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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가정에 필요한 4가지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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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을 생각하는 달이다. 물론 이 말은 5월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5월은 일년중 가장 평온한 달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아서 가정을 상징하는 달이 된다. 이 말에는 모든 가정이 사실은 5월과 같아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항상 5월이기를 기원한다.
가정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원인을 캐고 대처방안을 내 놓는다. 어떤 문제는 쉽게 풀리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는 고질병이 된 후여서 정상화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정문제는 가정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제에 강한 가정문화가있고 문제에 약한 가정문화가 있다. 유교문화나 기독교문화는 가정문화 중에서 강인한 문화에 속한다. 그러나 유교문화와 기독교문화만을 비교해 놓고 볼 때에는 단연 기독교문화가 더 우월하다. 유교문화는 안타깝게도 가정안에 닫혀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가정을 초월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초월하지 못하고 와해되고 만다. 예를 들어 유교에서는 대를 이을 사내아이가 없으면 그 가정은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를 잇기 위해서 갖은 회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기독교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아무리 망가진 가정이라도 일단 교인이 되면 온전한 가정을 이룬다. 그것은 기독교 내에 이미 가정을 초월하는 가정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실로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교회는 큰 가정이다.
일단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은 문화적인 문제들이다. 흔히는 경제문제다, 사회문제다 말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문화적 문제일 경우가 많다. 가정문화가 건강하면 경제적 요인이나 사회적 요인은 풍랑을 만난 배처럼 흔들리긴 해도 좌초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독교가정은 왜 그렇게 건강한가 뭐 대단한 비법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얼마나 철저하게 훈련하길래 그처럼 강인한 가정이 되는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독교 가정이 건강한 것은 엄청난 훈련을 하기 때문도, 숨겨진 비법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첫째 꼭 필요한 문화만 그것도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엄청난 훈련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이 사전에 제거되기 때문이다. 셋째 엄청난 비법이 있는게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네가지 계명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 네가지 계명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계명들을 살펴 보면서 더욱 기독교적 가정문화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1.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교 덕목 가운데 복종이라는 덕목이 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너무 복종이 없는 시대이니 만큼 이 덕목이 구시대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덕목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복종이라는 덕목은 사실 어느곳에 가든지 항상 통하는 덕목이었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견이 있다고 해도 최종적으로는 한가지만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서로 뜻이 맞지 않아서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갈등을 격다가도 최종적으로는 한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항구에 도착하기 까지는 어쩔 수 없이 한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이라는 배에서 선장은 남편이요, 아버지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말이 소용없는 말이 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이 된다면 그 가정은 표류하는 가정이고, 좌초되는 가정이다. 혹 아내와 남편이 의견이 갈릴지라도 아침이 되고 온 식구가 한상에 둘러 앉을 때 쯤이면, 한 방향이 결정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온 식구는 아무런 갈등없이 또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만약 아침이 되어도 두 사람이 의견을 좁히지 못한다면 당장 가정은 추운 12월이 되고 만다.
물론 아내가 끊임없이 자기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결코 남편의 뜻에 반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복종이다.
왜 여자만 죽어 지내야 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다. 남자는 대표이다. 복종하는게 더 편하고 좋다. 앞서고 책임진다는 것은 복종보다 더 골칫거리다. 그러므로 앞서고 책임질 자신이 있으면 그 아내는 남편과 잘 상의해서 남편에게 복종을 요구하도록 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내가 앞에 나서서 가정을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뒤에서 자꾸 딴소리를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가 달콤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의견을 제시하면 자기의 뜻을 접어두고 아내를 위해서 아내에게 복종한다. 이것을 명심하라. 결코 100% 아내만 죽어지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가정이라는 배가 한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
2.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게 아내에 대한 계명이라면 남편에게 주는 계명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흔히 남자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결혼하고 나서는 이 말을 자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 크게 행복해 한다. 물론 이때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립서비스가 아니다. 흔히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런걸 꼭 말해야 하느냐고 한다. 말 안해도 다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이 입술로 표현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아내를 존중하는 것이다. 아내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내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의 고통을 모른척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를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 아내에게 악을 행치 말아야 한다. 흔히 남편들은 아내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모종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말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악한 것이다. 선하게 말로하고 군대 신병 훈련 시키듯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내의 복종과 남편의 사랑 사이에는 비례현상이 존재한다. 아내가 복종하면 남편은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더욱 복종하기 쉬워진다. 흔히 아내는 남편이 사랑해주지 않아서 복종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더욱 복종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남편은 아내가 복종하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더욱 사랑하면 복종의 문제가 사라진다. 복종하지 않는다고 무시하면 더 복종하지 않게 될 뿐이다.
