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
본문
여러분 잘아시는 미래학자인 앨 빈 토플러라는 사람이 여러해 전에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써서 큰 센 세이션을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많 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또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물밀 듯 밀려오는 정보떄문에 우리 의 미래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그 영향 이 우리 가정에 제일 먼저 침투해 들어오고 그렇기 떄문에 우리 가정 의 미래가 매우 부정적이고 비관적 이다. 가정이 와해될 지도 모른다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 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 들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가정이 어떻게 병든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것은 사회도 아니고 대학도 아니고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이웃 사촌간이라 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든 가 정을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치유해 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최근에 우리 귀에 익히 들려지 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패러다임’ 이라는 말입니다. 패러다임, 이 패러 다임으라는 말은 우리말로 해석할 수가 없기 떄문에 원어 그대로 쓰는 데 이것은 하나의 패턴, 양식, 가이 드라인,혹은 모형, 형태라는 뜻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러다임이 라고 해서 새로운 미래에는 패러다 임 쉬프트라고 해서 패러다임이 완 전히 변하고 바뀌어야 된다는 얘기 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과 연 쉬프트가 될 것인가 우리의 가 정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될 것 인가 이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감리교 감독 중에 워너 감독이라 는 유명한 분이 이야기 하기를
”가 정은 그리니치 천문대에 시간과 같 이 변화될 수 없는 기본적인 단위이 다. ”여러분 밀레니엄 새천년 시대지 만 이시대가 지나가면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게 시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국에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 입니다. 마찬가지로 뉴 밀레니엄, 뉴 센츄리를 맞이 한다고 할 지라도 이 가정의 패러다임은 그리니치 천문대 과 같이 절대로 변화 될 수 없는 것 을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깨우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 러분의 가정은 절대로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건강한 가정의 패러 다임이라는 말을 증거할 때에 제가 매 주일마다 결혼식을 주례할 때마 다 읽는 성경말씀입니다. 혹 이말씀 을 여러분이 선택하여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혹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은 다제거하고 해달라고 하는 사 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성경말씀을 우리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습 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가정에 주는 핵심입니다. 바 울이 우리에게 엄격하게 한 말씀이 기 떄문에 저는 이말씀에 근거해서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이 냐 같이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올바른 관계성을 가진 가정
올바른 관계성,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 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는데 그것 은 관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예 수님께서 왜 이땅에 오셨느냐하면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관계성을 바로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믿을 때에 의롭게 된다는 것은 관계성이 바로 되기 때 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을 있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 계요, 두 번째로는 우리 가정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관계성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는 것이 우리 가정입니다. 가정의 사랑의 관계, 신뢰의 관 계, 행복의 관계, 우리의 삶의 성취 의 관계, 기쁨의 관계 우리 가정은 관계성을 통해서 존재성이 달라집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했을 때 새로운 남편이라는 존재가 되고, 제 아내도 아내라는 존재가 됩니다. 자식을 낳 을 때에 그 순간에 나는 새로운 존 재가 되는데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관계성 때문 에 입니다. 손자를 낳았습니다. 손자 를 낳은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고 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할아 버지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그 것은 관계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계성이 가장 건실하게 이루어진 관계성이 우리의 가정의 관계요, 이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 었을 때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한 가 정이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2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을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 히 몸에 구주시니라”
그 다음에는 25절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사랑하 기를 그리스도꼐서 교회를 사랑하시 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고 그리스도꼐서 자 기를 희생하신 것 처럼 사랑하라”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가 육 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 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희생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그를 보 호하고 양육하라 하는 책임을 우리 남편들에게 주었습니다. 혹 여자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남편이 아내 의 머리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 라 이 단어가 거슬릴는지 모릅니다.
