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아! (사51:6-8)
본문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아!/이사야서 51 : 6 - 8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늘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예> 먼저 인터넷에서 읽은 훈훈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남편이 잠 못 들고 뒤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무슨 돈이냐며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기의 비상금이었는데 핼쑥한 모습이 안쓰럽다며 내일 몰래 혼자 고기뷔페에 가서 소고기 실컷 먹고 오라고 주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펴서 쥐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가엔 물기가. "여보.. 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어젯밤 남편에게서 만원을 받은 아내는 뷔페에 가지 못했습니다. 못 먹고 산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노인정에 다니시는 시아버지께서 며칠째 맘이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아내는 앞치마에서 그 만원을 꺼내 노인정에 가시는 시아버지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아버님 만 원이예요. 제대로 용돈 한 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작지만 이 돈으로 신세진 친구 분들하고 약주 나누세요." 시아버지는 너무나 며느리가 고마웠습니다.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 힘겹게 끌어 나가는 며느리가 보기 안쓰럽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돈 만원을 쓰지 못하고 노인정에 가서 실컷 자랑만 했습니다. "여보게들! 울 며느리가 오늘 용돈 빵빵하게 줬다네." 그리고 그 돈을 장롱 깊숙한 곳에 두었습니다.
다음 해 설날 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습니다. 기우뚱거리며 절을 합니다. 주먹만 한 것이 이제는 훌쩍 자라 내년엔 학교에 간답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오냐" 하고 절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놓은 그 만원을 손녀에게 세배 돈으로 줍니다. "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외동딸 지연이는 마냥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세배 돈을 받은 지연이는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리는 엄마를 불러냅니다. "엄마.. 책가방 얼마야?" 엄마는 딸의 속을 알겠다는 듯 빙긋 웃습니다. 왜? 우리 지연이 학교 가고 싶니?" 지연이는 엄마에게 할아버지에게서 세배 돈으로 받은 만원을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한테 맡길래 내년에 나 학교 들어 갈 때 예쁜 책가방 사주세요!"
요즘 남편이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 하던 잠꼬대까지... 아침에 싸주는 도시락 반찬이 매일 신 김치 쪼가리뿐이라.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 양복 속주머니에 낮에 딸 지연이가 맡긴 만원을 넣어 둡니다. " 여보 내일 좋은 것 사서 드세요 " 라는 쪽지와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무더위와 싸우면서 날마다 논으로 밭으로 다니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런데 더위는 아직도 끝이 보이질 않게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일 피서를 간다고 전국의 고속도로와 국도가 정체를 빚고 있고 외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서 연일 공항은 북새통을 놓는다고 하는데 휴가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조차 알 수가 없고 또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생소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오늘 우리네 농촌 사람들의 형편이 아닙니까?
게다가 농촌에서는 이 여름만 되면 한 가지 더 큰 고충이 있습니다. 그동안 흩어져 살고 있던 자녀들과 또는 친척들이 찾아오는데 이것이 어디 반갑기만 하겠습니까?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만나 보지 못했던 부모님들과 형제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이 좋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밝은 양지가 있으면 반드시 음지가 있듯이 가족들의 오랜만의 만남의 뒤켠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농촌에서 요즘 같은 뙤약볕에서도 농사일을 하느라고 얼굴이 섬 처녀보다도 더 검게 그을린 농촌의 아낙네들입니다. 농촌에 사는 여인들의 고충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자기들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음고생 몸 고생하는 시골 농촌의 여인들의 고충을 알아서 고향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되도록 더운 여름철에는 누구네 집도 방문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피차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면 농촌 여인들의 고충을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손님이 오면 우선 이 더위에 신경 써서 밥 해대는 일이 가장 큰일입니다.
도시처럼 집 앞에 슈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대형 매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버스를 타고 몇km를 나가야 시장을 갈 수가 있으니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경제 문제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농촌에서는 단돈 천 원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도 감안을 하여야 합니다.
② 이 무더위에 누구나 가정에서는 옷들을 많이 벗고 지냅니다. 물론 나체로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손님이 오면 간편한 복장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덥고 어렵겠습니까?
③ 화장실 문제입니다.
요즘 농촌도 거의 생활 개선이 되어서 집집마다 수세식 변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두세 명만이 사용하던 화장실을 손님들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여간 어려움이 아닙니다. 게다가 화장실의 구조가 거의 거실에서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 손님들 앞에서 여자들이 화장실 들어간다는 것도 조금은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④ 농사일의 지장입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면 식사시간도 일하다 보면 늦어질 때도 있고 합니다. 그러나 손님이 와서 있으면 그럴 수도 없습니다. 시간 맞춰 식사를 제공해 주어야 하니까 농사일에 많은 차질이 오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만 몇 가지 적어보았지만 그 외에 말로 다 못하는 어려움 들이 많습니다. 자기들 기분 낸다고 또 모처럼 고향 찾아간다고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친척들 찾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여름철에는 제발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찬바람 나고 겨울철에 찾아가면 누가 뭐랍니까? 그때는 옷을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설교가 흘렀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날이 절기상으로 가을의 문턱이라는 立秋였고 오늘이 末伏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가을을 알리는 시원한 바람이 우리 곁에 찾아올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갔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세월을 아끼라”(엡5:16)고 하셨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아!」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도시에서는 잘 모릅니다만 우리 농촌에서는 여름만 되면 모기와 하루살이 등 각종 날벌레들과 물것들 때문에 참으로 이중 삼중으로 고생이 막심합니다.
