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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이 열릴 때 (왕하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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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이 열릴 때 /왕하6:13-19, 행7:54-60




몹시 더운 여름날 세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척 목이 말랐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우물을 발견하였고, 마침 곁에 두레박이 있어 물을 길었습니다. 첫째 사람이 급한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 만족 해 했습니다. 둘째 사람은 물을 마시기 전에 우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목마른 저에게 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셋째 사람도 역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둘째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우물을 팠던 사람의 노고를 기억하려 하옵니다. 하나님, 그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목마른 누군가에게 생수를 주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이 두 번째 사람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직 조금 모자랍니다. 세 번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우물을 팠던 사람을 떠올리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 속에서 자신도 더 낳은 삶을 위한 다짐을 통해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도에게 영안이 열리게 되면 신앙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안이 열릴 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믿음의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로 영안이 열립니다.


엘리사는 영적인 안목을 가진 자였습니다. 아람과 싸울 때 그는 아람의 은밀한 모든 작전 계획을 알고 미리 대비하여 항상 승리했습니다. 아람 왕은 혹 우리 중에 밀정이 있어 우리의 계획을 미리 알려 주고 있지는 안는지 의심 하다가 신하를 통하여 엘리사에 관해 알고 많은 군사를 보내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 대군을 보며 두려워 할 때 본문 왕하6:16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영적 안목을 가지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 신앙인이라 해도 엘리사의 사환처럼 영적 무지 가운데 살게 되고, 현실의 어려움만 보이게 됩니다. 복음서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종종 나무라신 말씀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없거나 적은 것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물결을 보고 두려움에 빠졌을 때, 먹을 것 때문에 염려할 때,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을 때, 누가 더 높으냐는 문제로 다툴 때, 십자가의 수난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럴 수 없노라고 만류할 때, 부활을 믿지 못할 때 등, 책망하셨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영적 안목을 가졌기에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영적 안목이 열리지 않아 말씀을 믿지 못했고, 오히려 훼방하고, 악에 받쳐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영적 안목을 가지지 못하면 신앙인이라 해도 영적 무지 가운데 살게 되고, 믿음이 없는 자로 살게 되고, 믿음이 있다 해도 현실의 어려움만 보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신자가 되어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거나, 물질이나 세상 것에 사로잡히게 되기 쉽습니다. 민수기 22장에 발람이라는 선지자에 관한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는 돈과 권세에 팔려서 모압 왕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미혹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발람을 향해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어들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나귀가 먼저 그것을 보고 피하여 도망갔지만, 막다른 곳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발람의 발을 상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지자 발람은 애꿎게 나귀만 때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하시고, 선지자의 눈을 밝혀주셨습니다(민22:31).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선지자는 짐승보다 못한 것을 보여 주시며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영적 안목이 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안이 열리게 될까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사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때 스승의 기도가 즉각 응답되어 사환의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환을 위해 한 선지자의 중보 기도가 영안을 뜨게 한 것입니다. 성도가 깨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눈을 열어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영적 세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렵고 힘든 현실만 보여 두려움과 염려와 낙심하는 마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세상 것만 잘 보이게 됩니다. 성도는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보고, 음란물을 보다가 보면 그 세계에 눈이 열려 빠져들게 되고, 거기에 몰두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다시 죄에 끌려 죄의 종노릇 하다가 멸망에 떨어지게 됩니다. 속히 회개하고 끊어야 영이 삽니다.


성도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내 눈을 열어 주옵소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기도 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어야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로 영안이 열린 성도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영안이 열리면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성도가 믿음의 눈을 떠 영안이 열리게 되면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본문 왕하6:17에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했습니다. 영안이 열린 사환은 스승을 둘러싸고 보호하는 허다한 불 말과 불 병거를 보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스승이 어떻게 그러한 상황에서도 왜 두려움이 없이 태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상황은 변함이 없는데 사환의 영안이 열리니 마음 자세가 전혀 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약 본문 행7:56에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했습니다. 이제 스데반은 영안이 열려 하나님 우편에서 계신 주님을 보고 인자가 보인다고 말하였습니다. 순교를 각오한 스데반은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으로 얼굴 모습이 천사처럼 바뀌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무리들은 더욱 험악한 모습이 되어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영의 눈이 열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지 못하면 모든 것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지만, 영안이 열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 앞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안이 열리지 않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고, 가나안 족속의 장대함과 견고한 성만 보여 두려움과 낙심의 마음으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안을 가진 모세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속담에 ‘눈이 보배’라고 했는데 영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마13:16-17에서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과 그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모습과 장래에 들어 갈 영광의 나라를 본다면 그보다 복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육신의 눈만 밝았지 영적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자가 교만한 것도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 죄로 얼룩진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에서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기도 하다가 어느 날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것과 천사들이 얼굴을 가리고 창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때 하나님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말합니다. 성도가 영안이 열리면 바울 사도처럼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 하지 않을 수 없고, 겸손히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성숙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되고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성도가 영안이 열리지 않고 신앙생활 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되고, 작은 것에 실망하게 되며, 고난이 올 때 소망 중에 인내를 이루지 못하고 두려움과 낙심에 빠지게 되며, 유혹에 쉽게 넘어지게 되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기보다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살게 되고,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살게 되고, 기뻐하고 감사 하는 것 보다 불평과 원망과 근심에 매어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린 사람은 본문에 엘리사처럼 아람의 군사들이 아무리 에워싸고 있어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담대한 신앙인이 되고, 성안에 먹을 것이 다 떨어져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도 전혀 두려움 없이 앞으로 하나님이 할 실 일을 말하며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기둥처럼 쓰임을 받는 소중한 사람이 됩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는 성령 충만하여 영안이 열리니 말씀이 충만하여 거침이 없이 말씀을 증거 합니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바라보면서 복음을 전하는 그에게 악에 받쳐 돌을 던질 때 무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본문 행7:59-60에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했습니다. 스데반이 처한 상황은 매우 험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돌로 치며 달려드는 무리들에게 대항 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형을 집행하는 무리들을 보면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오니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버지께 영혼을 맡기신 것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눈에는 돌을 들고 대적하는 자들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고 하늘 보좌 우편에서 그를 응원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안이 열린 자들은 항상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위엣 것을 바라봅니다. 히12:1-2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했습니다. 위를 바라보면 ‘구름처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보이고’ 예수님이 보입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세 교회 성도를 향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1-3)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시고 계시는 예수님이 위에 계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기 위해서는 위에 것을 찾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 가장 보배로운 것, 영원히 변치 않는 것, 가장 영광스러운 것, 가장 아름다운 세계, 영원한 생명, 가장 사랑스러운 예수님이 위에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위에 것을 찾으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성숙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되고 넉넉히 이기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안이 열릴 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로 영안이 열립니다.


❍.영안이 열리면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성숙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되고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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