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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곧 교회, 내가 곧 교회 (고전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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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곧 교회, 내가 곧 교회 (고린도전서 1장 1-3절)



 


예고해 드린대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이어서 이번주에는 교회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교회에 대해 말씀 드리기 전에 함께 생각해 볼 용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건물을 지칭하여 부르기를 ‘성전’이라는 용어를 아주 편하게 사용하여 왔습니다. ‘성전’이라고 하면 곧 교회건물 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고, ‘성전’이 곧 교회 건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되었습니다. 쉽게, 편하게, 자주 사용하여 입에 익숙해진 용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지금은 구약의 성전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 있었던 성전(성전세, 법궤, 희생제사, 제사장 등)의 모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건물을 성전 대신에 ‘예배당’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제단’, ‘제물’이라는 희생제사의 용어들과, ‘성가대(세이카다이라는 일본어)’, ‘대예배’등과 같이 잘못 전해진 관습적인 용어들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용어 들에 대해서는 언제 자세하게 살펴드릴 시간을 갖겠습니다. * 제단->성단 혹은 강단, 성가대->찬양대, 제물->예물, 대예배->주일예배


 


자, 우리 장로교를 포함한 개혁교회에서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곧 성도이다” 라는 것이 표준 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내가 이 반석(예수 그리스도)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마 18:18)고 말씀하셨고,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예수그리스도)피로 교회를 세우셨다”(행 20:28)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교회 설립의 근거가 됨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교회는 그(예수님)의 몸”(엡 1:23)이라고 하면서, “그(예수님)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몸이 곧 교회이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가 교회의 모든 것이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믿음을 가진 사람들)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했습니다. 곧 여기 예배 드리는 각자 각자가 예수님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의 몸과 하나가 되어 있고, 예수님의 몸이 곧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들 하나 하나가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근거로 설명드려도 복잡한 거 갖죠.


 


이러한 모든 상황을 단 한 구절로 명확하게 선언한 구절이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2절을 읽겠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아멘.


 


바울은 교회란, 곧 이것이다 라고 명확하게 두 가지로 설명해 줍니다.


  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십자가 은혜로 죄 사함 받음)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② 각처(세상 곳곳)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①번과, ②번이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구원자로 고백한 믿음의 사람들을 일컬어 ‘성도’(거룩한 자들, 부르심을 받은 자들)라고 부르며, 이 사람들이 곧 교회라는 설명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① 번은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 속한 신앙인들을 지칭한 것 같고, ② 번은 ‘각처, 모든 사람’ 이라는 표현을 볼 때 범위를 확대해서 세상 어느 곳에서나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거룩한 성도요, 성도는 곧 교회이며, 곧 지금 이 시점에 예수님을 믿고 있는 내 자신이 곧 교회가 됩니다. 이제 아셨죠, “성도가 곧 교회, 내가 곧 교회”,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이 제목이 명학한 근거에 의한 분명한 사실임을 여러분들이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 “왜 교회가 건물이 아니고 사람(성도)입니까?, 그걸 설명하는 성경 구절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시면, “고린도 전서 1장 2절을 함께 펴볼까요” 당당하게 말씀하시면서 설명 해 주시면 됩니다.


 


이제 자세하게 알았으니, 아는 것보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백배 천배 중요합니다. “성도가 곧 교회, 내가 곧 교회”라는 사실에 걸맞는 성도로서의 삶, 교회로서의 삶의 자세를 일깨워야 합니다. 십자가의 핏 값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에게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요,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도와 교회로서의 삶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성도(교회)로 부르심을 받으심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나 크리스천 이예요, 교회 다녀요, 예수님 믿어요”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 이라면, 자부심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자부심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자부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어디가서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며 사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감을 보였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말이 “너는 기독교인이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 마시냐, 술좀 작작 마셔라, / 너는 교회다닌다며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왜 그렇게 남의 욕을 많이하냐, 그러는 네가 무서워 진다, / 너는 예수 믿는다며 그 많은 빚을 내서 불법도박에 빠져 사냐, 음란물도 중독이라며, 가족이 불쌍하지 않냐 제발 정신좀 차려라” 이런 말들만 쏟아 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들 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구별되어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곧 성도라면, 내가 곧 교회라면,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구별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술과, 음란과, 도박과, 거짓과 폭력을 일삼는 악한 무리들 속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거룩한 성도로, 구별된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의 자심을 드러내고 살아가시려면, 적어도 “네가 기독교인이냐? 네가 교회 다는 사람이냐?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이냐?” 이런 조롱과 비난은 받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제일 우선해서 ‘말(언어)’에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말을 예쁘고 아름답게 하는 사람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말에 품격이 있고 겸손하면 그 사람의 행동도 그렇습니다.


