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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사망을 이기는 법 (히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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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사망을 이기는 법(히 2:14-18)




오늘은 세계에 있는 기독교에서 “부활절이라” 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를 합니다. “부활이라” 고하는말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것을 말하는데, 이부활은 죽은자에게 있고, 죽지아니한 자에게는 없스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 죽은자들에게만 해당된 말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우에서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기때문에, “부활하셨다” 고말합니다. 그러니까 부활하기전에 먼저 죽어야합니다.




그런데, 죽음에는 몇가지종류가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죽음인데, “일반적인 죽음이라” 고하는것은, 인간으로서는 죽지아니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이 죽음을 “일반적인 죽음이라” 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1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요, 사람들이 제1좋아하고 소원하는것이생명인데, 사람들이 제1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이 사람들에게 오게된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죗값으로 오게된것입니다. 죽음이 오게된 그 원인은 죄값인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있는데, 영은 단일체이기때문에, 단번에 죽었고,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는 육은 종합체이기 때문에 서서히 죽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완전히 죽게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영의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고, 다만 두려워하는 것은 육의 죽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의 죽음에 있어서도 마음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몸의 죽음에만 관심을 가지고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타락하여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제1두려워하고 싫어하고 원치아니하는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으로서 그 원인은 죄값인것입니다. 죄는 어떤 것인 고하니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것인데,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죽음이 온 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죗값으로 온 것입니다.




(2), 특수적인 죽음인데, 이 특수적인 죽음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죽음으로서, 이 특수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범죄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도에게 진리에게 순종하는 의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을 가리켜서 “특수적인 죽음이라” 고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에 예수님의 모든 것이 쓰여져서 없어진 죽음인데, 몇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네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택하신 자들의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하여 받으심으로 죽으신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뜻에 맞추어서 복종으로 죽으셨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한 죽음은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또하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택하신 자들의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을 대신하여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에게 순종치못하고 불순종한 것을 대신해서 순종하신 그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또하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것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므로 다시 결합시키는 이 결합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것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결합하는 이 결합으로 죽으신 죽음입니다.




․또하나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 털끝만큼이라도 거역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이 완전히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순종의 죽음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시고 “택하신 자들의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하여 받음으로 죽으라, 또 택하신 자들의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것을 대신하여 결합하는 이 결합으로 죽으라, 그리하여 네 전부를 내게 순종하는데 에 다 사용하라” 고 명령하실 때에 그 명령에 순종하여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세 가지 요구에 응하여 순종으로 완전히 끝난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요구에 응하여 순종하시되, 그 이상 순종할래야 더 순종할 수 잇는 힘도 없고 몸도 없고, 생명도 없고, 영육의 전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영육으로 완전히 끝나신 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의에 죽음이라, 순종의 죽음이라, 특수죽음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런 죽음인 것입니다.




(3), 둘째사망이라고하는 죽음인데, 이 둘재사망은 일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한해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서 일반적인 죽음으로 죽어있는자들의 받을 죗값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사망에서 해방되었고,




