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마13:31-33)
본문
작은 것이 아름답다
마태복음13:31-33
오늘 본문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인데 이 비유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을 유익하고 아름답게 하는 역사의 시작은 아주 작다는 점입니다.
겨자씨는 유대인들이 가장 작은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표현할 때 ‘새발에 피다.’ ‘눈곱만하다’는 말을 쓰는데요, 유대인들은 겨자씨와 같다는 말을 썼습니다.
가루 서 말속에 들어가는 누룩도 아주 적은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이 궁극에는 큰 역사를 이루어 세상을 아름답게, 풍성하게 한다는 것이 겨자씨와 누룩의 공통점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 비유가 천국의 비유라는 점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천국은~~’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천국을 말씀하실 때 그 중에서도 천국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확장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오늘 비유의 내용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다음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아름다운 나라일 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는 이미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이 천국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할 사명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 천국을 어떻게 확장하며 어떻게 키워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겨자씨와 누룩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하는 저와 여러분들과 교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할 사명자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사명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명 앞에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약함입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힘이 없다. 나는 능력이 안 된다’는 연약한 생각이 우리의 사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생각에 당연히 사로잡혔으리라고 봅니다.
12명의 제자들의 모습은 한 마디로 가장 연약한 자들의 집합체였습니다.
대부분이 어부출신이었고 세리와 같은 죄인도 있었고 배운 것도 없었고 재정적인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외국에 나가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당연히 회의가 들고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오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은 아주 작은 존재라도, 미미한 존재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확장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세상은 정말 여리고의 성벽과 같이 높고 든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점령할 수 없고 함락시킬 수 없는 난공불락 같은 존재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오늘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고 능력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이루고 확장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작은 겨자씨와 누룩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확장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작은 것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겨자씨와 가루 서 말속에 들어가는 누룩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을 상징하는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겨자씨는 나물을 넘어서서 큰 나무를 이루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일 만큼 되었고 적은 누룩은 온 밀가루를 발효시켰습니다.
작은 것이 이렇게 큰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말입니다.
독일 출신의 영국경제학자인 슈마허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 입니다.
1995년에는 이차대전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0권에 선정되기도 했던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슈마허는 이 책에서,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있는데 계속해서 큰 것만을 추구하면 자기 파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작은 일, 작은 조직, 작은 지역과 같은 작은 단위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인간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큰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작은 것들의 중요성을 아주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대표적인 말씀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유일한 기적입니다.
사복음서에는 여러 가지 기적이 나오는데 그 중에 오병이어의 기적 하나만 4복음서에 다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만큼 복음서 기자들에게 의미 있고 중요했던 기적으로 인정받았던 것 같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명을 먹였다는 이 기적의 시작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한 소년이 갖고 있던 작은 도시락이었습니다.
그 도시락 안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먹으면 되는 한 끼의 식사량이었습니다.
빌립과 안드레는 이 작은 도시락을 주님께 바치면서 이것이 오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작은 도시락으로 5천명을 먹이신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장정만 5천명,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최소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12바구니에 거두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락이 주님의 손 안에 들어갔을 때 이런 엄청난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했던 작은 것은 더 이상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 역사를 이루는 기초가 되고 시작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작은 것이 힘이 있고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작은 자 한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고 도시락 하나가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온 애굽을 살릴 수 있었고 온 가족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광야생활을 잘 이끌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겨자씨와 같고 작은 누룩에 불과할지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작은 것의 힘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겨자씨 비유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이렇게 크게 성장하고 나무로 클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겨자씨는 작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있었기에 싹이 나고 자라고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나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중생하고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중생하면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게 되고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속에 주님이 거하시게 될 때 비록 우리는 작은 겨자씨와 같은 부족한 자일지라도 주님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복음으로 구원받고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인 줄 믿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비록 겨자씨와 같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속에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요청으로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가실 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뒤에서 붙잡았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붙잡기만 해도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12년 동안이나 애쓰고 수고했어도 낫지 못했던 혈루병이 깨끗이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알고 뒤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고 물으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나서서 하는 말이 ‘예수님, 수많은 사람이 밀고 밀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십니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고 찾으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말처럼 의도치 않게 손을 댄 자가 많음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음으로 손을 댄 여인을 찾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여러 사람들이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지만 구원받고 치료받은 자는 믿음으로 손을 대 여인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서 어쩌다보니 손을 댄 자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생명 없는 자, 믿음 없는 자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인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생명이 있고 믿음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기에 아무리 작은 겨자씨와 같다고 할지라도 능력 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품안에 늘 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주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포도열매는 나무에 달리지 않고 가지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가지에 포도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나무에 붙어있을 때 그래서 물과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을 때 아름답고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겨자씨가 생명이 있다는 말은 땅으로부터 영양분과 물을 흡수한다는 말입니다.
끊임없이 영양분과 물을 공급받을 때 겨자씨는 싹이 트고 순이 자리고 점점 커져서 새들이 깃들 수 있는 2, 3미터의 겨자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에게 늘 붙어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늘 동행하여야 하고 늘 깨어 기도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끊임없이 물과 영양과 은혜와 사랑을 공급받을 때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하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희생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3절은 누룩의 비유입니다.
누룩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서 말의 많은 양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가루 서 말은 100명분의 떡을 만들 수 있는 많은 양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밀가루를 부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적은 누룩입니다.
누룩은 밀가루를 부풀게 하고 맛있게 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누룩이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누룩 자신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 없어져야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겨자씨가 싹이 트고 자라고 나면 겨자씨는 죽어 없어져 버립니다.
자신이 죽어지고 희생될 때 거기에 많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고 온 가정이 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된 데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희생이 있게 마련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온 가정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영국이 바이킹의 후손으로 참 못된 민족이었지만 그들이 신사의 나라로 변화될 있었던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해적으로 살아가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이들은 신앙이 좋은 기독교 여인들을 잡아서 억지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 여인들이 자식들을 믿음으로 말씀으로 키웠기에 영국이 신사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의 피 흘림과 희생이 있었습니까?
선교사들의 희생의 피위에 이 땅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모든 인간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작은 겨자씨와 같은 존재, 적은 누룩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새들이 몰려와서 깃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작은 것의 힘을 믿으시고 주님주시는 생명을 간직하며 주님과 늘 동행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주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겨자씨와 누룩의 역할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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