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 제자 훈련-제 10 과 제자된 자의 원리(II)-생명
본문
의와 진리로 부르심을 받은 새 사람, 생명으로 허락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모습과 정당한 가치관,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모습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생명있는 물체들의 공통된 특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요.
<이해를 위한 설명>
우리가 어떻게 예수의 증인이 되는가? 첫번째는 진 리가 그 기준이었다면 두번째는 생명입니다. 이번 시간 에는 생명과 제자됨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생명은 자기가 어떻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밖으로 나타냅 니까? 열매를 보고 압니다. 생명이 있는 것만 열매를 맺습니다.
생명은 다른 것으로 자기가 생명이 있다고 하지 않 습니다. "생명있음" 이렇게 쓰고 다니거나 나팔을 불지 않습니다. 생명은 당연히 자라는 겁니다. 왜 "너희가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이라는 말을 하시는지 아십니 까? 생명은 겨자씨로 시작한다 할지라도 나중에 큰 나무 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겨자씨로 있 는 법이 없습니다. 산을 옮길 수 있는 데까지 가는 이유 는, 시작은 겨자씨 같아도 생명이 있는 올바른 믿음이라 면, 그것은 나중에 감당치 못할 자리까지 당연히 크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성도들을 보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의 생명에 대한 관심과 초점의 부분을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으로 갖고 있는 믿음이 크지를 않습니다. 그 믿음을 생명으로 이해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생명으로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감동할 때마다 벽돌을 한 장씩 굽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흥회에 다녀오 면 감동한 벽돌을 한 장씩 가져옵니다. 집에 가보면 이 런 벽돌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권면하 고 자극을 하면 그 날 '욱'해 가지고 모여서 한줄로 높게 벽돌을 쌓고, 그러다가 너무나 하고 싶은 유혹거리가 있 으면 "에이 모르겠다" 그리고 놓고 가서 놀다가, 어느 날 또 '욱'해 가지고 눈물흘리고 회개하고, 와서는 그 흩어 진 벽돌을 다 정돈합니다. 그러나 그것들로 집을 짓지는 못합니다. 그냥 벽돌더미로 있습니다. 비 오면 벽돌더 미 위에서 비 맞고, 바람 불면 벽돌더미 옆에서 바람 맞 을 뿐이지 그 속에 들어가 쉬지를 못합니다. 그 벽돌들 이 내 안에서 양식이 되어 나를 키우고 내 믿음을 키운 것이 아니라 감격의 사건들과 감격의 기억들로만 남아 있 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들어와서 그 벽돌을 잡고 '내가 그 때는 얼마나 행복했었는가, 그 때는 얼마 나 울었었는가, 그 때는 얼마나 진심에 차 있었는가'라는 회상을 하고 그리로 도망을 갑니다. 감격거리만, 자랑할 거리만 가지고 있지, 실제로 우리를 키우고 있는, 우리 안에서 자라야 하는 생명은 갖고 있지 않은 겁니다. 옛 날의 그 사건이, 오늘 일어나는 사건을 이기도록 내 안에 어떤 힘으로, 지혜로 남아있지 못합니다. 생명이 신자된 큰 원리 중에 하나인 것을 이해하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감격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존재이지 그 감격이 '나'라는 사람을 키우고 있지를 않습니다. 왜냐 하면 내가 그걸 먹고 크는 생명체가 아니였다는 말입니 다. 나는 분명히 생명체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 는 양식을 먹고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떻게 변했느냐로 증거하고, 대 응할 그런 사람으로 변해 있지 않다는 데에 큰 약점이 있 습니다. 생명을 키우고, 자라게 하는 훈련, 그것이 제자 훈련입니다.
마태복음 7장 17절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 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7-18). 좋은 나무면 좋 은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압니다. 그러니 까 우리가 예수의 증인이 될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거듭난 새 생명을 가진 자라는 열매가 있어야 되는 겁 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 자하며, 자비하며, 오래 참으며, 유익되는 말을 나누며, 빛에 거하며, 사랑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새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변화된 자로서 마땅히 맺어지 는 열매입니다.
그 열매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 안에 가진 생명이 어떻게 성장하느냐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찾을 것입니다. 그 러나 우리의 열매는 얼마나 많이 잡아 왔느냐는 것이었습 니다. 내가 누굴 하나 데려왔다고 그 사람이 내 열매가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가 그 사람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내가 가진 생명의 향기와 생명의 열매로 저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일 에 써 주신 것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문제를 다룰 때에도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하신 새 생명 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로 말 미암아 어떻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영혼들을 하나님 앞 으로 인도하시고 저들의 영혼을 잠자던 자리에서 깨우셨 는가에 대해 놀라는 것이 원칙이지, 어떻게 시간을 내고 노력을 경주하여 뛰어다니면서 사람을 잡아오는가에 그 사람의 신앙이나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자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7장 4절로 가십시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 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 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이 싸움을 로마서 6장 20절은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 에 대하여 자유하였으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 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0-22)라고 설명합니 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이것이 우리가 얻은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의와 진리로 부르심을 받은 새 사람, 생명으로 허락 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모습과 정당한 가치관,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모습 입니다. 이것이 약화되는 이유는 행위 자체에 우리가 정 신을 팔고 있기 때문이예요. 우리는 자꾸 형태화 작업으 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여지는 것 자체가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형태와 명분에 관한 문제가 아니 라 내용과 진리와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빛이고 소금인 것은 빛을 비추고 소금을 퍼다 뿌리는 싸 움이 아니라 내가 빛이고 소금인 것입니다. 나의 존재가 거룩해 지는 것이 일차 목표고 그것을 통하여 또한 하나 님께서 다른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다 는 것이 이 증인된 일에 선후인 것을 기억하셔야 될 것입 니다.
