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선물 (히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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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선물 (히 2:14-18)
***** IMF때 보육원에 열 살짜리 아이를 맡겼는데 지금은 18세가 되었습니다.
8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아버지를 만나고 싶으냐.’고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돈 없는 아버지라면 만나기 싫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소년에게는 아버지보다 돈이 더 필요했고 더 소중했던 모양입니다.
불행한 아이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돈보다 아버지가 귀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돈을 벌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서 모두 죽고 한 사람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보험금은 사망자만 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다른 자녀들은 평생을 먹고 살아도 남을 만큼 보상금을 탔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덕분에 돈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런데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아무 보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사고로 몸을 다쳐서 돈벌이도 못하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 집 아들들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죽고 보상금을 많이 탄 사람이 큰 선물을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그 일로 힘든 삶을 살게 되었지만 살아 돌아온 아버지를 얻은 사람이 큰 선물을 받은 것입니까?
제대로 된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도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이 더 큰 선물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탄절이 되면 누가 더 좋은 선물을 받았는지 서로 비교하고 자랑합니다.
어른들도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는지 자랑합니다.
부자가 된 것을 자랑하고, 성공한 것을 자랑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선물입니까?
예수님 자체가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어주신 것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 예수 믿는 것, 믿음 주신 것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선물이 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창시자를 신이라고 부르는데 있습니다.
유교에서 공자를 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격화시켜서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정통유교에서 공자는 신이 아닙니다.
공자는 자신을 신이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신이 아닙니다.
불교가 토속종교와 결합되면서 신격화시킨 것입니다.
불경 전에 어디를 보아도 부처가 신이란 말은 없습니다.
마호메트도 자신을 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창시자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창시자 이신 예수님만이 신이십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신격화시킨 것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 이로라.”(요 10:32-33절)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신비한 일입니다.
무슨 이유로 신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야 했나?
그 이유를 오늘 말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하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고픔을 느끼셨습니다.
목이 마른 것도 느꼈습니다.
피곤하셔서 잠이 들기도 하셨습니다.
지성도 우리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배워서 지성이 점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정상적인 발육과정을 통해서 몸이 성장했습니다.
성장하기도 하셨고 분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사랑하기도 하셨고 분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어둡고 영적인 것을 볼 수 없어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신기한 사실을 바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건을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세상에 그와 비슷한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머니들과 요즘 어머니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요즘 어머니들은 옛날 어머니들보다 훨씬 헌신적입니다.
아이들이 성공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못할 짓이 없이 용감합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들이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 못하는 것 참아주지 못합니다.
공부를 잘하도록 도와주는 데는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만 공부 못하는 아이를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모가 많지 않습니다.
자식이 자신의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일등 하다가 중간으로 떨어지면 함께 죽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지극히 헌신적인 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자식인데도 자식이 내려간 낮은 자리에 함께 내려가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장래보다는 자신의 자존심 때문입니다.
학교 때 나보다 공부 못했던 누구의 집 아이보다 자기 아들이 공부를 못하면 못 참습니다.
학교 때 자기보다 공부를 잘한 친구보다 못해도 못 참습니다.
나도 맨 날 지고 살았는데 너라도 이겨 주어야지.
높아지는 것, 위대해지는 것,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낮아지는 것은 못합니다.
견디어 내지 못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위해서 학비를 대느라 밤새 잠자지 않고 일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죄를 짓고 경찰서에 갔을 때에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경찰들에게 무릎 꿇고 비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모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죄를 지었을 때에 함께 그 죄에 책임을 집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가 되시기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하늘 영광을 두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죄인들이 당해야 할 부끄러움을 당하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가진 예수님이 영광을 스스로 버리시고 벌레 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벌레 같은 인간이 되셨으니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으로 하늘의 보좌에 계시면서 천사들의 수종을 받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존하신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천사들보다 낮게 되시고 부서지기 쉽고 병들고 죽어야 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았습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고통과 가난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2. 왜 하나님이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까?
첫째,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신은 원래 죽을 수 없습니다.
신이 죽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연약한 인간이 되셔서 고통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수치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으셨는데 이 죽음은 사망의 권세를 가진 사단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가진 사단을 멸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신은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몸을 입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이 죽을 수 있느냐고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바로 예수님이 죽으시기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사망권세를 가지고 인간을 괴롭히는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렸습니다.
마귀가 사망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마귀가 사람의 생사를 선택할 권리를 가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고 죽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신 32:39)
사단이 사망의 권세를 가졌다는 뜻은 인간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죽음이 들어왔는데, 사단이 그 죽음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남의 아내를 강제로 범해 놓고 남편에게 알린다고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것처럼 사단은 사람을 유혹해 놓고 사망의 자리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우리가 받을 저주와 고통을 받았을 때에 사단의 힘은 사라졌습니다.
사망으로 위협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사단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위해서는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는 방법은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통하여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드는 사단의 권세를 멸하시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둘째, 죽음의 공포에 빠져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본문 15절에 보니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망의 공포를 이기고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줄기세포를 비롯한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가히 놀랍습니다.
굉장한 신약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거두신 승리만이 참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시고 죽은 다음에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 주셔서 예수 안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늘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 16절에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 지은 천사들은 버려두셨습니다.
그러나 죄 지은 인간은 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건지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건져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붙들어주십니까?
대제사장이 되셔서 붙들어주십니다.
17절에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그랬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대신 용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제사장들은 죄 값으로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 대신에 짐승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제물은 죽여서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물이 되셔서 죽으셨습니다.
죽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2) 제사장들은 자기들도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먼저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3) 대제사장은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에 모든 사람들을 모든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받은 시험을 함께 받으시므로 돕습니다.
본문 18절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하셨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물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받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하여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시험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고 시련을 당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걸으셨기 때문에 그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과 다릅니다.
천사들은 고통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겪는 모든 시련과 아픔을 다 겪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에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죽음으로 사람을 위협하여 자기를 순종하게 하는 사단의 권세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하는 모든 시험과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돈 많은 것, 공부 잘 한 것, 잘 생긴 것, 자랑하지 말고 예수 믿게 된 것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선물은 예수님이십니다.
가장 귀한 재산도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이 아름답고 복된 성탄절, 이 날에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복된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구원의 은총을 가슴 깊이 새기고 주님의 탄생을 찬양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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