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건강한 가정
본문
건강한 가정을 누구나가 만들어 나가는 것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늘 말씀드리지만 건강한 가정은 당대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날아가는 새와 같은 세월입니다. 강건하면 칠팔십의 삶을 앞두고 그냥 허송하는 세월을 산다는 것은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게 악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대충 대충 살다가 가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습니다. 포기하고 산다는 것이지요. 너는 돈 벌어오고 나는 아이들 잘 키우고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너는 네가 벌어서 쓰고 나는 내가 벌어서 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각자 호주머니를 차고 서로 맡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부가 담을 쌓고 각자 생각하는 대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되면 이것은 건강한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까 첫째 사랑의 에너지가 공급되는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의 에너지가 공급되면 자연히 쌓인 담이나 원망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나 자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변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변화를 받아라는 말이 신약에서도 여러 군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도록 하라’그랬습니다. 새롭게 변화를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를 받아야 사랑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변화를 받아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게 되기 때문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기만 하면 우리 안에 사랑으로 성장하지 못해도 풍요로운 사랑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사랑받는 경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경험하기만 하면 쌓인 감정이나 상처 어려움들은 한번에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7절에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고 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사랑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이겨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큰 집에 산다하더라도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사랑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정해놓은 것에서 벗어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기적인 사고가 존재하는 한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변화되어야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해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남편이나 아내의 역사를 알아야 된다고 굉장히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자라온 배경 환경 삶의 자리를 알면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것부터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 사랑을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축복의 말을 하세요. 일평생 기억될 만한 말을 하려고 노력합시다. 기쁨 말 긍정적적인 말, 여호와 하나님이 해 주실 것 같은 메시지를 던지면 언젠가는 남편의 마음이 아내의 마음이 자식들의 마음이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견디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투자하십시오. 사랑의 방법으로 투자를 하시면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부정적인 것을 터치하지 마십시오.
성문제, 중독, 범죄, 폭력 학대 이런 문제의 핵심은 가정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문제의 핵심은 부부문제입니다. 자녀문제의 99%는 부부문제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가정에는 부부가 살아야 가정이 삽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 기를 살려 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내에게 다정하게 다가가세요. 이혼 사유가 일반적으로 성격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그림자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 그림자는 자기를 평생 따라다니는 것들인데 보십시오. 그림자는 정확하지 않지요 검은 색의 자기모양 아닙니까 이것은 자기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자격지심, 약점, 열등의식, 수치 이런 것이 그림자란 말입니다.
칼 융이 성격 유형론을 주장했습니다. 본인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M. B. T. I 성격테스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을 아는 테스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가중요합니다. 방구 뻥뻥 뀌고, 잘 때 코를 더렁더렁 골고, 말을 할 때 침이 1M 정도가 튀고, 아무데서 트럼을 하고 이런 모습 사실 자제해야합니다 만은 이런 것을 성격이라고 받아 주자는 말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좀 살랑살랑 아양뜨는 것을 좋아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지 못한 성격이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좀 다정하게 굴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섬세하게 다가가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불만을 품지만 어릴때부터 다정한 모습 사랑한다는 말, 칭찬을 못듣고 자랐다던지 성격이 그런식으로 형성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느냔 말입니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대방을 이해하잔 말입니다. 일반적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 또 소유한 것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나 연약함 이것이 그림자일수 있지만 각자의 좋은 성격과 기질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그림자를 잘 이해하면 화해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기질에 눌려왔습니다. 대부분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런 기질을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 너는 왜 여자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천방지축이냐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크냐’ 여자가 활동적인 면이 큰 장점이 될 수 있고 또 목소리가 크면 성악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너는 남자가 되어가지고 부엌에는 왜 들어가’요즘 남자 요리사가 얼마나 대접을 받는다고요. 부모에 의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억압되었을 때 수치심이 생기고 죄책감을 쉽게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기를 못 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심하면 성격장애, 강박관념 인간관계에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융의 성격유형에 따르면 서로 타고난 다른 성격과 기질을 잘 알고 도와주는 것이 최고의 사랑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외양인의 사람은 밖에 나가야 힘을 씁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만나면 신이나지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에너지가 축척됩니다. 그런데 내 양인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부부가 친척들과 함께 새벽이 넘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아내가 지쳐서 머리가 아프다고 이야기한다면 남편은 씨 댁 식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 줄 착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에너지가 빠져나가 지쳐있는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차이를 알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서로 알려고 하는데 인색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질적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어른들이 이런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아픔도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상대방의 기질을 받아 주기란 힘들지 않겠습니까 본인의 성격을 본인도 싫어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부모로부터 주위로부터 그런 억제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싫은데 남의 성격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부터 회복되어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변화를 받아’야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사람들은 감정형과 사고형이 있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이 주로 감정형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는데 감정형은 잘 울지요. 울면서 ‘여보 슬프지 않아’하고 물어보면 사고형은 분석을 하지요. ‘아니 지금 대사가 연결이 안 돼! 그리고 저게 말이나 돼, 영화라 가능할 것이지’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통할 이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성격차이입니다. 이런 성격차이를 이해하면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서로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세 번째 성경의 질서를 회복해야 됩니다.
