 말라버린 일곱 이삭이 나와서는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집어삼켜 버리는 것이다.


바로는 두 번에 걸쳐서 꿈을 꾸었는데, 분명히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꿈인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궁리해도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꿈인지 깨달을 수 없다.


바로는 애굽의 모든 꿈해몽가들을 궁궐로 입궐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애굽의 난다긴다하는 모든 점성술사들과 현인들이 입궐하여 바로가 꾼 꿈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무도 어떤 의미의 꿈인지 해석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세상의 꿈해몽가들의 방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해몽할 수 없다.


당시에 대애굽제국은 전 중동지역에서 학문, 철학, 예술, 문화 등등에서 최고의 권좌에 앉아 있는 제국이기 때문에 애굽제국에는 난다긴다하는 최고의 학자들, 점성술사들이 즐비하게 있는 제국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세상의 영, 세상의 원리를 따라서 살아가는 이들이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 온 우주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아무도 해석할 능력이 없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해석할 능력이 애굽 전국에는 없다.


아무리 뛰어나고 유능하고 난다긴다해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자는 없다.


 


이때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비장의 히든카드를 꺼내주신다.


야구감독이 정말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는 판단이 되었을 때, 지금까지 고이고이 숨겨놓았던 히든카드를 대타로 세워서 안타를 치거나 홈런을 쳐서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술 맡은 관원을 대타로 기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술 맡은 관원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시면서 움직여주신다.


술 맡은 관원은 2년 전에 보디발의 집에 있는 감옥에 갇혔을 때 일을 기억하면서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는 급히 보디발의 집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을 입궐시키라고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명령을 내린다.


바로의 명령은 곧 법이기 때문에 보디발은 부하 장수를 집으로 보내서 요셉을 입궐 준비시켜서 입궐을 하라고 한다.


요셉은 지하 감옥에서 끌려 나와서 영문도 모르는 채 머리와 수염이 깎인다.


바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죄수의 의복에서 관복으로 갈아입게 된다.


죄수의 몸으로 포승줄에 매여서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위풍당당하게 호위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무시무시한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디 감히 죄수와 종의 주제에 애굽의 절대 지존인 바로왕 앞으로 나아가서 알현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요셉을 앞에 세운 바로왕은 다른 대소신료들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요셉에게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고 하더구나.“라고 묻는다.


요셉은 바로의 말을 듣고는 지체하지 않고 한 마디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주십니다.“라고 대답한다.


바로는 두 번에 걸쳐서 자신이 꾸었던 꿈을 요셉에게 이야기한다.


바로가 말하는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폐하께서 두 번에 걸쳐서 꾼 꿈은 하나입니다. 한 꿈을 두 번에 걸쳐서 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폐하께 보여주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요셉은 바로가 꾼 꿈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드린다.


요셉은 ‘바로께서 꾼 꿈은 앞으로 7년 동안 대풍년이 있을 것이고, 곧이어 7년 동안 대재앙과 같은 흉년이 다가와서 애굽제국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그러면서 요셉은 ‘바로께서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잘 세워서 앞으로 다가올 대풍년을 잘 관리하면 곧이어 찾아올 흉년에 망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고 처방까지 해 드린다.


요셉의 해석을 들은 바로와 대소신료들은 너무너무 좋아라 한다.


 


요셉이 두 번이나 꾸었던 꿈도, 술 맡은 관원이 꾸었던 꿈도, 바로가 두 번에 걸쳐서 꾼 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정하셔서 주신 꿈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 감동을 입은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라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구원의 뜻을 헤아리고 깨닫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③ 총리로 세우시고 계획을 추진하시는 하나님.


 


요셉이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해 주면서 앞으로 일어날 풍년과 흉년을 잘 관리하기 위하여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세워서 지혜롭게 관리하면 7년이라는 거대한 흉년이 다가와도 망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한 것에 대하여 바로와 모든 대소신료들이 좋아라 한다.


바로는 모든 대소신료들 앞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하면서 요셉에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라고 선포하면서 거대한 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워버린다.


바로는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인장 반지를 빼어서 요셉에게 끼어준다.


바로는 대소신료들과 의논 한마디 하지 않고 직권적으로 요셉을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임명하는 것이다.


바로는 요셉에게 총리의 의복을 입혀준다.


바로는 요셉에게 커다란 금목걸이를 걸어준다.


바로는 요셉을 자기가 타고 다니는 황금 수레에 태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어느 누구도 반항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토를 다는 이가 없다.


어쩌면 대소신료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친위대장이 무리들에게 큰소리로 ”엎드리라“라고 소리친다.


모든 대소신료들, 백성들이 얼떨결에 요셉에게 경의를 표하게 한다.


‘엎드리라’라고 번역된 단어는 앜카드어로 ”아브레크(Abrek)“라는 단어인데, 왕궁 총리라는 뜻이다.


이 말을 애굽어로는 ”주목“라는 말이다.


모든 대소신료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요셉을 애굽의 왕궁 총리로 주목하여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는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는 애굽식 이름으로 개명시켜 준다.