저는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말씀 대로 증거합니다. 여러분 편견을 가 지고 어떻게 남편이 나의 머리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복 종하느냐 이의를 제기할려는지 모르 지만 나는 내 인간적인 생각 문화에 따라서 현대에 어떤 사조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 진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편이 여자의 머리가 될 수 있습니까 어 떻게 보면 그당시 헬라 문화라든지 유대문화에 따라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느냐 혹 생각할려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예를 들어서 모든 기관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나라에 는 대통령이라는 머리가, 학교에는 교장선생님, 대학에는 총장, 회사에 는 회장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체이 든 그 속에 머리가 있습니다. 그 분 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유기체 속 에는 책임질만한 머리가 있어야 되 는데 우리 가정에 머리가 누구냐, 남편되는 사람이 가정의 머리가 되 고 가정을 인도해 갈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부인보다 능력이 부 족하거나 여자가 열등하거나 가치가 덜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이 가정 이라는 유기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을 해야 되고 기능적인 면 에서 질서가 있어야 되겠기에 남편 더러 이 가정에 머리가 되고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지 이 미 결혼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가 하 나가 됩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둘 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 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 도의 가정이고 이신비를 바울이 여 기에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기관에 머리가 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괴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머 리가 둘을 가지고 있는 그렇기 때문 에 바울이 우리에게 이 가정의 머리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 되고 그리고 모든 질서를 잡기 위해서 복종하여 야 되는데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서로 복 종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아내를 사랑하 면 아내의 말에 남편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 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복 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편견을 가지고 오해하지 마 시기 바랍니다. 서로 복종해야 되고 그리고 가정의 책임을 누가져야 되 느냐 주인이 되는 남편이 책임을 져 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를 잡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 에 사도 바울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복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데 아가페의 사랑이 됩니다. 무조건 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 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되고, 그를 양육하 고 돌보는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올바른 관계가 바로 될 때 에 이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이 관계성이 깨지거나 잘못될 것 같으면 영적인 생활에도 상처가 오고 기도도 제대로 안되고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 지 못하고 때로는 결손가정이 되었 을 때 바울의 얘기에 대해서 온당치 않다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하나 님의 약속을 말씀 아니냐는 말이예 요. 그렇기 때문에 바른 관계를 가 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 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협동성과 역할 분담이 잘된 가 정
영어로는 파트너십이라고 얘기 합니다. 가정은 협동성과 역할분담 이 잘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유기체라고 말합니다. 결혼하 게 되면 서로다른 인격체가 하나가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합니다. 이 것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가 됩니다. 육체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또 우리는 영적으로도 하나 가 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신비스러운 새로운 존재로 탄생됨을 말합니다. 한몸이 된다는 말은 영어로 시멘트, 요즘 지하주차장 공사가 한창입니다. 밤 새도록 레미콘 차가 와서 붓습니다. 아침에 와서보면 딴딴하게 굳어 있 습니다. 이것이 시멘트입니다. 하나 님께서 짝지워주신 짝은 이 시멘트 와 같이 딱 굳어집니다. 깰래야 깰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어찌 할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 씀하셨습니다.
한몸이 된다. 프랑스에 레 살레 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외가 하나가 되는 가정은 아교가 좋으면 두 개의 나무조각이 잘 붙어 서 서로 단단히 접착되었기 때문에 설사 다른 것이 떨어지더라도 아교 로 붙은 것은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를 그 자 신의 피로서 아교와 같이 딱 붙게 하셨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지언정 남편과 아내는 결코 분리 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과 아내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의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 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하 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우리 가정을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 리이십니다.
어느 의사부부가 가족문제가 생 겨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찾아왔 습니다. 이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데 부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 님, 제 남편은 언제나 분석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합니다. ”
분석적으로만 본다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남편이 옆에서 듣다가 호소하기를
”내 아내는 언제 나 저를 다른 남자와 비교해서 생각 합니다. ”
가정에서 분석해 보고 분 류해 보는 방법으로는 하나가 될 수 가 없습니다. 파트너십, 역할분담을 잘해야 되고,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웨슬리 선생은 가정의 행복을 별 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혼자된 과부 가 된 부인과 자식이 있는 부인과 결혼을 해서 얼마지내는데 웨슬리 선생의 복음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 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전도하러 가서 돌아오면 왜 이제 왔느냐고 웨 슬리를 괴롭히는데 어떤 책을 보니 까 웨슬리의 머리를 잡고 온 방을 끌로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웨슬 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나중 에는 부인이 웨슬리가 전도하러 갔 을 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아직 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 뭐라고 했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제 일 좋다. ”
가정의 행복을 맛보지 못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행 복하다고 했습니다. 웨슬리의 아내 는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 니다.
