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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영을 받게 하옵소서 (민11: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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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영을 받게 하옵소서(민11:24-30)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씩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아빠, 고기 먹고 싶어. 고기 사줘’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한 저의 느낌은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니?’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특별히 고기가 먹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고기 먹고 싶다는 말이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되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식성이 엄마를 닮아서 고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까 많이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살림하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넉넉하지 않으니까 고기를 많이 사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를 향하여 ‘모세, 고기가 먹고 싶어요. 고기를 주세요.’ 외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상추에 고기를 싸서 마늘과 파와 부추를 넣어서 먹고 싶다는 백성들을 볼 수 있는데요,


출 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만나였습니다.


만나에 대한 설명이 7절 이하에 나오는데,


먼저,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습니다.


둘째, 만나는 매일같이 밤에 이슬이 내릴 때에 함께 내렸습니다.


셋째, 만나는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찢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그 맛은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습니다.


이런 설명으로 볼 때 만나는 다양한 요리의 재료가 되었고 참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영양도 풍부한 식품이 아니었는가? 생각되어집니다.


광야에서 이 정도의 음식을 먹으면 크게 만족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백성들은 이 음식으로 만족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고기가 생각난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만나를 주신 축복을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백성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만나뿐만 아니라 어떤 음식이든지 오래 동안 그것만 먹으면 다른 음식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얼마든지 이해하시고 다른 음식을 주시고 고기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화를 내신 것은 그들의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백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울었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울었다'란 말은 '통곡하다'는 뜻 외에 '애통하다', '몹시 한탄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과거에 즐겼던 음식들을 못내 아쉬워하며 현 생활을 비관하고 낙담하면서 후회와 불만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는 말입니다.


출애굽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웠습니까?


광야에서는 조상들이 먹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만나를 매일같이 공급받아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이러한 출애굽의 은혜를 음식 때문에 다 잊어버리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이 백성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갖고 있는 짐승을 잡아야하는데 그것은 다른 용도도 있기에 함부로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광야에 사람들이 잡아서 먹을 만한 다른 짐승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 지도자의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세는 결국 죽음의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간구하게 됩니다.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15절)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너를 도울 70명의 장로들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 장로들에게 네게 임한 영을 주어 너와 함께 그 짐을 담당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택해진 70명의 장로들이 장막에 둘러 서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들이 예언을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70명에 뽑힌 엘닷과 메닷이라는 자가 장막에 나아오지 않았음에도 자기 진영에서 예언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보통 형제들로 보는데 이들이 왜 장막에 오지 않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모세에 대하여 반대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모세를 반대하여 장막에 오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을 하니까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가 그들을 금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 모세는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세의 넓은 마음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에게 그의 영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모세의 말일 뿐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일찍이 요엘 선지자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2:28절)


하나님은 만민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 늙은이, 젊은이, 누구를 가리지 않고 내 영을 부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다 임하셨습니다.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강림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뜻은 누구나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성령님을 힘입어 살아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들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1. 이러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은 정말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좋고 놀라운 축복이겠습니까?


 


먼저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영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크게 두각 되는 것이 먹는 문제입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애굽에서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 과장된 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노예생활을 하는 자들이 어떻게 값없이 이런 것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째든 애굽에 있을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만나밖에 없으니 고기도 주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음식을 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는 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육체의 건강도 결정되기 때문에 먹는 문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입니다.


먹는 문제에만 집중하여 살아가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먹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영적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인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70명의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시고 그들이 예언을 하게 하신 것은 먹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문제가 있고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언을 하면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음을 다시 알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땅을 주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물질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할 영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육체로 살다가 육체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영적으로 살다가 영적인 축복 속에 들어가는 존재인 줄 믿습니다.


그것을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시시각각 깨닫게 하시기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령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왜 중요하냐하면,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스럽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70명의 장로들이 택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예언을 하게 된 것은 모세를 돕고 백성들을 광야에서 잘 인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맡겨준 사명을 감당할 수 없고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었을 때 그는 암몬자손들을 전멸시키고 나라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삼상11:6이하)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그를 떠났을 때 군인들이 그를 떠났고 사울과 그의 군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을 하나님의 말씀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힘과 능력은 오직 성령 하나님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힘입었을 때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여 잘했다 칭찬받는 종들이 되기 위하여 우리에게도 능력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셋째는, 보혜사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와 도우심을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십니다.(요14:16절)


보혜사는 돕는 자, 상담자, 위로자 와 같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보혜사가 되셨고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처럼 제자들을 돌보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보혜사십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 또 다른 보혜사가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고아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고아가 아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보호를 받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 줄 믿습니다.


 


2. 그런 성령님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는 70명의 장로들을 택하였습니다.


택함을 받은 조건이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모세의 택함을 받았기에 그들이 성령을 받고 예언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고 주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여야 합니다.


모세는 택함을 받은 70명의 장로들을 장막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 장막은 하나님을 모시는 곳을 말하는데 장막에 모였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고 예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두 명의 사람들은 장막에 오지 않았지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모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관적인 특별한 역사이지 결코 올바른 모습은 아닙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모여야 한다, 모여서 예배하고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예배 회복주일입니다만 여러분,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의 모임이, 예배가 매우 약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이는 일을 등한히 하고 코로나를 핑계로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신앙을 떠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일은 예배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바라기는 성령강림주일을 기점으로 다시금 예배가 회복되고 모이기를 힘쓰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일 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를 반대하고 대적했던 두 명의 장로들이 장막에 모이지 않고 자기 진영에 있을 때에 성령이 임하고 예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호수아가 ‘그들을 말리소서.’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수종들던 신실한 종의 입장에서 모세의 명예를 위하여 엘닷과 메닷이 모세의 지도나 중재도 없이 개인 거처에서 예언한 것을 놓고 시기하였습니다.


모세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그들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도 역사하시고 저렇게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님의 역사 혹은 은사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오해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생각으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방언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자기의 뜻대로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내 것이 최고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것이 더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시기할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고 내 것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능력으로 주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저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으로 새로운 영적 삶을 살게 하시고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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