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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님의 말씀 속에 길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본문

오늘은 청년 주일입니다. 성도들은 청년들을 위해 기도하고 용기와 격려와 희망을 심어주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청년들은 오늘 은혜 받고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결심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청년에 관한 설교 내용과 성경말씀도 청년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늘 말씀은 젊은 주검을 앞세운 죽음의 행렬, 슬픔의 행렬이 성문 밖으로 나오고 있는 이 행렬은 기막힌 눈물의 행렬이요,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행렬입니다. 예수님은 성안으로 들어가는 기쁨의 행렬과 슬픔의 행렬이 만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그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해주면서 관에 손을 대시고 그 죽은 시체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 우리 주님이 죽은 청년에게 명령을 했을 때 그 죽은 청년이 일어나 살아나서 어머니 품에 안겨 주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죽음과 절망의 행렬은 무거운 발걸음이였으나 성안으로 들어가는 예수님의 행렬은 찬양과 기쁨의 행렬과 사람을 살리는 행렬인 줄 믿습니다. 나오는 행렬은 죽음의 행렬인 반면 들어가는 행렬은 생명의 행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렬은 그 죽음을 살리시고 희망과 깨우침을 주는 그런 놀라운 행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의 족보에는 누구는 몇 세에 죽고 몇 세에 죽었더라, 죽었더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낳고, 낳고, …. 고 되어있습니다. 똑 같은 족보이지만 한쪽은 죽었고, 죽었고, 다른 한쪽에는 낳고, 낳고, 살았다, 살았다 가 나옵니다. 아담의 족보는 죄로 인해 사망의 족보였고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는 생명의 족보인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은 지금 사망의 대열에 서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대열에 서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생명에 대열에 있는 줄 믿습니다.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그 영혼들을 우리가 살려야 하겠습니다. 찬송가 275장 1장만 함께 부르겠습니다.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죄악과 무덤서 건져내며 죄인을 위하여 늘 애통하며 예수의 공로로 구원하네 저 죽어가는 자 예수를 믿어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 ” 아멘 죽어가는 자 살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2절 말씀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상여 속에 있는 사람은 늙은 노인이 아니고 아주 젊은 청년 이였습니다. 그청년은 외 아들이며 어머니의 희망과 기쁨이고 어머니를 모시고 결혼하고 잘 살아서 엄마가 바라는 손자 손녀도 낳고 취직해서 돈 벌어 가정도 부양해서 가문을 이어갈 그런 형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청년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젊은이들 육신은 살았으나 정신이 이미 쇠하고 죽고 신앙도 시들고 꿈과 희망도 용기도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 되지 말고 부모님들의 기대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생활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죽은 젊은이들 오늘 예수님 만나고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이 살아있으면 뭐 합니까? 그 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무늬만 기독교인이면 뭐 합니까? 그 속에 생명이 약동해야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생명, 예수능력이 없으면 썩은 인간의 냄새만 풍길 뿐입니다. 그 행동은 육의 열매만 맺을 뿐 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되고 새로워 져서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부모의 기쁨이 되는 우리 젊은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젊은이가 그 부모의 짐을 안겨줘서는 안됩니다. 이웃이나 사회에 안겨주는 문제 아, 문제의 청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역량이 있고 사회에 유익을 주는 청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젊은 청년이 죽었지만 생명의 주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희망이요 행복의 근원이 된 줄 믿습니다.
13절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위로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위로를 했지만 사람들의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입술로만 위로를 할 수 있지 그 슬픔의 근원이 되는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로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슬픔에 죽음과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진실로 위로와 평안, 안정을 주신 분 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갖고 삽니다. 우리 젊은이들 많은 문제로 상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상처를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고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참된 삶의 에너지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17절 말씀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모든 것을 헛되게 하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공자, 맹자, 석가, 마흐메트도 죽음의 행렬을 멈추지 못하고 똑같이 자기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권세가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뛰어 너머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인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죽은 청년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 살아있는 말씀을 들으면 죽은 양심이 살아나고 죽은 인격이 살아나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죽은 소망이 다시 일어 납니다. 죽은 믿음이 벌떡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명령으로 받고 명령으로 내 마음에 새기면 그 말씀이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소생하게 하며 회복시켜주시고 우리의 마음과 육체와 우리의 영혼까지 예수님이 살아 있는 그 말씀이 다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욕심과 세속과 문화에 사로잡힌 젊은이가 있다면 그 영혼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일본 젊은이는 6무주의에 사로잡혀있다고 합니다. 6무란 무관심, 무책임, 무 목적, 무 행동, 무주의, 무 도덕 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 생명 입니다. 즉 일본의 청년들은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청년들은 과연 생명력이 있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사랑하는 청년들아 일어나라” 하십니다. 목표 없는 삶에서 일어나서 거룩한 목표와 꿈과 비전을 가져라 말씀하십니다. 근시안적인 삶에서 일어나 멀리 바라보며 달려가라 말씀하십니다. 사망과 죽음과 절망의 행렬에 사로 잡혀 방황하지 말고 생명의 대열에 서서 앞을 향해 나가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청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 어르신에게도 주신 말씀인줄 믿습니다. 실망에 빠진 자들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건강, 직장, 결혼, 가정, 슬픔의 문제가 있는가? 어떤 문제가 있을지라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고 일어서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들어서 써 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결언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슬픔과 아픔과 무거운 짐을 안겨 주었습니까? 죽음에 대열에 서서 방황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여러분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옆에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무개 청년아! 아무개 성도야! 아무개 목사야! 장로야! 권사야! 집사야! 내가 이 시간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실망에 빠져 슬퍼하지 마라! 일어나서 더 이상 그곳에서 방황하지 마라! 죽음의 행렬에서 언제까지 거기서 있겠느냐? 이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내가 네를 아름다운 복음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힘을 내라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가지세요””힘을 내세요” 라고 옆에 분과 인사하세요? 예수님 안에 계신 모든 분들 “청년아 일어나라” 즉, 여기에 모이신 모든 분들이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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