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도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어요 (행16:16-18)
본문
우리들도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어요 /사도행전16;16-18(190120)
죽음의 예고
한 노인이 갑자기 염라대왕에게 불려갔습니다.
노인은 당황하면서 염라대왕에게 항의를 합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불러오면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요,
내가 정리할 것도 있고 죽음에 대하여 준비했다가 와야 하는 거 아니요.
예고라도 해주어야 지,
날씨도 예고 해주는데 왜 죽음은 예고하지 않는 것이요?”라고 따졌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이 사람 기가 막힌 사람이구먼.
내가 여러 차례나 예고해 주었지 않았오.
먼저 눈 밑에 잔주름이 있게 한 것이 일차 예고요,
머리색깔이 희어지게 된 것이 이차 예고요,
잔주름이 삼차 예고요, 목주름이 생기게 한 것이 다 죽음의 예고인데,
무슨 딴전을 피우고 되레 큰소리치는 것이요?”라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덧없이 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 자신이 “예수 안에 있는가? 예수 밖에 있는가?”가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아멘 아멘”감사하면서 천국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바로 삼위 하나님과 믿음의 선배들이 계시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P4.
사도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제2차 선교여행을 시작한다.
1차 선교여행을 할 때 복음을 전하면서 개척했던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아시아지역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사도바울이라 해도 성령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고, 감동을 주시지 않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니까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다.
바울은 “이상하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이렇게 복음이 증거 되지 않는 것일까? 왜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계속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 하려고 애쓰는데 일은 점점 꼬이고 선교사역이 진행되지 않는다.
바울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전혀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깨닫지 못하시자 직접 환상으로 바울에게 찾아오신다.
어느 날 바울이 선교사역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서 유럽 사람이 손을 흔들면서 “우리에게 건너와서 우리들을 도와주시오.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시오.”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환상을 보고나서 “아하...하나님께서 아시아가 아닌 유럽 땅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곧 바로 바울일행들은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서 유럽 땅으로 건너하게 된다.
터키 땅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바울일행은 그리스 땅 네압볼리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된다.
바울이 배를 타고 도착한 네압볼리에는 바울 도착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네압볼리(Neapolis)는 현재는 ‘까발라(Kavala)’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네압볼리에서 산을 넘어가면 고대 빌립보지역이 등장한다.
바울일행들은 네압볼리에서 산을 넘어서 빌립보지역으로 들어간다.
고대 빌립보지역은 로마군사의 요충지로서 군사와 시장경제의 중심지이다.
바울일행은 빌립보 성에 들어갔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회당이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 가장 먼저 회당을 세워서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는 민족이다.
그런데 회당을 세우려고 하면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어야만 회당을 세울 수 있다.
보통 하나님에 대한 숫자를 1. 3. 7, 12 라는 숫자로 인식하고 가르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숫자는 10이라는 숫자이다.
유대인들은 모든 조건들을 민얀(Minyan)이라는 조건, 곧 10이라는 숫자에 맞추어서 일을 진행한다.
남자아이들은 만 13살이 되어야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거행한다.
성인식을 한 유대인 남성 10명이 모여야 공식적으로 모세5경인 토라를 낭독하고, 기도문을 낭독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성인식을 한 유대인 10명 이상 모여야 공식적으로 회당을 세울 수 있다.
성인식을 한 유대인 남성 10인이 모이지 않으면 회당을 세울 수 없고, 공식적으로 모여서 토라를 낭독할 수도 없고, 기도문을 낭독할 수도 없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성전이나 회당이 없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강가, 냇가, 샘물터로 가서 토라를 낭독하면서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빌립보 성에는 군사와 시장경제의 중심지였지만, 유대인 남성 10인이 없어서 회당을 세울 수 있는 민얀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회당이 없는 것이다.
바울일행은 빌립보 성에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기도하면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강가로 찾아가는 것이다.
바울일행이 찾아간 그 강가에서 역시 기도하고 있던 루디아 여인의 일행들을 만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복음을 영접하는 이들도, 하나님의 감동도 일어나지 않아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되었는데, 빌립보 성의 강가에서 루디아 여인을 비롯한 여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자마자 성령의 감동이 얼어나고 곧 바로 루디아 여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바울일행은 루디아 여인의 집에 머물면서 빌립보 성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러면서 정한 시간에 강가로 나가서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것이다.
바울일행이 강가에 기도하며 예배드리러 갈 때마다 만나는 한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은 귀신에 걸려서 점을 쳐 주면서 주인에게 돈을 벌어주는 여종이다.
귀신에 걸린 여종은 바울일행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어쩌면 귀신 들린 여인이 하는 소리가 틀린 소리가 아니라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심히 괴로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맞는 말을 하면 좋은 일이지 않은가?
여인이 맞는 말을 하는데, 왜 바울이 심히 괴로워할까?
