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길을 예비하시기 위하여 (창38:12-30)
본문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시기 위하여/창세기38;12-30(200920)
공평한 인생
‘인생은 공평하다’라는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보다는 불공평하다는 말에 공감할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빈부의 격차가 왜 더 벌어지고 있을까요?
분명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은 처음에는 불공평한 조건들로 늘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결국은 평등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40대에는 지식이 평등해지고,
50대에는 외모가 평등해지고,
60대는 성(性)이 평등하고,
70대는 건강이 평등해지고,
80대는 재물이 평등해지고,
90대는 생사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나와 다른 것이 많은 것 같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서로 비슷비슷해집니다.
결혼한 후 얼마동안은 수준이 어떻고 집안이 어떻고 하면서 싸움도 많이 하지만, 살붙이고 살다보면 그 기준들이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처럼, 역할이 다를 뿐 나와 다를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시간(時間)이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불공평하다고 불평 원망하지 말고, 오늘 하루 모두에게 똑 같은 24시간을 주셨음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4
유다는 자기 제안으로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의 손에 은 20을 받고 종으로, 노예로 팔아넘긴 죄책감으로 살아가게 된다.
다른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는데, 유다는 요셉을 종으로 팔았으니 요셉을 죽이려는 것보다는 훨씬 잘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어떻게 동생을 종으로 팔아넘길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자책감은 유다가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치는 일이 된다.
더군다나 아버지 야곱이 크게 낙심하여 식음을 전폐하시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아버지 집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자신의 제안으로 아버지가 애지중지하게 사랑하던 동생을 팔아넘기고, 요셉이 입었던 채색옷에 숫염소의 피를 뭍혀서 야생짐승에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하면서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는데 어떻게 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유다는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용기도 없고, 면목도 없다.
유다는 더 이상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어서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로 결단한다.
아버지 집을 떠나서 세상에서 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집을 떠나서 아둘람 지역으로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아버지는 유다에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신다.
아무리 죄책감이 앞서고, 아버지 뵐 면목이 없더라도 아버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 아버지 집을 떠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유다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려는 구원의 세계를 어떻게 펼쳐 나가시려고 하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유다의 가계도를 어떻게 형성시켜 나가시는 것일까?
D4.
① 자식을 통해서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집을 떠나서 아둘람으로 가서 살면서 유다는 다양한 가나안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웃이 된다.
아버지 집을 떠난 유다는 아둘람으로 가서 히라라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
아둘람에서 살면서 유다는 수아라는 사람도 만나서 사귀게 된다.
수아라는 사람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수아의 딸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하여 살림을 차리게 된다.
유다는 수아의 딸을 통해서 3형제를 낳게 된다.
첫째가 엘, 둘째가 오난, 셋째가 셀라이다.
이들 3형제가 10대 청소년으로 장성하게 된다.
유다는 엘을 가나안 여자인 다말에게 장가를 보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님께서 엘의 죄악을 거론하면서 즉사시키는 재앙을 내린다.
그러자 유다는 둘째 오난에게 형수에게 들어가서 형의 이름으로 후사를 남길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한다.
오난은 형수인 다말과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기가 아기씨를 주어서 형수가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자신의 자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형의 자식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형수의 질 속에 사정하지 않고 밖으로 사정을 하고 만다.
오난이 행한 죄악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히브리 원문 직역 성경에서는 오난이 “형수에게 들어갈 때마다 형을 위하여 씨를 주지 않으려고” 그랬다고 번역하고 있다.
오난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오난의 생명도 거두어가는 재앙을 내린다.
유다는 첫째와 둘째가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셋째인 셀라도 죽을지 모르겠다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된다.
유다는 셋째인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다말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하면서 친정으로 쫓아 버린다.
유다가 오난에게 형수 다말과의 관계를 통해서 엘의 자식으로 낳으려고 하는 것은 형사취수제를 통해서 가계도를 이어가도록 하는 계대법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다.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은 갑자기 두 아들을 잃은 여인이 된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수아의 딸은 아들 하나만 잃은 것이 아니라 졸지에 두 아들을 잃게 된다.
그러니 연이어서 두 아들을 잃은 엄마로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무너지는 고통을 당했을까 하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마도 수아의 딸은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두 아들을 잃은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던 수아의 딸은 더 이상 견디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유다는 졸지에 두 아들과 아내를 잃게 되는 재앙을 받게 된다.
그랬으면 이젠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잘못된 삶이었음을 깨달을만한데도 유다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 생명을 거두어가시기도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엘과 오난과 셀라 3형제를 주셨지만, 하나님 앞에서 악한 삶을 살았던 엘과 오난의 생명을 거두어가고 만다.
그런가 하면 3형제를 낳은 수아의 딸의 생명도 거두어가고 만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아무리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더라도 생명의 주인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삶은 허망한 삶이요 소망이 사라진 삶이란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어하신다.
② 구원의 메시야의 길을 준비해 가시는 하나님.
