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그리스도인의 가정 생활
본문
술에 만취한 남편이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던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의 목소리였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지 않고 전화를 하는 것으로 보아 필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집에 못 들어온다는 말을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내는 '여보 나야' 라는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왜 집에 안 들어오고 전화를 했느냐"면서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남편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보고싶어", "그저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침묵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당신이 보고싶어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 잊어버리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행복하십니까
오늘은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가족을 초정하는 주일로 정하고 기도중에 준비하고 오늘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초청으로 처음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마 오랫동안 여러분의 아내나 가족이 마음에 묻어두고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보! 교회 같이 다녀요" 라는 말입니다. 너무도 쉬운 말인 것 같고, 너무도 자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랜 세월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또는 잊어버린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뭏튼 자의든 타의든 이런 기회를 통해 여러분들을 교회로 초대했고, 오늘 초대받아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송길원 목사님의 책에 재미난 얘기가 있어 소개를 합니다. 고추장과 된장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밤에 고추장이 된장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야! 나 자기한테 고백할게 있어"
"응 뭔데 무슨 얘기든 다해, 내가 다 들어줄게"
"정말 다 얘기해도 돼"
"그럼! 그럼! 우리는 이제 결혼한 사이니까 괜찮아"
"사실은 나, 나 말이야! 수입고추야"
"아 그랬구나 어쩐지 그래서 그렇게 매웠구나, 그럼 어때 우리는 결혼한 사인데 괜찮아" "그런데 사실은 나도 솔직하게 고백할게 있어"
"뭔데 자기가 나를 다 이해해 줬으니까 나도 자기를 다 이해할 수 있어, 무슨 얘기든 상관 없으니까 말해봐"
"사실은…"
"우린 결혼한 사이니깐 괜찮아 무슨 얘기든 다 이해할 수 있어" "사실 말이지 난 똥이야"
우스운 얘긴데 결코 우슬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결혼을 파멸로 이끌거나 한 가정이 파괴되어지는 경우는 너무도 비일비재합니다. 여러분! 국수와 국시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밀가루와 밀가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밀가루는 봉투에 담은 것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은 것입니다.
경상도 총각이 전라도 색시를 맞이했습니다. 결혼한 새댁이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상을 정성껏 차려왔습니다. 남편이 국수를 먹는 순간 까무리칠뻔 했습니다. 태어나서 국수를 설탕에 말아서 먹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색시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놈의 집구석은 설탕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있나 어떻게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냐"
색시는 색시대로 화가 났습니다.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먹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에 말아먹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멸치 다신 물에 말아먹어야지" "다시긴 뭘 다셔! 그 집안은 멸치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있는 모양이지" 맞받아서 옥신각신합니다. 이런 것은 자라난 환경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로도 부부가 점점 심각한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넥타이를 바꿔서 매라고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이게 어때서 그러냐"고 했습니다. 아내는 "오늘 입은 양복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바꿔 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어제 맸던 그 넥타이를 메고 나갔습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내의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자신의 조그마한 말 한마디에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습니다. 속이 상한 채 지나간 전화번호부를 뒤적뒤적하다가 동창생 전화번호를 발견하고는 전화를 걸어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자기 자기남편 얘기를 하면서 "남자들은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그럴게 아니라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한번 경험해 보아야 된다"면서 늦게 들어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실컷 친구들과 함께 저녁 먹고 영화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밤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잔뜩 화가 난 남편이 문을 열어주면서 대뜸하는 말이 "아니 여자가 어딜 그렇게 싸 돌아 다니는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나라고 밖에 나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나요" "시집와서 여태까지 부엌데기처럼 일만 하다가 모처럼 밖에 나가서 친구만나고 왔는데 잘했다고 칭찬은 못해 줄망정 여자가 싸돌아다닌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거에요"
결국 두 사람은 그 밤에 등을 돌리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서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 서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3쌍이 결혼할 때마다 1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1998년에 우리 국민 1, 000명 중에서 결혼한 사람은 15. 6명이고 이혼한 사람은5. 2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혼은 해마다 늘어서 96년에는 5쌍 결혼에 1쌍 이혼, 97년에는 4쌍 결혼에 1쌍이 이혼을 했고 98년의 자료에는 3쌍 중의 한쌍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99년의 정확한 자료는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해마다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혼사유를 보면 부부사이의 무관심 내지는 불화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15년 미만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이혼은 93년 이후 계속 줄어든 반면 15년 이상 함께 한 부부들의 이혼은 89년부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20년 이상을 동고동락한 부부의 이른바 '황혼 이혼'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문제는 부부의 이혼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더 심각한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는 대학교에 재학중인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망치로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토막내어 쓰레기 봉투에 담아 이곳 저곳에 버렸습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된 범인의 말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평소에 부모님이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 자녀를 향한 부모의 무관심이 살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제 이런 문제들이 남의 얘기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억지로라도 초대받아 오신 분들은 기분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런 일이 어디 가능한 일입니까 복종은 고사하고 바가지라도 긁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신나는 말이 아닙니까 아내들은 명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복종'이라는 단어는 군대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복종이 자신의 기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군대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에 대해서는 복종하고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이 하급자에게는 없습니다. 