또 예수님께서 의가 없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사망에서 해방되었고,




또 예수님께서 의가 없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의를 가진 의인이 되었고,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서 끊어져있는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결합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결합의 새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죽어 있고, 실질적으로도 죽어 있고, 다시 사는 깃이 없기 때문에 사망에서 사망으로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법적으로 영육이 살았고, 도 영은 죽음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진리와 성령의 역사로 단번에 살아났고 단번에 중생 되었고, 심신으로 되어있는 육은 실질적으로는 죽어있으나 법적으로는 생명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주체인 영은 살아있고 육은 법적으로는 살아있지마는, 그 자체는 아직까지 완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에는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일반인은 생명이 사망으로 기울어져서 생명이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 우리기 독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더 사망과 생명의 갈림길을 2차적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기 독자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받은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 우리기 독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1차사망을 벗어나서 2차적으로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이 순서를 특별히 받았는데, 이것이 우리기 독자들이 예수님의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받은 특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 우리기 독자에게는 둘재사망이 있습니다. 일반인은 첫째사망에서 영원히 사망이 되었고, 우리 기독 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또 주격 적으로 살아 생명에 속하였지만, 심신으로 되어있는 육은 자체가 생명으로 살아난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사느냐 죽느냐” 고 하는 이것이 남아있습니다. 다시말 하면 심신으로 되어있는 이 육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냐, 받지아니하느냐” 고 하는 이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0-11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아니하리라” 고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사망의 해는 기독자의 심신의 기능사망을 말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의 영은 주격으로서 살았고, 소유격인 육이 “사느냐 죽느냐” 고 하는 이것이 미결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사느냐 죽느냐” 고하는 이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가 있도록 되어있는것이 우리믿는사람의 육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사람은 죄의 사망으로 완전히 죽었고, 우리믿는사람들도 죄의 사망으로 죽은 자였는데, 예수님의 의에 사망으로 설전하신 그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다시 사망과 생명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갈림길이 왔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 특혜요,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우리믿는사람은 죽었던 것이 예수님의 대속공로로 다시 살아났는데, “살아난 이것이 다시 죽느냐, 다시 죽지 아니할 것으로 영생하게 되느냐” 고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 앞에 남아있는 걸음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앞에 남아있는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사람의 죽음이 있고 또 예수님의 특수죽음이 있습니다. 일반 사람의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서 죽은 죽음이요, 예수님의 죽음은 의에 죽음이니, 순종으로 끝난 죽음입니다. 또하나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둘째 죽음인데, 우리믿는사람은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사망을 받은 사람이요, 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에 죽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믿는사람은 이 두 가지 죽음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택하심을 입지 못한 사람은 일반적인 죽음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은 첫 아담의 죽음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죽음에 관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단계에 있는가? “네가 첫 아담에게 소속해서 첫 아담처럼 죄의 죽음, 불순종의 죽음으로 영원히 죽느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소속해서 예수님처럼 의에 죽음 순종의 죽음으로 영생하느냐” 고하는 이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죽음과 둘째 죽음에 관련된,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자손이된자로서 우리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당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죽음 곧 되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 또 둘 때 아담이신 예수님의 특수적인 죽음 곧 순종으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 의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 이 두 가지 죽음에게 관련되어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예수님의 자손된 우리들이 “오늘에 어떤 죽음을 취할 것인지” 이것으로서 첫 아담에게 소속한 것과 둘째 아담에게 소속한 것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첫 아담에게 소속해서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이 죄로 말미암아 죽으면, 이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것이요, 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소속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의로 말미암아 죽으면, 다시 말하면 심신의 기능이 순종으로 끝이 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아니하고 영생하는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는 부활에 대하여 간단하게 증거 하겠습니다. 부활은 순위 적으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제1먼저 부활하셨고, 이제 남은 것은 택자들의 부활과 불택자들의 부활인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일반적인 부활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로 말미암아 죽으신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단신자체와 택하신 자들의 의에 문제 생명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말로 하면 당신자신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결합으로 다시는 거역이 없고 죄가 영원히 있을수가없고, 하나님과 끊어짐이 없는, 완전순종 완전결합으로 죽으신 그 죽음에서 3일만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죽음에서 3일만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다 잡으신 죽음입니다. 생명과 사망 생사의 주권을 잡으신 주권 적인 죽음이기 때문에, 껍데기는 죽었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생명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껍데기가 죽은 그 죽음도 의로 끝이나 서 다시는 사망이 해할 수 없는 완전생명으로 끝난 죽음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완전순종으로 끝난 부활입니다. 완전히 의로 끝난 부활입니다. 모든 죄와 사망과 음부를 완전히 이기시고 깨트리신 부활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잡으셨고, 생명의 주권을 가지시고, 심판의 주권을 가지시고 순종으로 말미암은 부활인 것입니다.




(2), 믿는 사람의 부활입니다. 믿는 사람의 부활은 심신의 기능부활과 몸의 부활입니다. 심신으로 된 것을 육이라고 말하는데, 마음위치에 속한 것은 그 기능이 부활할 때에 그 자체도 부활하여 마음과 마음의 기능부활은 동시에 되고,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이 몸만 이 세상에 남겨두고 그 마음과 기능을 입고 낙원에 갑니다.




누가복음 16장23절 이하에 보면,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이 음부에 있는 부자와 대화를 하였는데, 대화를 한 그 기관은 영이 아니고, 영이 마음이라고 하는 그 기관을 통하여 심적인 대화를 한 것입니다. 자색 옷을 입은 부자도 음부에 갔는데, 죽은 영이 죽은 마음을 입고 마음의 기능이 죽은 그 대로 음부에 갔습니다.