‘사브낫바네아(Zaphenath-Paneah)’라는 이름의 뜻은 ‘삶의 창조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바로는 요셉이야 말로 앞으로 다가올 풍년과 흉년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바로가 요셉의 이름을 애굽식으로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으로 개명시켜 준 것은 이젠 요셉의 주인은 바로라는 의미이다.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이 그 사람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의 실제적인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대애굽제국의 황제가 요셉의 실제적인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바로는 요셉에게 태양신 라(RA)를 섬기는 대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요셉의 아내로 맺어주면서 혼인시켜 준다.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아스낫과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는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으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모든 원한, 고생, 고난을 다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다.


 


바로는 히브리사람이요 종이요 감옥에 갇혀서 죄수 생활하는 요셉을 들어서 전 애굽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총리로 세운다.


총리는 황제인 바로를 대신하여 전국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한 손에 쥔 사람이다.


바로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요셉에게 대항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


요셉은 바로의 총애를 받으면서 7년 대풍년을 잘 관리하여 나간다.


 


47-49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이런 풍년은 곧 이어 발생하게 되는 흉년을 잘 이겨나가게 된다.


53-57에서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이제 중동지역은 대애굽제국을 중심으로 재편하게 된다.


중동지역에서 애굽이 중심이 되어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야곱의 일행들이 애굽으로 찾아오게 된다.


야곱의 일행들이 중동지역에 발생한 흉년을 견디기 위하여 애굽으로 넘어오면서 흉년에서 구원받고 새로운 히브리민족과 문화와 문자와 언어가 형성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L4 & B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히브리 민족으로 세우기 위하여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일꾼을 세워야 할까?


 


① 하늘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일꾼.


 


요셉은 아버지 집을 떠나서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였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가나안 땅, 아버지 집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태양신을 섬기는 애굽이란 곳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한결같이,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섬기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서, 아버지 집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애굽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애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고, 제사를 드리거나 예배를 드릴 수도 없다.


종된 사람은 주인이 믿고 섬기는 신을 따라서 믿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보디발이나 바로나 모두가 태양신 라(RA)를 믿고 섬기는 이들이기 때문에 요셉도 주인을 따라서 태양신을 믿고 섬겨야 하는 것이 종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겉으로야 어떻게 해든간에 요셉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믿음이, 그 섬김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 특히 애굽의 대소신료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전격적으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사울 왕을 세웠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사울 왕을 폐위시키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하신다.


 


②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미친 일꾼.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세워지는 일꾼은 지극히 당연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미친 사람이라야 한다.


지식으로 머리로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머리는 물론이거니와 온 맘으로, 온 가슴으로, 온 몸으로 온 영으로, 온 인격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미친 사람이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나고 유능하고 박식한 학문을 지닌 신학박사요 철학박사요 교수라고 하더라도 마음과 가슴과 영과 몸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미치지 못하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도올 김용옥이라는 미치광이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아무리 허수아비가 그럴싸하게 세워져도 새들이 허수아비인 줄을 알면 허수아비를 우습게 여기면서 곡식알을 쫓아 먹는다.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신앙인들, 일꾼들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에 미친 사람,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야 한다.


 


③ 성령에 사로잡혀서 꼼짝 못 하는 일꾼.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 감화 주시는 은혜에 사로잡혀서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꼼짝없이 따라가는 사람이라야 한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의 영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대로 따라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다.


 


④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살고 죽을 수 있는 일꾼


 


주님의 몸된 교회와 사역 처소는 세상의 사상과 학문과 원리와 윤리도덕과 법을 가르치고 전하는 곳이 아니다.


오직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 한 권만을 절대적인 진리요 생명임을 확신하고 오직 성경 한 권에서 가르치고 전하는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고 전하는 곳이 주님의 몸된 교회요 주님의 일꾼이 감당해야 할 사역이다.


성경은 세상의 온갖 잡다한 의견이나 원리나 이론이나 사상으로 타협하거나 굴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성경은 온 우주에서, 온 지구촌에서 절대로 변하거나 바뀌거나 없앨 수 없는 유일한 생명이요 진리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일부의 신앙인들, 특히 목회자들, 성직자들, 사회의 지도자급에 있다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동성애, 젠더, 제3의 성을 인정하고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살고 죽는 일꾼이 아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악법이 국회에서 제정된다면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주장하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발악하는 국회의원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징계의 회초리를 사용할 것이다.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세워지는 일꾼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한 권에 죽고 살 수 있는 신앙인,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미쳐버린 사람, 성령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꼼짝 못 하는 사람, 유일하신 성경에 죽고 사는 사람인 요셉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애굽의 총리로, 새로운 지도자로 전격적으로 세워버린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절대적인 권위를 앞세워서 요셉을 총리로 세우는 기적을 일으킨다.


어쩌면 애굽의 모든 대소신료들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도 요셉을 총리로 세우면서 의아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바로의 마음을 사로잡고 움직여주시면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애굽의 총리로 세워버린다.


애굽의 총리로 임명받은 요셉조차도 얼떨떨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갖고 계시던 뜻이요 의지이었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얼떨떨한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은 이렇게 얼떨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이렇게 얼떨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꾼은 얼떨떨하게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믿음으로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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