또 기분이 좋을 때는 복종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 군대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남편이 상급자이고 아내가 하급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복종이란 말의 뜻은 '차례로 정렬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질서상의 문제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질서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 말씀이 별로 설득력이 없게 들려질는지 모릅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조선 시대적 퀘퀘 묵은 말씀을 하느냐"고 반문 하실는지 모릅니다. 이제 아내에게 복종을 말하는 남편은 '간 큰 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서 언제나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보면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마음씨가 착하거나 온순한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복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남편에게 복종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 안에 있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아내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절을 보면 남편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18절 말씀으로 끝이 났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성경은 분명히 남편들에게도 아내를 향해 해야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갓 일곱 살 먹은 꼬마 신랑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색시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철부지 꼬마신랑은 색시보고 "누룽지 긁어 달라" "업어달라"하면서 수시로 새색시를 귀찮게 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멀리 출타하시고 그 집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꼬마신랑은 여전히 색시에게 업어달라고 졸라대면서 귀찮게 했습니다. 자꾸 응석을 받아주니까 버릇만 나빠지는 것 같아서 어른들이 계시지 않을 때 꼬마 신랑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심을 하다가 꼬마 신랑을 번쩍 들어 초가지붕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꼬마신랑은 내려가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늦게나 올 것이라든 시부모님들이 생각지도 않은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들이 초가지붕 위에 올라 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붕 위에 있는 아들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얘야 너 거기서 뭘 하는게냐"면서 물었습니다.
자칫 꼬마신랑의 말 한마디면 새색시가 쫓겨날 판입니다. 새색시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꼬마신랑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색시야! 큰 박 딸까 작은 박 딸까" 색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기왕 올라가셨으니 큰 박 두어개만 따세요" 그리고는 꼬마 신랑이 딴 박을 지붕에서 받아서 내려놓았습니다. 어린줄로만 알았는데 그날따라 꼬마신랑이 그렇게 크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선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들이 남편에게 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꼬마신랑과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대개의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예! 물론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같이 살면서 바람 안 피우고 월급봉투 꼬박 꼬박 갖다 줬으면 아내를 사랑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바람 안 피우고, 월급봉투 꼬박 꼬박 챙겨서 갖다주는 것으로 아내들이 자기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대개의 아내들은 "글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어느 평범한 가정의 주부가 부부 클리닉에 찾아왔습니다. 와서 한숨을 쉬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저는 남편에게 크게 바라는 것도 없구요 그저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해주면 되는데 남편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봐요, 그것 하나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요"라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며칠 뒤, 그 부인의 남편이 부부 클리닉을 찾아왔을 때, 상담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선생님이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주기를 바랄 뿐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나요"
그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제 성격을 바꾸라고 하신다면 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요 대신에 제가 크게 한 건해서 아내에게 갖다 안길겁니다. " 아내들이 큰 것 한건을 가지고 과연 몇 년을 행복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몇 년을 별러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다고 합시다.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을 행복해 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들은 그런 것으로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또 그런 것으로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남편들은 오히려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아내들이 남편들로부터 큰 것을 받을 때 행복해한다면 세상의 많은 남편들은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사랑하는 표현의 방식 중에 하나가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들이 제일 괴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셨나요 여기서 괴로워하다는 말은 신체적인 학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을 배제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매 맞는 아내에 대한 얘기를 우리가 어제 오늘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야 한다'는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아왔는지 모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내를 향해 신체적인 가해가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괴로워하다'는 말은 '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그 마음에 걱정과 염려가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많은 결혼한 여성들의 가장 큰 바램은 남편과 함께 주일날 교회에 출석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는 말을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동일하게 하십니다.
