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학교 3강 기도
본문
제3강 기 도 (祈禱 행10:2Prayer)
Ⅰ. 서 론
기도를 가리켜 신자의 영적 호흡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은사 등을 얻는 방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기도라 할지라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잠언 기자는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고 경계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오늘날 하나님은 얼마나 이상히 여기실까!
우리 중에 역사하는 기도를 아는 자가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다. 저마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진실로 기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찌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자주 패배하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많은 교회 일꾼들이 그토록 자주 용기를 잃고 낙심하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역을 통해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내는 영혼이 그토록 적은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불이 타오르지 않는가? 참된 기도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오늘도 여전히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시다. 주 예수님은 여전히 인간들의 구원을 갈망하고 계신다. 그의 팔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이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팔을 내밀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실패의 원인은 은밀한 기도를 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불필요하거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명령을 주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주님께서는 자신이 성취할 수 없거나 성취하시지 않을 약속을 하신 적이 없음을 분명히 믿는가? 분명한 행동을 요구하신 주님의 3대 명령은 다음과 같다.
기도하라!
행하라!
가라!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고 있는가?
사실 영적생활과 그리스도인의 사역에 있어서 성공의 희귀함과 실패들은 모두 기도의 결핍이나 부족에 기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올바르게 기도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생활할수도 없거니와 올바르게 봉사할 수도 없다.
마태복음 21:21-22.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올바로 기도를 하려면 먼저 통회하고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시51:10)라고 다윗과 같이 부르짖어야 한다.
사랑의 사도를 통해 영감으로 주어진 다음 말씀이 오늘날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강조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요일3:21-22)
★ 우리가 하나님이나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도하는 일임을 잊지 말자!
그 이유는 기도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우리들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기도는 전능하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신다. 봉사에서 얻는 모든 열매는 기도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일의 결과는 사역자 자신의 기도나 그를 위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소산이다.
우리는 모두 기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도 제자들이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했듯이 부르짖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
오 주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당신이 친히 걸으신 기도의 길로,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소서.
문제제기: 당신에게 골방이 있는가?
집사님과 장로님가운데 내가 존경하는 분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기도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C집사님은 자기집의 다용도실을 기도실로 꾸며 놓았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실은 생명줄이다. 피곤에 지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든지 기도실까지 기어서라도 가야만 그의 생활이 될 정도로 그의 삶은 골방 기도실 중심이다.
또 H 장로님은 그의 사무실, 즉 회사 사장님 방 한 구석에 기도실을 꾸며 놓았다. 그 사장님 방에 들어가서 나만 응접실에 앉았다. 사장님과 사모님은 모두 기도실에 들어가서 기도한후에야 응접실로 오셨다. 그 회사에 있어서 생명줄은 역시 그 기도실이었다. 회사의 기획, 회사의 자본은 모두 그 기도실에서 나온다. 참으로 자기만의 골방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어디서나 생명력이 철철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Ⅱ. 어원
שׁהל(lachash): 원뜻은 ‘속살거림, 작은 소리를 말하는 기도’이다.(사26: 16), 주문, 마술, (사3: 3, 렘8: 17) 호신패, 부적,(사3: 20)
הלאשׁט (mish 'alah): 기도, 간구, (시20: 6, 37:4)
δεησις (deesis): 소원, 간구, 기도, 탄원, (눅1: 13, 2: 37) 사람과의 관계에서 간절히 구하는 것. 어린아이와 같은 신임, 하나님께 진심으로 청원하는 기도.
εντευξις (enteuxis): 원뜻은 ‘만난, 경험’이다. 담화, 청원, 기도, 탄원, 중재,(딤전2: 1, 4: 5)
ευχη (euche):하나님께 대한 소원, 기도, (약5: 15). 맹세, 서약,(행21: 23)
Ⅲ. 정의(개념)- 기도란 무엇인가?
1)무디선생이 에딘버러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모인 가운데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주의를 끌기 위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기도란 무엇이지요?” 그는 한 남자 아이를 지적했다. 그 아이는 즉시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대답했다.
“기도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함과
아울러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2)기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히 기도는 누구의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심부름을 하게 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거지가 부잣집 대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차원 높은 것이다.
기도라는 말은 실은 “방향이 설정된 소원”을 의미한다. 방향이란 하나님을 향한다.