사람의 호칭은 인간에 대한 동물학적인 명칭입니다. 소 말 개 돼지를 호칭하는 것처럼 하나의 동물학적인 칭호에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람 人자에 사이 間 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한 사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인간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는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화와가 창조되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르므로 인간은 남녀가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애야 인간 좀 되라’이 뜻은 너는 결혼을 했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사느냐‘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마음에 남편으로 비추어지는 이미지가 나의 참모습이 되는 것이고 그 참 모습을 지닐때 인간의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질서를 세웠습니다. 이 질서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질서는 남자가 머리가 되고 여자는 몸이 됩니다. 그러면 몸이 중요하냐 머리가 중요하냐 라고 따진다면 다 중요한 것이지요. 몸이 없는 머리가 있을 수 없고 머리 없는 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질서 속에서 계속해서 문제점이 돌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만은 어떤 성공적인 삶을 향한 욕구가 큽니다. 그런데 생각대로 세상을 살수 없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큰 집에서, 비싼 차 몰고, 좋은 옷 입고, 그럴 사 하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삶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서서히 아내는 토끼에서 고양이로 결국은 호랑이로 변하는 것이지요. 여자의 위치가 확고해지면 질수록 남자들이 비참해 지는 현상이 생깁니다.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 영역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생의 후반기가 되어 아내에게 끌러 다니는 사람 많습니다. 이사 갈 때 50대가 되면 냉장고 옆에 붙어 있어야되고 60대가 되면 운전자 옆자리는 미리 가서 않아 있어야합니다. 혼자 두고 갈까봐 그렇다는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만은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그 만큼 남자로서의 책임 된 질서를 잡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여자도 처음에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려고 그러는데 사랑도 못받고 남편만 믿고 있다가는 앞날의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남편이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참다 참다 한바탕 했습니다. 한 바탕하고 보니 별것 아니거든요. 그 때부터 남편 말을 거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남편을 이기지요. 질서가 바뀐 것입니다. 여자가 이긴다고 질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권위와 책임이 상실된 다는 말입니다. 여자가 돈을 더 많이 벌어 온다던지 남자들이 건강이 좋지 못하다든지 하면 더 하겠지요. 특히 남자는 40대가 되면 여성호르몬이 분비가 되어 소심하게 변합니다. 반대로 여자는 40이 넘어가면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어 활동적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40대가 넘어가면 여자는 밖으로 나다니고 남자는 집지키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데도 여자들이 직성이 안 풀립니다. 공허하고 왜 사냐 싶고 인생의 후반기가 되어 벽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가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믿는자에게 나타난 능력은 충분히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의 질서가 세상적인 차원에서 방법과 원리를 적용시키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남편의 책임과 아내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 번째 남편은 섬김으로 가정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기쁨으로 복종해야합니다. 두 번째,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사랑의 표현방법은 남편은 아내에게 희생적으로 해야됩니다. 아내는 복종으로 사랑해야하는 원리가 성서적 원리입니다. 세 번째, 어머니는 실무자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 양육도, 가사일도 실무자적인 역할을 해야 되지요.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잘 도와서 전체적인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됩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원리는,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라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라 하는 것이 성경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남자들은 이 말씀이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자들은 무엇인가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복종해야 되니까 남자가 우위에 있고 여자는 아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말씀은 똑 같은 원리입니다. 남자가 섬김으로 지도하지 않으면 여자는 기쁨으로 복종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기쁨마음으로 섬길 때 여자가 기쁨으로 복종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하면 남편입니다. 사실 가정이 남편의 지도가 섬김으로 낮아지는 모습으로 하지 않으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엡 5장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여기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생각을 하면 아내가 따라가야됩니다. 그런데 머리가 된 남편이 올바른 역할을 못하니까 몸이 안 따라옵니다. 마태복음 20:25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입으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그 사회 머리된 자들이 권세부리고 굴림하고 억누르면서 이끌어 가니까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잘못된 길로 가게되는 것입니다. 힘의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힘으로 누려고 굴림하고 권세를 부리고 하니까 여자들이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집어서 말합니다. ‘너희 중에는’ 그러니까 믿는 자는,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또 가정에서 지도자는 섬기고 낮아져서 국가를 사회를 잘 이끌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역할이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사랑의 관계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사랑은 자기 유익을 위한 사랑이였고 결혼의 바탕이 섬김의 자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서로 받으려는 관계에서 계산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고 가정의 질서가 깨어지니까 갈등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의 지도를 거부하고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비뚤어진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는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아서 겪는 갈등 때문입니다. 부부가 갈등속에 있으면 아이들도 갈등 속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갈등의 감정이 동일에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아이들이 비뚤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한국에서는 9
