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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법 (계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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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법(계5:1-14절)



1. 나는 성도다.


이십여 년 동안 수천 명의 작가 지망생을 가르친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어느 날 그의 강의를 들은 예비 작가 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앤의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은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나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면 가능해요. 지금부터 칼럼니스트처럼 행동해 봐요. 집으로 돌아가 칼럼부터 쓰는 거예요.”


로버타의 중고를 받아들인 앤은 마치 신문사 청탁을 받고 글 쓰는 칼럼니스트처럼 6개월 이상 매주 한 편씩 칼럼을 썼습니다. 그리고 글이 실리길 원하는 신문사에 매주 한편씩 보냈습니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자 신문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고정 칼럼을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뻐하며 찾아온 앤에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축하애요. 해낼 줄 알았어요.”


사실 앤은 칼럼을 보낸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업자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로버타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다짐했습니다.


“나는 칼럼니스트다.”


앤은 끝까지 자신이 갈럼니스트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생각이 그를 진짜 칼럼니스트로 만들었습니다.


이 글은 좋은 생각에 실린 글입니다.


신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삶을 바꾸고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성도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성도라는 신분의식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성도다.”라는 자부심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이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닮은 모습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것입니다. 그 분이 세상을 어떻게 이겼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험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일곱 인으로 인봉된 책


5장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죽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인봉된 두루마리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1절은 내가 보매 보좌에 않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고 시작합니다. 5장의 주제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군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6장부터 시작될 종말의 시나리오가 담긴 책이 시작되어 있는 것입니다. 6장부터는 이 책의 인봉이 떼어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8장에서 마지막 인이 떼어지고 10:2절에서 드디어 책이 열리게 됩니다. 6장부터는 이 책을 인봉한 인들을 뗄 때마다 일어나는 심판에 대한 말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인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입니까? 우리는 이 두루마리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 우선 겔2:9-10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 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그럽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무래도 오늘 본문의 안팎으로 글이 가득한 책이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일단 이 책의 내용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라는 심판의 메시지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6장부터 이어지는 심판의 메시지들에 의해서 확인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우리는 계10:9-10절에서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쓴 책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겔3:1-3절에 보면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 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 본문의 인봉된 책과 10장의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쓴 책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쨌든 일차적으로 인봉된 책이 떼어질 때 심판이 계속되는 것으로 볼 때 이 책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내용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요? 이 책이 “일곱 일으로 봉해 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단8:17,19,26절과 12:4,9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8:17절은 다니엘에게 이 환상이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9절에서도 역시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이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26절도 마찬가지 여러 날 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단12장에 가면 4절에 마지막 때 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봉함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9절에서도 역시 간수하고 봉함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둘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정한 때의 끝까지 이 두루마리를 간수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단 8장은 작은 뿔로 상징되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8장에서 정한 때의 끝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온갖 궤휼과 사악한 지혜로 구약의 성도들을 박해하는 그 박해의 끝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 아니라 정한 때의 끝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종말적인 때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곧 종말의 때, 정한 기한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결정적인 때! 바로 하나님의 카이로스인 것입니다. 여기서 인봉되었다는 말은 “닫다”라는 의미입니다. 닫힌 책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주님이 공공연하게 비밀의 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이 책을 장 봉함하고 간수해야 하는 때가 언제까지 입니까? 마지막 때까지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이상과 말씀을 기록하여 봉함한 책이 열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다니엘이 보았던 이상을 기초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해 그 종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능가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구속 계획들이 이제 만천하에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심판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더 중요한 주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온전히 포함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 열려지게 되느냐에 있습니다. 그 책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열려지게 될 것이고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고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 이제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거룩한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심판과 구속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정한 때의 끝이 오면 이 책의 비밀이 열려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2.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와 어린 양


그런데 2절에 힘 있는 큰 천사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이 말은 “누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뤄드리기에 합당하냐?”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사람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3절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우주의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뤄드릴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사도 요한은 크게 울었습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은 이 책의 의미를 알았었고 이 책의 인들이 떼어지고 책을 폄으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성취되어야 하는데 좌절될 상황 때문에 안타까워 운 것입니다. 사실 본문은 이런 과정 없이 바로 유다 지파의 사자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시선을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과정을 환상 가운데서도 경험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실천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의 인을 떼고 그 책의 내용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참 길이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울고 있는 사도 요한에게 이십사 장로 가운데 하나가 울지 말라고 답변을 합니다. 큰 천사가 문제를 제기하고 이십사 장로들 중 하나가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책의 인을 떼시고 그 책을 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그 답을 소개하는 것에 있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가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가 울지 말라면서 하는 답변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7-8절에 이미 어린 양이 나와서 책을 취하시고 6장에서 인봉을 떼기 시작하는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십사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말씀하고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5절에서 뭐라고 소개합니까?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그럽니다. 유다 지파로부터 난 사자라는 말씀은 창49:9절에서 야곱이 유다를 예언적으로 축복하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그때 했던 표현이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숫 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입니다.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은 사11:1절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그럽니다. 또 11:10절에서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만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메시아를 대망하는 구절들입니다. 이 두 구절들을 조합해서 유대 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의 사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이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의 사자이시며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의 사역을 통해서 이기셨기 때문에 그 책의 인을 떼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사자와 다윗의 뿌리는 둘 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왕권을 생각하게 합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자는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드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에 대한 묘사보다 그 예수가 어떻게 세상을 이기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이기신 예수가 종말의 시나리오가 들어 있는 인봉된 책을 테실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갖춘 분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세상을 어떤 방법으로 이겼습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과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답변이 어디에 나옵니까? 예, 6절에 나옵니다. 사자와 어린 양이 만나는 지점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기는 이기셨는데 어떤 방법으로 이기셨습니까? 본문 6절에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라고 표현함으로 이기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도래시키시는 방법은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일찍”이라는 말은 사도 요한이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로 이뤄집니다. 일곱 뿔은 권세와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죽임 당하신 어린 양과 일곱 뿔은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 기독교의 역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양에서 더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앞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도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에 의해서 확연해 졌던 것처럼 오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법도 그들의 찬양에서 더 확실해 집니다.