톨스토이의 아내도 악처라고 합 니다. 그의 아내는 늘 톨스토이에게 질투하고 의심을 품고 잔소리하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남편이 늘 마음 이 불안하고 불행하게 지냈습니다. 나중에 톨스토이가 시베리아 어느 간이역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톨 스토이의 아내가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은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죽음의 원인이 되었 다는 것을 자식에게 고백했다고 했 습니다. 톨스토이의 아내도 남편을 괴롭게 한 것을 스스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선량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남에게 존경을 받았지 만 부인이 너무나 난폭하고 무례하 기 때문에 점점 멀어져서 호텔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결혼식할 때마다 말합니다 만 남편의 건강은 아내에게 있었다 고 합니다.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식 생활 면에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존중히 여기 고 사랑하고 귀히 여기면 이 남편은 건강하게 해로할 수가 있습니다. 남 편의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면 그는 무슨 병에 걸려도 이제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의 건강도 남편이 관 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몸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적으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출근했다가도 제시 간에 돌아와서 아내를 돌보고 가정 을 돌보는 세밀한 관심을 가질 때 그 때 아내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 을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더불어 같이 사는 것보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리라”
가정의 파트너십이 안되면 사막에서 혼자있 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바로 서야 합니다. 파트너십 서로 자신의 역할 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건강한 가정 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는데 저의 아내도 전문적인 자격증도 있습니다. 그런 데 저와 결혼한 다음에는 내가 내 남편과 하나가 되었으니 목회하는 나를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저와 같이 한몸이 되어서 교인들을 돌보고 심방을 하고 교인들 사랑하 기를 밤잠을 자지 않기도 합니다. 제 사무실에 가면 제 건너편에 조그 맣게 의자가 하나있습니다. 애즈베 리 신학교에 박사학위하는 사람들 40명이 와서 제사무실과 기도실을 돌아보고는 저 책상이 누구의 책상 이냐고 묻길래 제 아내의 책상이라 고 했습니다. 아내가 무엇을 하냐고 물어서 제 아내는 저와 같이 이 교 인들의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밤잠 을 자지 않고 같이 의논을 합니다. 교인들이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교인이 어려움을 당하면 새벽에 와서 그 교인을 위해 서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애즈베 리의 총장이 와서 그 모습을 보고 21세기에는 배우자가 돕지 않으면 목회하기가 어렵겠다고 돌아간 후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목사 의 아내가 될 사람, 목사의 아내를 훈련시켜서 같이 목회를 내보내는 그런 프로그램이 생긴 것은 광림교 회에 와서 하나가 되어 목회하는 것 을 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세운 것 입니다.
사랑의 역할분담, 신뢰하고 화평 을 누리고 서로 자기의 성취를 한몸 으로 이루고 나갈 때에 건강한 우리 의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3. 서로 책임을 지는 가정
가정은 가장 높은 책임을 지는 단위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의무감 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위 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책임질 줄 알고 의무를 감당할 줄 아는 지도자 가 됩니다. 그러나 가정에 책임감이 없고 의무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책임을 지고 어떻게 백성들 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가정에서부 터 여러분의 자녀를 책임질 줄 알고 그를 위해서 의무를 가지는 자녀들 이 될 때에 사회와 나라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더불어 결혼생활 을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 편과 아내가 언제나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게 아주 깨끗하게 주 님 앞에 구별된 가정이 기독교인의 가정입니다. 주름잡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주름이 잡 히면 다리미를 가지고 깨끗하게 평 평하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주름 잡히는 것이 있을 수 있는데 남편이 성격이 급하거나 무례하게 분노를 터뜨리거나 약속을 어기거나 아내에 게 무관심하여 아내의 생일도 모르 고 결혼한 날짜도 모르고 무심하게 지내면 주름이 잡힙니다. 흠이 잡히 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서 깊 은 관심을 가지고 돌볼 때에 건강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 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 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 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아내를 돌보고 사랑하고 동거하라고 했습니다. 별방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 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기도의 파이 프라인이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서로 아끼고 돌보고 연약한 그릇으 로 지키는 책임감 있는 인생이 되라 는 말씀입니다.
