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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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목사 제자 훈련-제 11 과 제자훈련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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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제자훈련의 실제   본문 / 롬 12:1-2


'새 생명으로의 나'를 확립하는 일과 내 믿음이 지금 완벽하고, 완전하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나가는 진행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되고,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을 함께 그 목적지까지 동반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몇 가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일하시는 뜻과 방법을 아는 것, 이것이 제자훈련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의 가짓수를 생각해 보고, 그 각각의 필요성이 무엇이며, 왜 그런 재료가 필요한지 말씀해 보십시요.



<이해를 위한 설명>


앞에서 공부한 바에 의하면 제자훈련이란 결국 우리 의 믿는 바와 믿음의 내용인 생명과 거룩에 대한 보존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란 특별한 기능과 영역으 로서가 아니라 신자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 이기에 이 싸움을 바로하기 위해선 신자의 삶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신자의 삶의 원리를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신자의 삶의 3대 원리가 믿음, 소망, 사랑인 데 믿음이란 우리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 음을 지킨다 그러면 우리의 우리된 것을 지키는 것입니 다. 소망은 뭡니까? 우리의 믿음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동시에 소망은 이 싸움이 여기서 심판받지 않고, 영원한 나라에서 심판받는 것을 아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사랑 은 뭡니까? 내가 가진 이 믿음과 그 목적지를 향한 시각 이 나 혼자 갖는 것이거나 나 혼자 가야 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께서 나를 그 증인으로 삼아 가능한한 많은 사 람과 함께 가도록 요구한 내용인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에게 부족합니다. 신자 모두가 전도의 책임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입니다. 전 도라는 하나의 형태적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혼 자서 가지 않습니다. 같이 갑니다. 상대방을 들어오게 하고 내가 떨어질지라도, 내가 혼자가고 상대방이 못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제자훈련이라 하는 문제 에 있어서 '새 생명으로의 나'를 확립하는 일과 내 믿음 이 지금 완벽하고, 완전하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완성 을 향하여 나가는 진행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되 고,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을 함께 그 목적지까지 동반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시 에 여기에 수반되는 몇 가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일하시는 뜻과 방법을 아는 것, 이것이 제자훈련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 12장에 가서 본격적으로 제자훈련의 내 용을 우리가 살펴볼 수 있게 되는데 어떻게 하라고 되어 있는가 봅시다. 여기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의 중요함 은 변화된 우리의 생명의 증언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되고,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의 우리의 책임을 다한다고 성경이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몸으로'라는 것은 몸뚱아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 닙니다. 우리의 전 삶의 모습들, 우리가 하는 행동거지 의 모든 것, 일거수 일투족, 표정,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것이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의 우리의 일을 수행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절 이하에 내용들을 보시면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 실적이라는 것을 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금 확인시킬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가 생각하는 제자훈련이라 그러면 어떤 특별한 임무, 어떤 두드러진 능력이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너무나 사소하고, 너무나 평범한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 다. 실제로 성경이 그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님 의 증인 노릇을 하라고 합니다.


이 성도들을 향한 권면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 전부 말과 생각에 관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이 말을 결정 하고,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며, 말은 모든 것에 제일 먼저 우선하는 하나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행 동하기 전에 말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첫번째 표인데, 이 생각과 말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분 명히 잡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해 야 될 것은 생각 중에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 을 품지 말라"입니다. 이것이 여기서부터 21절까지 있는 모든 내용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입 니다.


그러면 마땅히 생각할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대해서 가지는 마땅한 생각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통하여 영광 받 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 각은 다 뭐냐하면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빼놓고는 재미있는 '꺼리'로 밖에 생각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 니까 가쉽(gossip)이라는 게 생깁니다. 실제로 그 사람 이 그러냐, 그런 일이 있었느냐를 떠나서 재미꺼리가 됩 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어떤 일 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재미꺼리로는 얘기를 삼지 않는 것,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훈련입니다. 이렇게 사람에 대해서나, 일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할 것을 요구하는 가 장 큰 이유는 서로가 다른 기능을 가진 지체이기 때문입 니다.