이십사 장로가 뭐라고 찬양합니까?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일찍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즉 세상에서 값을 지불하고 사오신 것입니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이 값으로 지불 되셔서 사신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사서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요한계시록 1장에 나왔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시고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을 수 있었던 방법이 뭡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열두 영이나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해서 세상을 없애 버릴 수 있으십니다. 그런 충분한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세상을 이기시는 방법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네 생물의 찬양 역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으로 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성도다워야 합니다. 나는 성도라는 생각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기 위해 발버둥치지 말고 주님처럼 낮아지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럴 때 주님이 높아지셨던 존귀와 영광이 우리 삶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힘, 돈이나 바벨정신으로 하나님 나라는 커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 즉 낮아짐, 겸손, 사랑과 온유와 같은 것들을 먹고 자랍니다. 앞에서 우리는 일곱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두 가지 반복되는 표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기는 자는, 둘째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기는 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세상과 같은 방법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합니다. 계시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삼위일체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일곱 영은 슥4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확고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처럼 이 땅에 하늘에서 결정된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실행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린 양이 드디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이런 모습들이 상징적인 것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로마의 압제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표현된 상징들인 것입니다.



3. 성도들의 찬양과 기도


그럴 때 하늘의 성전에 있는 성도들과 네 생물, 즉 피조물들이 무엇을 합니까?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 즉 성도들의 기도들을 가지고 어린 양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엎드려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실 어린 양에 대한 최고의 경배와 예배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거문고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원래는 하프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쨌든 이것은 찬양을 상징하고요, 또 다른 하나는 성도들의 기도를 담은 대접을 이십사 장로들이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정리해야 할 것은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귀한 가치로 하나님께 올려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노래로 찬양하고 비파와 수금과 모든 악기와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은 완성될 천국에서도 귀한 가치를 가진 성도의 영원한 자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9-14절까지 이어지는 찬양을 함께 살펴볼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세 번의 찬양이 나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이십사 장로와 피조물들의 대표인 네 생물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보좌와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입니다. 세 번째 그룹은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찬양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에 대한 것입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셔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 12절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찬양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13절은 무엇입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그럽니다. 공통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예, 어린 양입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천사들까지도 모두가 누구를 찬양합니까? 죽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특히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양에는 사람들을 피로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은 1:6절에 이미 한 번 나왔던 표현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을 삼으시고 세상을 위해 중보할 책임을 가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피로 우리를 사서입니다.


그러므로 5장에서의 핵심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유다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왕권을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모습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도의 모든 찬양이 그 어린 양에게 주목되고 있음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성도들의 기도는 뒤에 이어질 심판과 연결되어 고난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되어 언제든지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성도들의 기도 특히 인봉을 떼기 시작하고 정한 때가 오기까지 성도들이 고난당하는 시기에 하나님께 올려진 기도는 향이 되어 하늘 성소에 상달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6-16장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 세상을 이기는 법


사랑하는 여러분! 5장의 강조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단 인봉된 책은 앞으로 되어질 종말의 스케줄이 기록된 책입니다. 이 책이 열려지면서 애곡과 재앙에 대한 소식들이 있어질 것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성도는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는 기도로 이길 수 있습니다. 8절에 있는 이십사 장로가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금대접에 담긴 향이 바로 성도의 기도라고 설명합니다. 이 기도는 6장부터 있어질 사건들을 있게 한 기도입니다.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기도가 응답되어 심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두 번째 세상을 이기는 구체적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셨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승리는 정복의 승리가 아닙니다. 사랑의 승리요 낮아짐의 승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되어 세상을 이기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봉되어 있는 책의 인을 떼기에 합당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말의 심판 계획을 실행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세상을 세상의 방법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여러분! 이 신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이기십시오. 그래서 어려움의 시절을 지날 때에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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