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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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목사 제자 훈련-제 12 과 제자훈련과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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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제자훈련과 새 사람   본문 / 엠 4:21-24


제자도(弟子道), 제자훈련이라 그럴 때 전도적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의 첫째 가는 책임이지만 그것이 행동과 형태로 직선적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생활과 자세와 성품 속에 녹아져 있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여행을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해를 위한 설명>


지난 시간에는 제자훈련의 내용들은 구체적으로 '믿 음과 소망과 사랑을 근거로 삼는다'에 믿음이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고, 소망이란 무엇을 목표하고 무엇을 가치로 두는가 하는 내용이 되고, 사랑이란 이것이 혼자 가는 싸움이 아니고 함께 가는 싸움이라고 말씀을 드렸 습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은 우리의 믿는 바와 소원이 내용으 로 풍성해야 하며, 함께 가는 일을 가로막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되며 절제해야 된다는 두 가지 원리를 얻게 됩 니다. 종교적인 어떤 형태의 일을 함으로써 제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doing) 그 일을 하는 존재 자체의 변 화, 인격과 성품의 풍성함(being)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상대방과 내가 어떻게 다른가로 가는 것 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가기 위한 것으로 쓰여져야 된 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1절에서 24절까지 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 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 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것이 제자훈련 에 있어서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요구가 되기도 하는 것 입니다. 옛 사람을 벗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 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됩니다. 그러면 '새 사람을 입으라'의 내용인 25절 이하를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 을 말하라"(25절)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다 하 나된 것을 해치는 행위들입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거짓 말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거짓말이야말로 하나된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된 것을 해치는 행위라는 것은 함께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 지 말라"(26절) 화가 나면 끝장을 보고 싶어집니다. 악 한 자를 보면 그 악한 자를 꺽기 위해 나도 모르게 내가 더 악한 자가 되는 시험에 빠지는 겁니다. 그게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화가 난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화가 났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화 를 낸 것으로 그쳐야 됩니다. 그걸로 무슨 열매를 맺지 마십시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의미심장합 니다. 화를 삭이는 쪽으로 가야지 내가 화를 낸 것이 정 당하고 이유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는 자리까지 끌고 갑니다. 자기가 화가 난 것 을 생각해서 정당하다고 인정을 받으면 심판권을 행사하 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28 절). 왜 여기 도적질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도적질이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을 이웃에게 피해를 입혀서 자기 필요한 것을 채워 나가는 이웃을 해치는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 더러운 말은 마치 남의 밥에 재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입 니다. 남의 마실 물에 침 뱉어 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 다. 그게 더러운 말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우리가 함께 가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 이 제자된 책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도(弟子道), 제자훈련이라 그럴 때 전도적 사명 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의 첫째 가는 책 임이지만 그것이 행동과 형태로 직선적으로 나타나기 보 다는 이렇게 생활과 자세와 성품 속에 녹아져 있어야 된 다는 것을 기억하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에 가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 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엡4:31-32)입니다. 결론이 어디로 가나 보십시요. 상 대방의 지금 모습을 보고 심판하지 말 것, 경멸하거나 정 죄하지 말 것, 상대방에게 악하게 굴지 말 것, 하나님께 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상대방을 용서할 것, 그래야 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 아무리 우리 한테 못되게 굴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만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제자가 자기의 직분 의 책임을 제대로 감수하느냐 못하느냐가 그 판가름이 나 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이싸움에서 우리가 제일 조심해 야 되는 것은 '거치는 것을 두지 않는 것', 그 다음에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을 참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에베소서 5장에서는 이렇게도 가르칩니 다. 18절 이하에 나오는 이 제자도, 제자상, 제자훈련의 어떤 기준들은 이런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 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을 받 으라고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 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본문을 보면 성령충만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 라 사는 제자도의 완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 성령 충만이 복받치는 감사, 환희, 희열, 이런 것으로 나타나 는 것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원리로 성령충만의 표가 강조 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복종이 왜 등장 하느냐 하면 이것이 함께 가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가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교만한 마음과 독선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겁니 다. 상대방을 대접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래서 신앙의 최고의 행동 원리가 '사랑이요, 사랑 은 복종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성경은 푸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 동안까지 나 혼자 문제도 어려운데 이웃들과 함께 오라고 하십니다.