3. 3%로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 자녀 뒷바라지를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30%나 된답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 천국입니다. 질서가 거꾸로 된 가정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이들 기준에서 가정이 변화됩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고 양육의 책임을 회피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부부들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은데 아이 때문에 못 헤어진다고 합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참으셔야지요. 아이들 때문에도 참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는 것이 아이들 때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때문에 살아야하는 것이 일차가 되어야 됩니다. 부부가 끝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아이들이 찾아오면 ‘뭐 하려 또 왔니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바쁜데 빨리 가거라’이렇게 나오면서 10분도 아내가 안보이면 눈을 부알이고 어디 갔다가 왔냐고 호통을 칩니다. 이게 부부 아닙니까 한 몸이니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올바로 반듯하게 양육하면 됩니다. 결혼 후 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떠나보내야지요. 미국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미국은 18세 이상이 되면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오.
빌게이츠는 재산이 환화로 55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자녀는 세 명인데 그들에게 상속을 120억을 준답니다. 120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엄청나게 많이 받은다고 생각이 되겠지만 이것을 비례해서 생각을 한다면 500억을 가진 재산가가 자녀에게 얼마를 물러주는 것이냐하면 500만원씩 물러준다는 뜻이 됩니다.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빌게이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것입니다. 제벌 2들이 잘 되는 것 보았습니까 만이 보았다면 그는 엄청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매년 미국은 이백십일만 명이 학력평가 시험을 치는데 점수가 좋으면 대학에 들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답니다. 수학과 영어를 치는데 저번 연도에 만점 받은 학생이 541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조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건강한 가정의 집 아이들 이였다는 사실입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아이들이 나옵니다. 건강하게 자라면 성적도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까 성경말씀대로 질서를 이루는 가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말씀이 살아있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고나 비치에는 유대인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졸업하는 학생은 100%로가 일류대학에 진학을 한답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 오전에는 성경만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야 학과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면 머리가 굉장히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다니엘학습법이란 책이 나왔는데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에게 꼭 읽혀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이런 원리입니다. 자녀들 성경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학교에 충실히 다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가 한 몸으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함께하는 아름다운 모습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 부부가 화목의 관계가 된다면 자녀 또한 화목의 삶을 맛보며 살아갈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특히 주님의 말씀 안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말씀이 기준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법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등불이 되는 가정은 분명히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늘 부부가 자녀들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나가기위해 인내하며 노력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따르는 헌신을 통해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대충 대충 살다가 가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습니다. 포기하고 산다는 것이지요. 너는 돈 벌어오고 나는 아이들 잘 키우고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너는 네가 벌어서 쓰고 나는 내가 벌어서 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각자 호주머니를 차고 서로 맡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부가 담을 쌓고 각자 생각하는 대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되면 이것은 건강한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까 첫째 사랑의 에너지가 공급되는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의 에너지가 공급되면 자연히 쌓인 담이나 원망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나 자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변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변화를 받아라는 말이 신약에서도 여러 군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도록 하라’그랬습니다. 