미국 카톨릭의 대주교인 힐턴 쉰 이라는 사람이 인류의 가장 중대한 의미는 먹는 것과 인간의 종을 번식 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나 아내나 의식주에 책임을 져야 합 니다. 자녀를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 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양육을 못하면 학 교에서나 사회에서 제대로 양육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종종 동료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 본인이 크 게 이름을 날리거나 뛰어난 분이 아 니기 때문에 평범하게 대하다가도 얘기를 주고 받다보면 그 분이 얘기 하기를
”우리 아들이 미국에서 신학 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졸업을 합니다. 목사입니다. 제 딸이 클라멘티에 서 기독교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준 비중입니다. 제 사위가 의사인데 저 희 교회 장로입니다. ”
제가 그 사람 만 보고 생각했던 것만으로도 자식 이 잘 믿는 집사요, 장로요, 대학교 수며 신학자라는 얘기를 들을 때 그 분을 존귀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면류관입 니다. 그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양 육을 잘하고 주의 말씀으로 훈계하 는 교육을 했기 때문에 자녀가 큰일 을 했을 때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 고 자녀를 존귀히 여기고 양육하고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것이 아버지의 책임이요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자 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유산을 남겨 줄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유산은 기도를 남겨 주어야 합니다. 가정예 배드리는 것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을 남겨줄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건강한 가정 을 이루고 부모가 행복하게 여호와 하나님 을 잘 섬기면 틀림없이 자녀들도 부 모를 잘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건강 하며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 분명합 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이 없는 곳에는 나라도 없고 사회도 없습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가정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워드 핀 이 ’가정 무용론’을 주장하다가 그가 길가에서 죽은후 스위트 홈, 행복한 곳은 내가정 밖에 없다고 고백했습 니다. 가정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국 중부에 어느 소년이 책가방 을 들고 늘 통학을 하는데 기차 철 로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가 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데 홍수가 나 서 그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끊어 졌습니다. 이 소년은 당황스러웠습 니다. 조금 있으면 기차가 지나갈 때가 되었는데 철로가 끊어진 것을 모르고 지나가게 될텐데 어떻게 차 를 멈추게 할 수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기착 달려옵니다. 아무리 웃옷을 벗어서 흔들어도 기차는 멈출줄 모릅니다. 그 때 소 년은 칼을 끄내서 자신의 넙적다리 에 있는 대동맥을 끊어서 자신의 흰 셔츠를 끄집어 내서 그 피에 적셨습 니다. 붉은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기 차는 빨간 기를 보아야만 멎습니다. 피가 적은 기를 흔들며
”스톱! 스 톱!”을 외치며 이 소년이 달려갔습 니다. 그 때에 기관사가 붉은 깃발 을 흔들며 달려오는 소년을 보고서 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년에 앞에서 멈췄습니다. 소년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셔츠를 들고 얼굴이 창백한채 쓰러졌습니다. 기 관사가 급히 내려서 보니 철로가 끊 어져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시체가 된 어린 소년을 붙들고서
”우리를 살리려고 네가 피흘려 죽었구나. ”
기차에 탔던 수백명의 승객들이 내 려와서 그 소년 앞에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 다며 슬퍼했습니다. 그 기차에는 부 통령이 타고 있었고, 이 소년이 메 고 있던 가방을 보니 어린 소년의 손때가 묻은 신약성경이 들어 있었 습니다.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 는 것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가정에 서 배웠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배웠 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병들었습니다. 상처 투성이입니다. 여러 가지 병들을 앓고 있지만 하나 님의 말씀위에서 새로운 사회속에서 도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 건강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미래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그 영향 이 우리 가정에 제일 먼저 침투해 들어오고 그렇기 떄문에 우리 가정 의 미래가 매우 부정적이고 비관적 이다. 가정이 와해될 지도 모른다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 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 들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가정이 어떻게 병든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것은 사회도 아니고 대학도 아니고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이웃 사촌간이라 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든 가 정을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치유해 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최근에 우리 귀에 익히 들려지 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패러다임’ 이라는 말입니다. 