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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우리의 가정에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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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부주일입니다. 부부 주일에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를 축복합시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인간 삶의 가장 근본은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삶의 크나큰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능력을 공급하는 원천이 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그의 일상생활이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모든 일에 희망이 가득하고 삶의 의욕이 넘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불행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허탈하고 무능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삶의 희망과 의욕을 상실한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한 가정의 필수요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역시 부부라는 인간관계입니다.
물론 경제적, 사회적 요건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모두 달성했다 할지라도 부부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조화되지 못한 가정에는 천금이 있어도 행복은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단위인 가정에서 부부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나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이란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지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정만큼 인간의 무수한 노력을 요구하는 곳은 없습니다.
끝없는 인내와 노력을 쏟을 때 가정은 화복하고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말을 맞이해서 31일 동안 행복한 가정을 돕는 새벽과 함께 여는 행복의 가정학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번도 새벽기도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 심각한 가정의 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지 못한 분들, 남은 기간 동안만이라도 참석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함으로 가정에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첫 주간은 가정의 기초를 놓은 주간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그리고 목표를 가진 가정이 되자는 말씀과 가장의 권위를 세워 가는 가정이 되자는 말씀을 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두 번 째 주간은 남성과 아버지를 위한 주간이었습니다.
세 번째 주간은 여성과 어머니를 위한 주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다시 한번 더 함께 읽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남편보다 아내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정에 관한 말씀을 보면 언제나 남편보다 먼저 아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의 가장 처음 요소는 남편보다도 아내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의 가정을 보십시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 탄생되었을 때 에덴 동산은 한없이 아름다웠지만 하와가 선악과를 떠먹게 되자 에덴 동산은 물론 오늘날 인류에게까지 비극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렇게 가정에서의 아내의 위치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께서도 먼저 아내들에게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남편을 존중하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33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어떤 분이 사업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고, 사업에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믿음마저 흔들리게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볼 면목이 없어졌습니다.
하루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밤늦게 까지 거리를 거닐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이대로 집을 나가버릴까, 아니면 그만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 시간을 방황하다가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그 늦은 시간에도 집 안팎에 불이 환하게 켜 있었습니다.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내 역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다소곳하게 남편을 맞아 주었습니다.
어깨가 푹 늘어져 고개 숙인 남편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보고 손가락질해도 나는 당신의 진실을 믿습니다. 비록 부도가 나서 많은 빚을 졌지만 당신의 진실은 부도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당신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닐뿐더러 나는 당신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 옛날 욥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일어난 것처럼 당신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변함 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지금의 당신을 가장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변함 없이 살아온 당신을 존경합니다. "
이런 아내의 사랑과 위로에 견뎌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웁니다.
이것이 바로 아내들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간혹 아내의 매력이 외모나 살림솜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내의 진정한 매력은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여성해방운동가들은 이 말을 들으면 격노할 것이지만 이 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입니다.
여기에서 복종이라는 것은 순종과는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순종이란 일반적으로 내가 마음에 따르고 싶어서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만 복종은 내가 싫어도 어쩔 도리 없이 따라가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기분이 좋지 않아도 남편이 시키면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남편이 나쁜 일, 옳지 않은 일을 시킬 때도 복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즉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은 남편이 주님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공의롭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김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내 마음대로 합니까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내 마음대로 합니까
주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 크고 놀라운데,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눈동자 같이 적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인도하는데 내 마음 데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시간 있으면 하고 시간 없으면 안하고, 헌금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예배라는 것은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받으려고만 합니다.
하도 못살 때 미국으로부터 받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과부의 두렙돈을 귀하게 보신 주님입니다.
한 주간 은혜 주심에 감사하여서 주일 헌금을 드립니다.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십일조헌금을 드립니다.
십일조도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기 복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하라"
그 다음에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라고 했습니다.
"경외하라"고 했을 때 그 속뜻은 아내더러 남편을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굴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경외하라는 뜻은 남편을 존중하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사실 요즘 남자들이 배가 고프거나 당장에 먹고살게 없어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위를 쳐다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인격적인 대상이 없으며 기댈 수 있는 품이 없기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원래 여자와 심리적으로 다르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남자들은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여자보다 훨씬 강합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부부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남편들을 한번 격려해 드립시다.
