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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 (사63:7-9)

본문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


이사야 63:7-9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2013년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지난 일 년이 정말 후딱 가 버린 느낌입니다.


한 것도 없는데, 나이만 한 살 더 먹고 세월만 허송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말 하나님 앞에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송년 주일이라는 의미를 저는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감사하며 일 년을 마감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dog)가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주인님 제가 집을 너무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매일 밥만 먹고 잠만 잤습니다. 제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다음부터는 잘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애완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동물이 어느 날 '주인님 저를 그렇게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저도 잘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감사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고,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신년 주일이 생기고 송년주일이 생기고 각종 기념일이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이것을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요단 강 바닥에서 12돌을 택하여 길갈에 세우도록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넌 것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알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찬식을 제정하시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고 몸을 찢기신 주님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주님은 거룩한 성례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길이길이 기억하기 위해서 에벤에셀이라는 승전비를 세웠습니다.


승전비를 세우고 그 돌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자세입니다.


 


오늘 송년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면서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므로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세월 하나님은 저를 이렇게 도와주셨습니다. 제 마음에 감사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금년 일 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감사하면서 새해를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에게 허락하신 에벤에셀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좋은 직장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에벤에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게된 것이 에벤에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으로 지켜주신 것이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축복을 생각하면서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마시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속으로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회상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 마디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에 보면,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9절에서도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했습니다.


짧은 두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가 되심을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주시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이름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려운 형편 속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실망가운데 있는 자에게 희망을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의 은혜를 회상할 때 빠트리지 않고 기억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이 사실을 빠트리지 않고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은혜를 기억할 때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빠트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자녀를 삼아주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은혜가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택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고 우리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착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다른 모든 은혜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일 년을 살아오면서 힘드시고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거나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고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가 바라는 축복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했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었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자녀 삼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 주님의 은혜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절대로 조그마한 일에 시험이 들거나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불평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우리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여 구원하신 은혜입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학생회 헌신예배 때 신앙인물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맨발의 할아버지'라 불리는 전춘선 할아버지의 선교하는 모습을 그린 다큐인데, 그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닙니다.


신발과 양말을 신고도 추위를 느낄 한 겨울에도 결코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북녘 땅에 있는 내 동포를 생각할 때 신발을 신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그때 신발을 신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북녘 땅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타국에 가서 살 때 아버지는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아버지는 남모르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잠 못 자고 지새우는 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고생하고 있는 자식을 생각할 때 세끼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집을 뛰쳐나와 광야를 걸으면서 추위와 두려움과 허기 속에서 인간적인 외로움을 느낍니다.


밤이 어두워져서 외로움과 무서움이 극에 달할 때 돌을 하나 취하여 베게 삼아 잠이 들지요. 그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밤이슬을 맞으면서 추위에 떨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가 기뻐서 소리친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함께 하셔서 그의 고통을 함께 당하시고 그의 외로움을 함께 느끼셨습니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도 함께 고통당하십니다.


함께 괴로워하시고 함께 힘들어하십니다.


 


우리의 고통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야곱의 고통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은 그를 도우사 무사히 광야를 건너 외삼촌의 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광야 생활 속에서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고 반석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심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허덕이며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고 멸망으로 빠져 가는 인간의 고민 속에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드디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난 일 년을 생활하면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되는 안타까운 성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그 고통 속에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심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민은 하나님의 고민이기에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는, 우리를 들어 업으신 구원입니다.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예전에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디를 놀러 가면 얼마 걷지 못해서 '아빠 힘들어' 하며 주저앉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이들을 업거나 아니면 무등을 해 주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신학교 졸업여행 때 혼자 가기도 어려운 한라산을 큰 아이를 업고 등반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 그냥 가는 아빠는 없습니다.


안거나 업거나 무등을 해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히브리 성경을 보면 더 정확한 번역으로 그들을 들어 업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업으셨습니다. 불기둥으로 그들을 안으셨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제사장밖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을 먹게 하심으로 업어주셨습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가로질러 그의 삶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이 그의 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펐던 일들이 일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를 괴롭게 했고 그래서 그는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삶이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음은 어찌된 일입니까?


왜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을 본 것은 그때는 내가 너를 업고 지나갔기 때문이란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을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고통 속에 함께 동참하셔서 고통을 다 겪으시고 그 고통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홀로 설 수 없고 홀로 걸을 수 없을 때에는 여러분들을 안으시고 업으시고 그 터널을 빠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난 일 년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이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를 간직하며 새해를 힘차게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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