패러다임, 이 패러 다임으라는 말은 우리말로 해석할 수가 없기 떄문에 원어 그대로 쓰는 데 이것은 하나의 패턴, 양식, 가이 드라인,혹은 모형, 형태라는 뜻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러다임이 라고 해서 새로운 미래에는 패러다 임 쉬프트라고 해서 패러다임이 완 전히 변하고 바뀌어야 된다는 얘기 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과 연 쉬프트가 될 것인가 우리의 가 정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될 것 인가 이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감리교 감독 중에 워너 감독이라 는 유명한 분이 이야기 하기를
”가 정은 그리니치 천문대에 시간과 같 이 변화될 수 없는 기본적인 단위이 다. ”여러분 밀레니엄 새천년 시대지 만 이시대가 지나가면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게 시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국에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 입니다. 마찬가지로 뉴 밀레니엄, 뉴 센츄리를 맞이 한다고 할 지라도 이 가정의 패러다임은 그리니치 천문대 과 같이 절대로 변화 될 수 없는 것 을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깨우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 러분의 가정은 절대로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건강한 가정의 패러 다임이라는 말을 증거할 때에 제가 매 주일마다 결혼식을 주례할 때마 다 읽는 성경말씀입니다. 혹 이말씀 을 여러분이 선택하여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혹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은 다제거하고 해달라고 하는 사 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성경말씀을 우리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습 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가정에 주는 핵심입니다. 바 울이 우리에게 엄격하게 한 말씀이 기 떄문에 저는 이말씀에 근거해서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이 냐 같이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올바른 관계성을 가진 가정
올바른 관계성,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 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는데 그것 은 관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예 수님께서 왜 이땅에 오셨느냐하면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관계성을 바로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믿을 때에 의롭게 된다는 것은 관계성이 바로 되기 때 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을 있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 계요, 두 번째로는 우리 가정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관계성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는 것이 우리 가정입니다. 가정의 사랑의 관계, 신뢰의 관 계, 행복의 관계, 우리의 삶의 성취 의 관계, 기쁨의 관계 우리 가정은 관계성을 통해서 존재성이 달라집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했을 때 새로운 남편이라는 존재가 되고, 제 아내도 아내라는 존재가 됩니다. 자식을 낳 을 때에 그 순간에 나는 새로운 존 재가 되는데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관계성 때문 에 입니다. 손자를 낳았습니다. 손자 를 낳은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고 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할아 버지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그 것은 관계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계성이 가장 건실하게 이루어진 관계성이 우리의 가정의 관계요, 이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 었을 때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한 가 정이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2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을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 히 몸에 구주시니라”
그 다음에는 25절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사랑하 기를 그리스도꼐서 교회를 사랑하시 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고 그리스도꼐서 자 기를 희생하신 것 처럼 사랑하라”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가 육 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 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희생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그를 보 호하고 양육하라 하는 책임을 우리 남편들에게 주었습니다. 혹 여자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남편이 아내 의 머리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 라 이 단어가 거슬릴는지 모릅니다.
