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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왕같은 제사장 (벧전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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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왕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6~10




지난 주간에는 교회마당의 풀을 낫으로 깍고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낫으로 하니까 너무 진도가 안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드는 생각이 창고에는 예초기도 있고 휘발류도 한 통씩이나 있는데 내가 왜 낫가지고 이 고생을 하고 있지 ?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낫으로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나중에 장로님한테 예초기 쓰는 교육을 받고 예초기를 써 보려고 합니다. 나를 위해서 배워두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를 위해서 배워놔야 되겠더라구요. 다음에는 예초기를 서 보려고 합니다. 1년에 3번만 깍아주면 한해가 갑니다. 때로는 우리 마음밭이 잡초밭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예초기로 잡초를 깍듯이 우리 마음을 잘 다듬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시골의 생활은 잡초와의 전쟁입니다. 전원생활 하려고 하면 이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는 전원생활은 동화속에나 나오는 얘기입니다. 전원생활이 쉬운게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분의 글을 읽어보니까 그러한 잡초가 반갑고 귀하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중동지역에 여행을 갔습니다. 온 천지가 모래사막인데 그 모래밭에 군데군데 잡초가 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래사막 가운데 난 잡초가 그렇게 반갑고 귀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천덕꾸러기가 다른 데에서는 귀하고 요긴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사장 역할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제사장은 12지파를 책임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9절.



구약에서 제사장의 옷을 보면 단순하게 까운 하나 걸쳐 입는 것이 아닙니다. 속옷도 있고 겉옷도 있고 머리에 쓰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교황이나 추기경이 입는 옷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도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옷과 머리에 관을 썼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입는 옷을 에봇이라고 합니다. 에봇위에는 어깨띠가 있는데 거기에는 보석을 박아놓고 12지파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12지파의 이름을 어깨에 걸고 제사를 집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제사장의 어깨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2지파를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도 새벽마다 기도하는데 공식처럼 정해져 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서기도하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아침마다 컴퓨터를 켜고 뉴스를 보면 별의별 사고와 사건이 다 있습니다. 이해도 안되고 황당하기도 한 사건과 시고들이 너무 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가족과 성도들이 이러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의 기도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가정의 제사장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 가정의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 가족의 이름을 어깨에 걸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제사장입니다.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까 자기는 양복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걸 내야 돼? 말아야 돼? 그러면서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년에 은퇴라고 합니다. 이것이 가장의 무게입니다. 사직서 던지고 나오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면 집에 있는 처자식은 누가 책임지나요? 그래서 내지를 못하는 겁니다.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가장이라는 무게때문에 쉽게 행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어깨에는 12지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위해서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백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사장 된 우리의 어깨에는 누가 있습니까? 우리의 어깨에도 우리의 가족과 성도들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내 가족의 제사장입니다. 집안 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9절 말씀을 다시 한번 더 읽겠습니다.



제사장의 옷에는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앞가슴 쪽에 주머니가 있어서 거기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날에도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제사장의 앞가슴 주머니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림과 둠밈의 용도는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도구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석에서 말하기는 주사위 같은 것을 넣어 두고 그때그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주사위를 꺼낸서 보는 그런 용도였을 것이라고 추축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서 점을 치는 사람들이 점을 치는 행위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는 직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 이것을 찾는 것이 제사장의 역할이었습니다.



매일 한 번씩 우체부가 다녀갑니다. 그러면 오토바이 타고 와서 편지함에 우편물만 두고 가면 끝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체부로서는 100%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체부가 편지를 뜯어서 보고 이런 말은 어려우니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쳐서 전해 주면 그건 우체부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체부는 그냥 전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도 자기의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된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 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이 우선입니다.



중국 심양에서 온 이순희 집사님이 다시 본국 중국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자세히는 얘기 안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결국 코로나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입이 안생기는 것입니다. 공장들이 문을 닫고 위축이 되니까 일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심양에 들어가면 그래도 거기에는 땅도 있고 집도 있는데 더 이상 수입이 없는 한국에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순희 집사님이 늘 하신 말씀이 있어요. 성은교회에 인생을 마칠 때까지 다니시겠다는 얘기를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중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하고 다짐을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저는 김포에 와서 여러 목사님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는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이 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목회 마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말한 분들은 절대로 그 교회에 은퇴할 때까지 있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그말 한 분들은 다 중간에 그만뒀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을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70에 은퇴할 때까지 있게 될지 중간에 그만둘지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지 목사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0까지 이 교회에서 목회할 겁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이 아닙니다. 70까지 있게 될지 없게 될지를 누가 결정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말을 제일 싫어하셨던 것 같아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면 감사함으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 때와 그 시를 우리가 알 필요가 없어요. 그 때와 그 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오늘도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제사장 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가정의 나아가는 길이 맞는지, 우리 인생의 결정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여기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제사장은 성결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머리에 쓰는 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서 교황이나 추기경들을 보면 머리에 쓰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도 머리에 관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관에 글씨를 새겨 넣었습니다. 글자의 내용은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나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는 성도들이나 필요한 것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건 제가 설거지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주부들이 집에서 매일 하는 것이 설거지입니다. 그래야 다음에 그릇을 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밥을 퍼서 먹을 때에 깨끗하게 설거지가 된 그릇에다가 밥을 담아 먹습니다. 설거지도 안된 그릇에다가 밥을 담아 먹지는 않아요. 즉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다음 번에 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성결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나갈 때도 성결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나가서 적들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거 하고 성결하게 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결을 요구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겠다는 사인입니다. 밥을 담아 먹을테니 깨끗이 닦아 놓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사용하려고 하니 너는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려고 하면 먼저 기도를 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려고 하면 먼저 감동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아이들에게 나쁜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어디가서 배웠는지 나쁜 것을 배워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은 그렇게 가르치고 주입시키기가 어려운데도 나쁜 것은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고 익히는지 모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죄악된 길로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잘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악에서 건져주십시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길에 쉽게 발을 들여 놓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여호와께 성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논밭에 곡식과 가라지를 보고 농부가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가라지를 뿌린 적이 없는데 가라지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대답했습니다. 악한 자가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사단 마귀가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위에 바로 서서 사단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가만히 놔둬도 잘 자라는게 잡초입니다. 그러므로 시골에 살려면 풀을 깍는 작업은 필수입니다. 가라지를 뽑듯이 잡초를 깍듯이 우리 가운데 있는 악을 베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호와께 성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산제물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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