아내의 생일날 사랑이 담긴 장미를 나이대로 선물하는 것도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근사한 곳에 가서 외식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이한 가정이 있습니다. 결혼기념일날 남편은 어느때와 같이 장미를 한아름 안고 와서 아내에게 안겨다 주었습니다. 아내는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꽃을 가득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때 아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니 이이는 어째 꽃밖에 몰라"하는 말이 불쑥 나오고 말았습니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선물들도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은 더 깊은 맛이 배어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기왕에 아내를 기쁘게 하려면 아내가 가장 원하는 것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입니다. 아내가 정말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마음에 괴로워하는 일이 무엇인가 를 잘 살피고 그것을 해결해 주는 남편이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자녀와 부모의 역할에 대한 교훈도 담고 있습니다. 20절과 21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자녀들을 향해서는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당부하고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에게 불합리한 것을 강요하거나 일방통행식의 요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내 기분에 따라 자녀를 대할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의 기분이 어떠할까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한 대학생의 부모살인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무관심이 엄청난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의 물음에 성의있게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몰라요'라는 말을 잘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그 말이 굉장히 듣기 싫었습니다. "얘야 이건 왜 이렇게 된거지 " "몰라요" "이거는" "그것도 몰라요" "그럼 이것은 왜 이렇게 되었지" "몰라요" "야 이녀석아 제발 그 몰라요 소리 하지 않을 수 없니, 어떻게 너는 입만 열면 몰라요냐 " 화가 잔득 났습니다.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 알았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수학문제를 풀다가 그 아버지가 이건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화가 났습니다. "야 이녀석아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될 것 아니야"하면서 결국 꿀밤을 아주 세게 쥐어 박았습니다. 그날 아이는 혼돈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안고 쓰러져 자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격노케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두 번 나오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참된 가정의 행복은 '주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이라는 제도를 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주 안에서 참 행복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보! 당신이 보고싶어", "그저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침묵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당신이 보고싶어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 잊어버리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행복하십니까
오늘은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가족을 초정하는 주일로 정하고 기도중에 준비하고 오늘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초청으로 처음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마 오랫동안 여러분의 아내나 가족이 마음에 묻어두고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보! 교회 같이 다녀요" 라는 말입니다. 너무도 쉬운 말인 것 같고, 너무도 자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랜 세월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또는 잊어버린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뭏튼 자의든 타의든 이런 기회를 통해 여러분들을 교회로 초대했고, 오늘 초대받아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송길원 목사님의 책에 재미난 얘기가 있어 소개를 합니다. 고추장과 된장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밤에 고추장이 된장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야! 나 자기한테 고백할게 있어"
"응 뭔데 무슨 얘기든 다해, 내가 다 들어줄게"
"정말 다 얘기해도 돼"
"그럼! 그럼! 우리는 이제 결혼한 사이니까 괜찮아"
"사실은 나, 나 말이야! 수입고추야"
"아 그랬구나 어쩐지 그래서 그렇게 매웠구나, 그럼 어때 우리는 결혼한 사인데 괜찮아" "그런데 사실은 나도 솔직하게 고백할게 있어"
"뭔데 자기가 나를 다 이해해 줬으니까 나도 자기를 다 이해할 수 있어, 무슨 얘기든 상관 없으니까 말해봐"
"사실은…"
"우린 결혼한 사이니깐 괜찮아 무슨 얘기든 다 이해할 수 있어" "사실 말이지 난 똥이야"
우스운 얘긴데 결코 우슬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결혼을 파멸로 이끌거나 한 가정이 파괴되어지는 경우는 너무도 비일비재합니다. 여러분! 국수와 국시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밀가루와 밀가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밀가루는 봉투에 담은 것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은 것입니다.