저는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말씀 대로 증거합니다. 여러분 편견을 가 지고 어떻게 남편이 나의 머리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복 종하느냐 이의를 제기할려는지 모르 지만 나는 내 인간적인 생각 문화에 따라서 현대에 어떤 사조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 진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편이 여자의 머리가 될 수 있습니까 어 떻게 보면 그당시 헬라 문화라든지 유대문화에 따라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느냐 혹 생각할려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예를 들어서 모든 기관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나라에 는 대통령이라는 머리가, 학교에는 교장선생님, 대학에는 총장, 회사에 는 회장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체이 든 그 속에 머리가 있습니다. 그 분 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유기체 속 에는 책임질만한 머리가 있어야 되 는데 우리 가정에 머리가 누구냐, 남편되는 사람이 가정의 머리가 되 고 가정을 인도해 갈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부인보다 능력이 부 족하거나 여자가 열등하거나 가치가 덜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이 가정 이라는 유기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을 해야 되고 기능적인 면 에서 질서가 있어야 되겠기에 남편 더러 이 가정에 머리가 되고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지 이 미 결혼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가 하 나가 됩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둘 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 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 도의 가정이고 이신비를 바울이 여 기에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기관에 머리가 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괴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머 리가 둘을 가지고 있는 그렇기 때문 에 바울이 우리에게 이 가정의 머리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 되고 그리고 모든 질서를 잡기 위해서 복종하여 야 되는데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서로 복 종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아내를 사랑하 면 아내의 말에 남편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 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복 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편견을 가지고 오해하지 마 시기 바랍니다. 서로 복종해야 되고 그리고 가정의 책임을 누가져야 되 느냐 주인이 되는 남편이 책임을 져 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를 잡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 에 사도 바울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복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데 아가페의 사랑이 됩니다. 무조건 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 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되고, 그를 양육하 고 돌보는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올바른 관계가 바로 될 때 에 이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이 관계성이 깨지거나 잘못될 것 같으면 영적인 생활에도 상처가 오고 기도도 제대로 안되고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 지 못하고 때로는 결손가정이 되었 을 때 바울의 얘기에 대해서 온당치 않다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하나 님의 약속을 말씀 아니냐는 말이예 요. 그렇기 때문에 바른 관계를 가 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 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협동성과 역할 분담이 잘된 가 정
영어로는 파트너십이라고 얘기 합니다. 가정은 협동성과 역할분담 이 잘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유기체라고 말합니다. 결혼하 게 되면 서로다른 인격체가 하나가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합니다. 이 것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가 됩니다. 육체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또 우리는 영적으로도 하나 가 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신비스러운 새로운 존재로 탄생됨을 말합니다. 한몸이 된다는 말은 영어로 시멘트, 요즘 지하주차장 공사가 한창입니다. 밤 새도록 레미콘 차가 와서 붓습니다. 아침에 와서보면 딴딴하게 굳어 있 습니다. 이것이 시멘트입니다. 하나 님께서 짝지워주신 짝은 이 시멘트 와 같이 딱 굳어집니다. 깰래야 깰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어찌 할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 씀하셨습니다.
한몸이 된다. 프랑스에 레 살레 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외가 하나가 되는 가정은 아교가 좋으면 두 개의 나무조각이 잘 붙어 서 서로 단단히 접착되었기 때문에 설사 다른 것이 떨어지더라도 아교 로 붙은 것은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를 그 자 신의 피로서 아교와 같이 딱 붙게 하셨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지언정 남편과 아내는 결코 분리 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과 아내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의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 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하 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우리 가정을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 리이십니다.
어느 의사부부가 가족문제가 생 겨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찾아왔 습니다. 이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데 부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 님, 제 남편은 언제나 분석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합니다. ”
분석적으로만 본다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남편이 옆에서 듣다가 호소하기를
”내 아내는 언제 나 저를 다른 남자와 비교해서 생각 합니다. ”
가정에서 분석해 보고 분 류해 보는 방법으로는 하나가 될 수 가 없습니다. 파트너십, 역할분담을 잘해야 되고,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웨슬리 선생은 가정의 행복을 별 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혼자된 과부 가 된 부인과 자식이 있는 부인과 결혼을 해서 얼마지내는데 웨슬리 선생의 복음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 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전도하러 가서 돌아오면 왜 이제 왔느냐고 웨 슬리를 괴롭히는데 어떤 책을 보니 까 웨슬리의 머리를 잡고 온 방을 끌로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웨슬 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나중 에는 부인이 웨슬리가 전도하러 갔 을 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아직 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 뭐라고 했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제 일 좋다. ”
가정의 행복을 맛보지 못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행 복하다고 했습니다. 웨슬리의 아내 는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 니다.
