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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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목사 제자 훈련-제 5 과 제자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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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제자의 정체성    본문 / 히 11:6


우리가 믿는 것은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이라서 인생의 목표와 삶의 원리와 자세에 영향을 주는 것입 니다. 그것은 의욕과 능력, 열심을 부리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삶의 원리와 자세를 바꿔놓는 것 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지난 주간 동안 여러분 자신이 믿고 산 것은 무엇인지 실제적인 삶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서 솔직하게 한 번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해를 위한 설명>


우리는 이제까지 제자훈련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정립하려고 애썼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허락하신 구원을 말 로만이 아니고 우리의 인격과 존재와 삶을 통하여 증거하 는 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 끝까지 이 르러 증인이 되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이 일은 결 국 '그러면 신자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로 귀착됩니다.


'신자란 누구인가?' 말하자면 신자의 정체성(identifica -tion) 문제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익숙한 것으로 표현 을 하자면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믿고 사는가?' 하는 것 입니다. 그래야 다른 이들 앞에 우리가 누구인가, 무엇 을 목적으로 하는가, 왜 사는가를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구절인 히브 리서 11장 6절은 우리가 믿는 믿음에 대하여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 리는 누구인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인데, 하나님의 무엇을 믿는가 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여 기 '존재를 믿는다'라는 말 속에는 그의 창조, 섭리, 심 판권을 포함하며 하나님의 유일한 권위와 주권과 높으심 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믿음은 이런 것과 함께 좀 더 근 본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을 봅시 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 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7-18). 은혜와 진리, 하나님 께 속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서만 비로 소 소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궁극 적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며 그의 은혜와 복주심 안에 거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렇게 하나의 개념과 추상적 목표로만 있지 않 고 실제로 그것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를 통과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 다. 그래서 믿음 안에는 이 두 초석이 다 놓여야 됩니 다.


예수 그리스도가 배제되고 하나님이 논의되는 곳을 가보면 그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관념의 한 상 징인 것을 봅니다. 선이요, 덕이요, 이상(理想)인 것을 봅니다. 그런 하나님은 깨우침에 불과합니다. 그 하나 님은 심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하 는 하나님도 아닙니다. 역사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관념과 이상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이상과 개념 앞에서는 인간이 죄를 지을 것도 없고, 도 움을 구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는 심판도 보상 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신앙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았으면 가짜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을 소개하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의 본질을 요한복음 14:6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그 하나님을 설명하는 예수를 아는 것이 요, 그 예수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와 생명된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보이시려 는 것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 자신이 진리와 생명의 내 용이자 본질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믿음은 믿는 자의 소원과 정성 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소원과 정성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 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면 진리와 생명이 라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소원과 정성은 내가 그 내용과 목표를 정한다는 차이입니다. 권위가 누구에 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나 님을 믿는다','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이 마치 내가 진리 를 선택한 것 같고, 진리를 깨우친 것 같이 생각할 위험 성이 대단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해 놓고도 그의 믿음의 근거가 진리와 생명이라는 우리 믿 음의 중요한 핵심되는 성격이 외면되고 자기도 모르게 정성과 소원이라는 것으로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 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추적하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 느냐가 훨씬 목표의 선상에 튀어 나오게 됩니다.


또한 그 믿음의 내용은 진리와 생명이지 능력과 의 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능력과 의욕일 때는 자꾸 뭐라고 요구를 하느냐 하면 자랑할 일거리를 달라고 합 니다. 내가 가진 주를 향한 거룩한 욕심과 주의 영광을 드러낼 소원이 있으니 나한테 그것을 나타낼 어떤 사건 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의 약점은 믿음의 기초가 잘못되 어 있기 때문에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달라는 것이 다 뭐냐 하면 한 번 보란듯이 잴 건수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일종의 능력을 과시하며, 주를 향하여 내 열심이 나타나는 것으로 너무나 많이 그 동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진 리와 생명에 관한 것이라서 인생의 목표와 삶의 원리와 자세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욕과 능력, 열 심을 부리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삶의 원리와 자세 를 바꿔놓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디모데후서 4장을 보십시다. "하나 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 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 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 며 권하라"(딤후4:1-2). 인생살이에 있어서 신자들에게 주어진 명령들은 무엇을 근거로 나오느냐면 1절에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 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라는 근본적인 진리에 기초해서 그 뒤에 있는 삶의 모든 요구 들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만일 이 앞에 있는 이런 믿음의 내용, 곧 진리가 우리에게 공감되지 않는다면 그 뒤에 있는 요구들은 우리에게 설득력을 가 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들에 있어서 최고의 약 점은 그것이 자꾸 경쟁적이고 자기 증명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는데 있습니다. 누구는 재주가 열 개있고, 누구는 재주가 다섯 개 있고, 누구는 재주가 한 개 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 개와 다섯 개를 놓고 비교를 하는 식으로 신앙을 권면하면 안됩니다. 그가 무엇을 위 해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열 개 가 졌냐, 다섯 개 가졌냐를 자꾸 비교하니까 우린 '더 많이 주십시요'밖에는 기도할 것도, 욕심낼 것도 없게 된 것 입니다. 우리가 열 개를 가졌느냐, 다섯 개를 가졌느 냐, 하나를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가진 것으로 - 능력이 아니라 존재 - 나의 존재, 나의 삶을 어디를 방 향잡고, 어떤 자세와 원리로 살아갈 것이냐 인 것입니 다. 이것이 우리의 증인된 최고의 책임이요, 더 이상 값 진 것이 없는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더 가진 사람을 부 러워할 필요가 없고, 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인해서 시험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격을 변화시 키는 것이어야지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한 방법과 수단일 수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일의 방법과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인가는 우리가 무엇 을 믿느냐이고 그 믿음이 목표에서, 가치관에서, 사는 방법과 원칙에서, 인격과 전 존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 는가가 전도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게 제시되어야 할 하나의 증거들인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아무 앞에도 설 수 없고, 아무에게도 무엇을 전할 수 없습니 다. 내가 전하는 모든 내용은 그것이 나에게 먼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증거해내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위한 믿음이든가, 성공하기 위한 믿음이라든가 이런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를 지키며 충성 하며 인내하는 그런 안목과 분별과 인내를 만드는 것이 어야지 무엇을 이루는 기술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소 원과 욕심을 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을 동원하 는 때인 것입니다. 이렇게 그 진리와 생명은 우리로부 터 출발한 업적이 아니요, 결과가 아니며, 노력의 산물 이 아니요 하나님으로 부터만 허락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모든 신앙의 핵심, 믿음의 핵심되는 성격은 아 는 것과 순종으로 가게 됩니다. 아는 것이란 도를 깨 우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를 아는 것,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가에 관한 것이며 그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순종하는 것으로 믿음의 형태는 가장 먼저 제한을 받아야 옳습니 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순종하며 우리가 진리와 생명 안에 있는 법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믿 음은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순종하며 우리가 진리와 생명안에 있는 법,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해를 위한 질문>


1. 히 11:6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 까?


2. 이러한 믿음은 누구를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습니까?


3. 믿음의 내용을 '능력과 의욕'으로 오해할 때 생기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4. 믿음의 3단계는 무엇입니까?


5. 진리와 생명이란 결국 무엇을 지칭하는 말입니까?


<토의를 위한 질문>


1. 믿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오늘 공부한 것을 근거로 해서 서로 말씀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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