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건강한 가정의 형태
본문
최근에 우리 귀에 익히 들려지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라는 말입니다. 이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쓰는데 이것은 하나의 패턴, 양식, 가이드라인, 혹은 모형, 형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미래에는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해서 그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하고 바뀌게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과연 쉬프트(변화,이동)가 될 것인가 우리의 가정의 패러다임이 변화될 것인가 이것이 오늘의 질문입니다.
감리교 감독 중에 워너라는 유명한 분이 이야기하기를 ”가정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과 같이 변화될 수 없는 기본적인 단위이다. ” 여러분 일 분 일초도 틀리지 않게 시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국에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가정의 패러다임은 그리니치 천문대와 같이 절대로 변화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깨우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러분의 가정은 절대로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건강한 가정의 형태라는 말씀을 이 몇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혹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건강한 가정이 되게 하는 핵심과 그 모형을 알 수 있습니다.
1. 올바른 관계성을 가진 가정
올바른 관계성,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관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느냐하면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관계성을 바로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믿을 때에 의롭게 된다는 것은 관계성이 바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을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요, 두 번째로는 우리 가정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관계성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 신뢰의 관계, 행복의 관계, 우리의 삶의 성취의 관계, 기쁨의 관계 우리 가정은 관계성을 통해서 그 존재성이 달라집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했을 때 새로운 남편이라는 존재가 되고, 제 아내도 아내라는 존재가 됩니다. 자식을 낳을 때에 그 순간에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아들의 아버지가 됩니다. 관계성 때문입니다. 손자를 낳았습니다. 손자를 낳은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고 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할아버지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이것도 역시 관계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성이 가장 건실하게 이루어진 곳이 우리의 가정이요, 이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었을 때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을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에 구주시니라” 그 다음에는 25절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고 그리스도꼐서 자기를 희생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가 육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희생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그를 보호하고 양육하라 하는 책임을 우리 남편들에게 주었습니다. 혹 여자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 단어가 거슬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말씀대로 증거 합니다. 여러분 편견을 가지고 어떻게 남편이 나의 머리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복종하느냐 이의를 제기 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인간적인 생각 문화에 따라서 현대에 어떤 사조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 진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편이 여자의 머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예를 들어서 모든 기관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나라에는 대통령이라는 머리가, 학교에는 교장선생님, 대학에는 총장, 회사에는 회장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체이든 그 속에 머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유기체 속에는 책임질만한 머리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 가정에 머리가 누구냐, 남편 되는 사람이 가정의 머리가 되고 가정을 인도해 갈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자가 열등하거나 가치가 덜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이 가정이라는 유기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을 해야 되고 기능적인 면에서 질서가 있어야 되겠기에 남편더러 이 가정에 머리가 되고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자가 훨씬 탁월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부인보다 부족해도 이것은 하나의 건설적인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하면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정이고 이 관계의 신비를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기관에 머리가 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괴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 가정의 머리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 되고 그리고 질서를 위해서 복종하여야 되는데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서로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말에 남편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복종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데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되고, 그를 양육하고 돌보는 헌신적인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올바른 관계가 바로 될 때에 이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이 관계성이 깨지거나 잘못될 것 같으면 영적인 생활에도 상처가 오고 기도도 제대로 안되고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지 못하고 때로는 결손가정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관계를 가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복종과 사랑의 원리로 세워진 가정이 튼튼한 가정이 됩니다.
2. 협동성과 역할 분담이 잘된 가정
영어로는 파트너십이라고 얘기합니다. 가정은 협동성과 역할분담이 잘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체라고 말합니다. 결혼하게 되면 서로 다른 인격체가 하나가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합니다. 이것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가 됩니다.
육체적으로는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또 우리는 영적으로도 하나가 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신비스러운 새로운 존재로 탄생됨을 말합니다.