톨스토이의 아내도 악처라고 합 니다. 그의 아내는 늘 톨스토이에게 질투하고 의심을 품고 잔소리하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남편이 늘 마음 이 불안하고 불행하게 지냈습니다. 나중에 톨스토이가 시베리아 어느 간이역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톨 스토이의 아내가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은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죽음의 원인이 되었 다는 것을 자식에게 고백했다고 했 습니다. 톨스토이의 아내도 남편을 괴롭게 한 것을 스스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선량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남에게 존경을 받았지 만 부인이 너무나 난폭하고 무례하 기 때문에 점점 멀어져서 호텔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결혼식할 때마다 말합니다 만 남편의 건강은 아내에게 있었다 고 합니다.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식 생활 면에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존중히 여기 고 사랑하고 귀히 여기면 이 남편은 건강하게 해로할 수가 있습니다. 남 편의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면 그는 무슨 병에 걸려도 이제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의 건강도 남편이 관 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몸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적으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출근했다가도 제시 간에 돌아와서 아내를 돌보고 가정 을 돌보는 세밀한 관심을 가질 때 그 때 아내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 을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더불어 같이 사는 것보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리라”
가정의 파트너십이 안되면 사막에서 혼자있 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바로 서야 합니다. 파트너십 서로 자신의 역할 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건강한 가정 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는데 저의 아내도 전문적인 자격증도 있습니다. 그런 데 저와 결혼한 다음에는 내가 내 남편과 하나가 되었으니 목회하는 나를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저와 같이 한몸이 되어서 교인들을 돌보고 심방을 하고 교인들 사랑하 기를 밤잠을 자지 않기도 합니다. 제 사무실에 가면 제 건너편에 조그 맣게 의자가 하나있습니다. 애즈베 리 신학교에 박사학위하는 사람들 40명이 와서 제사무실과 기도실을 돌아보고는 저 책상이 누구의 책상 이냐고 묻길래 제 아내의 책상이라 고 했습니다. 아내가 무엇을 하냐고 물어서 제 아내는 저와 같이 이 교 인들의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밤잠 을 자지 않고 같이 의논을 합니다. 교인들이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교인이 어려움을 당하면 새벽에 와서 그 교인을 위해 서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애즈베 리의 총장이 와서 그 모습을 보고 21세기에는 배우자가 돕지 않으면 목회하기가 어렵겠다고 돌아간 후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목사 의 아내가 될 사람, 목사의 아내를 훈련시켜서 같이 목회를 내보내는 그런 프로그램이 생긴 것은 광림교 회에 와서 하나가 되어 목회하는 것 을 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세운 것 입니다.
사랑의 역할분담, 신뢰하고 화평 을 누리고 서로 자기의 성취를 한몸 으로 이루고 나갈 때에 건강한 우리 의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3. 서로 책임을 지는 가정
가정은 가장 높은 책임을 지는 단위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의무감 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위 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책임질 줄 알고 의무를 감당할 줄 아는 지도자 가 됩니다. 그러나 가정에 책임감이 없고 의무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책임을 지고 어떻게 백성들 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가정에서부 터 여러분의 자녀를 책임질 줄 알고 그를 위해서 의무를 가지는 자녀들 이 될 때에 사회와 나라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더불어 결혼생활 을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 편과 아내가 언제나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게 아주 깨끗하게 주 님 앞에 구별된 가정이 기독교인의 가정입니다. 주름잡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주름이 잡 히면 다리미를 가지고 깨끗하게 평 평하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주름 잡히는 것이 있을 수 있는데 남편이 성격이 급하거나 무례하게 분노를 터뜨리거나 약속을 어기거나 아내에 게 무관심하여 아내의 생일도 모르 고 결혼한 날짜도 모르고 무심하게 지내면 주름이 잡힙니다. 흠이 잡히 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서 깊 은 관심을 가지고 돌볼 때에 건강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 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 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 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아내를 돌보고 사랑하고 동거하라고 했습니다. 별방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 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기도의 파이 프라인이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서로 아끼고 돌보고 연약한 그릇으 로 지키는 책임감 있는 인생이 되라 는 말씀입니다.