경상도 총각이 전라도 색시를 맞이했습니다. 결혼한 새댁이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상을 정성껏 차려왔습니다. 남편이 국수를 먹는 순간 까무리칠뻔 했습니다. 태어나서 국수를 설탕에 말아서 먹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색시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놈의 집구석은 설탕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있나 어떻게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냐"
색시는 색시대로 화가 났습니다.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먹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에 말아먹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멸치 다신 물에 말아먹어야지" "다시긴 뭘 다셔! 그 집안은 멸치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있는 모양이지" 맞받아서 옥신각신합니다. 이런 것은 자라난 환경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로도 부부가 점점 심각한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넥타이를 바꿔서 매라고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이게 어때서 그러냐"고 했습니다. 아내는 "오늘 입은 양복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바꿔 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어제 맸던 그 넥타이를 메고 나갔습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내의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자신의 조그마한 말 한마디에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습니다. 속이 상한 채 지나간 전화번호부를 뒤적뒤적하다가 동창생 전화번호를 발견하고는 전화를 걸어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자기 자기남편 얘기를 하면서 "남자들은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그럴게 아니라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한번 경험해 보아야 된다"면서 늦게 들어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실컷 친구들과 함께 저녁 먹고 영화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밤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잔뜩 화가 난 남편이 문을 열어주면서 대뜸하는 말이 "아니 여자가 어딜 그렇게 싸 돌아 다니는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나라고 밖에 나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나요" "시집와서 여태까지 부엌데기처럼 일만 하다가 모처럼 밖에 나가서 친구만나고 왔는데 잘했다고 칭찬은 못해 줄망정 여자가 싸돌아다닌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거에요"
결국 두 사람은 그 밤에 등을 돌리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서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 서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3쌍이 결혼할 때마다 1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1998년에 우리 국민 1, 000명 중에서 결혼한 사람은 15. 6명이고 이혼한 사람은5. 2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혼은 해마다 늘어서 96년에는 5쌍 결혼에 1쌍 이혼, 97년에는 4쌍 결혼에 1쌍이 이혼을 했고 98년의 자료에는 3쌍 중의 한쌍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99년의 정확한 자료는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해마다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혼사유를 보면 부부사이의 무관심 내지는 불화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15년 미만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이혼은 93년 이후 계속 줄어든 반면 15년 이상 함께 한 부부들의 이혼은 89년부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20년 이상을 동고동락한 부부의 이른바 '황혼 이혼'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문제는 부부의 이혼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더 심각한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는 대학교에 재학중인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망치로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토막내어 쓰레기 봉투에 담아 이곳 저곳에 버렸습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된 범인의 말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평소에 부모님이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 자녀를 향한 부모의 무관심이 살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제 이런 문제들이 남의 얘기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억지로라도 초대받아 오신 분들은 기분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런 일이 어디 가능한 일입니까 복종은 고사하고 바가지라도 긁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신나는 말이 아닙니까 아내들은 명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복종'이라는 단어는 군대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복종이 자신의 기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군대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에 대해서는 복종하고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이 하급자에게는 없습니다. 또 기분이 좋을 때는 복종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 군대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남편이 상급자이고 아내가 하급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복종이란 말의 뜻은 '차례로 정렬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질서상의 문제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질서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 말씀이 별로 설득력이 없게 들려질는지 모릅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조선 시대적 퀘퀘 묵은 말씀을 하느냐"고 반문 하실는지 모릅니다. 이제 아내에게 복종을 말하는 남편은 '간 큰 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서 언제나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보면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마음씨가 착하거나 온순한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복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남편에게 복종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 안에 있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아내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절을 보면 남편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18절 말씀으로 끝이 났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성경은 분명히 남편들에게도 아내를 향해 해야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갓 일곱 살 먹은 꼬마 신랑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색시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철부지 꼬마신랑은 색시보고 "누룽지 긁어 달라" "업어달라"하면서 수시로 새색시를 귀찮게 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멀리 출타하시고 그 집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꼬마신랑은 여전히 색시에게 업어달라고 졸라대면서 귀찮게 했습니다. 자꾸 응석을 받아주니까 버릇만 나빠지는 것 같아서 어른들이 계시지 않을 때 꼬마 신랑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심을 하다가 꼬마 신랑을 번쩍 들어 초가지붕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꼬마신랑은 내려가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늦게나 올 것이라든 시부모님들이 생각지도 않은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들이 초가지붕 위에 올라 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붕 위에 있는 아들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얘야 너 거기서 뭘 하는게냐"면서 물었습니다.