새롭게 변화를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를 받아야 사랑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변화를 받아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게 되기 때문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기만 하면 우리 안에 사랑으로 성장하지 못해도 풍요로운 사랑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사랑받는 경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경험하기만 하면 쌓인 감정이나 상처 어려움들은 한번에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7절에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고 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사랑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이겨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큰 집에 산다하더라도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사랑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정해놓은 것에서 벗어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기적인 사고가 존재하는 한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변화되어야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해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남편이나 아내의 역사를 알아야 된다고 굉장히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자라온 배경 환경 삶의 자리를 알면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것부터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 사랑을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축복의 말을 하세요. 일평생 기억될 만한 말을 하려고 노력합시다. 기쁨 말 긍정적적인 말, 여호와 하나님이 해 주실 것 같은 메시지를 던지면 언젠가는 남편의 마음이 아내의 마음이 자식들의 마음이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견디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투자하십시오. 사랑의 방법으로 투자를 하시면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부정적인 것을 터치하지 마십시오.
성문제, 중독, 범죄, 폭력 학대 이런 문제의 핵심은 가정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문제의 핵심은 부부문제입니다. 자녀문제의 99%는 부부문제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가정에는 부부가 살아야 가정이 삽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 기를 살려 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내에게 다정하게 다가가세요. 이혼 사유가 일반적으로 성격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그림자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 그림자는 자기를 평생 따라다니는 것들인데 보십시오. 그림자는 정확하지 않지요 검은 색의 자기모양 아닙니까 이것은 자기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자격지심, 약점, 열등의식, 수치 이런 것이 그림자란 말입니다.
칼 융이 성격 유형론을 주장했습니다. 본인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M. B. T. I 성격테스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을 아는 테스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가중요합니다. 방구 뻥뻥 뀌고, 잘 때 코를 더렁더렁 골고, 말을 할 때 침이 1M 정도가 튀고, 아무데서 트럼을 하고 이런 모습 사실 자제해야합니다 만은 이런 것을 성격이라고 받아 주자는 말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좀 살랑살랑 아양뜨는 것을 좋아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지 못한 성격이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좀 다정하게 굴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섬세하게 다가가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불만을 품지만 어릴때부터 다정한 모습 사랑한다는 말, 칭찬을 못듣고 자랐다던지 성격이 그런식으로 형성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느냔 말입니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대방을 이해하잔 말입니다. 일반적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 또 소유한 것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나 연약함 이것이 그림자일수 있지만 각자의 좋은 성격과 기질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그림자를 잘 이해하면 화해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기질에 눌려왔습니다. 대부분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런 기질을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 너는 왜 여자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천방지축이냐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크냐’ 여자가 활동적인 면이 큰 장점이 될 수 있고 또 목소리가 크면 성악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너는 남자가 되어가지고 부엌에는 왜 들어가’요즘 남자 요리사가 얼마나 대접을 받는다고요. 부모에 의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억압되었을 때 수치심이 생기고 죄책감을 쉽게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기를 못 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심하면 성격장애, 강박관념 인간관계에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융의 성격유형에 따르면 서로 타고난 다른 성격과 기질을 잘 알고 도와주는 것이 최고의 사랑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외양인의 사람은 밖에 나가야 힘을 씁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만나면 신이나지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에너지가 축척됩니다. 그런데 내 양인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부부가 친척들과 함께 새벽이 넘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아내가 지쳐서 머리가 아프다고 이야기한다면 남편은 씨 댁 식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 줄 착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에너지가 빠져나가 지쳐있는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차이를 알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서로 알려고 하는데 인색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질적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어른들이 이런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아픔도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상대방의 기질을 받아 주기란 힘들지 않겠습니까 본인의 성격을 본인도 싫어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부모로부터 주위로부터 그런 억제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싫은데 남의 성격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부터 회복되어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변화를 받아’야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사람들은 감정형과 사고형이 있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이 주로 감정형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는데 감정형은 잘 울지요. 울면서 ‘여보 슬프지 않아’하고 물어보면 사고형은 분석을 하지요. ‘아니 지금 대사가 연결이 안 돼! 그리고 저게 말이나 돼, 영화라 가능할 것이지’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통할 이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성격차이입니다. 이런 성격차이를 이해하면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서로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세 번째 성경의 질서를 회복해야 됩니다.