미국 카톨릭의 대주교인 힐턴 쉰 이라는 사람이 인류의 가장 중대한 의미는 먹는 것과 인간의 종을 번식 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나 아내나 의식주에 책임을 져야 합 니다. 자녀를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 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양육을 못하면 학 교에서나 사회에서 제대로 양육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종종 동료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 본인이 크 게 이름을 날리거나 뛰어난 분이 아 니기 때문에 평범하게 대하다가도 얘기를 주고 받다보면 그 분이 얘기 하기를
”우리 아들이 미국에서 신학 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졸업을 합니다. 목사입니다. 제 딸이 클라멘티에 서 기독교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준 비중입니다. 제 사위가 의사인데 저 희 교회 장로입니다. ”
제가 그 사람 만 보고 생각했던 것만으로도 자식 이 잘 믿는 집사요, 장로요, 대학교 수며 신학자라는 얘기를 들을 때 그 분을 존귀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면류관입 니다. 그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양 육을 잘하고 주의 말씀으로 훈계하 는 교육을 했기 때문에 자녀가 큰일 을 했을 때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 고 자녀를 존귀히 여기고 양육하고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것이 아버지의 책임이요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자 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유산을 남겨 줄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유산은 기도를 남겨 주어야 합니다. 가정예 배드리는 것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을 남겨줄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건강한 가정 을 이루고 부모가 행복하게 여호와 하나님 을 잘 섬기면 틀림없이 자녀들도 부 모를 잘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건강 하며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 분명합 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이 없는 곳에는 나라도 없고 사회도 없습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가정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워드 핀 이 ’가정 무용론’을 주장하다가 그가 길가에서 죽은후 스위트 홈, 행복한 곳은 내가정 밖에 없다고 고백했습 니다. 가정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국 중부에 어느 소년이 책가방 을 들고 늘 통학을 하는데 기차 철 로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가 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데 홍수가 나 서 그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끊어 졌습니다. 이 소년은 당황스러웠습 니다. 조금 있으면 기차가 지나갈 때가 되었는데 철로가 끊어진 것을 모르고 지나가게 될텐데 어떻게 차 를 멈추게 할 수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기착 달려옵니다. 아무리 웃옷을 벗어서 흔들어도 기차는 멈출줄 모릅니다. 그 때 소 년은 칼을 끄내서 자신의 넙적다리 에 있는 대동맥을 끊어서 자신의 흰 셔츠를 끄집어 내서 그 피에 적셨습 니다. 붉은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기 차는 빨간 기를 보아야만 멎습니다. 피가 적은 기를 흔들며
”스톱! 스 톱!”을 외치며 이 소년이 달려갔습 니다. 그 때에 기관사가 붉은 깃발 을 흔들며 달려오는 소년을 보고서 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년에 앞에서 멈췄습니다. 소년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셔츠를 들고 얼굴이 창백한채 쓰러졌습니다. 기 관사가 급히 내려서 보니 철로가 끊 어져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시체가 된 어린 소년을 붙들고서
”우리를 살리려고 네가 피흘려 죽었구나. ”
기차에 탔던 수백명의 승객들이 내 려와서 그 소년 앞에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 다며 슬퍼했습니다. 그 기차에는 부 통령이 타고 있었고, 이 소년이 메 고 있던 가방을 보니 어린 소년의 손때가 묻은 신약성경이 들어 있었 습니다.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 는 것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가정에 서 배웠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배웠 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병들었습니다. 상처 투성이입니다. 여러 가지 병들을 앓고 있지만 하나 님의 말씀위에서 새로운 사회속에서 도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 건강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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