기도는 순수히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다윗은 이 점을 “산 영혼이 산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25:1)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시지만 우리는 항상 하나님 편이 되지 못한다.
사람이 기도할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이다.
입벌려 말하든, 입 다물어 침묵하든
기도는 영혼의 간절한 소원,
가슴속에 떨리고 있는
숨은 불꽃의 움직임.
유대의 한 신비주의자는 “기도는 하늘과 땅이 서로 입 맞추는 순간이다”라고 하였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도록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어하는 하나님의 뜻을 굽혀 우리의 뜻에 맞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트렌치(Trench) 대주교는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고한 뜻을 붙잡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혹시 해로운 것을 끈질기게 기도하여 우리의 뜻하는 바를 얻고, 결국 해를 당하게 되기도 한다.
예증)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 15)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 “파리함”을 자초했다. 그들은 응답된 기도로 오히려 저주를 받은 것이다.
★ 기도의 가장 큰 효과는 악에서 건짐을 받거나 귀한 것을 얻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데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기도는 하나님을 더 깊이 발견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영혼의 가장 큰 발견이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리라”(욥23: 3)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을 발견하며 또 하나님께 발견된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이다”라고 말했다.(The of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생명의 말씀사)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이 기도할 때 그의 친구가 함께 있었다. 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셨다는 놀라운 느낌이 밀려왔다. 그는 “호레이스 부쉬넬이 그의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할 때, 내 손이 하나님에게 닿을까 두려워서 어둠속에 손을 내어 뻗을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옛날 시편 기자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시62: 5)했을 때 이런 것을 의식하지 않았겠는가!
기도의 사람 진젠도르프(Zinzendorf). 그는 선물보다는 오히려 선물을 주시는 자를 구했다. “나는 열렬히 사랑하는 분이 있다. 그 분은 하나님, 하나님뿐이시다”라고 했다.
모하메드 교인은 기도에는 세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 ①입술로만 하는 기도 ②굳은 결심에 의한 노력으로 우리의 생각을 하늘의 것에 고정시키는 일에 성공할 때이며 ③가장 고차원적인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날 수 없음을 발견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 대상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대는 왕에게 나아간다.큰 소원을 품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존귀와 영원한 능력이 있는”(딤전6: 16) 하나님께 직고하자는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이 충만하도다”(사6: 3)라고 스랍들은 창화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눅2: 14)라고 찬송하였다.
어떤이들은 발에서 신을 벗는 일(출3: 5)도 채 끝내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려 하고 있다.
입술마다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지만 “하나님 찬양받으소서”는 없도다.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1절)
지극히 높은 위엄과(2절)
찬송가 9장 : 거룩, 거룩, 거룩
우리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나이다”(눅1: 46-47)라고 외칠 필요가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103: 1)고 했던 시편 기자의 정신을 포착할 수 있는가?
또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시104: 1)라는 노래의 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가?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29: 9)라는 말씀을 나의 말로 배울 수 있을는지?우리도 영광을 부르짖자!
경배와 송축과 찬양과 감사는 우리에게 깊은 기도의 영을 줄 뿐만 아니라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도록 돕는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 23)
찬송과 감사는 바로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늘문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실 수 있는 길을 예비한다.
사도바울은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기 전에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아니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라고 영감받은 선지자는 선포하였다.(사60: 1-2)
모세가 기도하면서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33: 18) 하였을 때, 그 영광의 일부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영광에 참예한 바 되어 그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발하였다(출34:29)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응시할 때(고후4: 6), 그 영광의 광채를 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그 영광의 광채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도이며 기도로 얻는 최고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다른 비결은 없다.(사60: 21)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았노라”
불학무식하며 비겁한 신분의 어부들이 잠시 그리스도의 동반자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보았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요일1: 3)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라”
★ “기도의 실패의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마틴루터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카톨릭 교회가 떨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대각성’이 일어났다.
요한웨슬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세계가 한 사람의 교구가 되었다.
휘트필드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수많은 무리가 구원을 받았다.
죠지 뮬러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수천 명의 고아들이 양육을 받았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지금이 하나님을 새로이 볼 때가 아닌가? 모든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볼 때가 아닌가? 교회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일어날 일을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것을 기다리지 말자. 우리 각자가 수건을 벗고 티없는 마음으로 주의 영광을 받아보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 8)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가르쳐 주신다.