이 일차적인 목표를 위하여 일터로 가기보다는 나의 완성을 위한 환경을 먼저 제공받는다라는 생각을 해야 됩 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에게 건강도 주고, 돈도 주고, 실력도 주면 내가 정말 주를 위해서 꽝꽝 일을 할텐데 왜 이렇게 안 주고 시간을 끄시는가'라고 조급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이루어지는 이유는 여러분 자신이 목적 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일차 목표이지 여러분을 써 먹는 것이 목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 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인생살이와 그 과정을 통해 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만족할 만한 존재가 되어야 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그 작업을 통하여 하나 님은 여러분이 빛이고 소금인 것을 이웃들에게 제시합니 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안목을 갖기 시작을 해야 되느 냐면 내가 백성으로, 예수의 증인으로 이런 저런 일을 하 고 싶습니다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환경 과 조건으로 인도하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 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 라함의 생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 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 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 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 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1-3). 기존의 제자훈련 개념으로 보자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다니면서 매일 전도지 돌리면서 매일 전도 집회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부터 아브라함 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생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가?'해서 하나님을 발견할 기 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의 근원입니다. 그래 서 아브라함을 보고 축복한다는 것은 '너를 지키는 하나 님은 굉장히 놀라운 분이구나, 나도 그 하나님의 보호하 심 속에 있기를 원한다' 이런 뜻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 함을 보고 저주한다는 것은 '너는 왜 네 한 몸 먹고, 네 뜻대로 살기도 바쁜데 무슨 하나님인지, 누군지를 섬긴다 고 그 고생을 하느냐' 이렇게 해서 그의 생애를 보면서 하나님을 못 보았으면 그것은 곧 그에게 저주인 것입니 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 나시는 겁니다. 그 일이 아브라함에게 숙제로 주어져 있 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고 걸으라 하신 그 가나안 땅 에서 그냥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여기 저기 가서 양치며 산 그 모습 속에서, 그냥 평범한 삶의 현장 속에 서 나타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증거 를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삼는데 있어서 우리에 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열심과 기술 이전에 시간과 공 간입니다. 땅 끝까지 가서 선교사 되고, 가가호호 방문 해서 전도지를 돌리는 것이 예수의 증인으로서의 일차적 인 임무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공간과 시 간, 이것이야말로 바로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같은 인생을 사는, 그래서 이웃들이 여러분을 보고 축복할 것이냐, 저주할 것이냐로 여러분을 점검하는 삶의 자세, 이것이 예수의 증인된 첫번째 형태라고 봐서 틀림이 없다 이겁니 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훌륭하다는 것은 경쟁적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 맡은 일이란 삶 자체입니다. 신앙 생활이 뭐냐 그러면 형태로서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준 불신자들과 똑같이 맡긴 일상적인 생활을 신자 된 자로서 이제 반응하고 또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형태의 변화는 없습니다. 똑같이 지지고 볶는 겁니다. 그래서 맡은 일이 적고, 감춰졌다는 것 때문에 흔들리시면 안됩니다. 이 지지고 볶는 것을 지키는 것이 큰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일을 여러분들 이 얘기하는 사소한 것들 속에서 준비시키신다는 것입니 다. 그것이 평범하고 감추어졌다는 것 때문에 여러분이 힘을 덜 내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것 이 전부인 것 같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한 시간 후에 있다 오신다 할지라도 지금 맡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날짜를 안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예수 의 증인으로 산다"는 문제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임 을 잊지 마시고 여러분이 처한 여러분의 남편, 자식, 가 정, 이웃, 교회, 여러분이 처해 있는 형편을 소중한 사명 으로 알고, 거기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충성하는, 그리고 감사하는 그 복된 인생을 걸으면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한 질문>
1. 신자가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자라지 않는 이유는?
2. 우리가 예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거듭난 새 생명을 가진 자라는 열매가 있어야 됩 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열매들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증거하는 대상으로 삼으 실 때, 우리의 어떤 점을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의 생을 참조하여 답하십시요)
<토의를 위한 질문>
1.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의 삶 의 모습속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서로 토의해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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