4절과 5절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 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 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내가 가진 기능에서 볼 때는 저 사람이 가진 기능이 이해가 안가는데, 우리는 나와 다르 면 무조건 누가 뛰어났느냐, 누가 못했느냐의 우열의 개 념으로 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우열의 개념으로 보지 말고 다르다고 보라는 것입니 다. 비빔밥을 만들려면 무엇을 넣어야 됩니까? 나물 넣 고, 고추장 넣고, 밥 넣습니다. 그리고 참기름도 넣고.


그런데 넣는 분량이 다 다릅니다. 그 때 가장 많이 들어 간 것이 '내가 최고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틀리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얘기하는 건 '한 몸에 많은 지 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은 아니 라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한 몸, 동등한 가치를 인정 할 줄 아는 것.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엇으 로 부르셨느냐에 충성해야지, "왜, 난 저 사람에게 준 것 을 안 줘요?"라고 얘기하면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전제조건과 원리를 이해하고서 6절 이하의 부 분들을 이해해야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 을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는 것은 예언할 때 자기가 역사 를 주관하는 것 같이 굴지 말라는 말입니다. 앞 날을 미 리 안다는 것이, 앞 날을 자기가 조작할 힘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신앙이 약한 것을 보고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그를 권면할 때, 마치 여러분이 그 말씀을 만든 것 같은 그런 입장에 서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7절, 섬기는 일은 섬기는 일로 하라는 것은 뭐냐 하 면, 그것 가지고 자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섬기는 일 로 자랑하는 대표적인 실수가 어디에서 많이 나오냐면 정 치인들에게 많이 나옵니다. 이들이 유세할 때 가보면 '내가 어떻게 국민을 위해서 일할 사람이요, 내가 어떻게 애국심을 갖고 있으며, 내가 어떻게 모든 국민의 공복감 인가?'를 외치는 데, 되고나면 하나도 안합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일로' 이게 왜 재미있느냐 하면 섬기는 자는 그의 희생 정신으로, 고귀한 인격으로 보상 을 받고 싶고, 가르치면 내가 가르친 열매로 보상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효도한 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효도는 그 상이 뭔지 아십니 까? 효도의 상은 효심을 가진 것 자체가 상입니다. 부 모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과 어떤 불만족을 갖고 있으면 그것 자체가 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서, 혹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모든 성도들 사이에서 내가 누 구에게 가르칠 일이 있으며 내가 쓸모가 있다는 것으로 이미 보상을 받은 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큰 봉사직은 남 앞에 서는 직분이 아니고 섬기는 봉사직입니다.


8절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 는 성실함으로" 여기서 권위라는 것은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로하고 권면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제일 많이 실패하는 것은 누가 나한테 실수를 했거나 상 담을 하러 오면 너무 자기의 생색을 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여린 마음, 깨우치지 못한 마음, 그래서 갈등하는 것을 안타까와 하고 정말 그 사람 편이 되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런 마음으로 그 사람을 위로하고 "혹 이 것이 남에게 알려져서 남들이 알고 그 사람을 얕보면 어 떡할까?" 하는 감쌀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눈을 부라리 면서 자기는 그런 건 문제도 아니라는 과시를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누가 나한테 물어보러 온 일로 오히려 고마워 해야 됩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왜 구제하는 자는 성실 함으로 해야 될까요? 여기서는 천성적으로 나태하고 게 을러서 어렵게 사는 사람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건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입니다. 이 사람 들을 구제해야 하는데 이 구제받는 사람은 자기들이 구제 받는 곳까지도 안옵니다. 줄도 안 섭니다. 그래서 구제 하는 사람은 내가 베푸는 것 때문에 까다롭게 굴면 안된 다는 얘깁니다. 내가 베풀고 저쪽이 베품을 받지만 베푸 는 자가 마치 빚을 갚는 것 같이 굽신거려야 되는 것입니 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에게 빚진 자 같이 오시듯 말입 니다. 그래서 구제하다 보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구제할 만한 자를 구제하자'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 러나 굶는 사람, 지금 당장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 됩니 다. 언제까지 도와야 됩니까? 그 사람이 먼저 죽으면 그 사람 죽을 때까지고, 여러분이 먼저 죽으면 여러분이 먼저 죽을 때까지 입니다. 이 말의 뜻은 그 사람에게 도 와준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도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하고,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해야 됩니다.