한 몸이 된다는 말은 영어로 시멘트입니다. 건설현장에 밤새도록 레미콘 차가 와서 붓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와서 보면 딴딴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것이 시멘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 지워 주신 짝은 이 시멘트와 같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깰래야 깰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몸이 된다. 프랑스에 레 살레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외가 하나가 되는 가정은 아교가 좋으면 두 개의 나무 조각이 잘 붙어서 서로 단단히 접착되었기 때문에 설사 다른 것이 떨어지거나 부러지더라도 아교로 붙인 것이 떨어지지 아니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그 자신의 피로서 아교와 같이 딱 붙게 하셨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지언정 남편과 아내는 결코 분리 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관계와 같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 하셔서 우리 가정을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어느 의사부부가 가족문제가 생겨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찾아왔습니다. 이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데 부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은 언제나 분석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합니다. ” 분석적으로만 본다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남편이 옆에서 듣다가 호소하기를 ”내 아내는 언제나 저를 다른 남자와 비교해서 생각합니다. ”
이렇게 가정에서 분석해 보고 분류, 즉 비교해 보는 방법으로는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파트너십, 역할분담을 잘해야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웨슬리 선생은 가정의 행복을 별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혼자된 과부가 된 부인과 자식이 있는 부인과 결혼을 해서 얼마를 지내는데 웨슬리 선생의 복음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전도하고 돌아오면 심지어 웨슬리의 머리를 잡고 온 방을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웨슬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나중에는 부인이 집을 나갔습니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 뭐라고 했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제일 좋다. ” 가정의 행복을 맛보지 못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웨슬리의 아내는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tv 프로그램에 부부가 함께 나와 서로 싸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말 과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남편은 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쉬지도 않고 수도 꼭지를 확 틀어 놓은 것 같이 합니다. 남편은 말할 여유도 주지 않아 속이상해 머리를 줘어 짭니다. 보는 사람들이 긴장을 합니다. 결국은 옳고 그른 것을 많은 시청자들이 결정합니다. 제가 봐도 한 눈에 판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협동성과 역할 분담의 문제였습니다. 복종과 사랑의 문제였습니다.
복종하지 않고 사랑받으려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미숙함 때문에 오는 관계의 아픔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역할에 성실했다면 그러한 불행은 최소화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저녁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를 않아서 그런지 아내가 쿨쿨 잠만 잡니다.
그러자 저는 심술이 생겼습니다. “여보, 저녁 안하고 잠만 자는 거야”했더니 약간 짜증을 내면서 일어납니다.
사실 그럴 때는 역할을 바꿔서 제가 저녁을 준비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살짝 나가서 저녁을 사 먹든지 아니면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됩니다. 그냥 오랜만이니까 라면을 끓여 먹어도 됩니다.
깨운 것이 공연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이 듭니다. 아마 얼마동안 그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이해하고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꾸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 보다는 모두 각자가 자기 역할에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성실함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반성과 사랑의 싹이 다시 터 오르게 됩니다.
또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위한 복종과 사랑의 노력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해 낼 것입니다.
오늘 이 대자연의 신선한 생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주어진 말씀을 재음미하면서 우리들 삶의 총체적인 건강을 회복하고 누리시고 또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과연 쉬프트(변화,이동)가 될 것인가 우리의 가정의 패러다임이 변화될 것인가 이것이 오늘의 질문입니다.
감리교 감독 중에 워너라는 유명한 분이 이야기하기를 ”가정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과 같이 변화될 수 없는 기본적인 단위이다. ” 여러분 일 분 일초도 틀리지 않게 시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국에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가정의 패러다임은 그리니치 천문대와 같이 절대로 변화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깨우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러분의 가정은 절대로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건강한 가정의 형태라는 말씀을 이 몇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혹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건강한 가정이 되게 하는 핵심과 그 모형을 알 수 있습니다.
1. 올바른 관계성을 가진 가정
올바른 관계성,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관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느냐하면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관계성을 바로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믿을 때에 의롭게 된다는 것은 관계성이 바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을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요, 두 번째로는 우리 가정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관계성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 신뢰의 관계, 행복의 관계, 우리의 삶의 성취의 관계, 기쁨의 관계 우리 가정은 관계성을 통해서 그 존재성이 달라집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했을 때 새로운 남편이라는 존재가 되고, 제 아내도 아내라는 존재가 됩니다. 자식을 낳을 때에 그 순간에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아들의 아버지가 됩니다. 관계성 때문입니다. 손자를 낳았습니다. 손자를 낳은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고 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할아버지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이것도 역시 관계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성이 가장 건실하게 이루어진 곳이 우리의 가정이요, 이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었을 때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을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에 구주시니라” 그 다음에는 25절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고 그리스도꼐서 자기를 희생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가 육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희생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그를 보호하고 양육하라 하는 책임을 우리 남편들에게 주었습니다. 혹 여자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 단어가 거슬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말씀대로 증거 합니다. 여러분 편견을 가지고 어떻게 남편이 나의 머리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복종하느냐 이의를 제기 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인간적인 생각 문화에 따라서 현대에 어떤 사조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 진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편이 여자의 머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예를 들어서 모든 기관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나라에는 대통령이라는 머리가, 학교에는 교장선생님, 대학에는 총장, 회사에는 회장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체이든 그 속에 머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유기체 속에는 책임질만한 머리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 가정에 머리가 누구냐, 남편 되는 사람이 가정의 머리가 되고 가정을 인도해 갈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자가 열등하거나 가치가 덜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이 가정이라는 유기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을 해야 되고 기능적인 면에서 질서가 있어야 되겠기에 남편더러 이 가정에 머리가 되고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자가 훨씬 탁월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부인보다 부족해도 이것은 하나의 건설적인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하면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정이고 이 관계의 신비를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기관에 머리가 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괴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 가정의 머리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 되고 그리고 질서를 위해서 복종하여야 되는데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서로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말에 남편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복종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데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되고, 그를 양육하고 돌보는 헌신적인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올바른 관계가 바로 될 때에 이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이 관계성이 깨지거나 잘못될 것 같으면 영적인 생활에도 상처가 오고 기도도 제대로 안되고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지 못하고 때로는 결손가정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관계를 가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복종과 사랑의 원리로 세워진 가정이 튼튼한 가정이 됩니다.
