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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개혁 (왕하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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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개혁 (왕하 18:1-8​)



   요즘 우리나라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사건’으로 나라가 들썩하고, 대통령은 국정 수행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을 목사로 호칭하는데, 그는 소속교단이 없는 자칭 목사입니다. 그는 한때 승려였고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았으며, 기독교와 불교와 천도교를 합친 영생교의 교주였습니다.  최태민은 스스로 영험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육영수 여사의 현몽을 빙자하여 박근혜에게 접근했습니다. 최순실은 최태민의 다섯 번째 부인의 딸입니다. 특히 경악할 일은 최순실의 최측근이며 비선실세의 중심에서 국정을 농단한 고영태라는 사람은 강남 호스트바의 마담이었다고 합니다. 최순실과는 20살의 나이 차이임에도 서로 반말하는 친말한 사이라고 합니다. 고영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제조한 가방제조업체 빌로밀로를 운영했습니다. ​



​나라가 매우 어지럽고 혼란합니다. 이단 사이비에 대통령이 관계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가톨릭교회의 모순과 부패상 95개조 반박문을 내 건 것이 종교개혁의 전초가 되었습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시 루터가 표방한 종교개혁의 모토는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솔라 그라티아 (Sola Gratia, 오직 은총),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에 의한다는 핵심 기치를 내걸고 교회의 쇄신을 요구한 것이 종교개혁의 모드였습니다.


​​


개혁이라는 말의 한자는 고칠 개 “改”와 가죽 혁 “革”입니다.​ 改革은 “바르게 새로 뜯어 고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reform”인데, 개혁(re­form)은 “form을 바꾸는 것”입니다. form은 “유형, 방침, 격식, 모양”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 form”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의 form”, 교회의 form을 돌아볼 때, 우리들의 “신앙 form”이 개혁되어야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개혁하여야한다”고 외치면서 개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히스기야 왕의 개혁을 살펴보고자합니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의 13대 왕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아비야로 제사장 스가랴의 딸이었습니다.


 성경 열왕기와 역대기에서는 남 유다의 왕들과 북이스라엘의 왕들을 열거하는데 아주 특이하게 대조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남 유다의 왕들은 몇 살에 왕이 되었다는 것과 그 어머니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북이스라엘의 왕들에게는 그러한 기록이 없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신앙은 모계입니다. 따라서 어머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의 아들 된 왕이 신앙으로 바로 서느냐 그렇지 못하냐가 결정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신앙인이면 그 아들은 성군이었고 어머니가 불신앙이면 그 아들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어머니가 제사장 스가랴의 딸 ‘아비야’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에 대한 평가를 한 마디로 “다윗과 같았습니다.”


남 유다의 왕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다윗입니다. “다윗과 같았다”는 말은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훌륭했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다윗 같지 않았다”는 말은 잘못된 길로 간 악한 왕이었다는 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여로보암과 같았다. 같지 않았다”로 평가했는데, “여로보암과 같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한 악한 왕이라는 말입니다. 이같이 다윗은 긍정적인 잣대로, 여로보암은 부정적인 잣대로 평가했스니다.


히스기야 왕은 다윗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며 남 유다의 여러 왕들 중에서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왕하18:5)고 평가했습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18장과 역대하 29장~31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정치나 제도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신앙개혁에 우선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의 정무를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선왕인 부친 아하스왕이 하나님신앙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예배를 소홀히 하다가 겪는 참화를 목격했습니다. 선왕 때 왕을 비롯해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 하였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대하29:6~7).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부터 얼굴을 돌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떠났으며, 성전 문을 닫았습니다. 성전 문을 닫았으니 예배도 없고 기도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다 되었으며, 칼에 엎드러지고 자녀와 아내들은 적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혀갔습니다(대하29:8~9). 히스기야는 이러한 참담한 상황들을 목격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신앙이 바로 서는 것이 최우선임을 개달았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왕이 되면서 먼저 신앙개혁을 통해 그의 정무를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신앙개혁은


 첫째 우상을 제거했습니다(왕하18:4).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내고, 그 때까지 남아있는 모세의 놋 뱀을 깨뜨렸습니다. 민21:4~9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 뱀(독사)에게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높이 매달아 바라보는 자는 살게 하였는데, 그 놋 뱀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섬김으로 히스기야가 끼뜨려 없앴습니다.


신앙은 먼저 우상을 깨뜨려야합니다.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깨뜨려야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우상은 돈과 향락입니다. 이 우상을 깨뜨려야 하나님신앙이 바로 섭니다.


히스기야는 산당을 헐었습니다. 이 산당은 특별절기 때나 예언자들이 필요로 할 때 예배하던 곳이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도록 하기 위해 산당을 모두 헐었습니다.


 


 두 번째  성전을 회복했습니다(대하 29:3~5).


히스기야는 선왕 때에 닫았던 성전 문을 열었습니다. 성전 문이 닫힌 동안에는 예배도 기도도 없었습니다. 성전 문을 열고 예배와 기도를 회복하였으며, 성전 안에 더러운 것들을 성결하게하고 성전을 정화하여 성전이 성전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성전 되게 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거하시는 심령의 성전도 ​성전 되어야 합니다. 내 심령의 성전이 성전 되지 않으니 ​하나님예배가 제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성전이 성전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어 제일먼저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마21:12~13)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다 내쫓고, “내 집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전에서 딴소리가 들리면 안 됩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성전 되게 회복했습니다.



  세 번째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문을 닫고 하나님께 예배를 소홀히 한 죄를 회개하는 속죄예배를 드림으로(대하29:20~24), 예배 회복을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유월절 예배를 회복했습니다(대하30:1~27). 성전 예배가 제대로 안 되었으니 유월절 예배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유월절예배를 성결하고 성대하게 지키도록 회복시켰습니다. 더불어 안식일예배와 아침저녁 드리는 번제예배, 매달 초하룻날 드리는 월삭예배를 회복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목을 곧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대하30:8)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우상을 철폐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였으며(왕하18:5), 여호와와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고, 계명을 지켰습니다(왕하18:6).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떠나지 않은 것처럼 히스기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고 정의로우며 진실함으로 행했습니다(대하31;20).


성전에서 섬기는 일에나 율법이나 계명이나 하나님을 찾고 한마음으로 행했습니다(대하31:21). 즉 하나님 앞에 신앙이 반듯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히스기야를 복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습니다(왕하18:7, 대하31:21).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함께 하니,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사는 날 동안 태평과 진실함이 있었습니다(왕하20:19).



   둘째 앗수르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습니다(왕하18:7~8).


앗수르는 당시 대국이었고 부왕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앗수르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왕하18:13~19:37).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왕 산헤립은 ​랍사게 장군을 앞세워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고 항복하라고 농락했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제단 위에 올려놓고 “여호와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보시옵소서(왕하19:14).”라고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시다”(대하32:7)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에 앗수르의 진영에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저희들끼리 다 죽이고 도망갔으며, 산헤립 왕은 모반자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로부터 벗어나게 하셨고 블레셋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셋째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왕하20:1~7)​


이 말은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수명이 다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병으로 죽게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수명이 다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스무 다섯 살에 하나님과 더불어 왕의 정무를 시작한 히스기야는 “하나님신앙 개혁이 우선”임을 깨닫고 우상을 철폐하고, 성전을 성전 되게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함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아 나라가 든든히 세워지고, 그가 사는 날 동안 형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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