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 (잠25:11-13)
본문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 잠25:11-13, 고전16:15-18
요즈음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밖에서 일을 하게 되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목이 마르다 못해 타는 것 같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시원한 얼음냉수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주님께 얼음냉수처럼 시원함을 주는 성도의 모습은 복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일꾼들 중에는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일의 결과를 좋게 만들어 모든 이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는 종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주인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그 일의 결과도 좋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도 불쾌함과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마음에 새겨 은혜를 나눌 본문은 바로 주님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좋은 종들의 자세를 설명하고 우리들이 그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큰 도전과 용기가 되는 말씀이 되고, 듣고, 새겨 행함으로 주님과 성도들에게 무더운 날 얼음냉수처럼 시원함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는,
1.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입니다.
신약 본문 고전16:16에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순종하라’는 원어의 뜻은 ‘자신을 복종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바나의 가정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교인들에게 자발적인 마음으로 그들에게 순종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시 수고하는 자들에 대해 감사 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배척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가 되려면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수고하는 동역 자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순종하며 함께 협력 하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무질서와 파당과 자랑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지도자를 존중하고,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는 순종을 배워 교회 화합과 사역에 기여하여야 합니다. 교만하여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 자들은 막중한 책임을 안고 수고하는 자들을 무시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워 교회를 혼란케 하여 어지럽게 만듭니다. 겸손히 수고하는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자가 여름철 무더위에 얼음냉수처럼 주님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중국 선교사로 가고 싶었습니다. 선교본부에 지원했지만 거부를 당했습니다. 선교사로 가기에 자격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박사와 함께 동역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중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길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아니라 사환으로는 갈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제가 가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시키면 가서 물도 긷고 장작도 패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다 하겠습니다. 종처럼 가서 선교사를 섬기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선교사가 아니고 사환의 자격으로 중국에 갔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존경받는 윌리암 밀른(William Milne) 박사가 되었습니다. 겸손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사를 섬기고 사람들을 섬겼을 때 하나님이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의 순종이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 잠25:12에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했습니다. 책망은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망을 그대로 받아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일꾼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주인의 책망을 청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은 우리가 어그러진 일을 하거나 그릇된 길로 갈 때 책망 하시고, 때로 징계의 매를 드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책망의 말을 듣고 그 말씀을 잘 따라 행하여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좋은 일꾼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연약함을 주님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다윗도 범죄 후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여 바른 신앙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그를 사랑 하시고 내 마음에 합한 종이라고 칭찬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에 순종하여 살므로 여름 날 얼음냉수처럼 주님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변함없이 충성 하는 자입니다.
구약 본문 잠25:13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했습니다. 충성이란 헬라어로 ‘프스토스’인데, 이 단어는 구약에는 ‘신실’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충성이라는 말의 어원은 ‘마음이 나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마음이 나뉠 때가 많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도 나도 모르게 두 마음이 공존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때로 실의에 빠져서 그냥 내 멋대로 행동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힘들거나 어려움이 닥칠 때면 더욱 딴 마음을 먹기 쉽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 지체 속에 다른 법이 내 마음(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4)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 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성경에 보면 절대로 마음이 나뉘지 않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을 꼽으면 다윗입니다. 성경은 다윗에 대하여 칭찬하기를 “내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하나님이 이런 표현까지 쓰셨을까요? 그가 쓴 시편을 보면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그는 외로워도 하나님을 찾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기뻐도, 형통해도 하나님을 찾고, 징계의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절대로 그의 마음이 나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고정시킨 사람,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충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만 둠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이런 것이 ‘충성’입니다. 이 충성스러운 마음은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이며,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는 일을 맡은 일군의 근본 된 자세입니다. 주님은 마24:45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이 충성된 마음의 소유자임을 말씀하십니다. 고전4:2절에서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했는데, 일을 맡은 사람의 자세도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 본문 고전 16:18에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충성하는 자를 인정해 주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 2:10절에서는, 환경을 초월하여 충성하는 일군을 위해 예비 된 상급이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수년을 ‘아프리카’에서 사역한 선교사가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는 그 곳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부두에는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소리, 수많은 환영 인파가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선하는 계단에서부터 전용차까지 붉은 주단이 깔렸고 좌우로 각료들과 시민들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대통령이 배에서 내려 전용차에 오르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가 홀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사냥을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선교 현장에서 두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고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깊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의 유리 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가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선교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는 신실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충성! 생명을 다하는 충성! 이것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분에게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시원함입니다. 우리 모두 변함없이 충성하는 자로 살면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자입니다.
