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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는 것이 빛과 소금입니다 (마5:13-16)

본문

이렇게 사는 것이 빛과 소금입니다 / 마 5 : 13-16


 


남미 우루과이의 작은 성당 벽에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있습니다.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우리라고 하지 말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여라고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하지 말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라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라고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라고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말라.


이것은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면서 입으로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말씀을 주시기 전에 팔복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팔복을 알지 못으면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소금과 빛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팔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에게 주어졌지만 씨앗과 같이 주셨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해 그것이 발아되고 자라서 꽃이 피어 열매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러한 마음과 삶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서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성령안에서 끊임없이 가져야 할 마음이요 태도입니다.


그러한 마음과 삶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팔복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그 말씀 안에서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존재요,


어린 아이처럼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 앞에 돌아온 자들이 영적으로 파탄되어 아무 것도 없는 거지임을 깨닫는 것이고,


어린 아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을 도우심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애통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하나님을 향해서 우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없으니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필요하면 웁니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악을 쓰며 울면 부모가 달려와서 해결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았지만 연약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없습니다.


세상 유혹과 육체에 남아 있는 죄 성으로 인하여 자꾸 죄를 짓고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고 일어서지만 또 넘어집니다.


그래서 웁니다. 변화되지 않는 자기의 영혼을 바라보면서 가족들의 영혼과 이웃들의 영혼을 바라보면서 웁니다.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선교지를 생각하면서 우는 것입니다.


 


일평생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우는 사람들이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온유해 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온유해 질 수 없습니다.


계속되는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온유해 지는 것입니다.


벌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말은 사납고 힘이 좋고 고집이 셉니다.


 


그런데 훈련을 통해 길들이면 야생의 기질이 사라지고 온순한 기질을 갖게 됩니다.


길들여진 야생마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순해짐으로 주인의 의도에 자기 뜻을 굴복시켜 순종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할 때 공격을 받을 때 힘들지만 반격하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갚아 주기를 하나님께 호소하고 맡기고 부드럽게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품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하여 변화를 받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온유해 질수록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하여 주림과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의로 충만하지 않으면 자기 의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불의하게 되어 우리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을 실망시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자녀들은 그 신분에 맞게 살려고 간절히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우리 힘이나 의지로 되지도 않고 지속되지도 않기 때문에 날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성령님은 예배를 사모하게 하시고 말씀을 잘 먹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 충만하게 되어 바르게 보고 듣고 말하고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의로 충만하게 되면 긍휼의 마음과 눈을 가짐으로 긍휼한 사람이 됩니다.


긍휼은 ...... 자비, 인애, 친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긍휼의 반대는 무자비, 잔인, 포악, 무정,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불행한 자에 대한 동정하는 마음과 함께 손을 펴서 돕는 것입니다


긍휼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타인 중심이기 때문에 긍휼한 마음을 가지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못함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됩니다. <눅10:33>


긍휼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있고 없음을 떠나 누구에게든지 베푸는 것입니다.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긍휼로 지금도 이러한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 우리 마음이 충만해지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됩니다.


그런데 만물 중에서 최고로 더러운 곳이 죄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인데


이러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피가 마음에 뿌려지고 새롭게 태어남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딛1:15>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 마음과 새 영을 받게 되고, 그곳에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는 마음의 성전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보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삶을 구별되게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불의로 인하여 마음이 더러워짐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리고 목마름으로 의를 구함으로 의가 충만해지면 마음도 청결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화평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과 화평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각 사람의 몫으로 무엇보다도 힘써야 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먼저 화평해야 화평하는 삶을 살 수가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을까요?


영적파탄 자임을 알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만을 의존해야 합니다.


자기 육체에 남아있는 죄성과 자기 무력함을 깨닫고 애통해야 합니다.


자기 고집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를 받는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림과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의가 충만하게 되면


이웃들의 영혼을 긍휼이 여기며 자비를 베푸는 삶이 되고


마음이 청결해짐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교제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화평하게 되고 이웃들과 화평하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그 의를 입은 자답게 합당한 삶,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일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워 주시는 의를 힘입어 날마다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을 위해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살면 핍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핍박은 우리의 허물이나 과실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 의를 추구하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는 자들의 핍박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지만 믿음으로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핍박은 있을 것이나 팔복 안에 거하는 성도들은 승리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것입니다.


 


@소금은 부패 방지보다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존재성, 정체성에 대한 것을 말해줍니다.


소금의 특성은 짠맛이므로 짠맛이 잃어버리면 그것은 소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소금이 되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모여서는 주시는 은혜를 통해 자기의 정체성 소금임을 확인하고 흩어져서는


세상에서 팔복의 상태로 살아감으로 선한 영향력을 소리 없이 은밀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소금은 들어가는 곳마다 소리 없이 자기를 희생시킴으로 자기는 감춰지고 상대방에겐 영향력이 나타나


기쁨을 주고 유익을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지 녹지 않고 그대로 덩어리로 남아


영향력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땅에 버려지게 됩니다


 


마6:2-5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세상속에서 팔복의 상태를 은밀하게 나타내지 못할 때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상태를 잃어버리는 것, 애통함을 상실하는 것,


온유함을 잃어버리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아 불의와 타협하는 것,


긍휼이 여기지 않는 것, 마음이 청결치 못하는 것, 화평하게 하지 않는 것,


의를 위하여 살지 않음으로 핍박을 받는 것이 없다면 거룩의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두움에 빛을 나타내는 존재입니다.


빛에 원천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밝히는 발광체입니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는 발광체가 아니라 받은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시키는 반사체입니다.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몸된 교회에 빛을 주심으로 교회는 그 빛을 반사시키는 것이고


성도는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빛을 주심으로 그빛을 반사시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일부로 빛을 숨기지 않거나 방해하지 않을 때 빛은 자연스럽게 비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로 빛을 숨기고 말 아래 둔다면 빛은 비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숨기는 목적은 어두운데 빛을 비추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손해를 보니까 감추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핍박을 두려워 하니까 일부러 감추는 것입니다.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랑과 믿음이, 말씀과 복음이 충만하면 숨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냄으로 살리는 역사와 함께 핍박이 따라옵니다. <베드로와 스데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의 현장에서 빛을 비춤으로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하고 다


드러나고, 등경위에 두는 것이 됨으로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을 가진 성도가 어디에 있든지 그 빛을 비춤으로 그곳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갈 5:8-13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6절에서도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 빛을 착한 행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착한 행실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선의 개념이 아니라


팔복의 상태에서 나오는 성도들의 선한 열매들이 착한 행실입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애통한 마음으로 자기 영혼을 바라보며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우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의를 갈망하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베푸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에 힘쓰고 이웃들과 화평을 위해 힘쓰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도 낙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사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그래서 소금과 빛의 결론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소금처럼 은밀하게 거룩한 맛을 내는 존재들이며


복음의 선한 빛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 맛을 잃지 말고 빛의 기능을 감추지 말고


선한 영향력을 끼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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