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하는 이유 (약1:1-12)
본문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하는 이유 / 약1:1~12
1.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라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분, 시험이 여러 방면에서 내게 닥쳤을 때, 어떻게 기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짜증, 불평, 원망이 나오기 쉽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주로 <환경의 시험/어려움>이다.
그래서 그 환경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애쓴다.
그런데 주님이 그런 <환경의 시험>을 내게 주시는 이유는
사실은 내게 <믿음의 시험>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을 기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환경의 시험’ 속에서.. 도리어 자기가 <하나님을 시험>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원망, 불평 속에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처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신실하심/은혜로우심’을 시험/의심한다.
그렇게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시험>에서 낙방하고 만다.
그러나 <환경의 시험>이 닥칠 때, 온전히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면서.. 자기 믿음의 성숙으로 간다.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이유는, 약1:2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함을 통해서 (시험이 없을 때는 이게 잘 안 된다)
자기 믿음의 성숙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시험을 통한 온전한 믿음의 성숙>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3~4
▲다윗의 시편
다윗은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겪었지만,
그것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며, 자기 믿음이 온전해지는 계기로 삼았다.
그래서 시편을 읽어보면, 그런 다윗의 신앙적/영적 성숙이 고스란히 잘 스며있다.
다윗이 이런 시편을 남긴 것은, 좋은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상상도 못하는 나쁜 환경/시련/시험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시험의 환경 속에서 승리할 때,
그것은 많은 다른 시험에 빠진 성도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시험을 당할 때,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다윗처럼 시편을 남긴 것인가?
아니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원망/한숨을 남길 것인가?
▲시험이 나를 온전하게 만든다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4
시험이 없으면.. 자신의 감추어진 죄를 .. 우리는 잘 보지 못한다.
그러나 시험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신의 실상을 똑똑히 보게 된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물수건을 짜면.. 물이 안 나오지만,
엄마가 그 물수건을 받아서 비틀어 짜면.. 물이 수북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내게 회개가 잘 안 나오는데,
주님이 시험을 통해 나를, 물수건 짜듯 강하게 짜실/비트실 때가 있다.
그러면 더 이상 안 나올 것 같던 회개가 우루루 쏟아진다. 마치 물수건처럼..
그래서 나는 믿음이 온전해지고.., 그래서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약1:2~4
▲2. 시험을 당하면.. 지혜를 구하라
시험이 올 때, 많은 사람은 <능력>부터 구한다.
능력이 부족해서, 시험을 못 이기는 줄 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지혜>를 구하라고 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수록.. <성경>을 펴야 한다.
그래서 <지혜>를 얻을 때..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 때,
‘말씀의 인도함’을 받을 때... 비로소 내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라고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게 되시기 바란다.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믿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지혜/말씀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을 받으면, 내가 살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살린다.
내가 이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내 영과 / 너희 입에 두는 내 말이
너희와 너희 자손의 입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리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사59:21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임하면.. 그 공동체는 반드시 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도 임하지 않고/ 말씀도 임하지 않으니까... 공동체가 시드는 것이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전할 때에는, 반드시 성령도 함께 공급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 한 사람이, ‘지혜’(말씀)를 구해서 .. 받으면 약1:5
거기에 성령이 임하게 되고,
그것은 내 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를 살린다는 것이다.
시들고 지친 영혼들에게,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말씀을 위로부터 받는 그 기간period 동안에는
(영적 컨디션이 반년~10년 지속된다. 고수일수록 오래 지속된다. 계속해서 말씀을 위로부터 받는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그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함께 임하실 것이고
그러는 동안에는, 그 공동체는 결코 시들지 않는다.
반대로, 위로부터 임하는 지혜/말씀를, 구하지 않거나/받지 못하면..
나도 시들뿐만 아니라, 가정/교회 공동체도 시름시름 시든다.
▲시험이 오면, 지혜(말씀) 대신에, 세상 방식을 동원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말씀의 방식>이 뭔지 알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위험에 빠질 것 같다.
그래서 말씀을 버리고, <세상 방식>을 동원한다.
그 결과, 될 것 같은데... 결국은 더 큰 시험으로 빠져 버린다. 마귀에게 놀아난다.
시험/시련이 올 때,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그 시험을 처리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는지..
처절한 인생의 절망이 왔을 때
‘말씀/지혜’는 미련해 보인다. 그대로 했다가는 마치 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분, 성경은 종종 우리에게 역설의 진리를 가르친다.
죽고자 하면 산다는 것이다.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말씀의 방식>은 죽는 길을 택하라고 가르치고,
<세상 방식>은 사는 길을 택하라고 가르친다. 권력/사람/빽을 의지하라고 유혹한다.
그런데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지혜를 구할 때
‘미련하게 보이는 그 길’로 가면, 해결될 것 같은 믿음이 (신기하게) 생긴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고, 내 머리/내 지혜/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상 방식/사는 길>을 택하게 되고,
임시변통을 잠시 하고, 급한 불은 잠시 껐지만..
결국은 망하게 된다. 더 큰 시혐의 파도가 몰아닥치게 될 때.. 침몰하고 만다.
위로부터 임하는 말씀을 받아야, 믿음이 생기면서
시험을 이기는 방식을, 말씀대로 채택하지... 아니면 십중팔구 세상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러면 '믿음의 성숙'이 일어나지 않고, '믿음의 시험'에서 낙방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는 식이 된다.
▲3. 시험이 올 때, 인생의 허무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약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자기 힘으로 애쓰고 발버둥치던 사람이,
그래서 자기 주변인들/가족들이 무사안일하게 산다고.. 질타하고 괴롭히던 사람이
시험을 당할 때,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자기 스스로 지쳐서 주저앉게 된다.
▲4.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시험이 그친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2절에 등장한 '시험'이 :12절에 다시 등장한다.
그러니까 1:3~11절 내용도 '시험'에 연관되는 말씀으로 푸는 것이 옳다. 이 설교가 그렇게 풀고 있음)
TV에 보면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나온다.
역경을 당했을 때, 자기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은,
내 스스로, 내 힘으로 해결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대장장이가 풀무불속에 쇠를 집어넣을 때, 쇠가 스스로 나오도록 기다리지 않는다.
반드시 대장장이가 쇠를 다시 꺼내준다.
단, 쇠가 다 달았다고 생각할 즈음에 그 쇠를 풀무불속에서 꺼낸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시험의 풀무불속에서 언제 꺼내시는가?
이것(시험)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다.
쉽게 말해서, 시험에 통과한 후에다.
시험을 받기 전에는, 내가 당연히 잘 하는 줄 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하면서, 내 약점을 알게 된다.
운동선수들도, 그 시합을 하기 전에는, 자기가 다 이길 줄로 예상한다.
그러나 시합을 해 보면, 자기가 어느 부분에 약한지.. 드러나게 된다.
자기가 고쳐야 될 부분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시합과 시합을 거치면서, 더욱 성숙한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시험을 통해서, 내 부족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것을 회개하고 고치면서... 결국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게 되고,
그 때 시험이 그치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쇠를 비로소 꺼내주시는 것이다. 불순물이 다 빠졌으니까!
▲5.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2
시험 속에는 반드시 승리/축복이 감추어져 있다.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한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시험을 겪기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 와 있게 된다.
그냥 원상복귀/제자리 걸음이 결코 아니다.
괜히 우리를 고생시키시는 주님이 아니시다.
풍랑은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소원의 항구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더 빨리!
반드시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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