사람의 호칭은 인간에 대한 동물학적인 명칭입니다. 소 말 개 돼지를 호칭하는 것처럼 하나의 동물학적인 칭호에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람 人자에 사이 間 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한 사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인간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는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화와가 창조되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르므로 인간은 남녀가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애야 인간 좀 되라’이 뜻은 너는 결혼을 했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사느냐‘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마음에 남편으로 비추어지는 이미지가 나의 참모습이 되는 것이고 그 참 모습을 지닐때 인간의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질서를 세웠습니다. 이 질서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질서는 남자가 머리가 되고 여자는 몸이 됩니다. 그러면 몸이 중요하냐 머리가 중요하냐 라고 따진다면 다 중요한 것이지요. 몸이 없는 머리가 있을 수 없고 머리 없는 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질서 속에서 계속해서 문제점이 돌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만은 어떤 성공적인 삶을 향한 욕구가 큽니다. 그런데 생각대로 세상을 살수 없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큰 집에서, 비싼 차 몰고, 좋은 옷 입고, 그럴 사 하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삶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서서히 아내는 토끼에서 고양이로 결국은 호랑이로 변하는 것이지요. 여자의 위치가 확고해지면 질수록 남자들이 비참해 지는 현상이 생깁니다.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 영역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생의 후반기가 되어 아내에게 끌러 다니는 사람 많습니다. 이사 갈 때 50대가 되면 냉장고 옆에 붙어 있어야되고 60대가 되면 운전자 옆자리는 미리 가서 않아 있어야합니다. 혼자 두고 갈까봐 그렇다는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만은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그 만큼 남자로서의 책임 된 질서를 잡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여자도 처음에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려고 그러는데 사랑도 못받고 남편만 믿고 있다가는 앞날의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남편이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참다 참다 한바탕 했습니다. 한 바탕하고 보니 별것 아니거든요. 그 때부터 남편 말을 거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남편을 이기지요. 질서가 바뀐 것입니다. 여자가 이긴다고 질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권위와 책임이 상실된 다는 말입니다. 여자가 돈을 더 많이 벌어 온다던지 남자들이 건강이 좋지 못하다든지 하면 더 하겠지요. 특히 남자는 40대가 되면 여성호르몬이 분비가 되어 소심하게 변합니다. 반대로 여자는 40이 넘어가면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어 활동적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40대가 넘어가면 여자는 밖으로 나다니고 남자는 집지키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데도 여자들이 직성이 안 풀립니다. 공허하고 왜 사냐 싶고 인생의 후반기가 되어 벽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가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믿는자에게 나타난 능력은 충분히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의 질서가 세상적인 차원에서 방법과 원리를 적용시키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남편의 책임과 아내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 번째 남편은 섬김으로 가정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기쁨으로 복종해야합니다. 두 번째,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사랑의 표현방법은 남편은 아내에게 희생적으로 해야됩니다. 아내는 복종으로 사랑해야하는 원리가 성서적 원리입니다. 세 번째, 어머니는 실무자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 양육도, 가사일도 실무자적인 역할을 해야 되지요.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잘 도와서 전체적인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됩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원리는,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라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라 하는 것이 성경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남자들은 이 말씀이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자들은 무엇인가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복종해야 되니까 남자가 우위에 있고 여자는 아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말씀은 똑 같은 원리입니다. 남자가 섬김으로 지도하지 않으면 여자는 기쁨으로 복종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기쁨마음으로 섬길 때 여자가 기쁨으로 복종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하면 남편입니다. 사실 가정이 남편의 지도가 섬김으로 낮아지는 모습으로 하지 않으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엡 5장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여기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생각을 하면 아내가 따라가야됩니다. 그런데 머리가 된 남편이 올바른 역할을 못하니까 몸이 안 따라옵니다. 마태복음 20:25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입으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그 사회 머리된 자들이 권세부리고 굴림하고 억누르면서 이끌어 가니까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잘못된 길로 가게되는 것입니다. 