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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알곡 (계1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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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알곡 (요한계시록 14장13절-16절)





우리들은 우리의 미래를 알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잠시후에 일어날 일까지도 우리는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 공중에 나는 참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화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지지 아니하고 


공중에 나는 참새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한마리도 떨어지지 아니한다 고 말씀하셨읍니다. 



믿는 우리들의 미래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피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방패가 되시며, 산성이 되시고, 요세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어려운 역경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게하시고 시련과 고통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중국 장자의 “달생편“ 에 보면 열자와 관윤이란 사람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읍니다. 



어느날 열자가 스승인 관윤에게 묻기를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도 숨막히는 법이 없고 불을 밟아도 뜨거운줄 모르며 


높은데를 걸어도 떨리는 법이 없다는데 어떻게 그런 경지에 도달할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관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몸속에 있는 순수한 기를 붙잡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지혜나 용기로 이루어 지는것은 아니다 


 본래 사물에는 그 형태가 나타나기 이전 상태가 있고 변화가 나타나기 이전 상태가 있다“ 고 


대답했읍니다 



이러한 사상은 동양적인 종교의 특징중 하나일것 입니다. 


그러나 동양의 종교 특히 도교나 불교, 천도교는 


그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중보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관은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와 비슷할수는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그들과 기독교는 엄연히 다릅니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기에 (행4:12)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관과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관은 막연한 절대 세계이지만 


기독교가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성삼위께서 다스리시며 


성자 예수님의 피에 씻김을 받는자 만이 들어가는 구체적인 세계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주안에서 죽은자들“ 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안에“ 있지 않는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갈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주안에서 죽는자“ 주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셨고 


성령을 받아서 새로운 인간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주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을 마치면서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믿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다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주안에서 죽은자들이 어떤 복을 받게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는 성도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는 복을 받습니다. 



11절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는 


셋째 천사의 선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짐승의 인을 받는자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통으로 인해 안식을 누릴수 없지만 


주안에서 죽은자들 에게는 수고를 그치고 쉬는 복이 임합니다. 



이 복은 이미 예수께서 약속하셨던 것으로 (마태복음11장28절) 


모든 고통에서의 해방을 뜻합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마귀의 도전, 갈등, 고민, 사업의 실패로 인한 


좌절등 모든것에서 부터 벗어나서 예수께서 준비해 주신 참된 안식에 이르게 되는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수고의 짐을 덜어버린다는 것만큼 큰복은 없을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은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3장17절) 



우리들이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삶을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땅을 정복하고 (창세기1장28절)


소산을 먹기 위해서(창세기3장17절) 는 분주히 오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것이 죄가 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너무나 분주한 나머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창세기1장27절) 잊고 타락된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고해(苦海) 에 비유했습니다. 


심하게 몰아닥치는 폭풍우 가운데서 파도와 씨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고통스러웠던 그 바다의 경험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지난주 태풍 토네이도로 인해서 많은 재산과 인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터키에 이어 또 그리이스 아테네에서도 지진으로 인해 많은 인명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고 있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은 참된 안식을 얻을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한치앞도 예측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탈무드에서 “인생은 어두운 밤과 같다“ 고 하였나 봅니다. 



잠언 27장1절에 “하루동안에 무슨일이 일어 날지 알수없으니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참으로 짧고 덧없고 무상한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시편 126편6절에 “울며 씨를 뿌리는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 는 말씀에서 


울며 씨를 뿌리는자 만이 기쁨의 단을 보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게 됩니다. 



이같은 고통은 성도가 이세상을 하직하는 순간에 끝이 나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에게 있어서 안식의 복은 세상에서 수고한 것에 대한 대가인것 입니다. 



2. 성도들은 행위에 대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3장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14절-30절에 달란트의 비유가 나오는데 


다섯달란트 받은 종과 두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열심히 일하여 상급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순종하지 않았기에 상급대신 책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자기에게 한 달란트를 맡긴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동안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 수고의 열매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느냐 하는것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두가지의 추수의 비유에 대해서 나오는데 


첫번째 14절에서 16절까지의 알곡을 모으는 추수의 비유로써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모습과 


두번째 17절에서 20절까지의 포도송이의 수확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진노에 대해서 묘사되어 있읍니다. 



포도송이를 추수한 천사는 그 포도를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집니다. 


이 말씀은 악인들이 이 땅위에서 성도들을 무참히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했듯이 


악인들도 포도송이가 발에 짓밟히고 타작기 틀에 눌리는 것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것임을 말하고 있읍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만큼 크고 작은 전쟁과 내분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여도 오천여년 동안 천여차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볼때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겠습니까? 


인류 역사중에서 가장 큰 전쟁은 20세기의 세계 2차대전 일것입니다 



이 전쟁은 죽은자나 살아남은 자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전쟁이었습니다 


지금도 지구촌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의 삶 전체가 생존을 위한 싸움이기에 


아마도 우리 인간은 평생을 싸움을 하며 살아가야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요즈음 메스컴에 오르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정복 한  “탈레반“ 의 종교탄압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흘림을 당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이같은 세속적인 싸움 이외에도 우리 성도에게는 또다른 싸움이 있읍니다. 


사단의 세력이 계속 활동하는 한 성도에게 있어서 영적싸움은 계속 될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서 패할때가 있었던 것처럼 


성도 역시 영적 전쟁에서 비참한 패배를 당할수가 있읍니다. 



사단이 성도들을 미혹하는 방법중에서 가장 고등한 수법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는것 입니다. 


사단은 거룩하고 고상한 옷을 입고 인간들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수있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의 참 모습을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영적인 눈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의 참모습을 발견할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태복음7장23절) 는 


 저주를 받는 불행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수고를 그치고 쉬는 복과 함께 행위에 따르는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달란트 받은종과 같이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살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열매가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맺히는 삶을 살수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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