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삼열 목사3(Samuel A. Maffett, 1864-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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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인데는"
모펫 목사는 신학교에서 교리학을 가르쳤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모펫 목사가 한글에 서툴러 강의 중에도 버릇처럼 하는 말 중 "–데는"으로 말을 맺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삼위일체를 가르치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이렇게 꼭 믿는 것인데는 형제들도 그렇게 믿을 것인데는 무엇이든지 물을 것인데는 그래도 나는 어떤 방정식 같이 그런 대답으로 여러 형제의 질문에 대답을 못할 것인데는 나는 믿기는 그대로 믿는 것인데는 여러 형제들도 그렇게 믿을 것인데는 믿으려는데 물어 보실 수도 있는 것인데는 내 대답은 여러분의 묻는 그 물음에 대답을 못할 것인데는 그래도 나는 그렇게 믿는 것인데는 여러분도 그렇게 믿을 것인데는 믿는 그 어떤 부분에 물을 수도 있는 것인데는 그 대답을 못할 것인데는 그래도 나는 그렇게 믿기는 믿는 것인데는 여러분도 그렇게 믿을 것인데는 얼마든지 물을 수 있기는 있는 것인데는 그 대답을 잘 못할 것인데는 대답 못해도 나는 꼭 그렇게 믿는 것인데는 여러 형제들도 그렇게 믿어야 될 것인데는……"이라고 "데는 데는“을 반복하면서 이 말을 몇 십분을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고 한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은 삼위일체를 꼭 믿으며 여러분도 그렇게 믿게 되어질 것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어눌한 우리말로 반복하여 학생들이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이다.
큰 인재를 키우신 이
모펫 목사가 키워낸 인물은 무수히 많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평양 신학교 1회 졸업생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한국 교회사에 기록된 쟁쟁한 인물들을 얼마나 많이 키워냈는지 알 수 있다. 제1회 졸업생 방기창, 서경조, 양전백, 한석진, 이기풍, 길선주, 송인서 중에는 33인 민족대료로 독립만세에 서명한 길선주 양전백이라는 인물도 있고, 조선 땅 곳곳에 교회가 굳건히 세워지도록 일조한 한석진, 제주도의 복음화의 개척자 이기풍, 아들에게 한국 최초 유아세례를 받게 했고 군 선교에 일조했던 서경조 목사 등이 있었다. 특히 한국 교회 부흥의 단초를 만들었던 길선주 목사는 최초의 부흥 사경회를 시작해서 많은 교회를 순회하며 지대한 영적 영향력을 키쳤던 인물이다.
모펫 목사의 품위
모펫 목사는 키가 크고 위풍이 당당한 성격이었다. 그래도 극히 인자하하였고 그 돈독한 신앙을 자기 삶으로 보여준 사람으로 당시 사람들은 평가한다. 교회 개척과 교육기관을 다양하게 세워 애국 애족의 인재를 많이 길러낸 인물이었지만 교회의 행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그에 합당한 인물을 발탁하여 그들이 담당하게 했다고 한다. 세워진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에도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제자들을 파견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그 중 한명이 한석진 목사였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분야의 탁월함을 이미 알고 전국교회로서 난문제 해결에 한석진 목사를 보내 해결하도록 했다.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지만 시작은 자신이 하되 그 후에는 적절한 인물을 앉혀 운영을 하도록 하였다. 전국 곳곳에 좋은 땅을 발견하여 사두고 교회를 세울 인물을 찾으면 그들로 교회당을 짓도록 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일체 간섭이나 충고를 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였다. 재정적 어려움이나 운영의 난관을 만날 때도 뒤에서 모금을 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보내 어려움을 처리하게 하였지 그가 앞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떤 일에 자문을 구하면 그의 특유의 어눌한 한국어 표현으로 "해 볼 것인데는 하나님과 의논할 것인데는!!"라고 대답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한국교회가 빨리 스스로 독립하여 세워지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유학생 하나 없이 이처럼 스스로 깨달아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교회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 한국 교회 신앙의 초석을 놓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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