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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끝까지 돌보시는 선한 목자 (슥1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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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끝까지 돌보시는 선한 목자 (슥 11:4~1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새 한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대로, 망할 자는 망할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대로 두리라 하고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스가랴 11:4~14)


 


1. 주께서 양에게 버림받으심


슥 11장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이스라엘은 양과 같습니다. 선한 목자가 그들을 먹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고생했습니다. 오늘도 선한 목자가 없으면 양은 고생하게 됩니다. 주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 같이 보신 것입니다. 삯군은 없지 않았으나 선한 목자는 없었습니다.


4절에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고 했습니다. '잡힐' 이 말씀은 무엇을 가리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목자로 삼았습니다. 그 목자가 되기 전에 삯군식의 목자들은 양을 잡을 자들이었습니다. 잡아서 무엇을 합니까? 가서 팔아 버립니다.


5절에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양 무리들입니다. 양 무리들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들은 선한 목자는 아닙니다. 더욱 가증한 일은 "여호와께 찬송하리로다"의 말입니다. 여호와의 뜻인 양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양 무리였습니다.


이 예언이 예수님 당시에 이루어졌으니 모든 종교지도자들, 제사장, 바리세인, 서기관 모두 삯군 목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삯군들에게 버림 당하십니다. 우매한 목자를 하나님은 어찌 버려두십니까? 하나님께서 저들에게도 정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8절에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그러나 잃어버린 양을 돌보지 않고 흩어진 양을 찾지도 않고 상한 양을 고쳐주지도 않으며, 잘 먹이지도 않으며 살찐 양을 잡아먹거나 버리는 목자도 있습니다. 이는 곧 적그리스도로서 이 적그리스도가 이 세계를 관리하는 동안은 세상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가 오셨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를 버렸습니다. 유다는 주를 팔았습니다. 이도 성경을 응하게 함입니다.


 스가랴 선지가 예언한 두 가지 일을 주의 몸에 모두 응하였습니다. 첫째 유다의 탐심은 주님을 팔았습니다. 자세히 생각하면 가롯 유다 뿐 아니라 그 밖에 제자들도 처음 주님을 따를 때는 유다와 같이 속세의 욕망을 가졌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께서 왕 되실 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주의 나라가 이 세계에 속한 나라가 아닌 것을 몰랐습니다. 주께서 부활 이 후 승천할 때까지 저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속적 욕망을 그대로 가지고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로 보아서도 세속적 탐심이 가롯 유다와 같이 있었습니다. 조심할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 3년간이나 따르던 제자가 주님을 팔아넘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유다는 고귀한 직분을 잃어 버렸습니다.


 스가랴 선지는 일찍이 이를 말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러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에게 던지고"라고 했습니다(슥 11:12-13). 이 사실이 신약에 와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 돈은 피값입니다.


유다는 마귀의 기구가 되어서 예수를 판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예언한 것이 하나 하나 다 응한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이름은 천추에 냄새를 피우며 그의 직분은 다른 이가 취하였습니다. 이것도 유다의 탐심의 죄입니다.


 딤전 6:10에 "탐심은 만악의 뿌리"입니다. 유다는 탐심으로 3년 동안 쫓던 주님을 팔았습니다. 오늘도 이런 위험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롯 유다가 판 은 30을 가지게 둘 수 없어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행객의 매장지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예언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는 이 세상에 초림하셨습니다. 백성들에게 버림을 당했으나 그러나 메시야는 은총과 연락이라는 두 지팡이로 백성을 지도할 것입니다. 유대 목자들은 목양할 때 두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그 끝이 굽은 것으로 연약한 양과 길 잃은 양을 돕는데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끝이 곧은 것으로 이것은 원수인 맹수를 막는데 사용하는 지팡이입니다.


이제 초림의 메시야의 두 가지 지팡이는 은총과 연락이니 은총은 하나님의 은사를 백성들에게 부어주는 것이요, 연락은 인간끼리 평화와 합일을 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선한 목자를 배척하였으니 결과적으로 2천년 간이나 악한 지도자 밑에서 이산의 곤고를 당했습니다. 조국을 잃었고 사방으로 유린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심은 기한부이라서 말세에 선민회복 때가 이르면 악한 목자를 제해버리고 자기 선민은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인 것입니다. 이 사상이 구약 사상인 동시에 신약사상입니다.


 


2. 은총과 연락의 두 지팡이를 가지신 선한 목자 그리스도


 (1) 은총의 지팡이


은총은 위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참 목자 참 지도자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간의 피조물이니 위로부터 오는 은혜가 없으면 인간생활은 기갈이요 살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은 머리를 위에 두고 바로 서서 걷고 땅만 보는 것은 짐승과 곤충입니다.


골 3:2에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지 말라하였고, 로마서 8장에도 성령의 생각은 사는 것과 평안함이요, 육신의 생각은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인간에게 절실한 문제가 땅에 있는 것이 아니요,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의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은혜가 끊어졌으니 인간 세계는 어떻게 평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가 내리지 않고 이슬이 그쳤으니 지상의 초목이 어찌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수분은 땅에서 풀뿌리가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물은 위에서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땅에서 나는 식물로만 사는 줄 알지만 실은 위에서 오는 은사를 통해서만 살 수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 오셨으며 곧 자기 몸을 희생하여 하늘의 은사를 인간들에게 부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천만고의 대은사를 세계만민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2) 연락의 지팡이


예수님은 은사를 통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 평화와 밤일을 도모하시려고 오셨으니 이는 곧 인간 세상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인간 세계는 멸망의 길을 향해 가고 있으니 이 무슨 원인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의 지팡이가 꺾어지면 자연히 연락의 지팡이도 꺾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도 인간과 인간이 서로 합할 수가 없습니다. 가루에는 물로 넣어야 반죽이 되고 합해지는 것입니다. 은사가 끊어지니 아무리 합할래야 합할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삼각형과 같다고 하였는데 정점은 하나님이고 밑변은 인간과 인간입니다. 두 인간이 서로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만 밑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은총을 받지 못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락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봉사하고 신앙하는 일에 무슨 사상주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교회도 하나요, 모두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신봉하여 위로 긴밀한 연락을 지은 후에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회복 하시기 바립니다. 사랑과 사랑은 언제나 접착력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접착된 인간은 자연히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접착력이 생겨서 완전히 연락되며 합일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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