「오, 한숨지으며 괴로워하는 자들이여
능력이 없어 눈물짓는 자들이여
이 온유한 속삭임을 들으라!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
열매와 축복에는 왕도가 없다.
거룩한 사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과 사귀는 데 있다.」
예증(例證)
1)우리 존재의 심연에 계신 하나님
어거스틴의 「참회록」에서 “당신께서는 바로 당신을 위해 우리를 지으신 까닭에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에는 우리의 심령이 곤비할 수 밖에 없나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을 갖도록 지음받은 존재이기에 그러한 사귐이 없을 때 공허감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의 광막한 내면 깊은곳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시기 위해 마련하신 회막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 부드럽지만 절박하게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면 우리 내부의 가장 깊은 곳에 사무쳐 있던 아픈 갈망이 그분의 부르심과 마주쳐 울리게 된다.
2)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기도에 관해 우선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사귐을 원하시며 그 분께서 그 분 자신께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점이다. 우리를 따라다니신다. 우리에게 그 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분은 그렇게 하신다. 엄마의 자애로움으로.............
기도는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그 회막으로 들어가 그 분께서 우리와 말씀을 나누시도록 하는 것이다.
기도에 관한 많은 책들은 기도하는 법을 강조한다.
첫째, 성령님께서 이미 우리를 가르치는 분이 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말씀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잠기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시오. 그리하면 그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약4: 8)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예수의 피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의 피를 드리심으로 휘장을 꿰뚫어 새로운 산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휘장은 곧 그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 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우리가 이미 마음에 피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이 깨끗해지고 맑은 물에 몸을 씻었으니 이제부터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 지 않겠습니까?(히 10:19-22)
첫째는, 기도를 하게끔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그러한 주도적인 발의에 감응토록 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경계해야 될 두 가지 위험 요소를 일러두고자 한다.
첫째, 오직 믿음만 가지고 잠잠히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는 것뿐이라는 인상을 주었는지 모른다.
둘째, 기도를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과 같은 것으로 혼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의 목적과는 다른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즉 의식 상태를 편안하고 초연한 지경으로 바꾸는 데 주안점이 있으며 도취감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한다고 할 때 그 목적은 기분이나 의식 상태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도록 부르실때에도 목적은 우리가 생생히 살아있는 한 인격체, 곧 그 분 자신을 만나서 사귀는 데 있다.
간혹 바울처럼, “낙원으로 이끌려갔던 것을......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말을 거기서 들었습니다.”(고후 12: 2-4) 라고 말할 수 있다.
결코 추구할 바는 아니다. 그러한 체험이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히 더 받는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진정 사모해야 할 바는 이 참되신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인 것이다.
내가 기도중에 잠잠히 기다린다고 할 때, 그것은 알수 없는 어떤 신비스런 존재에게 나 자신을 여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말씀(the Scripures)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께 귀기울이고 있는 것이며, 그분은 당신의 성막을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지으셨다. 그 성소로 들어갈 때에 나는, 예수께서 계시하시고 성경이 진술하고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감에 있어 꾸밈없고 솔직하도록 하라.
우선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으시며 당신과 얘기 나누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시작하도록 하라.
당신의 영혼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명하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62: 5)
예배(worship)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신가를 고백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찬양과 감사에 대해서도 지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막힌 것이 없이 투명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죄를 고백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간구(supplication;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구하는 것)하고 중보기도(intercessions; 다른 사람들을 위해 구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극히 세세한 부분에까지 집요한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는 점이다.
사소한 문제거리들까지도 함께 느끼시며 그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우리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자상함에 찬탄케 되리라!
개인적인 요구 사항들에 대해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나를 찾지 않을 때 오히려 섭섭한 것이다.
당신에게 합당치 않은 것을 당신이 구하는 경우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왜? 적어도 숨김없이 하나님께 고할 만큼 솔직하기에..........
기도는 하나님의 의향과 그 행사(行事)에 사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그 분은 온 우주의 행사를 주관하신다. 그리고 그 행사에 당신이 기도로써 참여토록 초대하시는 것이다.중보기도란 하나님과 당신이 하나가 되어 그 분의 완전한 계획들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3)기도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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