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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사람 (겔37:1-10)

본문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사람 겔37:1-10, 행2:1-13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의 목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목공소에서 일하면서 늘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목공소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살다니, 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한 걸까?’ 이러한 열등의식, 반항, 원망이 쌓여 있었음으로 그의 삶은 무의미한 것이었고, 또한 그에게는 소망이란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 문득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은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거듭난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의 마음은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는 강렬한 소망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50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들여 교회를 짓고, 신학공부를 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바로 지금도 성도들 가운데 널리 불리어지고 있는 ‘이 몸의 소망 무언가’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면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주님 영광을 드러내는 영광스런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오늘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생명력이 있습니다. 날선 검 같아서 잘 못된 것을 도려내고 수술하여 새 살이 돋게 하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구약 본문 겔37:4에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여기 저기 흩어진 마른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하니 뼈들이 연결이 되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다고 본문에서 말합니다. 다시 대언하니 생기가 들어가 생명 있는 군사가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흩어진 마른 뼈의 모습은 당시 회복이 불가능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요,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타락하여 보기 흉한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져 타락하게 되면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마른 뼈처럼 생명이 없고, 전부 바싹 말라져 있습니다. 은혜도, 사랑도, 인정도, 기쁨도, 감사도, 소망도, 긍휼도 다 말라 윤기가 사라집니다. 보기에도 흉한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죄가 깨달아져 회개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용기가 생깁니다. 결단력이 생깁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인생이 살아납니다. 가정이 살아납니다. 사회가 살아납니다.


말씀은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막아주고, 범죄 하지 않게 힘을 줍니다. 말씀은 위로와 희락과 소망을 줍니다. 환난 많은 세상에서 슬피 울 때 말씀이 위로해 줍니다. 즐거움을 줍니다. 삶의 소망을 줍니다. 시 119:50에 보면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무에서 유가 생깁니다. 질병이 치유되기도 하고, 귀신이 떠나갑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어지러움과 혼돈이 있는 곳에 질서가 생깁니다. 신약 본문에 성령 강림이 일어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후반부를 보면 성령 충만한 베드로를 통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되었고,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죽인 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하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마치 불가능해 보이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난 것처럼 사단의 종노릇하며 영적으로 해골 같은 자들이 주를 믿고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변화가 일어난 것 입니다.


하나님 알기 전에는 사는 것이 공허와 어둠뿐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삶의 목적이 생기고,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게 됩니다.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죽음 이후에도 기대가 되는 소망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 속에서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믿고 말씀을 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이 용기를 잃지 않고 타이피스트가 되어 어느 회사의 비서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몇 달 근무를 하다가 이름 모를 병으로 손가락 끝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저곳 손가락 마디를 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가락을 자르고 무서운 절망으로 누워있는 이 부인에게 목사님이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옵니다. "하나의 문이 닫혀 질 때마다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퇴원을 하자 이 부인은 회사의 임원으로 발탁되어졌고 경비 분석가가 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금봉투에 감사의 내용을 적어 강단에 올렸습니다. "내 손가락이 잘려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이제는 내 곁에서 모든 일거리가 떠났구나. 내 아이들을 어떡하나 염려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정지표시가 아니라 방향 표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생명력 있는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 말씀에 순종함으로 놀라운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성령의 생기가 들어올 때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겔37:9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했습니다. 여기 ‘생기’ 란 히브리어로 ‘루아흐’ 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생기가 우리의 참 생명과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생기가 없는 마른 뼈들에게 "생기야 사망을 당한 자들에 불어서 살게 하라" 고 선포했을 때,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고, 그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다귀의 모습은 허물과 죄로 죽은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살아납니다. 죽은 심령. 죽은 양심이 살아납니다. 흩어진 뼈들이 서로 연합이 이루어진 것처럼 분열된 마음이 하나로 뭉쳐집니다. 믿음이 살아나고, 기쁨과 감사가 살아나고, 담대함이 살아나고, 능력이 살아나고, 사명이 살아나고, 소망이 살아납니다. 슥4:6에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으나 오직 성령의 역사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것이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비겁한 베드로를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고,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기꺼이 순교자가 되게 한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신약 본문 행2:2-4에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당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를 따라 열흘 째 함께 모여서 열심히 기도할 때였습니다. 오순절 날 ‘강한 바람’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으로 그들 가운데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때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쳤습니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엉겁결에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두려워하고, 낙심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와 주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한 바람처럼 놀라운 능력을 받았습니다. 담대해 졌습니다. 믿음이 불처럼 뜨거워지고,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칠 수 있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변화된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의 마음에 역사하게 되니 예배, 말씀 공부, 교제, 구제,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재산을 팔아 나누어 주었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였습니다.


