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리고 준비해야 할 재림 (마25:1-13)
본문
정신차리고 준비해야 할 재림(마25:1-13)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10처녀의 비유입니다.
10처녀의 이야기는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일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결혼식을 저녁이나 한 밤중에 했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저녁에 했다는 것이고요, 또 한 가지는 하루가 저녁에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시간개념은 저녁 6시가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였습니다.
하루의 시작에 맞추어 결혼식을 거행하며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에 왔을 때 시작이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신부는 신랑이 온다는 전갈을 받으면 같이 있던 친구들과 함께 신랑을 맞으러 갑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처녀는 바로 신부의 들러리였습니다.
이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처녀들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고 등불이 없으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결혼식은 며칠 동안 계속되기도 하였는데 일단 문이 닫히면 더 이상 사람들을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밤중이기도 하고 그 밤중에 강도나 도적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출입을 통제하였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결혼식의 이야기를 통하여 재림의 교훈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약속 중에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아주 중요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이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 재림의 약속을 믿고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오시든지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준비가 된 삶을 살아갈 때 주님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중요한 주님의 재림을 유대인의 결혼식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유대인의 결혼식과 주님의 재림에 많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10처녀의 비유로 알려진 유대인의 결혼식과 재림의 공통점을 통하여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마지막에 둘로 나누어진다는 점입니다.
10처녀의 비유에서 신부의 들러리로 온 10명의 처녀들은 마지막에 5:5로 나누어졌습니다.
다섯 명은 신부와 함께 잔치 집에 들어갔고 다섯 명은 잔치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잔치 집에 들어간 처녀들은 결혼식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지만 들어가지 못한 처녀들은 밖에서 안타깝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 같이 신랑을 기다리는 똑같은 신부의 들러리였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5명은 잔치 집에 들어가고 다섯 명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처녀들은 넓게 보면 우리 인간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고 좁게 보면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 처녀들의 운명이 갈라지는 것처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도 인간의 운명이 둘로 나누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세 개의 비유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세 번째 비유에서 주님은 마지막 때에 인간이 둘로 구별되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32절 말씀에 보면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모든 민족이 주님 앞에 서게 되고 주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게 됩니다.
양으로 구분된 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34절)
반면 염소로 구분된 자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41절)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 영구적으로 결정되어지는 날입니다.
재림당시에 살아있는 자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자들도 다시 부활하여 주님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 받게 됩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주님의 심판을 받아 둘로 나누어지고 두 가지 삶으로 결정되어집니다.
양과 염소로 구분되어지고 천국과 지옥으로 결정되어지고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저주로 결정되어집니다.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정 받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기준으로 양과 염소로,
천국과 지옥으로,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저주로 나누어지겠습니까?
성경은 그 기준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단순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으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뿐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신랑이 더디 온다는 공통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결혼식에서 처녀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신랑이 더디 옴으로 다 졸며 잘 새’였습니다.(5절)
신랑이 더디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대표적인 것이 선물에 대한 흥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부 측에서는 좋은 신부라는 것을 내세워 더 많은 선물을 요청하였고
신랑 측에서는 그렇게 많은 선물은 줄 수 없다면서 격렬한 수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 격렬한 흥정은 신부 측의 친척들이 그만큼 신부를 귀하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꼭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신랑이 더디 올 때 기다리던 들러리들은 지쳐서 졸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내용 중에 하나가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먼저는 그 때가 언제인가? 하는 시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일관적으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과연 재림이 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재림한다고 한 지가 벌써 2천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오시는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이 문제가 대두되었고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짐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오늘날 재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도 재림에 대한 지연입니다.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는데 무슨 재림이냐?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재림이 지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신랑이 더디 왔습니다. 그래서 들러리들도 다 졸며 잤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안 온 것이 아니라 분명히 왔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후3:9)
주님의 재림은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분명히 더딘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림이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 속에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재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더딘 것 같이 보일지라도 재림은 분명히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이 더딘 것을 이유로 재림의 귀한 말씀을 소홀히 여기거나
믿지 않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바랍니다.
재림은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특별히 재림이 더디다는 이유로 우리가 재림을 준비하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종말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저와 여러분이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면 저와 여러분들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50년 이내에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준비하지 못하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하다가 재림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2천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정말 급하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재림에 대한 준비를 내일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당장 믿음을 일깨우면서 열심을 내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으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잘 준비하여야 들어간다는 공통점입니다.
10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한 것은 등잔불이었습니다.
등잔불로로는 어둠을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등잔불보다는 횃불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떤 것이 되었든 모두가 등잔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었던 것이 신랑이 생각보다 더디 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자 등잔속의 기름만 갖고 있던 자들은 기름이 다 떨어져 불이 꺼지고 더 이상 붙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처녀는 등잔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기름을 준비하였고
기름을 준비하였기에 꺼진 등잔을 다시 붙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기름이 무엇인가? 그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는 줄 압니다.
기름이 무엇인가 그것보다는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등잔은 보이는 것이고 기름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이는 신앙생활, 겉으로의 신앙생활, 외적인 신앙생활을 가지고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10명의 처녀를 주님 앞에 서게 될 모든 인간을 상징하고 또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10명의 처녀가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고 할 때 이것은 심각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 가운데서 5:5로 나누어진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나 혼인 잔치의 비유나 양과 염소의 비유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엄격히 보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5:5로 나누어지는데 어떤 사람들이 미련한 처녀들이고 염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형식적인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믿는 것 같은데 교인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말씀입니다.
겉으로의 신앙생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가지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진실하고 확고하게 믿는 믿음을 가질 때, 믿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당황하게 된 처녀들은 옆에 있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자들에게 같이 나누어쓰자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처녀들은 같이 쓰기에 부족할 수 있으니 가서 기름을 사오라고 합니다.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도착하였고 문은 이미 닫혀져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름은 우리 각자가 준비해야 하고 각자가 채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빌릴 수 없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눠 쓸 수가 없습니다.
타인의 공로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 부모가 훌륭한 신앙인이었다고, 내가 거기에 편승해서 천국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에 다니고 훌륭한 주의 종이나 부모 아래서 신앙 생활한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등불 활활 잘 타오르는 것 보고 내 신앙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등불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매년 수능시험에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적발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휴대전화를 단순히 소지했기 때문에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경우입니다.
부정행위로 간주되면 당해 수능시험은 무효가 되고 다음해에도 수능에 응시할 수가 없고 그 다음해에 수능을 보려면 40시간의 인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금지한 휴대전화를 갖고 있을까요?
어떤 학생은 아버지 휴대전화가 들어있는 형 옷을 입고 갔다가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시험이 끝난 후 휴대전화를 소지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억울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교육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교육부가 단호한 이유는 수차례 사전에 고지를 했고 그리고 시험 시작 전에 감독관이 휴대전화 제출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생 가장 중요한 시험을 치르면서 수차례 고지한 사실을 귀담아 듣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 직전에 다시 경고했는데도 듣지 않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신 차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정신 차려야 할 줄 압니다.
재림에 대한 약속이 그렇게 많은데도 이 말씀을 믿지 못하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마지막 심판 때에 어떤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재림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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