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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사명이 있는 가정과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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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이 있는 가정과 자녀


사사기 13:2-14


 


사사기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사사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면 여호와께서 이웃나라를 들어 징계를 하고 징계가 계속될 때 백성들이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여호와께서 사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이 사사기를 기록하는 패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사 삼손이 등장할 때는 한 가지가 빠져있습니다.


13장 1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 그래서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들이 그 괴롬으로 부르짖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부르짖음이 없이 곧바로 구원자이신 사사를 보내주시는 기록이 2절부터 등장합니다.


부르짖음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블레셋의 통치방식입니다.


블레셋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했지만 너무 압제하지 않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유도 주고 자치권도 부여했습니다.


어느 정도 살만하니까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삼손이 블레셋을 치고 에담 바위틈에 있을 때 유다 사람 3천명이 삼손을 찾아갑니다.


삼손과 하나 되어 싸우려고 가야 마땅했지만 오히려 그를 잡아 블레셋에 넘기기 위해 간 것입니다.


백성들은 현재의 화목을 파괴하는 자로 삼손을 잡아 블레셋에 넘기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싫지 않고 괜찮다는 노예근성 때문에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부르짖음이 없는 이유는, 영적으로 최악의 암흑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잊어버려서는 안 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들은 하나님마저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사사시대의 영적상태를 사사기 마지막 절에 보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왕이 없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보니 이제는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렸습니다.


까맣게 잊어버린 하나님께 무슨 기도나 간구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가 없었는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사 삼손을 보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곳이 또 하나 있는데 마노아의 가정입니다.


마노아는 소라 땅에 살고 있는 단 지파 사람인데 안타깝게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자녀가 없다는 것은 특히 여자에게는 더 큰 수치요 고통이었습니다.


마노아부부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부르짖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문 상으로 보면 어떠한 간구를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간절히 아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런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갑자기 나타나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고지합니다.


이것 또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들을 고지할 뿐 아니라 그를 임신하였을 때 조심할 부분을 알려줍니다.


먼저,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아들을 낳으면 그의 머리위에 삭도를 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태에서 남으로부터 나실인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할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마노아의 가정에 아들을 주시는 여호와의 은혜가 임한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노아의 가정만 그렇겠습니까?


성도들의 가정에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고 성도들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창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위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그 일을 감당하고자했을 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돕는 배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하와를 만드시고 그 둘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처음 가정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을 갖고 출발하였습니다.


가정에 사명이 있는 것처럼 선물로 주신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마노아의 가정에 구하지도 않은 삼손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려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영적으로 볼 때 사사시대의 암흑기에 해당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보다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보니 세상은 점점 더 악하고 추하고 어둠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의 대표적인 악한 모습이 두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과 섬기는 물건을 빼앗아가는 모습입니다.


미가가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항변하자 단 지파 사람들이 한 마디 합니다.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라.’


힘 있는 사람들이 세력들이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빼앗고 횡포를 부렸습니다.


또 하나는, 어떤 사람의 아내를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윤간을 해서 죽이는 사건입니다.


하루 밤을 지내기 위해 이방인의 성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성을 골라 들어갔는데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의 아내를 빼앗아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불량배들은 불량배니까 이렇게 한다 쳐도 이런 일을 행하는 불량배들을 자기 지파 사람이라고 두둔하고 감싸주는 베냐민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우리가 방송으로 듣기에 세세한 형편을 다 알지 못합니다만 이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베냐민 사람들처럼 우리 성도들도 이런 일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들의 잘못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타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도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점차적으로 잊혀져가고 있고,


하나님 대신 내가 왕으로 군림하면서 내 마음대로 내 소견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 사회는 점점 더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세상을 위해 기도할 수가 없고 부르짖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신앙적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시고 자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오월 첫 번째 주일로 한국교회가 함께 지키는 어린이주일입니다.


오월 한 달은 가정의 달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자녀들을 사명자로 키울 수 있기 바랍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사명이 있음을 믿으시고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마노아의 가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을 통하여 오늘 우리사회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어 가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부모들이 바로 서야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면서 아울러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말씀이 ‘너는’입니다. ‘너는’


이 말은 마노아의 아내에게 다시 말하면 태어날 아기의 부모에게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먼저 부모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잘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먹는 것을 말했지만 어디 먹는 것에 한정되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특별히 마노아의 가정에 주는 아들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택함 받은 아들입니다.


나실인은 특별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 구별된 자를 말하는데 하나님이 직접 구별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구별하여 나실인이 되기도 합니다.


나실인은 몇 가지 금지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포도주와 독주를 금해야 합니다.


시체를 만지는 일을 금해야 합니다.


삼손의 경우에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런 구별된 삶을 살게 하기위해서 먼저, ‘너는’ 부모에게 나실인의 구별된 삶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에 눈길을 걸어 직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어린 아들이 어색한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아버지 쪽으로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뭣하고 있는 거니?’ 하고 아버지가 묻자 어린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빠 발자국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 아버지는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아빠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다'는 어린 아들의 말소리가 자꾸 귀에 울려왔습니다.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는 음성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 아이가 내 발자국을 따라 나를 따라오고 있다면, 부디 나를 도우셔서 내가 올바른 발자취를 남기게 하옵소서.’


우리는 모두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자취를 따라오는 사람이 누군가 있습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가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자녀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잘 가르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마노아는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아들을 꼭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낳을 아들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사자가 말한 아들은 특별히 구별된 아들이고 나라를 구원할 사명을 가진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그 방법을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 방법을 따라 자녀들을 기를 때가 많습니다.


또한 사회의 관습과 습관과 가치관을 따라 자녀들을 기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만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방법과 뜻을 따라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 양육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가르치면 자녀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방법을 따라 가르치면 사회에 적응은 잘 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 자녀들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신앙적으로 잘 이끌어가야 합니다.


 


삼손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특별한 은혜로 태어나고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그렇게 신앙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잘 마셨습니다.


죽은 사자의 시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졌습니다.


나중에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긴 머리의 비밀을 발설하여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삼손의 부모는 무슨 역할을 했느냐? 하는 것인데, 한 마디로 삼손의 잘못된 삶을 책망하고 올바른 삶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아들에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여인을 좋아하고 아내로 삼으려고 부모에게 말을 합니다.


그러자 부모는 당연히 왜 그렇게 하느냐? 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자기를 괴롭히는 블레셋 여인이고 삼손은 특별히 나실인으로 태어난 구별된 자입니다.


그러자 삼손은 더 이상 설명하려하지 않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니 결혼을 허락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러한 삼손의 요구에 부모는 더 이상 반대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삼손과 함께 딤나로 내려갑니다.


늦게 나은 아들이기에 그랬을까요? 아니면 정에 이끌려 그랬을까요?


정에 이끌린 부모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경건해야 자녀들의 삶도, 선택도 경건할 수 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혈육 관계를 뛰어 넘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부모의 태도를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아들 삼손에게 끌려 다녔던 부모들은 결국 삼손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고치지 못합니다.


부모가 끌려 다녀서 그럴까요?


아들 삼손도 계속해서 딤나의 여인에게 끌려 다니고 들릴라에게 끌려 다니다가 두 눈이 빠지고 블레셋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자녀의 고집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녀를 경건한 삶으로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가는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중에는 그냥 잘 되겠지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에 끌려 다니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끌고 다니지 않으면 결국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가정입니다.


여러분들과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귀한 사명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가정을 통하여 자녀들을 통하여 이 시대를 구원하시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십니다.


가정을 잘 이끌어 가시고 자녀들을 잘 이끌어 가셔서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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