3.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복종과 순종은 비슷할 것 같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복종은 오늘 소풍 남산으로 갈것인가 관악산으로 갈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있을 때 정해진 쪽으로 마음을 쏟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순종은 다른 의미가 있다. 순종이란 부모의 가르침에 대해서 그 의도를 잘 깨닫고 그 의도하신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부모도 아이들에게 복종을 요구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순종이다. 이 순종은 크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과 신앙유산에 순종해야 한다. 기독교는 성경을 절대적 가치로 여긴다. 신앙을 절대적 가치로 여긴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행동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윤리로 삼는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에서의 부모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성경윤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기 이전에 성경에 대해서 잘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일학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에 잘 참여시켜서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생활화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우리나라 가정에서 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순종의 문제가 아닌 복종의 문제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는 순종할 의무는 있어도 복종할 의무는 없다. 예를 들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때 부모의 동의를 얻으며, 부모의 뜻을 존중할 필요는 있으나, 부모의 뜻대로 자녀가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진다. 자녀에게는 자녀의 길이 따로 있다. 부모들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아이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더욱 빛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의 길을 따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히 자녀는 부모의 길을 따를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다큐물을 보다 보면 아버지가 보유하고 있는 전통적 기능을 아들이 이어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 그럴까 기능을 현대화 하거나 개발하지 않아서이다. 아들이 아비를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비의 책임이다. 아들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말이다. 자신도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기능을 최고의 기능으로 만들고, 오고 오는 시대에 잘 적응해 가는 직업으로 만든다면 누가 이어받기를 부끄러워 하겠는가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수입과 가치를 비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자녀들에게 복종을 강요하지 말고 순종을 요구하라.
4. 부모들은 자녀들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가치관 또한 부모의 가치관과 자녀의 가치관이 같을 수 없다. 이때 부모가 자녀에 대한 의무가 있다. 그것은 자녀의 가치관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관 논쟁에 있어서 자녀는 약자이다. 요즘은 특히 부모가 많이 양보해도 자녀의 가치관을 이해하기 힘들때가 많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들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를 대할 때 답답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러 번 답답해 하면 자녀는 얼마 가지 않아서 노여워하게 되고, 더 지나면 분노하게 된다. 그러면 그 자녀는 결코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혹 발은 집에 들여놓을지 몰라도 마음은 부모로부터 떠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점을 명심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깊이 이해하려고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우리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격게 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사춘기일 때 더욱 조심하여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전적인 명화가 되었지만, 이 문제를 다룬 참 감동적인 영화가 있다. 바로 'Sun rise, Sun set'이다. 한 시대는 솟아 오르고, 한 시대는 진다. 이 영화는 어느 유태인 아버지가 세 딸들을 차례로 시집보내면서 도저히 자기 가치관으로 이해되지 않는 딸들의 결정에 순응해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꼭 한번 보기를 바란다.
요즘 나온 영화로는 청일전쟁 시기에 미국에 건너온 중국1세들의 가정을 무대로 4가정을 통해서 이 문제를 다룬 영화가 있다. '조이 럭 클럽'이라는 영화인데 아주 감명깊은 영화로 추천할 만하다.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을 이해하고, 자녀는 부모의 시대를 이해하는데 요긴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네가지 계명이 항상 살아있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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