남성분들이 "제가 남자입니까"라고 하면
여성분들은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아, 그럼요"
"제가 남자입니까" "그렇고 말고요"
"저는 좋은 남자입니다. " "맞습니다. "
"저 ooo는 좋은 남자입니다. " "맞습니다. "
동물세계를 보면 이 현상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닭을 보십시오.
암탉보다 수탉이 울긋불긋하게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뽐냅니다.
꿩도 보면 수컷은 갈기가 더부룩하고 멋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동물들의 수컷은 암컷에게 으스대기 위해서 매우 아름답게 만들어졌습니다.
여자들은 예뻐지려고 화장품을 바르고 눈썹을 붙이고 귀고리를 달고 야단들이지만 사실은 남자들이 더 아름답습니다.
지난 금요일 문화예술회관에서 백조의 호수를 보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자들은 너무 너무 아름답습디다.
으스대고 싶어하는 남편들을 좀 인정해 줍시다.
남자들은 또한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 줄 아십니까
어디가면서 절대로 길을 묻지 않습니다.
옆에 앉은 아내들은 좀 물어서 가면 될텐데.....
남자들의 자존심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절대도 철이 들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기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자존심을 굽히려 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아내가 아무리 좋은 충고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기 쉬운 법입니다.
"거 봐요,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요 진작 포기하라고 했죠. 그렇게 고집 피우더니 잘 됐네요"
이런 방법으로 남편을 세워 줄 수 없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의 자존심을 좀 세워줍시다.
그러면 남편이 달라집니다.
일단 자존심이 회복되고 나면 남편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다시 일어납니다.
그것이 남자입니다. 몰랐죠.
몇 개 더 가르쳐 드릴까요.
남편들이 왜 눈을 부럽떠고 고함치는 지 아십니까
남편들은 원래 존경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 사는 동안 아내로부터 존경의 눈초리가 엿보이지 않으면 별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협박, 고함을 치면서까지 존경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이여!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아내에게 존경받는 남편이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까지도 존경을 못 받으면 남편들은 "까짓 것, 될 대로 되라. "는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쉽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들 좀 칭찬 좀 해 주세요.
목사님! 그렇지 않아도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우쭐대는 데 거기다 칭찬을 해주면 엉덩이에 뿔나라고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것을 자꾸 잘못됐다고 하면 오기가 나서 더욱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오히려 남편의 잘된 것, 잘하는 것을 골라 열심히 칭찬한 다음 잘못된 점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말고, "당신은 이러이러한 것은 참 잘하시는데 그것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하고 빙 돌려서 말한다면 남편의 단점은 쉽게 고쳐질 것입니다.
모처럼 저녁에 일찍 들어온 남편을 향해.
"흥,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걸 어떻게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을까"라고 비앙거리듯 이야기하면 남편은 그만 마음이 상하여 "에라, 일직 들어오나 늦게 들어오나 이 모양이니 내 마음대로 살자"고 자신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에게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흠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설교를 하고 난 후 아내로부터 "당신, 오늘 설교 참 잘하셨어요. 훌륭한 설교였어요. 당신은 참 근사한 목사님이에요. "라는 이런 흠모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번도 이런 말 듣어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어쩌면 좋아.
"아내들이여 남편을 경외하라"
여러분조차 가정에서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 그 누가 여러분의 남편은 존중해 주겠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은 돈으로 세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긍심으로 세워지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남편의 가치를 세워주면 그 남편은 스스로 커다란 거목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아내 여러분! 이 시간 남편에게 좋은 선물 하나씩 드려 봅시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여보! 좀더 부드럽게 불러 보십시오. 여보,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당신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
남편을 경시하는 아내는 하녀밖에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존중하는 아내는 왕비처럼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선태 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 여러분 모두 남편의 마음을 존중할 줄 아는 매력 있는 아내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성이 되자는 것입니다.
"나는 가정 선교사다"
어떤 사람이 청소부로 생활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가 단순히 청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생활 속에서 아무런 기쁨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더러운 것을 치움으로 인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좀더 아름답고 보기 좋게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소중한 사명을 지닌 사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정에서 살림을 하는 여성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그저 집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가정에 기적이 일어난 적은 그 동안 한 번도 없습니다.
자신을 가정부나 청소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기적이 일어난 적도 없었습니다.