자칫 꼬마신랑의 말 한마디면 새색시가 쫓겨날 판입니다. 새색시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꼬마신랑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색시야! 큰 박 딸까 작은 박 딸까" 색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기왕 올라가셨으니 큰 박 두어개만 따세요" 그리고는 꼬마 신랑이 딴 박을 지붕에서 받아서 내려놓았습니다. 어린줄로만 알았는데 그날따라 꼬마신랑이 그렇게 크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선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들이 남편에게 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꼬마신랑과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대개의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예! 물론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같이 살면서 바람 안 피우고 월급봉투 꼬박 꼬박 갖다 줬으면 아내를 사랑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바람 안 피우고, 월급봉투 꼬박 꼬박 챙겨서 갖다주는 것으로 아내들이 자기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대개의 아내들은 "글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어느 평범한 가정의 주부가 부부 클리닉에 찾아왔습니다. 와서 한숨을 쉬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저는 남편에게 크게 바라는 것도 없구요 그저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해주면 되는데 남편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봐요, 그것 하나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요"라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며칠 뒤, 그 부인의 남편이 부부 클리닉을 찾아왔을 때, 상담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선생님이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주기를 바랄 뿐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나요"
그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제 성격을 바꾸라고 하신다면 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요 대신에 제가 크게 한 건해서 아내에게 갖다 안길겁니다. " 아내들이 큰 것 한건을 가지고 과연 몇 년을 행복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몇 년을 별러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다고 합시다.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을 행복해 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들은 그런 것으로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또 그런 것으로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남편들은 오히려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아내들이 남편들로부터 큰 것을 받을 때 행복해한다면 세상의 많은 남편들은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사랑하는 표현의 방식 중에 하나가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들이 제일 괴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셨나요 여기서 괴로워하다는 말은 신체적인 학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을 배제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매 맞는 아내에 대한 얘기를 우리가 어제 오늘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야 한다'는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아왔는지 모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내를 향해 신체적인 가해가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괴로워하다'는 말은 '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그 마음에 걱정과 염려가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많은 결혼한 여성들의 가장 큰 바램은 남편과 함께 주일날 교회에 출석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는 말을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동일하게 하십니다.
아내의 생일날 사랑이 담긴 장미를 나이대로 선물하는 것도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근사한 곳에 가서 외식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이한 가정이 있습니다. 결혼기념일날 남편은 어느때와 같이 장미를 한아름 안고 와서 아내에게 안겨다 주었습니다. 아내는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꽃을 가득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때 아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니 이이는 어째 꽃밖에 몰라"하는 말이 불쑥 나오고 말았습니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선물들도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은 더 깊은 맛이 배어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기왕에 아내를 기쁘게 하려면 아내가 가장 원하는 것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입니다. 아내가 정말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마음에 괴로워하는 일이 무엇인가 를 잘 살피고 그것을 해결해 주는 남편이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자녀와 부모의 역할에 대한 교훈도 담고 있습니다. 20절과 21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자녀들을 향해서는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당부하고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에게 불합리한 것을 강요하거나 일방통행식의 요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내 기분에 따라 자녀를 대할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의 기분이 어떠할까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한 대학생의 부모살인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무관심이 엄청난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의 물음에 성의있게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몰라요'라는 말을 잘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그 말이 굉장히 듣기 싫었습니다. "얘야 이건 왜 이렇게 된거지 " "몰라요" "이거는" "그것도 몰라요" "그럼 이것은 왜 이렇게 되었지" "몰라요" "야 이녀석아 제발 그 몰라요 소리 하지 않을 수 없니, 어떻게 너는 입만 열면 몰라요냐 " 화가 잔득 났습니다.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 알았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수학문제를 풀다가 그 아버지가 이건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화가 났습니다. "야 이녀석아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될 것 아니야"하면서 결국 꿀밤을 아주 세게 쥐어 박았습니다. 그날 아이는 혼돈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안고 쓰러져 자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격노케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두 번 나오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참된 가정의 행복은 '주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이라는 제도를 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주 안에서 참 행복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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