여인이 하는 말은 맞는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말을 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귀신들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바울일행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을 위해서 빌립보 성까지 찾아온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린 여인은 바울일행을 쫓아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맞는 말처럼 들린다고 하더라도 귀신이 하는 말은 옳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히 괴로워했다고 하면서 바울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D4.
① 귀신을 쫓아내 주시는 예수님.
귀신들린 여인이 계속 바울일행을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할 때 바울은 심히 괴로워하면서 여인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선포하신다.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했을 때 여인의 심령을 사로잡고 점을 치게 하던 귀신이 떠나게 된다.
바울은 귀신들린 여인을 처음 만났을 때 여인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귀신은 여러 날 동안 바울일행을 따라다니면서 바울일행을 괴롭히면서 힘들게 했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이 바울일행을 괴롭히지 않고, 힘들게 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었으면 여인에게서 쫓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귀신들이 계속 바울일행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여인에게서 쫓겨난 것이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원하지 않는다.
귀신들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가 선포되어지고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따라다니면서 방해공작을 하는 것이다.
귀신들은 방해공작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한다.
귀신들은 서로 투기하게 만들고, 시기하게 만들고, 다투게 만들고, 시험 들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원망하게 만들고, 불평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고, 시간을 지체하게 만들고, 차량이 고장 나게 만들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공작을 펼쳐나간다.
귀신들은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과 감정들을 만들어내면서 은밀하고 긴밀하게 방해공작하면서 마치 이런 일들이 우연하게,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들인 것처럼 꾸미면서 방해공작을 펼쳐나간다.
바울은 귀신들이 여종을 앞세워서 계속 방해공작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괴로워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② 자유와 해방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예수님.
여종을 사로잡고 좌지우지 하던 귀신들이 여종에게서 떠나게 되자. 여종의 주인은 더 이상 여종을 통해서 돈벌이할 수 없게 된다.
여종이 귀신에 의해서 점을 쳐 줄 때는 소위 말해서 “용한 점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수많은 무리들이 점을 보기 위해서 주인에게 찾아왔지만, 이제 귀신이 떠나고 나니까 용한 점을 칠 수 없게 된다.
주인은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바울일행을 관가에 고소해서 빌립보감옥에 가두는 악행을 저지른다.
주인은 바울일행을 빌립보감옥에 가두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인은 여종이 용한 점을 봐 주는 것 때문에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종이 용한 점을 봐 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여종에게 밥을 주고 옷을 사주고 잠잘 곳을 제공해 주면서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면서 자신의 돈을 써야 될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종이란 존재는 주인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종이란 존재는 주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에게 적당한 돈을 받고 팔아버리거나, 돈을 받고 팔 수 없다고 생각되면 버려버리는 것이다.
빌립보 성의 점을 봐주던 여인도 이제는 귀신에 들린 여종이 아니다.
그러니 주인에게 돈을 벌어 줄 수 있는 여인이 아니다.
주인은 여종이 필요 없게 된다.
필요 없는 여종을 계속 자기 돈을 써가면서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다.
주인은 여종을 팔아버리거나 버린다.
그러면 이 여종은 다른 사람의 여종이 되거나 주인에게 버림당했기 때문에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이 여종을 산 다른 사람도 이 여종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계속 데리고 다니겠지만, 본래 점을 치던 여종이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도 더 이상 필요성이 없는 여종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주인도 이 여종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결국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여인은 귀신에 들렸을 때는 온갖 무리들에게 용한 점을 쳐주면서 주인에게 돈을 벌어주면서 필요한 여종이었지만, 귀신이 나간 이후에는 주인에게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아서 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여인은 세상 주인에게는 버림을 당하지만, 새로운 주인이 생겨나게 된다.
만유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베풀어주시는 새로운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종에게 자유와 해방이라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하나님은 여종에게 옛날의 삶, 과거의 삶에 얽매여 살지 말고 새로운 현재와 미래의 꿈과 비전의 삶을 살도록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신다.
이 여인에게 새로운 주인이 되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 우리의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이 여종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주시기 위해서 이 여종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 주신 것이다.
세상 주인에게서 버림을 당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새로운 주인이 되어 주신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당하면 하늘의 신령한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
세상 주인에게서 온갖 모욕을 당하면 하늘 아버지의 위로와 사랑을 입는다.
세상 주인에게서 시험을 받으면 성령 하나님의 감동과 은혜를 입게 된다.
③ 빌립보교회의 일원으로 세워주시는 하나님.
바울일행이 유럽지역의 빌립보 성으로 찾아온 것은 빌립보 성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기 때문에 루디아 일행이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빌립보교회가 개척되어진다.
빌립보교회가 개척되면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세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진다.