다스리는 자가 부지런함으로 한다는 것은 권세를 갖 고 있는 자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고 잘되게 하기 위하 여 그 권세를 부여받고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이걸 내가 어디에 써야 되는가를 위해 돌아다녀야 됩 니다. 찾아 오는 자를 만나는 것이 권세자의 일차 책임 이 아니라 내가 이걸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위해서 늘 돌 아다니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 들이 가져야 하는 사고방식 중에 하나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 빛과 소금으로, 저들에게 나눠 줄 의와 거룩과 생명과 진리로 부지런 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돌아 다니면서 어디에 가서 불을 비춰야 되는지, 어디에 가서 소금을 쳐야 되는지, 어디 가서 내가 봉사를 하고 섬기고, 어디에 가서 사랑을 나누고, 도움을 줘야 하는지 우리가 부지런히 찾아 다녀야 됩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해야 됩니다. 구제 를 하는 것이 상대방의 불쌍한 것을 도와주는 정도에 불 과하고 채권과 채무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채권, 채무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 이 뭔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나에게 빚진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걸 용서하는 일입니다. 기쁨으로 하셔야 됩니다. 남을 용서할 수 있고, 남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즐거운 일 인 줄 아셔야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누구냐가 증명이 되는 것입 니다. '저 사람은 다르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해가지고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다 받는다' 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믿음, 소망입니다. 그걸로 결 국 뭐가 이루어지느냐면, 나에게 그 은혜를 입고, 나의 모습으로 영향을 받은 그 사람들이 내가 가는 길에 찾아 오게 되는 것입니다.


9절부터 21절까지는 사랑의 원리가 실행되는 모습입 니다. 사랑의 특징은 '주는 즐거움, 나누는 기쁨,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셔야 되는데 처 음엔 이것을 다 알고도 실천이 안되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연습을 하십시요.


그러던 중에 17절의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구절이 왜 갑자기 등장할까요? 여러분이 이 모든 선한 일과 희생 하는 일과 주는 일과 사랑하는 일과 저들의 유익을 위하 여 일함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은 악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그걸 악으로 갚지 말 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더 많은 믿음 과 더 신령함과 더 큰 능력으로 나가면 여리고 성이 무너 지듯이, 홍해가 갈라지듯이 모든 것이 그냥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하면 잘 할수록 더 많은, 더 두터운 벽에 부딪 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 한 모든 것이 심기워지는 작업이고 그 열매는 뒤늦게 엉뚱한 데서 나타날 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장은 그 씨를 뿌리는 것을 방해하러 오는 적군뿐 입니다. 그래 서 우리는 놀랍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렇게 힘들 어 가지고 어디 해먹겠나?" 또 우리가 하는 일에 열매를 걷게 해주는 일도 몇 번 없습니다. 아마 뿌리다가 죽을 거예요. 뿌리는 동안에도 상 주러 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러 오는 적군을 만납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적군이 오는 이유는 내가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훈련 부족이나 내가 믿음이 없는 문제가 아 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모든 고생을 하시고 맨 나중에 빌립보서 2장에 얘기한 바와 같이 죽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닙니다. 십자 가에 죽으십니다. 그건 가장 큰 고통과 가장 큰 모욕의 자리였습니다. 바로 이것을 배우고, 훈련해야 됩니다.


이것이 증인이고 제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참 어렵습 니다. 성경이 하라고 하는 이 일들은 우리가 제일 하기 싫은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연습해야 됩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런 마음이 저절로 들기를 바라면 안됩니다. 내 생각과, 내 습관과, 내 본질이 달라지는 연습, 이것이 제자훈련입니다.


<이해를 위한 질문>


1. 신자의 삶의 3대 원리와 그 각각의 의미를 말해보세요.

믿음 :

소망 :

사랑 :


2. 12:1절에 나온 '몸'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3. 롬 12:9-21까지는 사랑의 원리가 실행되는 말씀입니 다. 그런데 17절에 갑자기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 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토의를 위한 질문>


1. 성경의 구체적인 가르침에 대하여 자신이 적절하지 못 했던 부분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인정하고 변 화될 모습을 서로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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