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세 가지 (살전5:16-18)
본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세 가지/ 데살로니가전서 5:16-18
김동길교수님의 누나인 고 김활란 박사님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에 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는데 신앙으로 잘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서양의 문물을 깨우쳐 자신이 익힌 것들을 한국의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쏟아주었습니다. 그녀는 63세에 이화여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강원도, 충청도 등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바쳤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울지마. 나는 내 인생을 값있게 살았어. 나는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이제는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하나님 아버지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러니 내가 죽거들랑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헨델의 메시야 할렐루야를 힘차고 멋있게 불러줘.” 그리고 평안히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묘비에는 돌로 만든 작은 성경 한 권이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화려한 경력 대신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설교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본문은 특별한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용이 분명합니다. 분문은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 세 가지가 나옵니다.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확실합니다. 오늘 설교는 분문을 가지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세 가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항상 기뻐하라
시편 90:10을 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 말씀은 인생에 대하여 몇 가지 지식을 제공합니다. ➀인생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생의 연수가 70이고 강건하면 80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살기는 했으나 120세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➁인생은 수고와 슬픔이 가득합니다.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욥기에서는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다고 말했습니다. ➂인생은 신속히 지나갑니다. 100년이 긴 것 같지만 쏜살 같이 지나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시간이 잘 안 가는 것 같았는데 나이를 좀 더 먹으니 왜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시편 90:10에서 가르쳐주는 인생에 관한 지식 두 번째는 인생은 수고와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이죠. 우리가 기뻐할 일보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이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일수록 더 실감하실 것입니다.
인생은 수고와 슬픔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보고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이사야 35:10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고난 중에 구원을 얻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며, 우리의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영영한 희락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슬픔과 탄식이 사라집니다. 구원의 감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주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속량을 위한 죽으심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속량 곧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은혜는 이 세상의 어떤 슬픔과 탄식도 압도할 만큼 큰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왕자였을 때 그의 가정교사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에게 질문했습니다. “왕자께서는 왕이 되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이곳 희랍을 통일하겠습니다.”, “그 후에는요?”, “그 다음엔 소아시아를 정복하겠습니다.”, “그 뒤에는요?”,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점령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요?”,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손에 넣겠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때쯤 되면 저도 죽겠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 알렉산더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멀리 가서 돌아다니다가 죽으나, 지금 죽으나 별로 큰 차이가 없겠습니다.” 그 말 맞았습니다. 알렉산더는 21살에 왕위에 오른 뒤 12년 8개월 동안 어릴 때 꿈꾸었던 소아시아부터 인도까지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더 정복할 땅이 없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왕에게도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알렉산더는 모기에게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천하를 지배하던 왕도 모기에 의해서 죽다니 인생이 그렇게 허무한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관의 양 옆으로 구멍을 내서 나의 빈손을 밖으로 드러내도록 하라.” 그는 자신이 천하를 통일하고 호령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죽고 말았다는 것을 표현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없으면 허무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도 지옥에 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김양인목사님께서 요양원 심방을 가서 고령의 노인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번은 어르신들에게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전했더니 할머니 권사님께서 “목사님, 나는 기뻐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김목사님은 권사님에게 “권사님, 말씀이 맞아요. 그러나 우리는 주 안에 구원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또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답니다”라고 말해 주었더니, 할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아요”라고 하시더랍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
로마서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모든 문제와 슬픔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상인들에게 팔렸습니다. 요셉은 상인들에게 끌려서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것에서 종살이를 했고 종살이 중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도 했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역사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근동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떨어진 요셉의 가족들은 요셉 덕분에 양식이 풍족한 애굽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들은 요셉 덕분에 고센 땅에서 풍성하게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었습니다.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저질렀던 소행을 생각하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찾아가서 요셉에게 아버지가 죽기 전에 자신들에게 요셉에게 이르라고 했다면서 아버지의 유언을 전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형들이 살기 위하여 만들어낸 궁여지책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아버지의 말이라고 하면서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세기 50:20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형들은 자신을 종으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형들이 준 상처를 상처로 여기지 않고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약 20년 전에 10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8일간은 교회에서 금식하고 나머지 이틀은 기도원에서 했습니다. 그때 기도원에서 어떤 목사님과 만나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을 통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부터 간질을 했습니다. 그분이 대학생 때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 시작한지 이틀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머리를 크게 다쳐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고 빠른 회복을 보였는데 감사하게도 그때 간질병이 치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 중에 있다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최악의 상황이 아닌 것으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팔을 하나 잃었습니다. 그는 낙심이 컸고 늘 마음이 슬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팔을 잃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벽에 서서 온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한 팔을 잃은 사람은 두 팔이 다 없는데 춤을 추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두 팔이 없는데도 뭐가 저렇게 행복할까’라고 생각하고는 그에게 다가가서 “여보시오. 나는 한 팔을 잃고 아직 한 팔이 남았는데도 낙심하고 마음이 너무 슬픈데 당신은 두 팔을 잃고도 뭐가 그리 즐거워서 그렇게 춤까지 춥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두 팔 없는 사람이 “너도 똥구멍 가려워 봐라.”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한 팔 없는 사람은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두 팔이 없는 사람을 보면서 감사했다고 합니다.