2. 협동성과 역할 분담이 잘된 가정
영어로는 파트너십이라고 얘기합니다. 가정은 협동성과 역할분담이 잘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체라고 말합니다. 결혼하게 되면 서로 다른 인격체가 하나가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합니다. 이것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가 됩니다.
육체적으로는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또 우리는 영적으로도 하나가 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신비스러운 새로운 존재로 탄생됨을 말합니다.
한 몸이 된다는 말은 영어로 시멘트입니다. 건설현장에 밤새도록 레미콘 차가 와서 붓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와서 보면 딴딴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것이 시멘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 지워 주신 짝은 이 시멘트와 같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깰래야 깰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몸이 된다. 프랑스에 레 살레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외가 하나가 되는 가정은 아교가 좋으면 두 개의 나무 조각이 잘 붙어서 서로 단단히 접착되었기 때문에 설사 다른 것이 떨어지거나 부러지더라도 아교로 붙인 것이 떨어지지 아니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그 자신의 피로서 아교와 같이 딱 붙게 하셨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지언정 남편과 아내는 결코 분리 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관계와 같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 하셔서 우리 가정을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어느 의사부부가 가족문제가 생겨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찾아왔습니다. 이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데 부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은 언제나 분석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합니다. ” 분석적으로만 본다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남편이 옆에서 듣다가 호소하기를 ”내 아내는 언제나 저를 다른 남자와 비교해서 생각합니다. ”
이렇게 가정에서 분석해 보고 분류, 즉 비교해 보는 방법으로는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파트너십, 역할분담을 잘해야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웨슬리 선생은 가정의 행복을 별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혼자된 과부가 된 부인과 자식이 있는 부인과 결혼을 해서 얼마를 지내는데 웨슬리 선생의 복음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전도하고 돌아오면 심지어 웨슬리의 머리를 잡고 온 방을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웨슬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나중에는 부인이 집을 나갔습니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 뭐라고 했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제일 좋다. ” 가정의 행복을 맛보지 못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웨슬리의 아내는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tv 프로그램에 부부가 함께 나와 서로 싸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말 과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남편은 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쉬지도 않고 수도 꼭지를 확 틀어 놓은 것 같이 합니다. 남편은 말할 여유도 주지 않아 속이상해 머리를 줘어 짭니다. 보는 사람들이 긴장을 합니다. 결국은 옳고 그른 것을 많은 시청자들이 결정합니다. 제가 봐도 한 눈에 판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협동성과 역할 분담의 문제였습니다. 복종과 사랑의 문제였습니다.
복종하지 않고 사랑받으려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미숙함 때문에 오는 관계의 아픔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역할에 성실했다면 그러한 불행은 최소화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저녁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를 않아서 그런지 아내가 쿨쿨 잠만 잡니다.
그러자 저는 심술이 생겼습니다. “여보, 저녁 안하고 잠만 자는 거야”했더니 약간 짜증을 내면서 일어납니다.
사실 그럴 때는 역할을 바꿔서 제가 저녁을 준비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살짝 나가서 저녁을 사 먹든지 아니면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됩니다. 그냥 오랜만이니까 라면을 끓여 먹어도 됩니다.
깨운 것이 공연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이 듭니다. 아마 얼마동안 그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이해하고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꾸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 보다는 모두 각자가 자기 역할에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성실함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반성과 사랑의 싹이 다시 터 오르게 됩니다.
또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위한 복종과 사랑의 노력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해 낼 것입니다.
오늘 이 대자연의 신선한 생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주어진 말씀을 재음미하면서 우리들 삶의 총체적인 건강을 회복하고 누리시고 또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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