힘의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힘으로 누려고 굴림하고 권세를 부리고 하니까 여자들이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집어서 말합니다. ‘너희 중에는’ 그러니까 믿는 자는,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또 가정에서 지도자는 섬기고 낮아져서 국가를 사회를 잘 이끌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역할이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사랑의 관계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사랑은 자기 유익을 위한 사랑이였고 결혼의 바탕이 섬김의 자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서로 받으려는 관계에서 계산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고 가정의 질서가 깨어지니까 갈등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의 지도를 거부하고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비뚤어진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는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아서 겪는 갈등 때문입니다. 부부가 갈등속에 있으면 아이들도 갈등 속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갈등의 감정이 동일에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아이들이 비뚤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한국에서는 9
3. 3%로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 자녀 뒷바라지를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30%나 된답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 천국입니다. 질서가 거꾸로 된 가정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이들 기준에서 가정이 변화됩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고 양육의 책임을 회피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부부들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은데 아이 때문에 못 헤어진다고 합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참으셔야지요. 아이들 때문에도 참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는 것이 아이들 때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때문에 살아야하는 것이 일차가 되어야 됩니다. 부부가 끝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아이들이 찾아오면 ‘뭐 하려 또 왔니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바쁜데 빨리 가거라’이렇게 나오면서 10분도 아내가 안보이면 눈을 부알이고 어디 갔다가 왔냐고 호통을 칩니다. 이게 부부 아닙니까 한 몸이니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올바로 반듯하게 양육하면 됩니다. 결혼 후 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떠나보내야지요. 미국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미국은 18세 이상이 되면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오.
빌게이츠는 재산이 환화로 55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자녀는 세 명인데 그들에게 상속을 120억을 준답니다. 120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엄청나게 많이 받은다고 생각이 되겠지만 이것을 비례해서 생각을 한다면 500억을 가진 재산가가 자녀에게 얼마를 물러주는 것이냐하면 500만원씩 물러준다는 뜻이 됩니다.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빌게이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것입니다. 제벌 2들이 잘 되는 것 보았습니까 만이 보았다면 그는 엄청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매년 미국은 이백십일만 명이 학력평가 시험을 치는데 점수가 좋으면 대학에 들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답니다. 수학과 영어를 치는데 저번 연도에 만점 받은 학생이 541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조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건강한 가정의 집 아이들 이였다는 사실입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아이들이 나옵니다. 건강하게 자라면 성적도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까 성경말씀대로 질서를 이루는 가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말씀이 살아있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고나 비치에는 유대인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졸업하는 학생은 100%로가 일류대학에 진학을 한답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 오전에는 성경만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야 학과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면 머리가 굉장히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다니엘학습법이란 책이 나왔는데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에게 꼭 읽혀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이런 원리입니다. 자녀들 성경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학교에 충실히 다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가 한 몸으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함께하는 아름다운 모습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 부부가 화목의 관계가 된다면 자녀 또한 화목의 삶을 맛보며 살아갈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특히 주님의 말씀 안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말씀이 기준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법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등불이 되는 가정은 분명히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늘 부부가 자녀들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나가기위해 인내하며 노력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따르는 헌신을 통해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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