한 유대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가난해서 아홉 식구가 작은 방 하나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괴로워서 랍비에게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집을 안주시려면 식구라도 적게 주셔야지 아이들을 일곱이나 주셔서 아홉 식구가 좁은 방에서 살기가 너무 괴롭습니다”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오늘부터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방에서 키우세요. 잠도 같이 자보세요”, “아니, 그 좁은 방에서 아홉 명이 살기도 힘든데 염소까지 방에서 키우라고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 염소하고 일주일만 살고 다시 내게로 오세요” 이 사람이 랍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일주일만에 랍비에게 왔는데 얼굴이 죽을상이었습니다. 그가 랍비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에서 아홉 사람이 사는데 염소가 와서 똥오줌을 싸니 우리 사는 게 생지옥입니다. 랍비님 왜 염소를 방에서 데리고 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랍비가 웃으면서 “오늘은 가서 염소를 염소 우리로 돌려보내세요. 그리고 아홉 식구만 그 방에서 지내시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이 일주일 후에 랍비를 찾아왔는데 얼굴이 환해져서 온 것입니다. 랍비가 “어떻게 얼굴이 그렇게 환하시나요?”라고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염소를 우리로 돌려보내고 나니까 이제 살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들만 오순도순 모여서 사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염소랑 일주일을 살면서 최악을 경험하고 나니 작은 방에서 아홉 식구가 사는 것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문제를 만나면 지난 날 어려웠을 때를 생각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 말로 용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최악의 상황이 아닌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2009년 3월 12일자 국민일보에 난 기사인데요. 우리나라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나 설문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설문에 응답한 목사님들 중에 75%가 하루에 한 시간도 기도를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목사님 네 명 중에 한 명만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나머지 세 명은 하루에 한 시간도 기도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그 정도이니 일반 성도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까요?