빌립보성의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의 가족들과 빌립보 성에서 점을 쳐주면서 주인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던 귀신들린 여종과 빌립보감옥의 간수장이의 집과 그의 동료들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빌립보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바울일행을 더 이상 아시아에서 사역을 할 수 없도록 막으시면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걸쳐서 네압볼리로 건너가게 하시고, 높은 산길을 따라서 빌립보 성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먼저 자주옷감장사 루디아 일행에게 감동을 주시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세례까지 받게 하면서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도록 역사해 가신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 여인의 가족만 구원하는 것으로 모든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빌립보 성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빌립보교회가 부흥성장 하는 것이 주님의 거룩한 구령사역이기 때문에 바울일행에게 계속 강가로 나가서 기도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귀신에 걸려서 점을 쳐 주면서 주인에게 돈벌이를 시켜 주는 여종에게도 귀신을 쫓아내주시고 빌립보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역사해 가신다.
하나님은 빌립보감옥의 간수장이의 가정도 구원하여 빌립보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여종의 주인의 마음을 격동시키면서 바울일행을 빌립보감옥에 가두면서 이적을 베풀어서 간수장이 가정에도 감동을 주시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빌립보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역사해 가신다.
하나님은 바울일행으로 하여금 귀신들린 여종을 사로잡던 귀신을 쫓아냄으로서 여종도 구원받게 하시고, 빌립보감옥의 간수장이의 가정이 구원받고,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 이 여종은 귀신이 떠나고 자유인이 되고 싶었을까?
이 여인은 자신이 여종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귀신이 떠나고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고 자유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전혀 없었던 여인이다.
이 여인은 자기 스스로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었던 여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빌립보 성으로 보내서 이 여인을 얽매이고 있는 귀신을 내쫓아내도록 역사하시면서 이 여종을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 여종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딸로 세우시기 위해서 거부할 수 없는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면서 여종을 하나님의 소중한 딸로 삼아주시는 것이다.
이 여인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권세로 귀신이 떠나서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 여인이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고, 주인에게서도 버림을 당하고 자유인이 되고, 빌립보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된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새워가도록 직분을 세워주신 것도 하나님의 전폭적인 은혜와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빌립보 성의 점치던 여인이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의해서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고, 주인에게서 버림을 당하고 빌립보교회의 일원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들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주권에 의해서 지금 주님의 몸된 교회의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권찰로, 간사로,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것이다.
L4 & B4.
하나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주권에 의해서 귀신에 들려서 용하게 점을 치던 여종이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고, 육신의 주인에게서 버림을 당하고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몸된 교회, 빌립보교회의 일원이 된 것처럼 우리들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주님, 우리의 예수님이시다.
담임목사도, 부교역자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어떤 직함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목사님도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종이고, 장로님도 종이고, 권사님도 종이고, 집사님도 종이고, 어떤 직함을 가졌다 해도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그런다 해도 우리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한다.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들을 직접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에 생명처럼 귀한 헌금을 내어서 교회가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 청소도 하고, 잘못된 것은 고치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입해 놓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는 모든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에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손해 본다는 의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우리가 교회의 손님이라는 의식이 있다면 ‘내가 왜 그런 일을 해야 돼.’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교회의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 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손님이니까 그냥 와서 즐길 것이 있으면 즐기다가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②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세상의 어떤 기관과도 다르다.
세상의 정권이나 사회나 직장이나 학교 같은 곳은 강권적으로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해도 불평이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해야만 된다.
그러나 교회는 강권적으로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곳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서 자발적으로 해야만 되는 곳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단 하나도 제대로 되어지는 일이 없다.
교회의 모든 일들은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서 되어지는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늘 충만하게 임재하고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는 오직 기도할 때만이 가능하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싸늘한 찬 공기가 들어와서 시험에 들고, 다투고, 시기하고, 분쟁하는 곳이 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
교회를 위해서 쉬지 않는 기도를 할 때만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세워지게 된다.
③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복음과 말씀만이 살아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전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가능해진다.
수많은 이단들도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고 전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의 곁 모양만 있을 뿐이다.
진짜 알맹이는 교주들의 주장이나 사상이나 형상이나 의식이나 세레모니(ceremony)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단들에게 성경이란 단지 그들의 주장이나 사상을 예쁘고 멋지게 감추고 있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옳게 가르치고, 옳게 전하고, 옳게 배워서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라면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인데도 교회의 전통이라든지, 기독교회의 역사라는 미명 아래 마치 그것이 정당한 교리와 진리인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기준은 오직 성경과 십자가 복음만이 삶의 표준, 기준, 규범이 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22:18-19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것들만을 외골수처럼 고집스럽게 전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성경에 없는 것들을 전통이나 기독교회 역사라는 미명으로 더하거나 빼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하게 징계하시고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만을 믿음의 경전, 표준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성도요 가정이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도하며 오직 성경과 십자가 복음만을 붙들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귀한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다.
믿음이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원동력이다.
믿음이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진리만을 붙들고 외골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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