유다가 두 아들과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잊어버리고 위로받기 위하여 친구들과 더불어 딤나로 가게 된다.
딤나에는 다말의 친정이 있는 마을이다.
다말은 시집을 잘 못 가서 두 남자를 죽인 여인, 그로 인해서 시어머니까지 죽게 만든 여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친정에서 과부로 살아가고 있다.
마침 유다의 아내가 죽고 장례식을 마치고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서 유다는 히라라는 친구와 함께 며느리의 친정 동네로 여행을 가게 된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의 친정이 있는 동네가 아니라 얼마든지 다른 동네로 여행갈 수도 있는데, 하늘 아버지께서 유다의 손을 꼭 잡고 다말의 친정 동네로 여행하도록 이끌어가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다가 딤나로 왔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다말에게로 찾아가신다.
시아버지 유다가 친정 동네로 왔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다말은 ‘이대로 맥 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면서 새롭게 뭔가를 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다말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도록 감동을 주신다.
다말은 과부가 입어야 하는 옷을 벗고 아주 어여쁜 여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시아버지 유다가 지나갈 에나임 길목에서 마치 하룻밤을 팔 남자를 기다리는 창녀처럼 앉아 있다.
유다는 길목에 앉아 있는 여인이 며느리일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창녀처럼 생각한다.
창녀로 생각한 유다는 하룻밤을 같이 지낼 수 있겠느냐고 제안한다.
다말은 유다에게 ‘하룻밤을 지내는 대가로 무엇을 주겠습니까?’라고 제안한다.
다말은 성매매하는 품삯을 요구하는 것이다.
창녀는 적당한 거래로 몸을 파는 여인이기 때문에 시아버지에게 품삯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유다는 염소 새끼를 성매매하는 대가로 주겠노라고 제안한다.
다말은 지금 당장 염소 새끼를 줄 수 없으니 반드시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하는 약속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 달라고 하면서 유다가 갖고 있던 도장과 허리끈과 지팡이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다말과 유다는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유다가 가진 도장은 상거래할 때 결재하는 도장이다.
이 도장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줄 수 없고, 더더욱 빌려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도장은 지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용카드나 공인인증서와 같은 것이다.
신용카드나 공인인증서는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빌려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다는 이처럼 중요한 것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다말에게 맡기면서 아내 싫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다말과 뜨겁게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구원의 세계를 펼쳐가기 위하여 다말에게는 창녀처럼 꾸며서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도록 감동을 주시고, 유다에게는 절대로 빌려주어도 안 되는 신용카드와 공인인증서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맡기면서 하룻밤을 지내도록 감동을 주시고 역사해 가시는 것이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다말에게 곧바로 임신할 수 있도록 태를 활짝 열어주신다.
다말이 엘과 혼인하여 얼마동안 같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같이 살았을 것이고, 부부관계도 많이 맺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다말의 태를 열어주지 않고 닫아 버리셨다.
하지만 유다와의 관계에서는 단 한 번의 일로 곧 바로 임신할 수 있도록, 그것도 쌍둥이를 임신할 수 있도록 다말의 태를 열어주시는 것이다.
시아버지와 하룻밤을 지낸 다말은 친정으로 돌아가서 다시 과부들이 입는 의복으로 갈아입어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유다는 히라 친구에게 염소 새끼를 주면서 창녀를 찾아가서 약조물을 찾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창녀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대가족공동체 삶을 살아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동네에 창녀가 있을 수 없다.
창녀가 있을 수 없는 시대였는데도 다말은 창녀로 변신하고, 유다는 며느리를 창녀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다는 창녀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창녀가 며느리 다말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까?
다말이 유다의 며느리가 되어서 한동안 함께 살았기 때문에 목소리만 들어도 며느리일 것이라고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전혀 유다는 창녀가 며느리일 것이라고 눈치채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의 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도록 역사하시고 일을 추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약 3개월이 지난 후에 이상한 소문이 퍼져나게 된다.
며느리 다말이 다른 남정네와 염분이 생겨서 간음하였고, 임신까지 해서 배가 불러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유다는 끝까지 수절을 지키지 못한 며느리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고 분노하면서 불살라 죽이라고 한다.
다말은 끌려가면서 유다가 자신에게 준 약조물을 보여주면서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라고 한다.
다말이 건네준 물건을 받아본 유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유다는 너무나 놀랍고 두렵고 무서움에 온몸을 벌벌 떨어야 하는 상황까지 된다.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삶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서 임신하게 된 다말은 쌍둥이를 낳게 된다.
쌍둥이 중에서 하나님은 둘째인 베레스를 통해서 유다의 가계도를 이어가도록 하면서 구원의 길을 열어가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유다의 가계도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시려는 계획을 세워두셨다.
