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창50:22-26)
본문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창50:22-26 ,히11:13-16
어느 심리학자가 임종 자들의 모습을 몇 가지 유형별로 분류 하였습니다. *먼저 “안 죽어”형이 있는데, 평생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형입니다. *다음에 “왜 죽어”형으로, 분노를 터뜨리면서 죽어가는 형입니다. 죽을 리가 없는데 왜 죽어야 하는지 억울해 하면서 죽는 사람입니다. *또 “간청 형”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보고 애걸복걸하는 형입니다. *또한 “절망 형”이 있는데, 죽음 앞에서 충격을 너무 받아 정신을 잃어버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승리 형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부활이요,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웃으며 아름답게 인생을 맏이는 형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잠시 나그네 인생을 살다가 죽음 이후에 더 나은 본향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명절에 고향을 찾는 추석 주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더 나은 본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세가 어디 있냐고, 특히 지옥이 어디 있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증거 합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에 관한 언급보다 지옥에 관한 언급이 더 많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각 사람의 자유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고 있는 지옥이 없게 되거나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죽음이 그 관문이요, 갈림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심판대 앞에서 어떤 사람은 더 나은 본향을 향해 들어가는 복을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심판의 형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본향에 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요,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요, 인생의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요셉의 임종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50:26에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는 110세였고, 자손 4대를 보았습니다. 23절에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 ’했는데, 에브라임이 요셉의 아들이니까 에브라임 자손 삼대는 곧 요셉의 자손 4대를 의미합니다.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까지 보았고, 이렇게 다복한 가문을 이루고, 애굽의 총리로 장장 80년 동안 애굽을 다스리고,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렸던 요셉도 역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장수 했으며, 영화를 누려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다가 더 나은 본향을 향한 소망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의 유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50:24-25에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 ’ 나중에 출애굽 할 때에 자신의 유골을 운구해서 가나안 땅에 안장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요셉은 세상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었을 뿐 아니라, 죽음 후에도 더 나은 본향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묻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신약 본문 13절로 16절까지는 이들 구약시대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소망으로 삼고 살아온 근원적인 근거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들 믿음의 선진들의 소망은 이 땅에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한 성, 다시 말하면 하늘의 예루살렘 성으로 곧 천국을 소망으로 살아간 것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히11:10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는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 가운데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나라를 동경하고 그 나라가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히11:13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이 같은 선진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신앙에 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2.더 나은 본향을 소망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죽음을 맞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가 만일 더 나은 본향에 대한 소망이 없이 세상 것에만 소망을 두고 살았다면 그가 소유한 많은 것 때문에 죽음을 애석해 하고, 억울해 하고, 절망하며, 좀 더 살고 누리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의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에게는 더 나은 본향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1:22에서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사람에게는 죽음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자기가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기는 순간이며, 지옥으로 끌려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죽음의 순간 작별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평안한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자기가 갈 곳이 어디인지, 그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신약 본문 히11:16에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했습니다. 여기 한 성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하늘 본향을 말합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은 이 성에 대해 요14:2-33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도들에게는 이런 확실하고 분명한 약속이 없었지만 믿음으로 그 나라를 소망하고 그들의 삶의 목적을 그 나라에 두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더 나은 본향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영광 보다 하늘 영광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신실한 신앙으로 사시는 어떤 할머니 한 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일찍이 홀로 되셔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 시키셨습니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나름대로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 사는데도 할머니는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작은 오두막집에 혼자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녀들은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보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제 우리들도 모두 잘 사니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며 살 수 있어요.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서 혼자 살지 마시고 저희랑 좋은 집에서 사세요.” 그러자 이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애원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지어다오. 집 바닥은 온통 유리로 하되 기둥은 12개로 하고, 그 기둥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라. 보석은 각기 다른 색깔로 하고 문은 12개가 되어야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농담이시죠.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을 어떻게 짓나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왜 없느냐? 나는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분양 받았는데…. 그래서 곧 그곳에 살게 될 테니 나보고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살자고 하지 말려무나.”성도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본향을 바라보며, 그곳을 향해 소망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삶입니다. 항상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던 사도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더 나은 본향을 소망하며 사모하는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거룩한 나그네의 삶으로 본향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요셉은 110년 동안 이 땅에 살면서 거룩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삶으로 본향에 들어 갈 준비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받고, 환경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그 비전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요셉은 이복형들에게 억울하게 노예로 팔리기도 하고, 여주인의 간계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 때도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으로 용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책임지며 돌보았습니다.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되어 힘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형제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그가 형의 자녀들까지, 그것도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손자까지 돌봅니다.(23절) *요셉은 끝까지 경건한 가정을 가졌습니다. 그는 권력도, 돈도, 명예도 다 가진 사람으로 얼마든지 처첩을 두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한 아내만을 두고 가정을 정결하게 지켰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낙심하지 않았고, 총리가 되고, 애굽 왕이 그를 칭찬하며 높일 때에도 겸손히 하나님만 높이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은 죽음 앞에서도 가족들과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믿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미래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그의 신앙 고백입니다.
신약 본문 히11:13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땅에서의 삶을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 떠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의 삶 속에 이루어진 것처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마치 명절을 앞두고 고향을 찾을 계획을 세워놓은 사람들이 몸은 아직 떨어져 있지만 고향에 가지고 갈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면서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어 그곳에 있는 부모와 친지들을 만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것으로 이미 마음은 설레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고향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부모나 친지들 앞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멋있는 모습으로, 당당한 모습으로 금의환향하기를 원합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때 어떤 이들은 겨우 들어가기는 했으나 부끄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들어 간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주님과 천군 천사들의 환영을 받고 주님의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충성스럽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나그네로 있을 때 아무런 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소개된 영국인 존 브래들릭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년 전 병원에서 췌장암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민 끝에 기왕 죽을 것 모아놓은 재산을 다 써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흥청망청 다 써버렸습니다. 직장도 그만 두고, 은행 대출금 상환도 중단한 채 매일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전전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훨씬 지나도록 몸에 특별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다시 찾아갔더니 오진이었다는 겁니다. 췌장암이 아니라 췌장염이고,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겁니다. 분명 좋은 소식이지만 그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 재산을 탕진했고, 남은 집마저 빚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그는 자기 인생을 망쳐놓았다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정말 한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 때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게 지혜이지만, 잘못 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생각하되 잘 준비해야 됩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나그네의 삶으로 하늘 본향에 들어갈 준비를 잘 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정리합니다. 명절에 고향을 찾는 추석 주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더 나은 본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더 나은 본향을 소망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거룩한 나그네의 삶으로 본향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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