그런데 “죽은 영이 죽은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 음부에 갔다” 고 하는 말은 무슨말인고하니, 자색 옷을 입은 부자의 마음의 기능은 음부에 가서도 그 기능작용은 한마디 말을 하는 것이나 무엇을 소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것이요 자기단독주장대로 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하여 합당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자기단독 주장대로 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의 기능을 입고 음부에 갔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죽은 영이 죽은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 음부에 갔다” 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 살았을 때에, 그 마음의 기능이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의로 살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소원하는 것이나 지식하는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이나 속성을 가지는 것이나 전부가 하나님과 꼭같은것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산영이 이런 마음의 기능을 입고 낙원에 갔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산영이 산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 낙원에 갔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산영이 산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서 낙원에 가는데, 그때에 몸과 그 기능은 세상에 두고 갑니다. 그런데 지금에 부활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는 것은 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기능뿐인데,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마음과 마음의 기능을 구별해서 말한 것이요, 마음은 어떤 물체가 아니고 몸과 같은 물체가 아니고 기능으로서 신비한 물질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과 몸의 부활을 합해서, 요한 복음 5장29절에는 “생명의 부활이라” 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 20장6절에는 “첫째 부활이라” 고 말씀하셨는데, 이 생명의 부활 속에는 마음의 기능부활이 내포되어있고, 몸의 기능부활이 내포되어있고, 몸의 부활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몸의 부활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염려할 필요도 없고, 다만 마음의 기능부활과 몸의 기능부활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서 이 부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노력인 것입니다.




(3), 안 믿는 사람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의 부활을 “이방인의 부활이라” 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에 대해서는 요한 복음 5장29절에 보면 “심판의 부활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의 부활은 언제 하는고 하니, 믿는 사람의 부활, 곧 생명의 부활이 있은 지 후, 천년왕국후에 전부 부활합니다. 부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유산된 아이든지, 조산된 아이든지, 사람의 형태를 갖춘 것은 다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생명의 부활에 참가하지 아니하면 심판의 부활에 참가하는데, 영생하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을 “생명의 부활이라” 하고, 하나님에게 심판 받아서 영원히 사망하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을 “심판의 부활이라” 고 합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세 가지 종류요, 부활도 세 가지종류입니다. 죽음의 종류에는 죄로 인하여 죽은 일반적인 죽음과 의로 인하여 죽은 순종의 죽음과 또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죽음인데, 우리는 첫 아담에게 속한 자손이요 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속한 자손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냐, 받지 아니하느냐” 고하는 이것이 갈림길로 놓여있는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 아담에게 속하고 연합한자가 되어서 죄를 범하므로 끝나느냐, 이 시간에 사용할 진 액을 죄로 범해서 없애느냐, 당장에 해당된 기능이 죄를 범해서 없어지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둘째 아담에게 속하고 연합한자가 되어서 의를 행하므로 끝나느냐, 이 시간에 사용할 진 액을 의를 행해서 없애느냐, 당장에 해당된 기능이 의를 행해서 없어지느냐” 고하는 것이 갈림길로 놓여있는것입니다. 한말로 해서 “죄의 사망이냐 의에 사망이냐” 고하는 이것이 우리 앞에 갈림길로 놓여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아담에게 속한 죄의 죽음은 다시는 살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이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의에 죽음은 벌써 살았고 또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부활합니다.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죽음 이것을 단단히 명심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부활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 가지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있는 생명의 부활과 불택자들에게 있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으로 사망을 이기고, 없어지는 것으로 없어지는 것을 이기고,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결합으로서, 의에 완성 순종완성 결합완성을 이룬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인 것입니다. 또 택하신 자는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도 있고, 이것을 포기하고 생명의 부활을 받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생명의 부활 속에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몸의 부활이 포함되어있고 몸의 기능부활도 포함되어있고 마음의 기능부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기능부활이나 몸의 기능부활은 오늘에 당장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중복적으로 되어지고, 몸의 부활은 예수님 재림 때에 단번에 되어집니다. 우리는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확증하고 단단히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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