하루살이는 부유류 곤충(??類 昆蟲)으로서 유충으로 1년~3년을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서는 하루를 살고 죽는다고 해서 하루살이라고 합니다. 또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되어서 한 번도 먹지를 못하고 죽는데 태어나기 전에 알속에서 하루 분의 영양을 공급받아서 태어났다가 하루를 살고는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하루살이 같은 미물의 곤충을 창조하셨을까? 참으로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루살이도 그 종류가 대단히 많은데 세계적으로 약 2,000종류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120여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것들은 4-5시간만 살고 일생을 마치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덧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들을 비유하여 하루살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하루살이 라는 말이 세 곳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서의 말씀에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에 있을 징조에 대하여 하신 말씀인데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도 하루살이는 아무런 저항할 힘도 없이 그저 마지막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인간을 하루살이에다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 41:14절 말씀에는 인간을 버러지에다가 비유를 하였는데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인간이 버러지만도 못하고 하루살이만도 못하고 굼벵이만도 못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진정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차라리 미물의 벌레나 짐승만도 못할 때가 참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다 같이 복음 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그래서 오늘은 이사야 선지자가 인간을 하루살이에다 비유를 하였는데 하루살이가 무엇인가? 그리고 하루살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게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이 시간 함께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습니다. 그저 오늘만 살면 됩니다. 아니 하루만 살고 죽을 것이라는 것조차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가 죽어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다가 장렬하게 죽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열심히 하늘을 비상도 해보고 생전 처음 보는 불빛을 보고 달려 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노력과 근면으로 성실하게 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을 죽이고라도 자기의 것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리고 내일뿐만이 아니라 일생동안 잘 먹고 잘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안 되면 남을 거꾸러뜨리고라도 자기가 출세를 하여야 하고 남보다 잘 먹고 더 좋은 집에서 잘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눅12: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들에게도 내일은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 때에 내일은 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약4:13-14)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루살이와 같이 우리의 일생 이 세상만 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이 있음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2. 하루살이는 불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을 것도 모르고 나라듭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저 죽을 줄 모르고 날라드는 것이 어디 하루살이 뿐입니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까? 인간들이 자신이 지옥 불에 들어가서 끝도 없이 영원토록 불꽃 속에서 고통당할 것을 모르고 한날의 향락과 쾌락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다는 교인들도 세상의 몇 푼 안 되는 품삯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인정에 끌려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음부의 불꽃 속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에게 간절히 소원을 부탁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의 형제들은 제발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7:21절 말씀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셨고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 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깨끗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치 하루살이들이 자신이 타 죽을 것도 모르고 불 속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 오늘도 우리들의 주변에는 마치 하루살이들처럼, 불나비처럼, 지옥 불로 달려가는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것을 알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먼저 부르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영혼들을 구원하시려 먼저 부르셨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찬송가 522장을 부르겠습니다.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따르다
저 마귀들 지옥 갈 때에 너도 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질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3. 하루살이는 인간들 편에서 볼 때에는 참으로 귀찮은 것들입니다.
밤이면 불빛을 보고 몰려들어서 교회의 방충망 사이로 용하게 들어와서는 우리들을 귀찮게 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무익한 것 같기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와 같은 미물의 버러지도 창조하실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참으로 약합니다. 불과 4,5시간을 살고 기껏해야 하루를 삽니다. 어느 것에도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하루살이는 태어나자마자 자신들보다 강한 잠자리를 비롯하여, 온갖 곤충과, 개구리 같은 파충류와, 새들의 먹이가 되어 버립니다. 어찌 생각하면 순전한 남을 위해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생각해 보면 하루살이는 결코 귀찮은 벌레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 인간에게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미 같은 사람입니다. 거미는 곤충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쳐 놓고 기다리다가 벌레가 걸리면 재빨리 달려와서 잡아먹습니다. 요즘 교회 주변에 거미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이 거미와 같이 남에게 해를 입히며 자기의 충족을 채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로 개미 같은 사람입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을 하는 곤충입니다. 근면하기로 소문난 벌레입니다. 그래서 이솝의 우화 중에도 개미와 베짱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미는 열심히 일을 해서 여름에 먹을 것을 많이 비축을 하는 것은 좋으나 남을 도울 줄을 모릅니다. 나눠줄 줄을 모릅니다. 사람들 중에도 내가 노력해서 벌은 것이니 내 돈 가지고 내가 잘 먹고 잘 사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극도의 이기주의자들입니다.
셋째로 꿀벌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꿀벌은 열심히 일을 하여 온갖 꿀을 모아옵니다. 꽃가루도 모아옵니다. 로열 젤리도 생산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모두 빼앗아 버리고 벌들에게는 설탕을 먹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곤충입니다. 사람들 중에도 이와 같이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에 속합니까.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루살이 같은 미미한 벌레를 통하여 깨닫는 교훈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① 오늘 하루로만 만족을 누리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② 그리고 죄악을 분별하여 지옥 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죄짓는데 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③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살이도 하루살이만큼이나 짧은 인생입니다.
욥은 말하기를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욥7:6) 라고 하였습니다.
이 짧은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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