신약 본문 고전16:15에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여기의 ‘섬기기로’는 원어로 ‘카이 에이스 디아코니안’입니다. 스데바나는 병든 자나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 집회 장소로 자신의 집을 내어놓았습니다.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 스데바나의 봉사는 지극히 헌신적이고 자발적인 것으로 교회의 모범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스데바나를 높이는 이유는 단지 교회 개척을 함께 했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데바나 가족 식구들은 “나는 꼭 성공해야지!”라고 작정한 것이 아니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성도들을 무조건 섬겨야지!”라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말이 원 뜻은 “섬기는데 중독되었다.”는 뜻입니다.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일 뿐만 아니라 성도를 얼마나 잘 섬겼는지 중독될 정도로 섬겼습니다.
사람이 높은 사람을 섬기는 것은 쉽지만 모든 사람을 섬겨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나는 섬기면서 살겠다!”고 단단히 작정해야 합니다. 작정이란 스스로 삶의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게 생각되는 일도 작정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으면 어려운 일이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 한 캠프장으로 물건을 가득 실은 한 미니밴이 들어왔습니다. 그 밴이 캠프를 할 장소에 멈추자마자 곧 네 명의 남자 아이들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신속히 모든 캠핑 장비들을 내려놓았고 급히 텐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텐트를 다 설치하자 아이들이 급히 불을 피울 목재를 찾으려고 뛰어나갔습니다. 그 동안에 두 여자 아이들과 어머니는 급히 음식과 주방기구를 풀고 버너를 켰습니다.
근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걸어와서 그 가장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가족 팀워크가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훈련시켰습니까?” 그때 그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거 아주 쉽습니다. 시스템을 만들면 됩니다. 저희들은 캠프의 세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아무도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고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시스템을 잘 만들면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영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시스템을 잘 만드는 지혜입니다. 자녀교육의 성패도 결국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에 관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스스로 어떤 삶을 살겠다고 작정하는 ‘자기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도 섬기기로 작정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얼마나 그 삶이 멋있고, 힘 있고, 안정성 있게 되겠습니까?
살면서 사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덕입니다. 오늘 좋다고 했다가 내일 싫다고 하면 그 삶은 복된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변화의 주인공은 되되 변덕의 주인공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섬기기로 작정했으면 꾸준하게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틀림없는 분이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처럼 꾸준히 인내하고 기다리고 사랑으로 섬겨주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시원해집니까? 좋은 작정은 더욱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하고,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듭니다. “나는 주일성수 하리라! 나는 꾸준히 기도하리라! 나는 책임적인 교인이 되리라! 나는 겸손히 사랑으로 교회와 성도를 섬기리라!” 그처럼 낮아지기로 작정하고 겸손히 섬기면 진짜 종처럼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높여주시고 다른 성도들도 높여줍니다. 교회에서 높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성도들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많이 알려져 있는 대로 일본 교토에 가면 MK 택시를 보게 됩니다. MK 택시 회사는 독특한 경영으로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기업입니다. 일반택시보다 요금이 10% 저렴하지만 서비스 면에서는 최상급입니다. 그래서 교토 시민들은 MK 택시를 교토의 자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MK는 대졸 운전자들을 채용해 학사 운전자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택시 10대로 출발한 MK 택시는 현재 34개의 주유소와 수백 대의 택시를 소유한 최고의 운수회사로 성장했습니다. 회사의 경영주 유봉식과 태식 형제는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성경에서 경영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말씀을 통해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섬겨야 함을 실천하였습니다. 운전자를 가족처럼 섬겼으며, 운전자 간의 화목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결과 운전자들은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하게 되었으며,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택시 회사가 된 것입니다. 섬김을 보였을 때 모두에게 시원함을 주는 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기로 작정함으로 주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여름철 얼음냉수처럼 시원함을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입니다.
◉.변함없이 충성 하는 자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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