1) 영적 생존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부터 10분간 숨을 쉬지 않는 분이 있다면 제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도전할 사람 있나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따라주지 못해서 못합니다. 하면 안 됩니다. 10분간 숨을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영적 생존이 달린 문제입니다.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하는 이유는 성도들이 기도를 통해서 영적 생명력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1분에 15~18회의 호흡을 합니다. 호흡이 원활하지 못하면 건강상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기도는 영적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내와 거의 같이 있습니다. 저는 낮에 주로 목양실 안에 있고, 아내는 목양실 밖에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있는데 서로 말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우리 부부는 심각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대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영의 아버지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필요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성도들 간에도 친밀한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기도는 하나님께 응답 받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29:11-13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 말씀에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입니다. 재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재앙이 아닌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장래에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W. B. 프리맨이 쓴 「기도」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심장학자인 랜돌프 버드는 기도가 병의 치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먼저 393명의 심장병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모아 첫 번째 그룹 환자들의 명단을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환자의 이름과 간단한 증세와 현재의 상태에 대해 기록하고 이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룹을 위해서는 그 어떤 기도도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약 10개월이 지난 후 두 그룹은 큰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중보기도를 받은 첫 번째 그룹은 두 번째 그룹에 비해 병의 진척이 매우 느렸고 사망자 수도 두 번째 그룹에 비해 월등히 적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 평소 믿음과 기도로 병이 치료된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던 윌리엄 놀란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연구는 충분히 검증 받은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우리 의사들은 처방 지시에 ‘하루 세 번 기도하시오’라고 적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아 듣나요? 저는 알아 듣습니다. 제가 기도를 마치고 목양실로 올라가거나 외출을 하고 교회로 돌아오면 고양이들이 저를 맞이하면서 야웅 야웅합니다. 그러면 제가 통역을 해서 알아듣습니다. “배고파요. 밥주세요” 제가 신기하게도 고양이들의 말을 알아듣고 사료통에서 사료를 퍼줍니다. 식당 뒤에 가면 파란 큰 통이 있는데요. 그게 개와 고양이 밥통입니다. 그거 뚜껑만 열면 자기들 밥이 가득한데 그걸 못합니다. 그래서 저보고 야웅 야웅으로 “배고파요. 밥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걔들을 보면서 인간의 약함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밥통의 뚜껑도 못 여는 개와 고양이 같이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고양이들이 야웅 야웅으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제가 도와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교회에 있는 야웅이가 드디어 8마리가 됐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큰 일입니다. 그 중에 길양이 한 마리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길양이는 우리가 키우는 야웅이들하고는 다릅니다. 제가 나타나면 우리 고양이들은 반갑다고 맞이하는데 길양이는 도망갑니다. 요즘 제 아내가 고양이들이 먹는 캔을 박스로 사놓고 먹입니다. 그런데 그놈은 길양이 주제에 캔을 먹고 싶다고 얼마나 보채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나타나면 잽싸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목양실 앞쪽 지붕에서 먹을 준비를 하고는 야웅 야웅합니다. “밥 주세요. 빨리 밥 주세요” 다른 아이들은 제 아내가 캔을 따서 주기를 기다리는데 그놈이 제 아내가 캔을 따고 있으면 빨리 달라고 손을 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제 아내 손에 작은 상처가 났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화가 났습니다. 저 놈은 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왜 그놈에게는 캔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길양이 주제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스펄젼목사님은 “하나님은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이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영국의 BBC뉴스는 정기적으로 종교생활을 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수명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규칙적으로 교회행사에 참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혈압이 낮았으며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적었고 면역력이 강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감사’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감사의 능력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감사에 관한 부분은 시편 50:23을 가지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1) 감사가 제물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짐승을 가져와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짐승을 가져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물을 기뻐하십니다.
2)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영화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며 영원한 영광 속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구원으로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3)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흠이 없는 사람을 말하라면 저는 다니엘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도 그랬습니다. 다리오왕이 나라에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습니다. 다니엘은 세 명의 총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왕이 다니엘을 총리들 위에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시기한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했지만 다니엘이 너무나 충성 되어 다니엘을 고발할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악한 꾀를 지어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그의 신앙적인 면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법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법안이지만 다리오왕은 왕의 권위를 위하여 허락한 것 같습니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왕에게 고했습니다. 그리고는 왕이 도장을 찍었으니 변개할 수 없다고 왕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고 돌을 굴려다가 사자굴 입구를 막고 왕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습니다. 이튿날, 왕이 새벽에 일어나 사자 굴로 가서 보니 다니엘은 살아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기 때문에 사자들이 다니엘을 상하게 못했던 것입니다. 왕이 다니엘의 생존을 알고는 다니엘을 굴에서 올려서 보니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꾀한 일인 것을 알고 다니엘의 대적들과 그들의 처자까지 사자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움켜서 그들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다니엘이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보였던 반응이 다니엘 6:10에 나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갑니다. 죽습니다. 그런데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은 시편 50:23의 약속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나눴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나는 항상 기뻐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나는 범사에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듯을 이루겠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주여! 제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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