 


분노, 저주, 비난, 욕설, 거짓, 음란, 시기, 무시, 무례한 말.... 이런 저급한 말들은 전부 나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말이 습관이 되면, 습관이 곧 행동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말을 품격있게 하는 습관이 되어서 결국에는 행동도 품격있게 하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언행의 품격을 이루어 가려는 삶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00교회의 모든 성도는, 말에 품격이 넘치고, 행동이 품격이 넘쳐서, 어디를 가서 무슨 말을 하든지, 칭찬 받고 존경 받는 성도요, 교회가 되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성도(교회)로 용서 받은대로 모든 사람을 용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용서, 즉 죄에 대한 영원한 용서가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 희생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용서함 받은 사람들이 곧 성도이고, 곧 교회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5) 너무나도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예수님의 고귀한 십자가의 희생으로 이미 다 완성이 되었지만,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용서함 받았다면, 이제는 남의 잘못에 대해서 일흔 번의 일흔번(무조건, 무제한 용서)까지라도 용서를 해 주는 것으로 그 사실을 떳떳하게 증명해 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눅 11:4),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니 나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여전히 용서하지 못했다면, 주님이 가르쳐 준 이 기도문(주기도문)을 올려드리기에는 이치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의 정점이 ‘용서’이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생활의 정점도 ‘용서’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남의 잘못을 무조건 적으로, 무제한 적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 용서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용서하려고 해도 마음이 앞서면 머릿속에서 막아 버리고, 머리가 앞서면 마음속에서 닫혀 버립니다. 주님의 긍휼하심과 은혜가 더 많이 필요 합니다.


 


바울 사도가, 부르심을 받은 성도와 교회들에게 말하기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이 말씀이 성도의 삶, 교회로서의 내 자신의 삶이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00교회의 모든 성도는 믿음의 정점인 남의 잘못을 무조건, 무제한 ‘용서’함을 베푸는데 꼭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더 사랑 주시고, 더 긍휼히 여겨주시고, 더 은혜 주셔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로서, 교회로서, 우리 주님의 용서하심 같이 나도 남을 기꺼이 용서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성도(교회)로 머리에게 복종하고 지체로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앞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몸이 곧 교회이고, 그 몸에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각각의 지체들이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몸으로 움직입니다. 한 몸이라면, 아프면 함께 통증을 느끼고, 기쁘면 온 전신이 희열을 느껴야 정상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교회로서, 예수님 안에서 공생공사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음 세 가가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① 우리는 몸이요 지체이기 때문에 머리되시는 예수님의 지시를 절대명령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나는 안 할래요, 나는 못해요 다른 사람 시켜요” 라고 거부하기 보다는,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주님 앞에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② 우리는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만의 독단적인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반대합니다. 그런거 꼭 해야 합니까? 해 봐야 소용없어요” 흐트러 트리고 방해하기 보다는 “힘을 모아서 한 번 해봅시다. 함께 하면 주님이 도와 주실겁니다”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③ 다른 지체를 비난하고 상처주는 언행을 삼가야 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지체가 실족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가장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은 다른 지체에 대해서 함부로 무례하게 대하거나,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거나, 짝을 이루어 다른 지체를 시기 모함하는 등, 온갖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지체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이 목에 달려서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 한 몸, 한 공동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 교회로서의 기능과 역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회공동체의 사교 모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00교회는 예수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거룩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님 이시고,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모든 일에 서로 아름답게 합력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교회로 세워져 나갈 것을 믿습니다.


 


“성도가 곧 교회, 내가 곧 교회”라는 이 사실을 명심하시고, 성도 답게, 교회 답게, 어디를 가든,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일을 행하든, 우리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칭찬 받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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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거룩한 성도로 택하시고, 불러주셔서, 교회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모든 성도가, 성도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교회다운 사랑의 모범을 보이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성도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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