하나님은 다말이 낳은 쌍둥이 중에서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서 다윗 왕국이 건국 되어지고,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의 메시야를 보내시려고 추진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셋째 아들 셀라를 형사취수제에 의해서 다말에게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셋째마저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다말에게 주지 않도록 유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다말의 마음을 움직여서 시아버지인 유다에게서 아기씨를 받아서 아들을 출산하도록 하여 베레스의 후손으로 다윗 왕국을 세우고, 다윗 왕의 후손으로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려는 계획을 추진해 나가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엘과 오난의 생명도 거두어 가시고, 수아의 딸의 생명도 거두어 가시고,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도록 감동을 주시고, 다말에게 시아버지에게서 아기씨를 직접 받도록 감동을 주시면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세계를 펼쳐가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끌어가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추진해 나가시는 방법은 인간의 의지나 생각이나 마음에는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추진하는 방법과 마음과 주권에 의해서만 추진해 나가신다.
③ 비로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유다는 두 아들을 잃었을 때에도, 아내를 잃었을 때에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삶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며느리 다말이 자신을 통해서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잘못된 삶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은 이처럼 어떤 사건 하나 때문에 크게 깨닫고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
유다는 요셉 동생을 은 20에 팔아넘긴 자책감으로 더이상 아버지 집에서 살아갈 면목이 없다는 마음으로 아버지 집을 떠나서 홀로 방랑하면서 살다가 다말이 자신을 통해서 쌍둥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방랑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다가 방랑하며 살다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때가 공교롭게도 애굽을 비롯한 중동지역에 7년 대풍년이 들었다가 7년 대흉년이 들어서 애굽을 비롯하여 중동지역에 큰 곤경에 처해 있을 때이다.
야곱이 애굽에 곡식들이 많아서 곡식을 팔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가서 곡식을 구매해 오라고 부탁할 때,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셀라, 베레스, 세라를 거느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셉이 17살에 애굽으로 팔려나가서 30살에 총리가 되고, 7년 대풍년을 지나고 7년 대흉년이 들면서 2년차 되었을 때, 비로소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구매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적어도 22년이라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다는 적어도 20여 년 동안 아버지 집을 떠나서 홀로 방랑하면서 살다가 비로소 자신의 삶이 잘못된 삶인 것을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때, 첫 번째로 주어진 미션이 바로 애굽으로 가서 곡식을 구매해 오라는 미션을 받게 된다.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갔을 때, 자신이 팔아버린 요셉 동생을 만나게 된다.
물론 첫 번째 곡식을 사러 갔을 때는 자신들을 맞아주는 애굽의 총리가 동생 요셉인지를 모른다.
두 번째 곡식을 사러 갔을 때, 비로소 자신이 팔아버린 동생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팔아버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유다는 얼마나 놀랐을까?
꿈에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너무나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말문이 딱 막혀서 아무런 말도 못했을 것이다.
L4 & B4.
현재 우리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죄악된 세상인가? 아니면 의인의 세상일까?
유다가 아버지 집을 떠나서 홀로 방황하면서 살았던 세상은 죄악된 세상이다.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사람들과 어울려서 혼인하고 세 아들을 낳고, 며느리를 맞아들이고, 두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도 잃어버리고, 며느리를 통해서 두 아들을 낳았던 세상은 죄악된 세상이다.
유다가 죄악된 세상에서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본래의 꿈과 비전을 포기하셨는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본래의 꿈과 비전을 실현해 나가신다.
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유다를 묵묵히 지켜보시면서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거룩한 뜻과 의지와 주권을 따라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섭리하시면서 인도해 가신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통해서 이루어 가고 싶어 하시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유다를 깨닫도록 영안을 활짝 열어주시면서 다시 아버지 집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역사해 주시면서 이끌어가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실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고 싶어 하시는 분명한 의지와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고 싶어 하시는 구원의 계획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을 통해서 이루고 싶어하시는 구원의 계획은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고 싶어하신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큰 교회가 되느냐? 작은 교회가 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구원의 계획이 있는 것이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구원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은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사용하시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사용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언제 어디서나 거룩한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시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한 사람, 하나님의 심정에 통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나가시려고 하신다.
그 일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을 사용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는 통로로 야곱의 12아들을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을 떠났던 사람, 아버지 집을 떠나서 세상에서 방황하면서 살아가는 한 사람, 유다 한 사람을 사용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나가시려고 유다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시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고 스스로 깨달아서 하나님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의 후손 중에서도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에서 떠나서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신랑과 두 아들을 잃고 쫄딱 망하게 하신다.
겨우 이방 여인 룻을 데리고 유다 지파 땅으로 돌아와서 보아스에게 감동을 주시면서 룻을 통해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게 하시고, 오벳을 통해서 아버지 이새가 태어나고, 이새를 통해서 다윗 왕이 태어나게 하면서 거룩한 구원의 뜻과 의지를 실현해 나가고 계신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합당하게 살아간다면 더할나이없이 기쁘고 좋은 일이겠지만, 설령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심정에 큰 고통을 드리는 삶을 산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의 삶이 잘못된 삶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된다.
이제부터라도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을 통하여 이루어가고 싶어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우리들을 사용해 나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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