마치 가전제품에 전기가 들어가야 힘을 발휘하듯,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성도의 삶에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정전이 되면 모든 전기제품이 무용지물이 되듯,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는 성도는 무력하게 되고 맙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아무리 개망나니 같이 소망이 없는 사람도 새롭게 변화가 됩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 된 눈으로 찾아온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습니다. 그걸 팔아 술을 마신 그 사람은 바로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20년 후,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는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습니다.“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 목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볼 때 폐품 같고 불량품 같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다시 드러내는 놀라운 창조주이심을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능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의의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구약 본문 겔37:10에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했습니다. 마른 뼈는 생명이 없고, 힘도 없으며, 아무 쓸모도 없고, 보기만 흉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성령으로 힘 있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십자가 사건 이후 한 때 무기력 하고, 슬픔과 절망감에 빠졌던 제자들과 성도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을 받은 이후 복음을 증거 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도 갇히고, 큰 박해를 받았지만 그들은 주저함 없이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박해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진 무리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믿는 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성령 강림의 사건이 있을 때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용하는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어떤 이들은 기이히 여기고, 어떤 이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비방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처럼 신비한 일들이 따르게 됩니다. 어떤 분이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방언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유창하게 나오는지 진짜인가? 가짜인가? 겁이 나더랍니다. 이 분이 하나있는 동생의 구원을 위해서 늘 기도했는데 이태리 로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동생에게 무슨 일로 전화를 하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방언이 나오더랍니다. 엉겁결에 된 일이라 중지도 못시키고 방언이 끝났는데 동생이 연방 놀라면서 “누님! 뭐라고요? 뭐라고요?” 하면서 놀라더랍니다. 그래서 “얘야 미안하다. 그걸 방언이라고 하는데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냥 성령 받고 난 다음 내 입에서 나오는데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너에게 전화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전화에 방언이 나왔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아니 미안할 것 없어요. 누님이 분명한 이태리 말로써 나보고 뭐라고 말씀했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너희 죄를 용서하고 너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니 더 지체하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 분명하게 이태리어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누님은 이태리어를 한글자도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태리어를 이렇게 잘합니까?” 그래서 “내가 이태리어를 어찌 알 수가 있겠느냐? 그걸 방언이라고 한단다.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서 방언으로 말한 것인데 나는 못 알아들어도 네가 알아들었으니 좋구나.” 그일 후로 동생이 그 누님께 일어난 기적을 보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이렇게 방언은 신비한 언어로, 성도들이 성령을 통해 주신 은사 중 하나로 하는 자에게도 듣는 자에게도 믿음을 주는 표적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사단에 속한 자가 되고 사단의 종노릇 하여 사단의 군사 중 하나로 자신은 물론 남에게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게 하고 타락하게 하는 불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도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선한 군사가 되어 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사람을 살리고 새우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과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거듭나게 합니다. 능력 있게 합니다. 마른 뼈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생명력 넘치는 사람으로, 강한 군사로 만듭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기독교인이 되려면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군사가 된 사람은 모든 사람이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더 이상 내게 소망이 없다.’ 고 말할 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얼마나 성공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또 나를 통해서 얼마나 크게 역사 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도구로 쓰임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의 지식과 지혜와 힘으로 살면 실패할 수박에 없지만 내 안에 말씀이 있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말씀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으로 충만하여 강력한 하나님의 선한 군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생기가 들어올 때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의의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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