그 이웃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과 믿는 자들이 다 포 함된 우리 신앙상에 어쨌든 함께 가야하는 어느 특정한 시대와 환경에 주어진 모든 사람들 입니다. 예를 들면 가족, 혈육, 가문, 동창, 이웃,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들이 선택한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 함께 가야하는 모든 대상들입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갈려면 아주 중요 한 원칙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들이 양보하고 갈 수 밖에 없고, 그걸 잘 양보하므로 상대방을 항복시키 고, 동참시키느냐가 제자도입니다.


그래서 이제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9절에 이르 도록 신앙상의 최고의 원리가 소개되는데 그게 뭐냐하면 성령충만으로 인한 순종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입니다. 여러분은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러면 입 맛 쓰게 생각하시는데, 그게 누구한테 하듯하라구요? "주께 하듯하라"입니다. 이건 참 무서운 원리입니다.


그 다음에 6장에 가면 6장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 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5절에 가면 "종들아 두려워 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라"입니다. 물론 그 반대급부가 꼭 요 구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했으 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 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가 나오고 "자녀들아 부모를 순종하라"한 다음에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라"(엡6:4)가 나오고 "종들아 두 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 라"(엡6:5)했으면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공갈을 그 치고,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있는 것을 기억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직분을 감당해라"(엡6:9) 이렇게 나옵니 다. 그런데도 에베소서 5장 18절 이하에서 순종이라는 제자도에 가장 중요한 원리를 제시하고서 '아내들아 순종 하라, 자녀들아 순종하라, 종들아 순종하라'가 먼저 나오 는 것은 그 쪽 직분이, 그 쪽 배역이 순종이 강조되는 배 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쪽이 더 책임이 많아서가 아니라 반대 쪽도 책임은 동등하게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나 "부모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라" 도 동등한 책임이면서도, 순종의 원리가 제자도에 있어서 는 훨씬 강조되어야 할 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가는 싸움에서 상대방이 함께 갈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는 데 있어서의 대원칙은 그 사 람이 예수를 믿느냐는 것과 주를 사랑하느냐는 관점에서 만 따지고 그것에서 충돌하지 않으면 나머지에 있어서는 상대방한테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은 내가 감 당하는 버릇을 들여야 되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야 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 리를 용서하듯 모든 사람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는 지고, 당하고, 죽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놓치 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배역에 관한 문제에 대해 혼동함이 없어야겠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훈련은 바로 이런 식의 자세로부터 출발해야 되고 진전되어야 할 것입 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제자도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 셨고 또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구원을 이루심으로 내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많은 영혼들을 하 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전도적 사명을 가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도적 사명이 전도라는 행위적 사건 을 통해서 보다는 그 사람들을 어떤 자세로 기다려 주며, 또 찾아가며, 우리가 누구인가를 우리의 성품과 인생의 가치와 삶의 모습들을 통하여 증거해야 되는 것으로 요구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 삶의 원리, 방 법, 삶의 자세, 가치관, 그리고 우리에게 부딪치는 모든 현실적인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들이 전도적 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일거리라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 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을 하나 님이 나와 같이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 려고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지금 내가 보기에 모자란 부분에 대하여 섣부른 심판을 행사하지 말아야 됩니다. 함께 가 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그를 부르시며, 우리 서로가 합력하여 하나님 앞에 동등한 거룩과 의와 영광으로 설 것을 기대합니다.


<이해를 위한 질문>


1. 에베소서 4:21-31까지에서 제시된 요구들은 결국 무엇 을 하기 위해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입니 까?


2.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제자도의 완성이 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의 표가 '복 종'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우리가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함께 가는 싸움에 서 가장 기억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토의를 위한 질문>


1.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더욱 더 강해지는 세상 속에서 다른 자들과 함께 가야하는 요구를 받을 때 느 끼는 갈등이나, 고민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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