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시간(Quite Time)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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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시간(Quite Time)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거룩함을 알게 하기 위 하여 '성경과 기도'라는 좋은 수단을 주셨습니다. 이것 들은 성도들을 성도답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모든 충만에 이르기 위하여 허락된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보고 기도를 많이 할 것을 어느 교회에서나 가르치고 어느 신 자들에게나 요구하고 있는데 이 일의 좋은 방법 중 하나 가 '경건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경건의 시간은 제자 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오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고,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하 는 것도 알아야겠습니다.
경건의 시간이 잘못 사용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매 일 일정량의 성경을 보고 그 성경 속에서 오늘 깨달은 하 나님의 말씀을 갖고 나와 실천하는 것인데, 이것은 틀려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오해되기 쉬운 것입니다. 일차적 으로 그 날 읽은 성경에서 너무 단편적인 뜻을 긁어 내려 고 하는 잘못이 제일 큽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모 습들이 전체적인 그림으로 한 장과 절에 다 들어 있기도 하면서 그것이 전체 하나님의 모습의 한 부분인 것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Q.T를 하게 되면 하나 하나 를 주제로, 감격으로, 내용으로, 결론으로 끌어 내는 것 때문에 전체를 보는 시각을 자꾸 놓칩니다.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매일 일정량의 성경을 보고 그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나온다는 의 미에서는 전혀 하자가 없고 옳고 바른 자세임에 틀림없지 만 성경을 보는 첫번째 이유는, 우리가 실제적인 내용으 로는 하늘나라에 속해 살고 있고, 마음 속으로 거룩한 곳 에 속해있고 거룩한 욕심을 갖고있다 할지라도 세상에 나 와서 살고 그 영향권 속에 있으면 우리도 모르게 떠내려 가는 현실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늘 말씀을 앞에 놓고 하나님의 뜻과 기뻐하심으로 나를 깨끗이 하며 점검하는 일이 없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떠내려 와서 어느 날 굉장히 기준이 낮아진 것을 보게 됩니다.
삶의 기준이 백에서 시작을 했다가 그 다음 날은 백 에서 십만 양보해서 구십이 되는데 그 다음 날 나갈 때는 그 구십이 기준이 됩니다. 또 구십에서 십만 양보합니 다. 그 다음에는 그 팔십이, 이미 양보한 팔십인데 그 팔십이 기준이 되어가지고 또 칠십, 나중에는 이십이나 십쯤 내려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봐야 되는 것입니 다. 그래서 기준을 다시 백으로 끌어 올려야 된단 말입 니다. 이것이 경건의 시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목적 이요, 이유입니다.
매일 보는 그 날의 특별한 어떤 테마나 어떤 특별한 목표를 세울려고 성경을 보셔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떤 명령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뭘 해라' 이렇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운세도 아닙 니다. 성경은 굉장히 넓고, 무한히 크고, 무한히 깊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며, 하나님의 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 것은 그 충만하신 하나님의 어느 일 부분이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한 부분으로 갖고 계셔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매일 매 일 그것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서 티끌모아 태산같이 하 나님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깊어져 가는 겁니다.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목욕탕에 물받는 것과 같습 니다. 목욕탕에 물을 받으면 수도꼭지에서부터 탕 밑바 닥까지 물기둥이 섭니다. 그러나 그것이 밑에 떨어지면 전체로 넓어져서 수면이 차 올라오지 기둥으로 서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보면 어느 부흥회서 은 혜를 받아서 힘있게 살았다가 한 달쯤 지나면 희미해 집 니다. 왜 그러냐면 그 물기둥이 전체를 채워야 되는 것 으로 골고루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받은 것은 1미터 짜리 기둥으로 받았는데 내려오면 전체를 높이는데 1미리 나 2미리 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무슨 막대기 를 갖고 있는 싸움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이렇게 수면을 높이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신자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느냐 하면 마치 벽돌을 쌓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세로로 쌓 아 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높긴 되게 높은데 매일 붙 들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시간을 가질 때 여러분이 조심하셔야 되는 것은 거기서 무슨 번쩍하는 말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마시라구요. 그 래서 경건의 시간에 쉐어링(Sharing)을 안 했으면 좋겠습 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누구나 무슨 잘난 말을 하 나씩 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거기서 억지로 자꾸 뭘 긁 어 나올려고 그러는데 그러지 마십시요. 하루만큼 읽고, 일 년 내내 읽어서 괜찮은 생각이 나오는 경우가 한 번 내지 두 번 밖에 없습니다. 보통은 그게 그거 같고 그 소리가 그 소리 같고, 무슨 소리인지 모를 것 같지만 그 걸 꾸준히 하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수면이 높아진 것 같이 깊어지는 것 입니다. 이것이 경건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의 시간을 하면서 가지는 성경에 대한 깨우침과 그 앞에 들어가는 기도가 어떤 조급한 눈 에 보이는 목표나 소원을 가지지 않아야 된다는 분명한 경계심을 갖고 매일 매일 성경과 기도에 열중해야 될 것 입니다. 긴 안목을 갖고 멀리 내다 보고, 그래서 충만하 신 하나님, 부요하신 하나님, 그 넓고 크고 높으신 하나 님에 대하여 하루에 하나씩 차근 차근 배워 나가는 겁니 다. 이 축복이, 이 기쁨이 무한정 있다는 기쁨으로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나가는 마음, 이것이 경건의 시간이며, 성경을 읽으며 매일 기도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 때문에'라는 기억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쑥 커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우리가 클 때 보약을 먹고 컸다든가, 비타민을 먹고 컸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밥 먹고 크는 겁니다.
늘 먹는 그 밥으로 우리가 큽니다. 그것이 최고의 보약 입니다. 맛있는 것만으로도 아니고 가장 영양가 있는 것 만으로도 아닙니다. 인삼, 녹용같은 보약은 아슬아슬할 때 한 번 먹이는 것이지, 아무 때나 보약 먹지 않습니다.
누가 한약에다 밥말아 먹고 밥을 안 먹고 주식을 인삼, 녹용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 밥 먹고 김치 먹은 것이 머 리카락도 되고, 이빨도 되고 그런 것입니다. 그 구절이 그 구절 같은데 나중에 하나님의 모습과 나의 나된 것의 전체적인 힘과 분별과 안목과 영양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일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누군가를 튼튼하게, 넉넉하게, 아니 풍성하게 쌓아가는 일에 성경 과 기도가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 기 위하여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힘 쓰고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참다운 거룩함과 영광 을 스스로 찾게 되고, 그 풍성함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 다. 그 승리와 그 감사의 누림들을 우리가 소유할 것이 요, 우리를 보는 이들이 우리의 새 생명에 넘침으로 말미 암아 거룩한 생명에 속한 도전과 증언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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