대신 이 세상의 가정에서 일어난 모든 기적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받은 "가정 선교사"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여러분들도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는 "가정 선교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시면 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일로 생각하는 사람을 결코 행복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듭니다.
요리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치 예수님께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준비하고, 청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빨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설거지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시장 보는 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봅시오. 여러분의 가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남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8절에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결혼한 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거운 책임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입술에 발린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아내에게 부어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셨으므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와 똑같은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희생적으로 아내를 받들어주라는 것입니다.
부엌일, 청소하는 일, 빨래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요즘 한국에서도 집안 일을 도와주는 남편이 늘고 있는 데 얼마나 여성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지 아십니까
퇴근하거든 신문만 보지말고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식사도 도와주면서 사랑을 표현해 봅시다.
이렇게 한다고 하여 남자의 위신이 깎이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일류 요리사도, 일류 양장 기술자도, 세탁소 주인도 모두다 남자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못난 자리에서 끌어올려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우며 흠과 점이 없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아내가 설혹 못났을 지라도 못난 것을 뒤에서 받들어주고 도와주어서 잘나도로 만들어 주는 것이 남편의 도리입니다.
그런데도 "아이구, 못난 얼굴에 아무리 발라봐야 잘날 줄 알구!"
"그 뚱뚱한 스타일에 아무리 감아봤자 무슨 소용이람, 그만두라구!"라고 못난 점을 들어 면박을 주면 아내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뚱뚱하거든 날씬하게 보이는 옷을 사주어 날씬하다고 격려해 주고, 몸이 약하거든 강하도록 도와주고, 지식이 모자라면 지식을 얻도록 해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도록 해주는 것이 남편의 사랑의 의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남편들에게 자기의 몸을 아끼듯이 아내를 이끼고, 사랑해 주라고 말씀합니다.
굳이 남자와 여자를 비교한다면 남자는 놋그릇이요, 여자는 질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깨지고 망가지기 쉬운 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작은 충격이나 자극에도 쉽게 상처를 입어서 남편의 자은 말 한 마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1824년에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루니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부인이 중전 고문 변호사인 남편 덕에 커다란 저택에서 하인들을 부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커다란 부부싸움으로 번지게 됐습니다.
그러다 화가 머리 끝가지 치민 남편은 아내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
"제발, 그만하고 입 좀 닥쳐!"
그 말 한 마디에 루니엘 부인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부인은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밥을 먹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때조차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하루 이틀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도록 부인이 말이 없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부인에게 사과를 했고, 제발 말 좀 하라고 애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혹 딸이 시집갈 때는 다시 말을 하겠지 싶었지만 딸의 결혼식장에서도 루니엘 부인은 입을 굳게 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부인은 30년이 넘도록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숨을 거두면서도 유언조차 한 마디 남기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 때문에 평생을 신음하는 여인의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질그릇과도 같은 여인들의 마음입니다.
남편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성이 질그릇과도 같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습니다.
본래 질그릇은 숨을 쉬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담으면 놋그릇과 달리 그 성분을 쉽게 빨아들입니다.
즉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는 것처럼 반대로 말 한 마디에 쉽게 감동하고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수줍게 내 밀은 남편의 장미 한 송이에도 유리 구슬 같은 눈물을 똑똑 떨구며 감동하는 것이 바로 여자들입니다.
오래 전에 영국의 처칠 수상에게 어떤 기자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처칠은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제 아내의 두 번째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하늘을 나는 듯 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여자는 질그릇 같아서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사의 삶을 살기도 하고 악처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뜻에서 여자는 다 남자하기 나름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아내들의 마음을 잘 아는 남자들은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와 같은 "천사의 방언"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여자들의 질그릇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남자가 됩시다.
남자다움의 남자가 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남자가 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남자가 됩시다.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는 남자가 됩시다.
자녀를 축복할 줄 아는 아버지가 됩시다.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가 됩시다.
부부들이여! 결혼할 때 서약했든 것 그것 좀 지키도록 노력해 봅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 변함 없이 사랑하겠노라"라고 되어 있는 그 서약 말입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가정이란 선물을 받았으므로 이것을 멋있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꾸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져갈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아내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요, 남편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요 자녀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말씀을 쫓아서 아내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남편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불쌍히 여기고 서로 감사하며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면서, 진실로 행복한 가정이 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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